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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의 힘,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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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20. 4. 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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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힘은 동료다. 혼자라면 못 버텼을 것이다. 매일 보는 동료가 아니더라도, 활동하면서 겹쳐졌다가 흩어졌다가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활동이 겹쳐졌을 때 의미 있었던 사람들도 포함된다. 당신들이 힘이 된다고 표현은 못하지만." 

[ACT! 119호 인터뷰 2020.4.14.]

혜린의 힘, 동료

최은정(ACT! 편집위원)


  일상과 운동을 함께 엮어가는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2019년 11월 19일, 공룡의 이혜린 활동가를 만났다. 가장 큰 힘이 무엇인지 묻자, 혜린은 주저 없이 ‘동료’라고 답했다. 혜린과의 만남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인 공룡 활동가 모두를 만나고 온 기분이다. 동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함께 길을 찾고 있는 혜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인터뷰는 ‘체인지온@공룡’을 마친 후 진행되었다.

▲ 청주 마을까페 이따에서, 이혜린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사진제공: 공룡)

 

= 자기소개는 보통 어떻게 하나?
- 청주 사직동에 위치한 ‘공룡’이라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 사회단체라고 말하는 이유는?
- ‘공룡’은 미디어 활동을 하지만 미디어 단체는 아니다. 미디어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사회운동의 무기이자 촉매제, 활용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다.

= 사회운동과의 연대 방법이 다양하다. 어떻게 이뤄지나?
- 연대 활동을 기획할 때, ‘이 현장에는 이 활동이 필요하겠다. 이 활동에는 이 매체가 맞겠다.’는 고려를 먼저 한다. 현장에 음악이 필요하면 노래를 만들고, 영상이 필요하면 촬영을 한다. 현장이 폐허 같아 텃밭을 만든 적도 있다. 2014년에는 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과는 그림자극을 만들기도 했다. 투쟁 당사자의 목소리가 인터뷰 대상자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자기 이야기로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자극을 선택했고, 노동자들이 대본을 쓰고 목소리를 더빙했다. 대본 쓰는 과정에서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했다. 우리가 구상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언어와 말투가 나왔다. 목소리 더빙 역시 ‘연기’라는 또 다른 표현 방법을 시도한 것이었다.

= 연대 현장과의 소통이 어려울 때는 없나? 연대의 원칙이 있다면?
- 모든 연대 활동이 동일하진 않다. 긴밀한 연대 활동을 하려면 서로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기획이 논의될 수 있는 밀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기승전결 다 정해서 들어갈 수 없다. 공룡의 2가지 원칙은 ‘이름만 거는 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답게 하자.’이다. 투쟁 현장에서는 공룡이 찍으러 온 단위가 아니라, 연대하러 온 연대 단위라고 생각한다. ‘공룡이 왔구나.’라고 생각한다. 공룡은 카메라를 드는 것 외에도 현장에 밥이 필요해서 밥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우리 활동을 설득하기 위한 수고로움이 덜하고 갈등이나 오해가 적다. 같이 상의하고 공룡이 판단하게 한다.

▲ 2014년 3월 15일 유성희망버스 그림자극의 한 장면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0O3Prq8r4E )


= 공룡 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
- 대학 때는 교육 운동을 했고 졸업 후 지역 시네마테크에서 상영 활동을 했다. 영화 보는 건 개인적인 취미였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인권영화제 때 경찰이 온다고 해서 상영 장소를 옮긴 일이다. 운영진들은 관객이 1명이라도 있으면 상영하겠다고 했고 나는 보겠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교육장에서 밤새서 영화를 봤었다.

= 제작은 언제부터 했나?
-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아져서 제작 수업을 들었었다. 본격적으로는 2006년 퍼블릭액세스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퍼블릭액세스네트워크 공동 사업인 ‘공동체 액세스 프로젝트’와 RTV <행동하라 비디오로! 액션V> 제작을 진행했고,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영상미디어팀,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 등에서 활동했다.

= 공룡을 만든 계기?
-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부방 미디어교육을 했었다. 지금 공룡 동료들은 그 공부방 미디어교육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몇 년 동안 커리큘럼을 갖고 할 수 있는 교육은 다 해봤지만, 교육 목표가 잘 구현되지 않았다. 공동체미디어교육은 교실 안에서 프로그램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란 것을 절감했다. 일상, 삶의 공간에서 교육 참여자와 만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공부방이 여기 사직동에 있어서 이 동네에 공룡을 만들고 시작했다.

= 공룡 초기와 달리 활동하면서 새롭게 생긴 목표나 고민이 있나?
- 생각하지 못한 없었던 목표가 새로 생기거나 큰 방향이 전환되진 않았다. 여기까지 가보고 싶다거나 구현해보고 싶다고 했던 것들이 과연 다 되었냐고 한다면, 여전히 안 된 게 많다. 그 사이 변화라면 만나고자 했던 대상들과 목표로 했던 것들이 시행착오 속에서 조금 더 구체화 되는 과정은 있었다. 목표나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이 대두되지는 않았다.

= 공룡의 교육 기획 방법은?
- 다양하다. 장기 교육으로 교육 목표와 과정을 길게 설계하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운동과 접촉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과 노동자 미디어교육을 하고 싶은데 바로 들어가기 어렵다면 자녀들 교육을 캠프식으로 진행한다. 방학을 이용해 2박 3일, 이런 식으로. 교육은 그 때 상황과 우리 필요에 따라 선택한다.

=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 목표가 있다면?
- 참여자들의 변화다. 교육 전후의 변화는 주체적 사고나 사회적 의사소통 같은 추상적 개념은 아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고 싶었던 사람들이 할 수 있게 되고, 한 번 찍을 걸 두 번 세 번 찍고, 할 만하네, 라고 느끼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공룡은 직접 기획하는 교육도 있지만 외부에서 요청하는 교육도 많이 한다. 공익에 반하거나 윤리와 상식선을 벗어나는 교육은 안 한다. 그리고 일정한 선을 정한다. 이 조건, 이 기간, 이 정도의 내용은 이 정도의 목표로.

= 직접 기획할 때는 어떤가?
- 9년 동안 했던 공부방 교육 참여자들을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10대 중후반이던 친구들이 20대중후반이 되었다. 그때의 교육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 질문 중 살면서 곤란함을 느꼈을 때 그 문제를 상의하거나 함께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냐는 것이 있었다. 3분의 2가 없었다고 답했다. 혼자 해결했고 도움 요청을 안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우리는 문제 해결 모색 대상으로 의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구나라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기 삶의 곤란함이나 불편함이 생겼을 때,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더 역량을 키워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결 여부가 아니라 해결 경로를 찾아가는 것. 문제를 말하는 게 처음에는 힘들지만, 혼자가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면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경험을 집단적으로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묻혀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 이혜린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사진제공: 공룡)

 

= 활동하면서 가장 괜찮은 점은?
- 동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다거나 나의 활동에서 드는 고민 있을 때, 그것이 질문이든 찜찜함이든, 이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의지와 신뢰가 가능한 동료가 있다는 게 가장 괜찮은 점이다.

= 힘든 점은?
- 오래 활동을 하면 실패의 경험이 계속 쌓인다. 머리로는 저기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서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서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실패의 과정들이 주변에 쌓인다. 실패의 과정을 곱씹고 성찰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질문하고 같이 고민하고. 정말 중요하지만, 한끝 차이로 압도되기 쉽다. 탁 막혀서 안 꺼내지는 것이다. 압도되느냐, 상의하고 논의하고 얘기하느냐는 진짜 한끝 차이다. 나는 압도되는 쪽으로 가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게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경계하려고 한다. 시행착오나 실패에 대해 당연히 분석하고 평가하고, 다시 고민하고 다시 질문해야 하지만, 정서적으로 압도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혼자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동료가 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다행이다.

= 오랜 활동의 원동력 역시 동료인가.
- 동료다. 혼자라면 못 버텼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신념으로 움직이진 않는 듯하다. 평균 이하로 의지력이 약하기 때문에. (웃음) 매일 보는 동료가 아니더라도, 활동하면서 겹쳐졌다가 흩어졌다가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활동이 겹쳐졌을 때 의미 있었던 사람들도 포함된다. 당신들이 힘이 된다고 표현은 못하지만. 

= 활동하면서 꼭 지키는 것?
- 압도되지 않으려고 한다. 경계하려고 한다. 활동가에게 반성과 성찰은 아주 중요하다. 압도되면 문제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 건강은 잘 챙기나?
- 100% 좋진 않지만, 요령이 생겼다. 회복 시간을 감안해 활동한다. 내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한다. 예전에는 무리해서라도 몰아붙였다면 이제는 조절한다.

= 다른 취미 활동은 없나?
- 특별한 취미 활동이 없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말한다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특히 혼자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취미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취향은 있다. 내가 이 행위를 해서 유익한 결과물을 내는 게 아니라, 어떤 평가나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그냥 즐겨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영화를 본다. 예전에는 각 잡고 영화를 보면서, 분석하고 뜯어보고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기력이 쇠해서 그런지 뭐든 재밌게 본다. 예전에는 욕했던 영화라도 다시 보니 재밌었던 경우도 있다.

= 향후 계획?
- 없다. 올해 말인데 내년 계획도 겨우 세웠다. (웃음)

=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더 오래했다는 이유만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청이다. 아는 사람에게도 잘 못한다. 어색하고 부끄럽다. 그러나 질문을 바꾼다면 가능하다. ‘공룡에 누가 활동하고 싶다고 온다거나 공룡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공룡이 도모하는 일에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으로 바꾼다면 말할 수 있다. 

= 공룡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활동할 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계속 변한다. 그 질문을 읽는 순간순간 계속 변할 것이다. 보통 이 앞의 이 업무, 이 평가, 이 과제에 쓸려가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지금 내가 하는 일, 지금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누군가가 공룡과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묻고 싶고 얘기하고 싶다. 이건 한 번에 각 잡고 1박 2일 워크숍 같은 걸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계속 툭툭 던지면서 얘기해야 한다. 난 해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달라고 하고 싶고 호시탐탐 말하면 좋겠다. 내가 왜 활동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지?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건지? 라는 질문에 대한 얘기가 나에게는 중요하다.

▲ 체인지온@공룡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 2019.11.19. 마을까페 이따 (사진제공: 공룡)


= 활동가라는 말은 언제부터 익숙해졌나?
- 글쎄, 언제지. 음. 일단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면서? 나 때만 해도 간사라는 표현은 거의 안 썼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일할 때, 미디액트에 갔을 때, 모두 활동가란 명칭으로 불렸다. 어색하지 않았다. 용어 자체가 낯설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말이 갖는 무게에 대해서는 점점 더 느끼고 있다.

= 어떤 무게인가?
- ‘2019 체인지온@공룡’ 1일차 주제가 운동의 언어와 활동가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다. 활동가 위치에 대해 강연한 분이 끝이 ‘가’로 끝나는 직업이 흔치 않다는 말을 했다. 직업에서 ‘가’라고 붙었을 땐 기술적 능숙함만이 아니라 좀 더 뭔가 요구되는 장인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각자 해석하기 나름인데, 활동가라는 직업, 활동가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하나로 답을 할 수는 없지만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 방금 마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주제로 한 라운드테이블은 어땠나?
- 행사가 잘 끝나서 다행은 아니다. 공룡에서 얘기할 게 많아졌다. 박영길 활동가도 말했지만, 라운드테이블에서 던진 질문은 앞으로 공룡 활동을 계획할 때 필요한 주제들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공룡 모두 같이 얘기했고 질문했다. 그리고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미디어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필요했었다. 오늘 나온 이야기를 갖고 공룡과 공룡의 각자가 더 이야기 할 것이다. 얘기가 진행될 수 있게 할 말이 더 많이 생긴 점은 다행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내 인터뷰 중 쓸 게 없으면 안 써도 된다. 진심이다. □



▮ 관련 사이트

- 2019 체인지온@공룡 강연 영상 및 자료
: 1일차 - 전환기의 사회운동, 운동의 언어와 활동가의 위치에 대한 질문
: 2일차 - 미디어 운동,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http://changeon.org/체인지온-2019-체인지온공룡-강연영상-및-자료


▮ 관련 기사

[ACT! 70호] 미디어를 넘어, 교육을 넘어, 공동체로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https://actmediact.tistory.com/384

[ACT! 85호] 노동자가 케이블에 액세스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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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3호] “노동자가 공중파에 액세스 한다는 것” -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 구성에서 KBS 열린채널 방송보류판정까지
https://actmediact.tistory.com/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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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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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4 19:42
    마지막 한마디 남기신게 멋있네요. ㅎ
    동료들로 인해 과정이나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더라도 이완하는 힘을 줄수있고 마음을 나눌수 있는 여지가 되어준다는게 좋은것 같아요. '실패에 압도 되지 않으려.. 경계한다'는 혜린 활동가님의 말이 인상적이고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