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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7호 우리곁의영화] 무엇이 우리를 영화 앞에 붙들어 놓는가 - 내러티브장치 (1) 영화인가? 내러티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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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2. 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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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7호 우리 곁의 영화 2016.03.07]



무엇이 우리를 영화 앞에 붙들어 놓는가 - 내러티브장치 (1)

영화인가? 내러티브인가?


조민석(ACT!편집위원회)




▲ <욕망>(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외적요소, 내적요소


지난 시간까지는 제작과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둘러싼 외적 요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영화’ 그 자체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영화를 둘러싼 외적 요소와 영화 그 자체를 나누어 볼 수 있듯이 ‘영화’도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사람을 외면과 내면으로 나눠볼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외면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눈에 보이고 우리의 감각에 직접적으로 닿는 측면입니다. ‘껍데기’라고 폄하되기도 합니다. 반면 내면은 본질적 측면, 진정한 속성으로 간주됩니다.

   영화의 내적 요소와 본질적 측면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보게 될 시나리오는 외면에 속하지는 않는 듯하나,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 요소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시나리오는 영화 그 자체에 해당하는 요소라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시나리오는-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영화의 뼈대라 할 수 있으며, 제작과정 전반에서는 구심점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외면에 해당하는 요소들이 아무리 멋지고 화려해도 시나리오가 짜임새 있지 않다면 관객들은 호응해주지 않습니다. 반면 시나리오는 영화의 실제적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을 이미지, 사운드, 컷과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어서 영화가 우리가 관람할 수 있는 상태로 완성되었을 때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분명 시나리오가 없다면 영화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나리오는 실재하는 것이고, 영화의 핵심적 구성요소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완성된 다음에는 시나리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념으로만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나리오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시나리오가 개념적인 것인지, 실재적인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지금 ‘007 영화’를 보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우리가 보게 되는 사람은 제임스 본드일까요 아니면 다니엘 크레이그일까요? 우리가 보고 있는 저곳은 시나리오가 설정한 장소일까요 아니면 실제의 어떤 장소일까요? 제가 느닷없이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영화이론에서는 늘 문제 삼아온 부분으로, 아주 먼 곳과 이어보자면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대하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의식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보편성


영화와 이야기의 혼란스러운 관련성 어딘가에서 주요한 매듭을 잡아내려는 작업이 ‘영화’라고 하는 예술 형식을 해명하는 궁극적 실마리를 찾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곤 합니다. 영화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내러티브를 떼어놓고 보려는 시도가 감독들과 비평가들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의 목표가 무엇인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일종의 이상적 상태를 설정해서 그려볼 순 있겠지만, 또한 그것에 도전하는 시도는 나름의 의미 있겠지만, 영화가 이야기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나리오 책이나 영화개론서 등에서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종종 언급되곤 하는 ‘이야기의 보편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합니다. 개별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자신에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말할 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불미스러운 사건을 접할 때,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로 구성하여 스스로에게 기억시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신화와 전설, 종교, 역사도 거칠게 일반화시켜 그저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인간의 세계 의식과 이해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 까닭에 영화와 이야기를 떼어놓으려는 시도가 있다 해도 그것이 영화의 개념적 경계를 선명하게 하는 작업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범위에서 영화가 그렇게 되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이 내러티브, 즉 서사의 형식을 갖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란 '시공간의 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겠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에서는 특히 시공간과 인과관계가 중요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이 하는 일은 암묵적으로 제시되는 사건의 배경과 동기, 시공간 정보들을 인과관계로 짜맞추는 퍼즐놀이이기 때문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은 그 점을 효과적으로 겨냥한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 중에서도 중심인물의 행위를 따라가는 드라마적 성격의 다큐멘터리가 아닌 경우, 관객은 정보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그것의 개연성을 가늠합니다. 그리고 이 개연성의 정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느냐가 영화의 완성도를 가르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이것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과도 관련 있습니다. 관객의 의식활동을 자극하지 못하는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고 있다면 관객들은 영화 속 세계로부터 점점 떠나고 싶어질 것입니다. 감정 불러일으키기 마저 실패한다면 관객의 호응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퍼즐판을 제시하든, 감정동요를 일으키든, 볼거리를 제공하든 그 방법이 무엇이든 영화는 관객을 영화 앞에 붙들어 놓을 힘을 갖춰야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 힘은 서사에서 만들어집니다. 권해드린 『시나리오 가이드』를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의 욕망, 중심 갈등, 스토리 정보의 전략적 제시 등이 서사가 가진 힘의 원천이 됩니다. 



 고전 영화와 현대 영화


『시나리오 가이드』 등의 시나리오 책들이 제시하는 규범은 고전영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책들이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지향하는 듯 보이지만, 고전영화라고 하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는 시대적 구분이라기보다는 원리적 차이에 근거한 구별에 가깝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고전영화는 내러티브에 완전히 종속된 영화입니다. 고전영화에서는 이미지와 사운드와 컷이 내러티브를 충실히 전달하는 부수적인 기능을 맡을 뿐입니다. 대표적인 모델이 할리우드 클래식, 즉 고전기라 불리는 스튜디오 전성기의 할리우드 영화일 것입니다. 일관된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목표지향적인 중심인물이 이야기를 이끌며, 갈등 요소들은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야기 속 사건들은 뚜렷한 인과관계로 묶여 강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그러는 동안 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어떤 결점을 가진 인물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영화 마지막에서 그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지향하는 가치가 드러나는데, 관객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주인공의 행위과정을 함께 하며 그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를 문화적인 차원에서 의식해보면 대단히 뿌리 깊게 자리잡은 관습으로 비평가들에게 늘 타깃이 되어온 지점입니다.

   현대영화는, 소극적으로 말하면, 내러티브의 속박, 고전영화의 구조로부터 은근슬쩍 혹은 과격하게 벗어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에 끌려가는 이야기의 진전이 더 이상 제1원칙이 아닙니다. 사건의 전후 관계는 쉽게 깨지며, 어떤 일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듯 하다가 어딘가에 멈춰 서서 시나리오에서는 텅 비어 있는 것을 한참을 보여주곤 합니다. 현대영화는 영화사에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므로 여기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프랑스 누벨바그 등이 계기로 작용했다는 정도만 알아두기로 합시다.



 장르


일정 부분 현대영화의 요소가 묻어있긴 해도 우리가 보는 절대다수의 영화는 내러티브 구조와 개연성, 이야기의 진전을 필수 요소로 삼는 고전영화입니다. 영화를 관람할 때 우리가 관객으로서 영화에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내러티브 구조와 개연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져야 할 것이 가치‧이상과 같은 이념적 측면입니다. 내러티브 구조와 개연성이라는 형식적 측면과 가치‧이상과 같은 이념적 측면, 이 두 가지가 묶여 전형화 되어있는 것이 장르입니다.

   <우리 곁의 영화>를 장르만 놓고 해도 될 정도로 장르는 영화를 교양으로 숙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장르를 이해하는 것은 스튜디오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스튜디오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에 얽혀있는 영화의 예술적‧산업적‧문화적 측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르는 거대하고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또한 장르는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고 진화하는 생물체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부르크하르트 뢰베캄프의 『할리우드』를 읽어보겠습니다.



“심리의 명확성,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행동동기, 주인공의 도덕적 순결, 시공간적으로 따져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건 진행과 갈등 및 목표 달성. 이런 할리우드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은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출발점은 언제나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영화 속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결국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은 대중적 오락 예술을 상속했고 요란한 보드빌 쇼, 화려한 오페라, 연극 무대의 직접성과 경쟁했다. 물론 이런 전통을 나름의 수단으로 계승 발전하면서도 예술적 실험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데 있었다. 초기의 스크립트와 시나리오는 연극 대본을 그대로 가져와 영화제작 용으로 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원본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규격화된 서사 모델이 형성되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대신 기존 형식과 전통에 영화 방식을 맞춰갔던 것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이렇게 영화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이야기를 영화의 내러티브로 가져왔습니다. 초창기에는 영화의 내러티브로 들어온 그것의 종류에 따라 장르적 구별이 생겼을 것입니다.



“초기에는 줄거리와 길이로 영화를 구별했다. 1910년 무렵이 되면서 비로소 테마가 영화를 구분하는 특징이 되면서 제작 미학으로 편입되었다. 이름하여 장르였다. 장르 구분은 영화를 상위 개념별로 분류하여 마케팅의 방향을 정하고 관객의 기대를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장르 개념은 같은 장르에 편입시킬 수 있는 비슷한 영화들을 서로 묶어줌으로써 영화들 간의 비교를 도와주었다. 이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소수의 영화가 장르에 대한 문화의식을 규정했고 원형으로서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형식 및 시각 스타일에서 제작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형화된 체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장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스튜디오가 각기 고유한 장르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장르의 대중성은 영화산업에 보다 효율적인 영화제작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장르 구분을 통해 제작비와 손실 위험이 낮아졌고 세트와 건물의 재사용이 가능했으며, 비용을 절감시키는 제작의 기본 틀이 마련되었고, 같은 장르의 거의 모든 영화에 이용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개발될 수 있었다. 기존의 성공한 영화들을 약간만 변형하여도 앞으로의 성공을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장르영화는 특정 배우나, 그가 등장하는 영화로부터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관객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광고력 있는 스타 이미지와도 연계되었다. 장르영화에게 성공을 안겨준 처방전은 반복과 (약간의) 변칙의 게임이었다.”



   여기서 관객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관객의 호응에 따라 장르가 정착되느냐 정착되지 못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가치‧이상과 같은 이념적 측면이 이 지점에서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앞서 고전영화의 내러티브는 가치 지향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영화가 지향하는 가치를 당대의 관객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려면, 그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내러티브가 묘사하는 공동체를 관객들이 동경하게 함으로써 현실세계에서는 직접 해소하지 못하는 그들의 내재적 갈증을 그곳에서 씻어줘야 합니다. 게다가 관객들, 아니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다양한 변인에 의해 쉴 새 없이 꿈틀대는 곳입니다. 장르도 그에 따라 그때그때 변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장르가 힘을 잃는 건 스튜디오에 치명적입니다. 스스로를 패러디, 해체, 비평하며 진화해간 서부극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스튜디오는 재빠르게 적응하기도, 이따금씩 뒤쳐지기도 하면서 장르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강력하고 매력적인 성취들을 이룩하면서 장르를 지속시켜 왔습니다. 이처럼 장르는 당대의 문화적 의식의 긴밀한 대응물로서 관객의 명확한 요구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전형적 구조에서 찾아내왔고, 그런 까닭에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의 원형처럼 우리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유아독존의 영화개념이라 하겠습니다.


장르의 특성을 좀더 가까운 곳에서 확인하고 싶으면 모든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인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시면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영화 내러티브의 컨텍스트에 있는 것들을 관념적 측면부터 구체적인 지점들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실제적인 관습과 구성요소들 볼 차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시나리오 가이드』를 읽으며 그것들을 검토해보겠습니다. □



▲ <007 스카이폴>(2012, 샘 멘데스)




우리 곁의 영화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며, 강의를 옮긴 글임을 밝혀둡니다.


개요

1 알아도 써먹지 못하는 - 제작과정

2 무엇이 우리를 영화 앞에 붙들어 놓는가 - 내러티브 장치

3 신비로움을 구축하는 전략 - 영상과 소리

4 영화의 최종 병기 - 편집




[필자소개] 조민석(ACT!편집위원회)



2012년 여름부터 ACT!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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