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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Re:ACT!]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를 더 자주 고민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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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 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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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Re:ACT! 2009.12.30]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를 더 자주 고민할 수 있도록

 

 

 

박은하 (ACT! 독자)

 

 

 

"내 이름은 데이비드 베컴.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미디액트 67호를 읽고 나서, 한 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광고 속 주인공은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 안 그대로 전 세계의 미디어가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굳이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베컴은 광고 속에서 슈퍼스타 베컴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인간 베컴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작 남들이 잘 들어주지 않았던 인생사를 읊조리는 그의 나레이션에 도리어 슈퍼스타로서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이 역시 상업광고를 위해 연출된 장면이겠지만, 이 광고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읽어낼 수 있었다. 너무나 중요하고 사무친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잘 들어주지 않는 것. 그것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하는 역할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67호 ACT! 활동가들이 다양한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미디어 운동이라고 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린다. '언소주 운동'과 같이 미디어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 정도만 떠오른다. 웹진을 보며 깨달은 것은, 미디어 운동은 더 다양한 이슈를 담아낼 수 있고, 생활밀착형인 운동이라는 점이다. 비단 미디어 수용 방식만 다루는 게 아니라,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직접 자신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모습이 현장 기획에 잘 드러나 있었다. 여성/장애인/노인/상상력을 거세당할 위기의 문화예술인들. 나의 모습이자 이웃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누군가에게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자기가 비추고 싶은 곳을 비추고 있다.

 

 

 

“이런 기술적인 면만 달라진 것은 아니지요. 자신의 연대기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무척 즐거워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게 좋으셨나 봅니다. 하지만 정작 이것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기획을 하자고 했을 때는 너무 막막해하셨고 영상을 통해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멋있는 풍경만 찍어 오시기만 하셨죠. 저는 저 나름대로 헤매고 있었고요. 저 또한 저의 경험과 상상력 안에서만 머물렀던 겁니다. 어르신들의 대화방식이나 상상의 방식을 잘 몰라 도대체 어르신들이 뭘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건지 기획안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편집시간에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특히 두 분의 어르신은 기획 당시 옛날에 있었던 일을 자신이 대사를 만들어서 넣는다고 했을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만든 영상을 보니 옛날 영화 같은 변사 방식의 영상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기획당시 그런 점을 잘 이해했다면 더 많이 어르신들의 생각을 영상으로 끌어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노인미디어 교육을 다룬 정소희 씨의 글 중)

 

 

 

67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대

목이다. 미디어 교육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솔직하게 전해져 왔다. 가뜩이나 세대차이 등으로 의사소통하기 힘들었을 텐데, 다큐멘터리 기획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하신 거 같은 어르신들을 보며 느낀 답답함, 그러나 알고 보니 자신의 시대에 익숙했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는 반전! 필자는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어르신의 태도와 적극적인 모습이 잘 다가왔다. 나 역시 필자와 같은 세대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이런 발견이 더욱 즐거웠다. 미디어 운동이란 반드시 완성된 작품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완성된 작품이란 이런 과정 과정을 통해 성찰과 교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노인영화제에 가 보지는 못했지만, 영상과 거리가 멀었을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돌아봤을 장면을 생각하니 흐뭇해졌다. 요즘 들어 디카 찍는 재미에 푹 빠지신 어머니가 나중에 이렇게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어 희망에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평등하다'는 문장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안에서 이 말은 실감나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참 적막하다”라고 썼다가 지웁니다. 적막하다고 느끼고 가만히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씽씽 차소리,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장애인들의 일상은 수많은 소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접하는 영상들 속에서도 소리는 이중, 삼중의 층으로 겹겹이 쌓여진 상태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천천히 다시 보기'를 보면서 문득 낯선 세상을 느꼈습니다. 그 세상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 조용한 세상은 등장인물들이 수화로 말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비장애인들이 만드는 영상물에는 흔히 사운드디자인이라는 공정이 있습니다. 대사뿐만 아니라 현장음, 음악, 내레이션 등을 섞어서 영상물을 사실적으로, 혹은 감독의 의도에 맞게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만든 영상물 속 세상은 정말 고요합니다. 그 고요를 낯설어하다가 문득 고요 속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장애인미디어운동네트워크, 류미례 씨의 글 중)

 

 

 

"내 얘기를 들어볼래? "로 글을 시작했는데, 이 경우 오히려 " 듣지 못해서 " 알게 된 깨달음을 말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우리가 얼마나 다수의 논리와 다수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단면을 명쾌하게 잡아낸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촉발시킨 것이 청각장애인의 소리 없는 영상물이었다. 장애인을 장애우로 부르는 것이 커다란 진보였을 시절이 있었다. '장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면했다지만, 그러한 장애 인권 운동의 순간에서조차 장애인들은 주체가 아니고 객체였다. 비록 ACT!에서 이 글의 주인공은 류미례 씨겠지만, 그 안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인 한 장애인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사는 곳이 어떤 세계인지 직접 만들어냄으로써, 비장애인들의 세계를 낯설게 만들었다. 내가 속하는 세계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낯설음과 익숙함이 뒤바뀐 가운데 이해와 교감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는 류미례 씨 글에 담긴 소제목이다. 그런데 이는 미디액트 67호의, 아니 미디어 운동 전반의 모토라고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대 미디어는 주로 주류의 세계를 방송한다. 유명한 영화감독이나 작가 정도 되면 자기만의 세계를 스스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자신의 세계를 말할 공간을 얻지 못하며,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세계 속에서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은 감내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개미군단에게 카메라가 주어지고, 영상교육의 기회가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낯선 세계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낯선 세계가 허용되지 않았던 세상에서 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리의 인식 세계에 균열을 내는 중요한 첫걸음이자, 제작자들에게는 스스로 자존감을 충족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 잘 살아났던 기획이었다.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의는 바로 그런 영상을 접한 우리들이 고민해야 할 몫이다.

 


ACT! 활동가들의 노고에 감탄하면서도, 더 나은 미디어 운동을 위해 약간의 아쉬움도 적어본다. ACT! 웹진의 글들은 전반적으로 '활동가' 내지 '교육자'의 위치에서 쓰였다는 느낌을 준다. 교육 과정에서의 좌충우돌과 깨달음은 잘 드러나지만, 영상을 만드는 주체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역여성영화 관련 글의 경우, 물음은 좋았지만, 지역에서 여성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노인미디어 관련 글도 영상을 만드시는 사람의 입장이나 어려움, 깨달음이 좀 더 생생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문화연대의 글은 그 점에서는 좋았다. 전미네 인터뷰는 전미네 활동 과정에서 어려움, 에피소드, 보람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안한 미래로 걱정하는 같은 청년의 입장으로 더 재밌고 아픈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다른 아쉬움은 현 정부 미디어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지금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서 새로운 세계를 위한 개미들의 미디어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이 다소 당위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서 제기된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연대나 완군의 글을 보며 느낀 아쉬움이었다. 완군의 글의 경우 가상기획이 재밌고 읽는 맛을 주기는 했지만, 미디어 활동가가 아니라, 이 웹진을 처음 접한 사람이 읽는다면 근거가 다소 부족한 '음모론'으로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접근해간다면 더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점에서 아르헨티나 미디어법 관련 기사는 인상적이었다. 의미와 한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면서,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물론 '시민 미디어 공간'이란 주제까지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힘든 환경에서 미디어 운동을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ACT! 활동가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얘기 좀 들어줄래?"라고 묻는 것에서, "자 이게 내 얘기야"라고 외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버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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