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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7호 Re:ACT!] 한국은 ‘사랑할 줄 아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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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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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7호 / 2009년 11월 30일   

           
한국은 ‘사랑할 줄 아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김동찬(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강제추방 반대한다! 강제추방 반대한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 동안 밀린 내 월급 주세요!”

 


11월 8일 MBC <시사매거진 2580>. 홍대 앞 소극장에서 열린 가수 강산에의 인권 콘서트에서 외국인노동자 밴드 스톱크랙다운(Stop Crack Down)이 노래하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카메라에 비친 무대 한구석이 허전하다. 이어서 화면에 나타난 서글서글한 외모에 맑은 미소를 가진 한 남자. 미노드 목탄. 한국 이름 미누.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미누를 석방하라', ‘강제추방 반대한다'. 일일이 열어보진 못했지만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많은 성명과 탄원서를 메일을 통해 보았던 터다. 게으른 탓에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는데, 예정에 없이 틀어놓은 TV에서 그간 미누의 사정을 상세히 보게 되었다. 15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여러 명의 ‘또 다른 미누'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지나간다. 함께 TV를 보던 아버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미누를 다시 만난 건 ACT! 제66호를 통해서다. 리뷰를 부탁받고 미디액트 누리집에 접속해 ACT! 목차를 열자마자 그의 얼굴부터 눈에 들어온다. <‘미누에게 자유를'>. 미누와 알고 지내던 5명의 친구들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미누는 가수이자 MWTV(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일하는 미디어활동가였다. 그의 친구 제프는 “주류언론에서 나오지 않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영어로 알리는 것을 목표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에 나선 친구들 대부분이 이렇게 미디어활동을 통해 미누와 만나고 교류했던 사람들이다. 이 땅의 주류언론들이 외국인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나아가 이들의 고된 삶을 왜곡하고 옥죄는 동안 이들은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기타를 메고 거리와 무대에서 진실을 외쳐왔던 것이다.

 


이 리뷰를 쓰는 주간 동안 주류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TV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KBS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인(여성)을 통해 본 한국의 현주소'라는 독특한 포맷으로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얼마 전 <미수다>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생각한다”는 이른바 ‘루저' 발언이 방영되어 논란이 일었다. 방송 후 한국사회의 모든 매체들이 나서 (미누에 대해 침묵했던 바로 그 한국의 매체들) 이 사건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태며 소란을 피워댔다. 이런 매체들의 호들갑 덕분에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했던 이 사건은 ‘루저' 발언에 분개한 ‘단신'(?) 남성들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웃지 못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이번 ‘루저' 논란은 애초 <미수다>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온 것에 불과하다.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불편한 진실은 회피한 채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데 있다. <미수다>는 과연 한국사회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가? <미수다>는 미누의 눈을 통해본, 그리고 제프와 마붑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미녀들의 수다>는 끝내 <미누들의 수다>를 담아내지 못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제쳐둔 채 벌어지는 ‘루저' 논란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다시금 확인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미누의 사연을 다룬 <시사매거진 2580> ‘머물 수 없는 나라' 꼭지가 바로 그런 프로그램들 중 하나이다. 지상파 15분의 위력은 작지 않다. 진실을 담은 방송의 힘은 보수적인 대한민국 50대 남성의 분노를 이끌어낼 만큼 때때로 강력하다. 그런데 이런 소수의 프로그램마저 지상파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방송을 편파방송으로 규정하는 얼치기들의 공세 앞에서 저널리즘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또한 권력과 자본에 의한 통제를 강화해 오직 시장논리와 자본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미디어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미디어제도 개편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안 그래도 초라한 지상파 저널리즘의 한 줌 남은 공적 기능마저 말살하려는 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과연 한국은 미누가 바라던 대로 ‘사랑할 줄 아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ACT!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마붑은 방글라데시에서, 미누는 네팔에서 독립미디어센터를 만들어 미디어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누의 건투를 기원한다. 우리도 힘차게 싸우며 연대할 것이다. ACT! 다음 호에서는 네팔에서 활동하는 미누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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