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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2호 우리 곁의 영화] 신비로움을 구축하는 전략 - 사운드 : 영화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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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7. 3. 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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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2호 우리 곁의 영화 2017.03.10]



신비로움을 구축하는 전략 - 사운드 

: 영화의 영혼



조민석 (<The Secret Principle of Things>, <춤>)



사운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누구나 사운드에 관한 논의가 더디고 소극적이라는 말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그런 듯합니다. 이는 시각 이미지를 향한 관심과 주석들을 생각하면 기형적일 정도로 불균등한 상황입니다. 무성영화를 순정한 영화로 간주하는 입장, 시각 이미지와 따로 떨어진 완전한 의미에서의 독립적 사운드만을 인정하는 입장 등으로 인해 그간의 유성영화와 영화의 사운드가 적절히 분석되지 못했다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일 것입니다. 또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운드에는 쇼트와 같은 분절 단위가 없고 소리의 본질적인 성격상 그러한 것을 잡아내기 어렵다는 점도 사운드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유가 되어왔습니다. 미셸 시옹은 사운드에 관한 논의를 급격하게 진전시킨 사람이었는데도 이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미셸 시옹은 그의 저서들에서 청각 인식 메커니즘부터 영화 사운드의 예술적 가능성까지 사운드를 논의하는데 필요한 거의 전 영역들을 다룹니다. 사운드를 개념적으로 접근하려면 미셸 시옹을 거치지 않을 방도가 현재로서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미셸 시옹의 저서를 읽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국내에는 『영화와 소리』, 『오디오-비전』, 『영화의 목소리』가 번역되었는데 이중 『오디오-비전』은 교과서를 목적으로 쓰였으나 영화 이론서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은 책입니다. 누구나 혼자 돌파해갈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뒤에서 할 책 소개에서도 미셸 시옹의 책은 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보다는 여기서 미셸 시옹의 주요한 개념축을 몇 가지 전달해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추가된 가치’와 ‘사운드의 장소’, 이 두 가지는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이 중 미셸 시옹을 본격적으로 읽어갈 때 필요한 개념은 ‘사운드의 장소’ 입니다. 미셸 시옹이 말하는 ‘사운드의 장소’란 사운드를 존재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서 3차원적인 사운드가 2차원의 이미지와 접합되는 가운데 스크린 안에서 또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서 각각의 소리들이 어디에 자리를 차지하는지, 어떻게 공간성을 구축하고 구조화하는지에 대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단치 않은 개념이고 설명하자면 형이상학적 경로를 따를 수밖에 없어 오늘 ‘사운드의 장소’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추가된 가치’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운드의 장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추가된 가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오디오-비전』에서 ‘추가된 가치’를 설명하는 예시 하나를 보겠습니다.



“텍스트로 인한 추가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수업에서 종종 인용하는 1984년 방영된 TV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프랑스 방송 스튜디오에서 아나운서 레옹 지트론Leon Zitrone이 영국에서 열린 에어쇼를 해설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나운서는 무질서하게 도착하는 영상들 앞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프로 근성을 발휘해 진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나운서는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세 대의 작은 비행기가 보이는 영상과 동시에 “세 대의 작은 비행기가 있군요”라는 발언을 했다. 반복 일치의 엄청난 썰렁함은 보는 이에게 항상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단지 지트론이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도 우리는 영상에서 그것만을 ‘봤을’ 것이다. 사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으니까. 혹은 “두 개의 비행기가 세 번째를 앞서고 있습니다”라고 했으면 모두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혹은 “네 번째는 어디로 갔을까요?”라고 말했다면, 지트론의 머리에서 단지 ‘말’의 힘으로 튀어나온 네 번째 비행기의 부재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결국 아나운서는 오십 가지도 넘는 ‘반복 일치’의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반복 일치의 환영을 준 것으로서, 번번이 그것들이 우리의 시각을 안내하고 구축하여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영상에 더해진 텍스트의 추가 가치는 보이는 것에 갖다 붙인 의견(그것은 물리치기 쉬울 것이다) 이상이며, 그것이 엄격히 틀을 잡으며 참여하는 시각의 구축 그 자체이다.”



   지트론의 해설 멘트가 소리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음성해설로부터 관객의 시각이 구축되는 메커니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운드가 관객의 시각을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객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레옹 지트론이 지시하고 명명하는 ‘그것’을 봅니다. 일종의 내러티브적 의미부여, 맥락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평면적 이미지에 어떤 ‘가치’가 ‘추가된’ 것입니다. 음성해설뿐만 아니라 현장음, 음악 등 사운드의 지시적 기능에 의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내러티브적 의미화, 맥락화가 일어날 때 사운드가 들여오는 의미, 맥락을 우리는 추가된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 입니다.


   여기서 잠시 처음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되었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최초의 유성영화 또는 발성영화라 불리는 <재즈 싱어>는 무성영화입니다. 몇몇 씬의 일부 구간만이 말하는(노래하는) 장면이고, 기본적으로는 무성영화로 제작되었으므로 상징성을 지우고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무성영화인 것입니다. <재즈 싱어>가 사운드가 첨가된 최초의 영화도 아닐 것입니다. 몇 번 말씀드렸다시피 사운드의 도입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발성영화의 등장은 일종의 혼란을 몰고 왔습니다. 제작뿐만 아니라 상영 환경까지 바뀌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무성영화는 이미 ‘영화’cinema로서의 완전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운드의 발명은 산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예술형식의 측면에서도 전면적 개편을 의미하는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발성영화는 보잘 것 없었고 많은 영화인들이 사운드가 도입된 ‘영화’를 비관했습니다. 경제적 제약이나 당대의 즉각적 요구로부터 벗어나있는 오늘날 우리의 눈에는 갓 시작하는 단계라 할 사운드 결합과 한창 무르익고 있던 무성영화의 표현을 예술적으로 비교하는 모습이 의아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발성영화를 ‘토키’talkie라고 부릅니다. 영화에 사운드를 도입할 때 그것의 핵심적인 동기는 영상과 함께 재현되는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자하는 욕구였을 것입니다. 사운드라는 신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말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리적인 요소부터 개념적인 요소까지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가 말하는 장면을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말만 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운드의 기본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리의 사실적 발현과 동시성입니다. 토키에서는 실제 그 사람의 것이라 여겨지는 목소리와 입과 말의 일치가 갖춰져야 합니다. 가령 늑대가 우는데 ‘음매’ 소리가 나면 소리의 사실적 발현이, 소의 입모양과 ‘음매’소리가 어긋나면 동시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미셸 시옹의 “싱크레즈”라는 개념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synchronisme’[동기주의]와 ‘synthése’[합성] 두 단어를 조합해서 지어낸) 싱크레즈la synchrése는 일정한 청각 현상과 시각 현상 사이에서, 그것이 이성적 논리와는 상관없이 동시에 맞아 떨어져 생겨나는 즉흥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접합이다. … 그 덕분에 화면상의 단 하나뿐인 육체와 얼굴 위에 수십 개의 목소리가 가능하거나 용납되고, 망치질 위에 수백 가지 다른 음향 효과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싱크레즈” 되는 소리 역시 ‘추가된’ 방식으로, 일차적으로는 영상에 덧대는 방식으로 결합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두십시오. ‘사운드의 장소’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말하는 모습이 보이고 “싱크레즈” 된 말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그 말소리가 그에게서 발현된 것이라 여깁니다. 그저 덧대진 말소리가 누군가의 몸이라는 자신의 장소를 찾아간 것입니다. 가장 사실적이고 동시적인 곳에서 결합한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과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 사람의 의식과 관련된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소리 역시 말과 감정처럼 구체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 소리가 누군가의 말일 경우 그것은 그 사람의 의식과 관련된 것이지만 듣는 사람이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의 장소를 찾았을 때만 임시적으로나마 존재성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리는 상호적인 것으로 벡터값이 주어져 인식과 맞닿을 때에만 혹은 그만큼 분명한 정체성과 목적을 품고 있어야만 자기를 확인시킬 수 있는 존재라 하겠습니다. 영화의 사운드는 특히나 소리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무엇의 소리인지가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사운드의 이러한 지시성의 측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시

미셸 시옹의 ‘사운드의 장소’가 사운드를 존재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면 ‘추가된 가치’와 관련하여 지시성의 측면을 보는 것은 사운드를 기능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운드로부터 이루어진 효과들을 밝혀 보이는 것입니다. 우선 루시엔 캐스텡-테일러, 베레나 파라벨의 <리바이어던> 도입부를 보면서 사운드의 기본적인 능력과 위력을 실감해보도록 합시다. 한 번은 사운드 없이 이미지만, 한 번은 이미지 없이 사운드만, 원래대로 이미지와 사운드를 함께, 이렇게 세 번을 보겠습니다.



   사운드를 이야기할 때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과정이 이미지와 사운드를 떼어 놓고 보는 것입니다. 사운드가 워낙 두드러지는 요소가 아니다보니 이렇게 따로따로 보고 듣지 않으면 사운드만 인식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화에서 그리고 한 영화의 모든 순간에, 사운드가 이 정도의 역할과 기능을 하지는 않겠지만 사운드의 강력한 환기능력이 와 닿으셨을 겁니다. 사운드 없이 이미지만 보았을 때는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으나 이미지를 가리고 사운드만 들었을 때는 우리의 인식 어딘가에서 대략적인 상황이 그려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바이어던>의 사운드가 완전한 독립성을 갖는 사운드는 아닙니다. 사운드만 들어도 상황과 흐름이 분명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사운드의 맹점과 한계까지 접해본 것입니다. 또한 <리바이어던>의 사운드는 날 것처럼 들려도 예리하게 다듬어진, 연출의도에 맞게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가공, 조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효과를 위해 어떤 역할과 기능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제 사운드 역시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 사운드가 수행하는 기본적인 역할과 기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니다. 사운드의 가장 기본적이자 일반적인 역할과 기능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지시성의 측면에서 세 개의 차원으로 나눈 것 입니다. 확인해봅시다.


 초점

첫째가 관객의 초점을 지정해주는 기능입니다. 화면의 어느 곳으로 관심을 향해야 하는지, 눈앞에 펼쳐진 것들 중 어떤 것을 봐야 하는지, 우리의 시각을 지정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시각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의 시각, 물리적이고 일차원적인 시각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하류 인생> 첫 쇼트입니다. 임권택은 화면 구도와 사운드 배치의 조합으로 유려한 쇼트를 구사하는 감독입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초점을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 최태웅 쪽으로 우리의 시각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쉽고도 뻔한 예는 익스트림 롱 쇼트ELS와 ‘청각적 클로즈업’의 조합일 것입니다. 청각적 클로즈업이란 주목해야 하는 소리를 확대, 집중해서 들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익스트림 롱 쇼트로 보여주는데 중심인물들의 대화만 선명하게 들리는 쇼트를 자주 보셨을 겁니다. 관객의 시각은 그들을 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청점을 눈여겨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익스트림 롱 쇼트의 거리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데 그들의 대화만 선명하게 들리는 것도 실제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시점과 청점이 어긋나 있습니다. 영화에서 청점은 주관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사이즈가 바뀌고 렌즈와 거리가 바뀌어도 청점은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같은 곳에서 들립니다. 정제된 채로 들립니다. 청점에 설정된 이 주관성이 누구의 것인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내러티브적 명명

다음으로 언급해야 할 기능은 내러티브적 명명입니다. 「내러티브 (1) : 영화인가? 내러티브인가?」의 이론적 부분이 내러티브적 명명에 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다니엘 크레이그인가, 제임스 본드인가’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 즉 실제의 맥락에서 그는 다니엘 크레이그이지만 내러티브적 명명에 따른 그는 제임스 본드입니다. 실제의 사물이 내러티브에 의해 개념적 옷을 입은 것입니다. 

   자막으로 시공간 정보를 주는 것 역시 내러티브적 명명입니다. 시대극에서 자주 보셨을 겁니다.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알제리 전투>를 보면서 하나씩 확인해봅시다. 



   그동안은 여과 없이 받아들이셨더라도 지금은 내러티브적 명명의 차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실제의 시공간과 내러티브적 명명에 따른 시공간이 다르다는 점을 의식해보십시오.



  오마르 알리가 연행됩니다. 누군가 그의 바이오그라피를 읽고 있습니다. 무겁고 결연한 오마르 알리의 얼굴 이면에서 그의 인물상이 점점 두터워지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내러티브적 명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바이오그라피를 주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상

첫 번째 해설

두 번째 해설

세 번째 해설


소비에트 사회주의 사하 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는 현대화된 도시다. 이곳에는 시민들의 유용한 교통수단인 안락한 버스와 소련자동차 산업의 자랑인 강력한 짐(zym) 자동차를 함께 볼 수 있다.

야쿠츠크는 악명높은 어둠의 도시다. 소수의 특권층이 기껏해야 불편하고 비싸기만 한 짐 자동차를 타고 뻔뻔스럽게 그들의 호사스러움을 뽐내는 동안 인민들은 혼잡한 핏빛 만원버스 속에서 시달린다.

야쿠츠크에서는 현대식 주택이 점점 구식 건물들을 대체하고 있으며, 런던이나 뉴욕의 러시아워 때보다는 덜 붐비는 버스가, 품귀현상 때문에 공공백화점에서만 매매가 되는 짐 자동차 옆을 지나고 있다.


선의의 사회주의 경쟁심으로 즐겁게 일하는 노동자들 가운데는

노예처럼 일에만 매달려야 하는 비참한 노동자들 가운데는

극한의 상황 아래에서도 용기와 끈기를 지닌 노동자들 가운데는


이 생기 넘치는 북극인도 있으며

이 불안한 모습의 아시아인도 있으며

눈병으로 고생하는 야쿠트 인도 있으며


이들 모두는 더 살기 좋은 야쿠츠크 건설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모두는 그저 물건을 끌고 운반하는 단순노동에 힘겹게 매달려야 한다.

 

 

또는 단순히

이들 모두는 이 도시를 향상된 모습으로 건설하는데 열성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1957년작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입니다. 아주 유명한 장면입니다. 『영화예술』에 정리되어있는 표를 가져왔습니다. 똑같은 장면이 내러티브적 명명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 다른 맥락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구성요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내러티브에 종속되고 기능화되는지 주의 깊게 보십시오. 


   <알제리 전투>와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를 통해 본 예는 음성해설에 의한 내러티브적 명명입니다.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음성해설은 언어에 의한 것이고 그 자체가 내레이션이기 때문에 사운드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음향의 범위에 있는 폴리Foley, 앰비언스Ambience, 효과음Effect 정도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사운드로 받아들여집니다. 음향의 범위에 있는 사운드의 내러티브적 명명 기능은 보다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공간 설정의 기능에서 살펴봅시다.

   어느 곳에 가든 그곳의 현장음이 있습니다. 그 현장음이 영화로 들어오면 시공간의 표시가 됩니다. 음향의 사운드는 주로 이러한 현실의 소리를 구성합니다. 우리 눈앞의 저곳이 어디인지 알게 해줍니다. 창고 앞에 있더라도 화면 밖으로부터 갈매기 소리, 뱃고동 소리, 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저곳을 항구 어딘가로 인지할 것입니다. 밖이 보이지 않더라도 귀뚜라미 소리, 개구리 소리가 와글와글 들려오면 우리는 이곳을 밤의 전원으로 인지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설정하는 음향의 사운드는 분절되는 쇼트들 사이에서 시공간적 연속성의 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한 쇼트 당 한 사람이 있는 두 개의 쇼트를 떠올려봅시다. 두 사람 뒤로 보이는 배경이 다르면 둘은 다른 장소, 다른 공간에 있는 것이 되지만 같은 현장음이 들리면 둘은 같은 곳에 있는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장소를 보여주더라도 현장음이 다르면 다른 시간대가 됩니다. 

   유성영화에서는 시공간 설정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흩트러지거나 불분명하면 관객은 혼란을 느끼고 스토리 세계로부터 튕겨져 나옵니다. 무성영화는 상대적으로 시공간 문제의 제약을 덜 받았습니다. 아니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사운드의 유무가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까닭은 사운드가 시공간 문제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두 개의 쇼트가 있습니다. 같은 공간음이 들리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이 되겠지만 각각 다른 공간음이 들리면 그러한 시공간적 연속성은 깨져버릴 것입니다. 유성영화의 스토리 세계란 이처럼 직선적 시간에 갇혀버린 세계입니다. 물론 내러티브적 명명에 충실한 속임수 정도로 낮추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축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전위적인 현대 영화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음악은 대단히 흥미로운 기능을 하는데 직선적 현실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기도 하고, 전혀 다른 맥락에 있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연관 짓기도 합니다. 초월적 차원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정서적 통제

마지막 차원에 있는 지시 기능은 정서적 통제입니다. 첫 번째가 일차원적 지시, 두 번째가 개념적 지시로 이 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시의 범주에 있지만 세 번째는 선동에 가깝습니다. 스토리 세계에 펼쳐지는 어떤 대상이나 사태, 관념까지도 우리가 그것들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할지 시각을 제한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시청각적 인지 조건을 총체적으로 통제합니다. 음악의 쓰임을 생각해보십시오. ‘정서적 통제’ 기능을 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운드가 음악입니다. 음악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감정을 고조시키며 심지어는 펼쳐지는 상황을 신적인 입장에서 규정해버리기까지 합니다.



“음악이 영화 보기 상황과 관련해서 특정한 감정을 창출해 내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사용된다.

   하나는 음악이 그 장면에 대한 직접적인 감정적 참여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슬픔, 기쁨, 감정과 움직임의 문화적 코드에 따라서 적절한 음계와 음조, 운율 등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때 우리는 감정 이입 음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감정 이입empathie이란 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상황과 무관함을 대놓고 알리는 방식인 마치 문자 텍스트처럼 동등하고 초연하게, 그리고 피치 못할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 ‘무심함’ 자체를 배경으로 극중 장면이 전개되고 그럼으로써 감정을 얼려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배가시켜 우주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두 번째의 경우 우리는 (부정·결여의 뜻인 접두사 ‘a’를 붙여서) 감정 불이입anempathieque이라 부를 수 있으며, 특히 자동 피아노, 첼레스타, 오르골, 무도회용 자동 기계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 같은 것으로, 그 계산된 듯한 가벼움과 천진함이 이 영화에서 극중 인물과 관객의 고립된 감정을 무시하는 듯하기에 오히려 더 증폭시키는 것이다.”



   영화의 사운드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음악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효과들은 음악만이 아니라 음향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이 같은 기능을 하는, 음악이 아닌 다른 사운드들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일 수도 있고, 공사 현장에서 들리는 날카롭고 무거운 기계음일 수도 있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오프닝 씬 입니다. 수차 소리, 전신기 소리, 물방울 소리 등 사물의 단순한 소리들이 무료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음악이 이런 임무를 맡습니다. 덕분에 내러티브적 진전이 없는 장면임에도 극적 긴장이 충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앤더슨이 직장 상사에게 훈계를 듣고 있습니다. 고무 쓸리는 소리가 두드러집니다. 꼭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려 토마스 앤더슨의 속내를 짐작케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소리가 지금의 상황과 씬 전체를 규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매트릭스>에서는 튀어 보이는 쓰임입니다.

   이번에는 미셸 시옹이 음악에서 두 번째의 경우로 말한 감정 불이입 효과가 음향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겠습니다. 



“감정 불이입 효과는 대개의 경우 음악에 관련되지만 음향의 경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우 폭력적인 장면이나 극중 인물의 죽음 다음에 어떤 절차의 진행(기계 작동 소음, 환풍기 소음, 샤워 물 떨어지는 소리 등)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되는 것이다. 히치콕의 <사이코psycho>나 안토니오니의 <패신저The Passenger>에서 처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 엔딩 크레딧 쇼트입니다. 살인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과 그 결말이 우리를 당혹케 합니다. 윤리 의식 뒤편에서 꿈틀대고 있는 우리의 본성과 충동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나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 흘러갑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거리의 평범한 소리가 이 냉정한 정서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미셸 시옹이 “우주적 무심함”이라고 말하는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리려고 하는, 관객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냉랭하고 건조한 정조에서 노리는 효과가 바로 이 “우주적 무심함” 효과일 것입니다. 다소 순화된 것이긴 해도 “우주적 무심함”은 주로 영화의 마지막, 음향과 음악이 함께 쓰이면서 세계의 차갑고 무정한 면을 결정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 보게 됩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엔딩(“잊어버리게, 여긴 차이나타운이야”, 사이렌 소리, 음악),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엔딩(“신의 가호를”, 종소리, 음악),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 엔딩(“먹거라”, 씹는 소리, 음악) 등, 그밖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종종 보셨을 겁니다. 감정 이입과 불이입, 양쪽에 미묘하게 걸쳐있는 장면입니다.

   감정 이입 방식과 불이입 방식, 이 둘은 사운드 사용 방식의 대표적인 두 경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주 단순하게 이 둘을 전형적인 할리우드 모델을 따르는 쪽과 의식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려는 쪽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설명을 위해 도식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감정 이입 방식에서는 음악이 많이 쓰이며 사운드를 빈틈없이 채우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불이입 방식은 음악을 최대한 배제해 불편할 정도로 앰비언스만 남기며 간간히 들리는 폴리, 반향음들을 날카롭고 적나라하게 들리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화 되지 않은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선악의 구별도, 그 어떤 보상도 응징도 없는 냉혹하고 무심한 세계질서의 흔적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반면 인간의 삶은 참으로 처절하고 서글프기에 그 “우주적 무심함”이 우리를 쉽사리 외딴 곳으로 떨어뜨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지시성의 측면에서 영화의 사운드를 살펴보았습니다. 관련 내용을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데이비드 보드웰, 크리스틴 톰슨의 『영화예술』(지필미디어) 7장, 하버드 제틀의 『영상 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커뮤니케이션북스) 17장, 벨라 발라즈의 『영화의 이론』(동문선) 16장을 보십시오. 아모르문디 영화 총서 『영화 사운드의 이해』 도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영화는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들이 교차·결합되는 가운데 관념의 차원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영화의 이론적 해명은 기본적으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내러티브에 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되는 단계인, 실제적 구성요소의 마지막, 편집을 살펴보겠습니다. □




#참고영상

<하류인생> 오프닝 [클릭]

<알제리 전투> 오마르 알리 바이오그라피 시퀀스 [클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오프닝 [클릭]

<매트릭스> 훈계 장면 [클릭]

<큐어> 엔딩 크레딧 [클릭]




우리 곁의 영화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며, 강의를 옮긴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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