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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6호 나,미디어활동가] 연대,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 박종필 감독과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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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6호 / 2005년 10월 27일  

 

연대,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박종필 감독과의 인터뷰

 

 지후 ( ACT! 편집위원회 ) 

 

들어가기 전에.

 

박종필 감독은 글쓰기를 싫어한다. 대학 땐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영상을 시작하여 올해로 10년 째 다큐 감독으로 살아온 그에게, 문자 언어는 그다지 익숙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원고 청탁하기를 여러 번, 결국은 인터뷰 약속을 잡고 말았다.

 

 

 

 <끝없는 싸움-에바다> <에바다 투쟁 6년-해아래 모든이의 평등을 위하여>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 <노들바람> <이동할 권리> 등... 장애인 투쟁현장에서 늘 그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은 장애운동과 연대하며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장애인권영화제에서, 장애인미디어교육에서, 장애인기자학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제는 장애인미디어(지원)센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단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미디어 활동가로서, 그의 활동의 궤적을 짚어보는 것은 한국의 미디어 운동의 성장을 반영하는 하나의 모델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함께, 관계 맺으며, 연대 속에 여기까지 왔다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근황을 묻자,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노숙인 영상 작업(98년 'IMF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촬영을 해 두었고, 현재 ‘잊혀진 사람들’이라는 기획물을 제작 중이다), 장애인 노동권 영상 준비, 정립회관 투쟁 촬영, 장애인영상교육, 장애인기자학교, 장애인미디어센터 준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 등 박종필 감독은 하는 일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전장연과 장애인기자학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전장연과 장애인기자학교.

 

=> 전장연은 장애인 관련 관변단체들과 다르게, 진보적 관점에서 장애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만든 전국 조직이다. 장애인기자학교는 사실 전장연을 고민하면서 기획된 측면이 크다.

 

 

 

배경을 말하자면,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진보적 장애운동이 이동권 투쟁을 계기로 다시 불붙었지만, 장애운동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활동가 재생산도 필요하고, 재교육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제도교육에 문제가 많긴 해도 어쨌든 사회화 되는 과정인데, 장애인은 그러한 정기 교육과정에서 배제되어 있고 수학 능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장애인정치학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장애운동 내에서 일방적인 교육방식보다는, 일상적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현실인식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다. 나는 뭔가 좋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 장애인기자학교를 생각하게 됐었다. 장애인이 미디어의 제작주체로 서고, 사회현상을 기사로 쓰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더불어 전장연의 활동을 선전선동 할 미디어활동가 양성의 필요성도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기자학교는 장애인문화공간과 프로메테우스, 민중언론 참세상, 노동넷 등 진보적 인터넷 매체에 제안해서 진행하게 됐었다.

 

 

 

 

 

 

장애인기자학교 (사진출처:장애인문화공간)

 

 

 

장애인기자학교는 영상교육과는 달리 전장연 소속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는 단체 활동가 12명(이 중 중증휠체어장애인이8명)이 참여하고 있고, 이들 중에는 기자수첩을 쓸 수 없는 장애인도 있는데, 이 경우 녹음기를 현장 취재용으로 쓸 계획이다. 초급 교육이 끝난 후, 구체적으로 미디어에 자기 전망을 찾는 이가 있다면 인터넷 매체와 연계해서 현장실습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진보적 장애운동의 관점을 담아낼 독립된 인터넷 매체도 필요하리라 본다. 그래서 장애인기자학교는 해마다 진행할 계획이다.

 

 

 

 

 

박종필 감독의 작업 방식.

 

이쯤 되면 박종필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동시에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하는 활동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에바다 투쟁 때부터 그가 속한 다큐인은 에바다정상화를위한연대회의 소속 단체였고, 이동권연대나 전장연에도 소속되어 있다. 어떤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과의 연대의 틀 속에서 하나의 구성인자가 되어 함께 투쟁하며 그것이 곧 작업이 되는 방식.

 

 

 

 

 

 

 

=> 미디어가 운동의 수단인지, 미디어 자체가 목적인지에 대한 차이다. 나도 종종 그런 면이 있지만, 영화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제작만이 아닌 다양한 활동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자!>는 애초에 제작할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동권투쟁은 2001년초에 시작되었는데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 교육물을 만들자고 하여, 2002년 말 편집만 40일정도 해서 완성한 것이 <버스를 타자!>이다. 99년 겨울에 완성했던 <끝없는 싸움-에바다>는 실제 제작기간이 3달이 안 된다. 다큐인이 각 연대체의 소속단체이고, 그러한 직접적 관계성이 제작자에게 더 많은 책임감과 정보를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즐겁다. 사람들이 대개 카메라 들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지라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단체에 가입해서 작업하면 그런 거리감이 극복된다. 인간적 관계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카메라는 우리에게 무기인 동시에, 대상과 나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되기도 하잖은가. 때로는 카메라 없이도 만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점에 있어 긍정적이다.

 

 

 

 

 

영화제, 영상교육, 어려움, 경험들.

 

애초에는 노동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뭔가 ‘다른’ 노동을 이야기하고 싶어 장애인을 떠올렸고, 그렇게 찾아다니다 에바다 투쟁에 결합하게 됐다. 주류 미디어가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달랐던 에바다 현장에서 경험한 충격과 분노는, 장애 쪽만 벌써 7년째 활동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그간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요구가 있었고, 그것이 그를 지금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끌었다.

 

 

 

=> 돌이켜보면 관계 속에서 요구되는 것들이 많았다. 영상교육이나 장애인권영화제는 연대체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장애인기자학교는 다큐인에서 기획한 사례다. 장애인권영화제는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단에서 2003년 투쟁을 준비하면서 다큐인에 제안을 해 왔다. 아는 것도 없고, 함께 할 사람도 없고 해서 처음엔 무척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한겨레문화센터 영상교육의 후속모임인 ‘비디오로만드는세상’의 회원들이 많은 일들을 함께 해줘서 첫 해 영화제를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제3회 서울장애인권영화제 (사진출처:장애인문화공간)

 

 

 

영상교육은 장애운동단체들이 문화사업으로 기획하고 다큐인에 제안해서 진행한 것이다. 2003년 시작한 장애인영상교육은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작년에는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성과도 있었다. 작년의 경우 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요구하는 사전교사모임이나 평가 모임 등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실제로 교육하는 것보다 준비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더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내가 주도적으로 이를 진행 한다. 매 수업 끝나면 평가 꼬박꼬박하고.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았겠나, 교육 방법론 자체가 없으니... 교재도 없었다.

 

 

 

장애인영상교육은 무료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비장애인이 교육과정 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인식하고 연대하는 것도 주요한 목적이다. 그런데 교육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참여한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활동보조도 병행해야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활동보조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면, 장애인은 교육을 제대로 참여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비장애인이 도중하차 하면서, 같은 팀에 있던 장애인은 활동보조가 없어서 작업을 하지 못 했고 많이 울면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게 참 마음 아팠다.

 

 

 

영상교육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다. 교육할 때는 한계적이나마 활동보조를 받아 제작을 할 수 있지만, 교육 공간이 아닌 곳에서 과연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를 받으며 고가의 영상장비를 가지고 제작할 수 있을까? 기사나 사진은 가능해도 동영상은 어려운 것 같다. 비장애인도 접근이 쉽지 않은데, 노동, 교육, 이동 등 모든 사회적 관계 등에서 배제되어 있는 장애인들은 얼마나 더 어렵겠나.

 

 

 

그러한 이유로 영상교육은 교육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집밖으로 나오고, 사회화 되는, 그런 의미가 지금은 더 큰 것 같다. 장애인은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수동적이며 소극적이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장애를 소재나 주제로 하여 작업하면서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나아가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게 되는... 이것이 중요한 지점 아닐까. 

 

 

 

장애인에게 미디어가 분노를 표출하는 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내재된 분노들을 표출할 수 있는... 교육이 끝나고 지속적인 영상제작을 바라는 것은 아직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의 배급 역시 다른 측면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장애인이 직접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장애인미디어(지원)센터를 준비하면서 해결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장애인 영상교육을 3년 동안 2개월 코스로 6번 진행했다. 영상교육을 통한 장애인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이라는 느낌은 든다. 교육을 시작했을 때와 끝날 때를 비교해 보면 뭔가 적극적이다. 발언도 많이 하고, 뭔가 반(反)강사 전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내가 뭐라고 얘기 하면, ‘그건 아닌 것 같고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요’하고. 영상제작에 자기전망 가지려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미디어센터.

 

박종필 감독은 이제 장애인미디어센터 설립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어떤 그림일까, 아직은 그도 알 수 없을 테지만, 대강에 대해 질문했다.

 

=>지역에 미디어센터들이 생기고 있다. 지역마다 장애인미디어센터가 생기는 건 불가능하고 옳지도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역에 있는 센터가 사회적 소수자의 접근을 보장하도록 중앙에서 제안하고 잘 안 되면 강제도 하고, 교육방법론을 만들고, 정책 연구도 하고 그러한 중앙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장애인미디어센터이다. 실제로 센터가 생기면 장애인들에게 알맞은 장비 개발도 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일이고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만, 함께 할 만한 활동가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걱정이 되지만, 장애인미디어센터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려내면 함께 할 사람도 많아지겠지..

 

 

 

미디액트, 한독협 등에 제안해서 장애인미디어센터설립추진위원회(가칭) 준비모임을 조만간 가질 생각이다. 여기에 장애 관련 영상 활동가들과 장애인단체와 함께 할 것이다.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워크샵으로 장애인미디어센터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넣을 예정이고, 내년 정도에는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낼 생각이다. 센터 설립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제작을 확 접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에 뛰어든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차피 할 거 아니냐! 그럼 빨리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더라. 맞는 얘기다.

 

 

 

나오며.

 

박종필 감독이 장애운동에 결합하게 된 것도 결국은‘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영상을 준비 중에 있기도 하지만, 노동에 관한 작업은 계속 하고 싶다. 그래서 비정규직완전철폐를위한영상프로젝트팀(이하 비철팀) 활동에도 애착을 가지고 열심이다. 

 

 

 

'비철팀'은 작품이라고 칭하기는 어렵지만 꼭 필요한 속보성 작업을 진행하고, 극장 상영이 아닌 다양한 배급방식을 모색함으로서 영상운동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후배들에게 해 줄 말씀 없냐고 물으니, 내가 좀 먼저 시작한 것일 뿐이잖아, 라면서도 하긴 오래 했어, 라며 손가락을 꼽는다. 올해가 10년째. 다른 거 할 게 없어서 그리 되었다고, 예전에는 이렇게 고집이 세진 않았는데 다큐멘터리 하면서 변한 거라고 너스레를 떠는 박종필 감독. 마지막에 가서는 사람과 연대를 이야기했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사람이 남는 것 같아. 다큐를 통해 얻는 거지. 연대의식 아닌가? 연대의식.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거 같애. 뻔히 보이잖아, 세상이 어떻다는 거 우린 안다고. 그런데 어떻게 못 하는 건, 각자가 갇혀 있기 때문이야. 함께 자기 고민을 드러내지 못 하고, 해결하려 하지 못 하고, 갇혀 있기 때문에. 한계는 보인다 해도 함께 하려는 이들이 있고, 이들과 연대하면서, 희망을 쌓아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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