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상촬영 입문기
     
    박종국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 교선국장)
    1. 타워크레인 기사가 되다.
     

    군대를 제대하고 여기저기 소일거리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시내구경을 하던 중 저 하늘 끝 창공에 높게 세워져 있는 타워크레인을 보게 되었다. “저 하늘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직장 상사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일은 없겠다.” 타워크레인을 쳐다보며 “나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가 찾아와 자격증 시험을 보고 타워를 하게 되었다. 세상일이 그렇듯이 겉으로 보는 것하고는 실제로 접해보면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일요일도 없이 꼭두새벽에 출근을 하여 새까만 밤이 되서야 퇴근을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 10시간이상 라디오 무전기하나 의지 한 체 고독한 생활이었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가 터져서 이마저도 또 다시 실업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어쩌다 현장 하나라도 나오면 타워임대업체와 현장관리자의 이중 통제 속에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툭하면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TV뉴스에 터져 나왔다. 너무나 바쁜 와중에도 학구열에 대한 열망은 야간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오면 잠시 눈을 부치고 또다시 건설현장으로 출근을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2. 카메라를 들게 되다
     

    건설현장은 최고 7단계의 다단계 하도급으로 되어 있어 툭하면 작업자들이 힘들게 노동한 일당을 떼어먹기 일 수였고 이 땅의 1,200만 노동자 중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참다못한 우리는 마침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고 2001년, 2004년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1,500명의 타워 노동자들이 전국적인 총파업 하게 되었다. 당시에 많은 언론에 보도가 되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강행한 총파업의 열정이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조금씩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 간다는 것이었다.

    방법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오희택 건설연맹 조직국장 소개로 수도권 영상패에서 노동영상물 교육을 한다기에 공공연맹 회의실에서 참여를 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영화감독들이나 하는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직접 편집도하고 취재도하고 음악도 넣고 하는 작업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흥분이 되었다. 나의 새로운 실험정신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옛날 일기장이나, 흑백사진을 보면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잘 만든 영상물은 지나온 역사를 담을 수 있어 너무 좋은 것 같다. 컴퓨터 조작도 서투른 내가 당시 책임지도를 해주신 공공연맹 박주동 영상패 회장님과, 김미례 독립다큐 감독님의 지도아래 하나씩 하나씩 배워 나갔다.

    위 아이콘을 클릭하면, 박종국 교선국장이 기획을 담당한 
    [다시 일어서는 타워노조]를 볼 수 있다.

    타워크레인은 현장 특성상 촬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수백만원씩 임금을 받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건설현장은 그리 만만치 않다. 많은 대중들이 타워 노동자들의 생활을 궁금해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애환을 영상에 담고자 했다.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날품 팔아 생활하는 건설 노동자들을 보았다. 또 다른 충격이었다. 도심에 쭉쭉 뻗은 빌딩, 아파트를 보며 경제성장의 척도를 가름하지만 그 건물을 짓기 위해 일요일도 없이 하루 10시간~12시간 노동을 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삶은 아무도 모른다. 주류 언론도 외면하는 상황을 누군가는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정규직 보다 못한 건설노동자들..

    작품이 거의 다 완성될 무렵 저장한 파일이 날라가 버려 다시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몇 번 지속이 되었다. 그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박주동 회장님이 격려와 지도를 잘 해 주셨다. 어설프게 만든 영상물을 전국 간부 수련회 때 상영을 했다 부끄러운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같이 시사회를 보았던 건설연맹 국제부장님은 스웨덴목공노련에 소개를 하여 타워노조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3. 비철팀에 들어가다
     

    이수종 위원장님과 비정규직 4명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하려고 하는 “비정규직 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내에서 도서관신축공사를 하는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게 되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때마침 서울에서 활동하는 영상활동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비정규직완전철폐를위한영상프로젝트팀”이 만들어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노조활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영상물 재작을 팀들이 회의를 통해서 하는 작업이었다. 아마추어인 내가 할일은 별로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은 너무나 신선했다. 정말 순수한 열정하나로 조직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갈수록 열악해 가고 있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여 하룻밤 숙소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최근 대학교들의 비운동권 장악으로 이 또한 동의를 얻는 것조차 무척 힘이 든다. 신자유주의 여론에 밀려 노동운동에 대한 반대여론 또한 만만찮다. 모든 언론이 보수화되고 자본에 일방적인 편을 들고 있는 이때에 개개인들이 모여 활동하는 영상활동가들의 역량은 갈수록 그 비중이 커질 것이다. 자본에 의해 왜곡된 “귀족노조, 손배가압류, 분신열사 등등..” 이 모든 것들을 바꿔나가는 것이 영상활동가들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팀이 중요하고, 나 또한 함께 하고자 한다. 

     
    4. 요즘의 나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요즘은 하나하나의 편집기술을 익혀가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 아직은 쓸 만한 카메라가 없지만 다음에 구입을 하면 좀더 영역을 넓혀서, 내가 농촌출신이기 때문에, 농촌의 실상과 수입개방문제, 농민몰락 등등 농촌문제에 대해서 깊은 작업을 해 볼 생각이다. □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