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우리 

     
    숲속홍길동 이상현 ( 영상활동가 )

    1.

    2003년 11월 16일.

    민중언론 참세상 제공비정규 노동자들이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날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집회 끝 무렵 수천 명이 모인 집회대오 뒷편에서 갑작스런 여러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고, 집회 참가 노동자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분신을 한 충격의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열사. 30대 초반의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 2003년도 열사정국이었다. 또 한국 노동자 뿐 아니라 살인적인 단속과 강제추방에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이주노동자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너무도 많았던 해였다.

    사는 게 힘들어 절망 끝에 선 노동자들이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재작년 일이라지만 지금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더 많아진 사람들이 바로 그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바로 그 날엔 분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집회 후 행진 때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 그 대치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비두 그리고 자말 두 노동자가 경찰에 강제연행 된다. 그리고 외국인이기에 이들은 곧바로 더러운 일을 하는 인간사냥의 소굴 출입국관리소이 이송된다. 이주노조 한국 여성 활동가 한 사람이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앞에서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하기도 했다. 
    “가시려면 다 가세요. 우리 이주노조는 이 곳에서 연행 동지 풀려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이 날 난 밤 9시 넘은 시간까지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옆 이면도로 거리에 있었다. 다음날로 원래 계획했던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전야 현장이다. 분신이 아니었더라도 낮 집회 후 이리로 다 모였을 테지만, 이 시간 한 자리에 모인 노동자들의 그 누구도 할 것 없이 모두가 비통과 처참한 표정들이었다. 사실 하루 전엔 대구에 있었다. 3일전 분신하신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 중환자실에서 온 몸이 붕대로 감겨진 이해남 동지를 보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세원테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려고 준비하던 다음 날 이런 일이 벌어져 세원테크 이야기보다 우선 이 날 상황을 속보 동영상으로 밤새 세 편을 두 시간 간격으로 만들며 인터넷에 올렸다. 분신 직후 상황, 그리고 경찰 대치 중 이주노동자 연행, 밤 시간 근로복지공단에 모여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렇게 세 편을. 밤새 영상을 만들며 도저히 맨 정신으로 작업하기 어려워 사 가져간 소주 2병을 다 마셔가며 작업했다.

    다른 많은 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만, 이 날의 일은 지워지지 않을 안타까운 현실이다.

    2.

    90년대 중반 캠코더를 하나 샀다. 세상 풍경을 담아보려. 96년부터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 촬영하는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 99년에는 1년간의 노조 활동상을 조합원 총회에서 영상다큐로 상영하기도 했다. 그 때는 스스로 편집할 줄 모를 때라 어느 독립영화 활동가에 부탁해서 한 프레임마다 내가 옆에서 이야기해주며 같이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상 활동이다.

    그러다가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 노동자들이 서서히 투쟁을 달궈나갈 때 처음 스스로 만든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기 시작했고, 38일간의 파업투쟁 기간 동안 산개 중인 조합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한 때 같은 노동조합 동지들인 발전 노동자들과 함께 하려고 연월차 휴가를 다 썼다. 김시자 열사 (한전 노조 내부 민주화 투쟁 때 96년 1월 13일 분신하셨던 한일병원 지부장) 추모제 때 한전 투쟁의 실패와 노조 위원장의 직권조인 그리고 그 때문에 발전이 한전에서 분리되는 내용 등을 담은 다큐를 소개했다가 회사 측에 의해 3주간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회사 관리자 두 사람에 의해 하루종일 일하는 곳에서 나는 감시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건 바꿔 생각해보면 영상운동의 힘이라 판단해 본다.

    2년여전 노동가요 작곡가 김호철 선배가 서버 때문에 고민하는 내게 먼저 친절한 제의를 해 주셨다. 김 선배가 운영하는 노동의소리 서버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됐다. 그전부터 해오던 활동이 이때부터는 더욱 힘을 받게 되었고, 많을 때에는 속보 동영상이 1주일에 서너편 정도 올라갈 때도 있었다. 요즘은 민중언론 참세상에 많은 영상활동가들이 있어서 오히려 그쪽 것을 보는 입장에 있기도 하다. 대신 조금 집중적으로 조금 기간을 갖고 힘겹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

    미래 사회를 다룬 어느 SF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통제, 관리가 잘 되는 시스템에서 소외된, 어쩌면 스스로 그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며 투쟁하는 이야기. 우리가 잘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

    지금 바로 한국 사회도 그와 같은 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 노예처럼 일하고, 한국사람들이 하기 어려워 하는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언젠가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 때문에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이주노동자. 40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 한국 땅에서 100명 중 한 명의 분포이다. 이들은 마음대로 길거리를 다니기도 어렵다. 출입국 단속반들에 의해 강제로 잡혀갈 수 있으므로. 마치 장애인이 신체적 차별로 누리지 못하는 이동권의 자유처럼.

    그러면서도 많은 한국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외면한다. 보다 편안한 노동의 바탕에는 비참한 이주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2003년 11월 15일. 명동성당을 비롯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농성에 돌입한다. 2004년 8월부터 시행할 고용허가제를 앞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합동단속을 시작하는 그 날에. 이 때부터 나는 명동성당을 매일 들르거나 1주일에 평균 2-3일을 농성장에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뒹굴었다. 그 혹독한 추위.

    그렇게 오래도록 농성할 줄 몰랐는데 그게 무려 1년 1개월이나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인연으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같이 늘 지내면서 촬영도 하지만 오히려 인터넷을 통한 영상은 최소화하고 있다. 그것은 영상물이 출입국 단속반에게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현장이 너무나 어렵다. 지금 같은 무더위에 노숙농성투쟁을 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이렇게도 투쟁하기 어렵다. 투쟁 그 자체가 어려운 여건이다. 그래도 투쟁을 하고 있다. 그러다 이주노조 간부가 출입국 단속반에 의해 표적 납치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며칠간 동태를 파악하다 이주노조 간부를 납치하고 강제출국시킨 일들이 작년과 올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다른 나라도 그럴 테지만 당연히 한국 연대단위와 함께 하는 투쟁이다. 요즘은 영상활동가로서보단 이주노조 간부들이 움직이게 될 때 운전을 많이 하게 된다. 그게 벌써 1년 반이나 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올해 6월 아노아르 위원장 표적납치 연행을 규탄하는 릴레이 일인시위를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3주간 진행했는데, 위원장 직무대행 샤킬 씨가 다른 일정을 소화하다가 명동성당에만 나타나면 성당 앞 주변이 갑자기 분주해짐을 느낀다. 다음번 표적 납치 타게트인 셈이다. 충남 아산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 일일주점을 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급하게 부탁받고 내가 운전해서 샤킬 씨를 비롯 이주노동자 몇 사람과 같이 아산으로 가야 했는데, 명동성당에서 샤킬 씨를 태우고 막 출발하는 순간 주변에서 감시하던 차량들이 바로 미행을 따라 붙은 것이다. 잠시 추격전이 벌어졌고, 아노아르 씨를 납치할 때 30명 정도가 폭력을 써 가며 잡아간 직후라 혼자서 막을 수 없기에 15년 운전 솜씨(?)로 일단 미행 차량들과 앞선 차량(포위 작전인 듯 했다.)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아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산에 갔을 때 무척 반겨주는 사내하청지회 비정규 노동자들. 비정규 노동자들이 아주 많이 이주노동자들을 헤아려준다.

    이 날 샤킬 씨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이도 울었다. 잡힐 수도 있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가야 하고 어렵게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것이다.

    4.

    지금 다른 많은 현장 투쟁 상황들도 많이 촬영했지만 번번히 편집할 시간을 많이 놓친다. 그래도 좋다. 이주 동지들이 열심히 투쟁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생각도 해본다. 끊임없는 자본의 통제. 자본이 만든 성벽으로 인해 생겨나는 노동자 사이의 차별. 이제 맞서 노동자는 하나가 되는 일을 해야 하고, 단결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좋은 세상이 그저 편하고 쉽게 다가올 리는 전혀 없기에.

    이 세상을 노동자가 만들었듯, 모든 노동자가 조금만 옆을 쳐다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 하나가 되기 위해...세상의 평등과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스스로 절대 구분하지 말자고...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담은 영상운동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