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카리미는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영화를 보고, 익명을 포함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영화제를 찾아 이들의 영화를 보는 것이, 이 글을 쓰는 것이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들의 다음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길 기원합니다."
[ACT! 126호 길라잡이 2021.08.31]
익명의 감독들을 떠올리며
박동수(ACT! 편집위원)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며 수도권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선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팬데믹 속에서 영화제들은 일정과 형식을 정비하여 다시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시간표를 짜고, 시간에 맞춰 예매창을 켭니다.
9월 9일 개막 예정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램을 확인하던 중 자꾸만 눈길이 가는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익명의 영화 감독이 만든 이 용기있는 자전적 단편 다큐멘터리는 미얀마의 군사정권 하에서 공포에 떨며 사는 것에 대해, 그리고 2월 1일 군사 쿠데타 이후로 사실상 불가능해진 영화 제작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시놉시스로 소개되는 단편영화 <새드 필름>의 감독은 익명입니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바실리(Vasili)라 표기되어 있는 감독은 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작품을 출품했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 수 없습니다.(*주1)
<새드 필름>의 익명을 보고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와 커뮤니티시네마페스티벌에서 상영된 <붉은 벽돌벽 안에서>와 <입법회 점령사건>을 함께 떠올렸습니다. 감독의 이름이 표기되어야 할 자리에는 “홍콩 다큐멘터리영화제작자”는 익명들의 집단이 적혀 있습니다. “미지와 존재, 그리고 추모의 힘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은 작업과 투쟁을 이어나가기 위해 익명으로 영화를 발표하기로 결정했습니다.(*주2) 물론 익명의 영화감독만이 미얀마와 홍콩의 투쟁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 예정인 <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의 진 할러시와 라레스 마이클 길레잔(*주3),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 예정인 <저항의 드럼소리>의 사이 초 카잉(*주4)과 같은 감독들은 자신의 이름(과 목숨)을 내걸고 투쟁을 기록 및 전달하고 있습니다. ACT! 또한 미얀마와 홍콩의 상황을 다룬 홍명교 활동가의 글을 통해 미디어를 통한 이들의 투쟁을 전한 바 있습니다.(*주5)
아프가니스탄의 영화감독이자 아프간영화기구의 사무총장인 사라 카리미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 전 SNS에 성명문을 게재했습니다.(*주6) [세계의 모든 영화 공동체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라는 글의 마지막에 적힌 그의 서명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 속 익명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그러나 동일하게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미얀마에서, 홍콩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라 카리미는 “우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영화를 보고, 익명을 포함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영화제를 찾아 이들의 영화를 보는 것이, 이 글을 쓰는 것이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들의 다음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길 기원합니다.
ACT! 또한 한창욱 영화평론가의 번역으로 [이슈와 현장] 코너에 카리미 감독의 글을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공유 부탁드립니다.
액트 126호의 글들을 소개드립니다. [미디어 인터내셔널] 코너에서는 영국 독 소사이어티(Doc Society)의 주도로 설립된 장애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단체 ‘포워드 독(FWD-Doc)’이 제공하는 장애인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를 위한 툴킷과 인게이지먼트팩을 소개합니다.
[리뷰] 코너에서는 지난 7월 28일 개봉한 김미조 감독의 영화 <갈매기>와 최근 왓챠를 통해 공개된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의 리뷰가 실립니다. 또한 ‘다큐멘터리 창작자가 쓴 다큐멘터리 리뷰’ 기획의 첫 타자로 변규리 감독이 쓴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빛을 향한 노스텔지어> 리뷰가 함께 실립니다.
[미디어 큐레이션] 코너에서는 최근 오픈한 독립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앤(ONFIFN)’을 인터뷰했습니다.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신선한 시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영화제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임진순 포스트핀 전략기획실장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에서는 비건 밀키트 브랜드 바로(VARO)를 인터뷰했습니다. [우리 곁의 영화 - 영화사 입문]에서는 영화감독이 아닌 마술사를 꿈꾸었던 조르주 멜리에스를 다시 되돌아봅니다. [Me, Dear] 코너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각각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상영회를 진행했던 경험에 대한 에세이가 실립니다. 끝으로 [Re:ACT!]에는 각각 지난호 [인터뷰]와 [Me, Dear] 코너에 함께 해주셨던 남미리님과 윤혜원님, 그리고 ACT! 편집위원에 새롭게 합류한 김서율 신임편집위원이 참여해주셨습니다. □
*주
1) <새드 필름>
2) <붉은 벽돌벽 안에서>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4546&sEP_NUM=0
<입법회 점령사건>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4545&sEP_NUM=0
3) <미얀마의 봄 – 파둑 혁명>
4) <저항의 드럼소리>
5) [미얀마 군부의 디지털 통제와 시민들의 디지털 저항]
https://actmediact.tistory.com/1603
[홍콩 항쟁에서의 미디어 : 억압 장치 혹은 저항의 도구]
https://actmediact.tistory.com/1427
6) 사라 카리미의 트위터
https://twitter.com/sahraakarimi/status/1426161540818997250?s=20
한창욱 영화평론가의 블로그에 번역문이 올라와 있다.
https://blog.naver.com/stainboy81/22247202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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