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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이게 출발입니다.” - 조한진희(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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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8. 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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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세계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책을 가지고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계속 커밍아웃하는데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ACT! 115호 인터뷰 2019.08.14.]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이게 출발입니다.”
- 조한진희(반다) 박종필추모사업회 집행위원장 인터뷰


마민지(ACT! 편집위원)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질병과 건강권’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박종필추모사업회 조한진희(반다) 집행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지난 7월, 박종필추모사업회 주최로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사회 운동 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추모포럼이 열렸는데요. 포럼을 개최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포럼 이후 어떤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지, 또한 미디어 활동가의 건강권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조한진희(반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박종필추모사업회 집행위원장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CT!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겸 근황 토크를 부탁드립니다.

-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어요.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2009년 팔레스타인에 현장 활동 과정에서 아프기 시작했고, 2011년에 바닥을 찍었어요. 몇 년 동안 활동을 완전히 쉬고 투병 생활만 하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게 2015년인데요. 사회 활동이라고 해도 병원 가는 것 이외에 사람들을 만나거나 밖에 나가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몸이 아파서 다시 활동을 하지 않는 몇 달을 보내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고요. 횟수를 조금씩 늘려서 지금은 일주일에 3번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사회 활동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라는 느낌이에요. 

  요즘은 북 콘서트 열심히 하고 있는데 체력적으로 제한이 많으니까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지는 않아요. 올해 들어서 가장 많이 한 활동은 교육 활동. 강의가 제일 많았고, 올 봄에는 장애인 미디어교육 강사 양성과정 교육을 진행했어요. 민주노총 철도노조 신입간부 대상으로 성평등 강의도 나갔어요.

  특히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여러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운동 영역과 형식에 갇히지 않는 활동을 중시해 왔기 때문에 영상 활동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살았고 장애인운동과 팔레스타인 운동에도 오랫동안 연대해왔어요. 몸이 아프고 나서는 수전증이 생겨서 카메라를 드는 건 전혀 안 되어 영상은 전혀 할 수 없어 몇 가지 활동은 정리 했어요. 다큐인은 운영위원이라는 이름 정도인 상태이고요. 그래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조금 산만한 상태인데, 이런 산만한 상태가 제 상태인 것 같기도 해요.


=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활동가 건강권’에 대한 주제로 추모 포럼이 열렸는데요. 작년에는 ‘비디오 액티비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올해는 논의의 주제가 확장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포럼을 기획하기까지 어떤 고민의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활동가 건강권’은 운동사회에서 중요한 고민이고, 개인적으로도 워낙 오랫동안 고민했던 사안이에요. 알다시피 박종필 감독의 죽음은 물론이고, 제가 활동과정에서 건강이 손상돼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제가 메타적인 주제에 관심이 많은데요. 관심이 그렇게 이동하더라고요. 운동 사회에서 활동가들의 건강권이라던가, 운동 사회 내부의 성폭력 문제들이 다른 성폭력 문제들과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 지 본다던가. 

  2017년에 박종필 감독이 간암 진단을 받고, 진단 받은 지 3주 반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 이후 추모사업회가 만들어졌고요. 어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활동을 했고 얼마나 훌륭했는지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크게 의미 있는 추모사업회가 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작년 1주기 때는 ‘비디오 액티비즘’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올해도 동일한 주제로 심화 포럼을 열자는 내부 평가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박종필 감독의 죽음에 대해 애달파했던 사람들이 그 마음을 가지고 다른 동료들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활동가 건강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어떨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고민을 꺼내 놓으니, 추모사업회 집행위원들도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요. 

  사실 ‘활동가 건강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을 때 신진 활동가와 중견 활동가를 불문하고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근데 막상 어떻게든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없어요. 워낙 광범위한 주제이기도 하고, 딱히 대안이 보이는 것 같지도 않고요. 이런 메타적인 주제에 매달릴 만큼 여유도 없는 게 사실이고요. 솔직히 추모사업회는 조직력은 없지만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웬만해선 다 해도 되거든요. (웃음) 먼저 ‘활동가 건강권’에 대한 주제로 포럼을 꾸려보자고 이야기 했을 때 모두 필요하다고는 동의했지만 막상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고, 대안을 당장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문제제기만 하고 끝내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 2019년 7월 24일, 포럼 ‘사회운동 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 우려와 다르게 포럼을 아주 성황리에 마치신 것 같습니다. 이후 추모사업회 내부의 평가는 어떠했는지 궁금한데요. 

-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어요. 7월은 각 조직의 투쟁 사안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파업도 많았고, 애초에 신청자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포럼 하루, 이틀 전부터 신청자 수가 늘어나더니 당일에는 앉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개인적으로 신진 활동가들의 참석이 많았던 점이 놀라웠어요. 사실 ‘활동가 건강권’을 이야기 한다고 하면 조직의 중견 활동가들이 올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조직 내부의 활동가 임금이나 복리후생과 관련해서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의 때는 20-30대 활동가들이 주류였어요. 신진 활동가 그룹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예상을 못했거든요. 신진 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고민하면서 해나가고 있구나,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포럼과 관련해서 비마이너에 기사도 연재되고 있는데요. 주류 언론이 아닌데도 관련 기사 공유가 굉장히 많이 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을 많이 해주셨어요. 사실 소수의 인원이 준비를 하다 보니, 다들 너무 힘들어서 끝나고 쉬기나 했으면 좋겠다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높은 관심을 보며, 포럼 안하면 어쩔 뻔 했나 싶더군요. 추모사업회 사무국을 다큐인이 맡고 있는데, 다들 제작 작업으로 바쁜 시기여서 포럼을 준비 하는 게 사실 일정상 무리였거든요. 하지만 또 다른 활동가들의 질병과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마음을 모아서 다큐인은 물론 여러 집행위 단체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서 함께 준비했던 거였어요. 
 
 이렇게 준비한 집행위 뿐 아니라, 포럼 당일에 패널 분들도 마음을 모아주었어요. 패널 한분이 후속 모임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자는 제안을 했고, 단 한분도 빠짐없이 그 논의를 함께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이 내용을 사업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조직을 추가로 초대해서 후속 모임을 빠르게 꾸렸어요.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음 주에 첫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후속 모임에서는 신진 활동가들이 ‘단명할 것 같아서 사회운동 하지 않을래.’하는 말을 하지 않게끔 만들어 보자는 게 목표에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 환경을 만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연령주의에 대해 반대해도 한국 사회의 조직 안에서는 활동 연차에 따라서 결정 권한이나 책임 권한이 조금씩 다른 게 현실인데요. 지금 환경에서 무언가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책임이 있다면 소위 ‘허리 세대’들에게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윗세대들은 건강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런 게 어디 있어, 운동은 다 희생이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여전히 제법 있어요. 상대적으로 신진 활동가들은 ‘운동도 좋고 필요하지만 나의 건강도 중요하다. 희생과 헌신으로 후려치기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고요. 맞는 말이지요. 물론 세대만으로 구획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활동가 건강권에 대한 인식차이나 변화의 역할에서 세대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 그런 역할을 하기 적절한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무언가 활동을 잘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활동가 건강권’ 이야기가 정말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감독들이 모이면 눈 건강에 좋은 영양제 추천부터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저도 동료들과 서로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실비보험 들었는지 먼저 물어보곤 합니다. 저희 팀 캐치프라이즈가 ‘건강보다 중요한 영화는 없다’인데요. ‘활동가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확장된 것이 반갑습니다.

-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어디에 뭐가 좋고, 어떤 병원이 좋다더라, 이런 이야기 나누면서 의료 정보를 나누고, 운동 정보도 나누고, 신세한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질병에 대한 소소한 대화들이 흘러가는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사람들도 질병이 나의 책임만이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질병을 가진 사람의 몸을 탓하지 말고 생활습관 탓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주변에 아픈 친구들을 만났을 때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질병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답답함은 존재하지만 자신의 답답함을 설명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해도 신세한탄으로 끝나거나 오래 이야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원하지 않은 거죠. 

  2015년부터 「일다」에서 질병 워크숍을 했었는데, 그 멤버들과 후속 모임을 꾸렸어요. 어쩌다 보니 주로 아픈 활동가들이 모였어요. 평범한 질환이든 희귀한 질환이든 모두 질환이 있어요. 저는 질병 세계의 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어요. 각자의 질병 경험에 대한 언어를 만듦으로써 논리를 만들어가는 건데요. 이 그룹 멤버들과 함께 언어 작업을 하고 있고, 올 가을 정도부터는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작물을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름다운재단에서 펀드를 받아서 책도 읽고 질병 스토리도 이야기 하고, 연극 워크숍도 하고 있어요. 자신의 질병 경험을 해석할 언어를 갖는 것이 목표이고, 언어를 공동 생산해내고, 그걸 사회에 유통시키는 것까지. 그러면 담론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미디어 활동가들과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 건강을 해치는 조건들 가운데 불안정한 삶의 조건들이 굉장히 크죠. 미디어 활동가들은 누구보다 불안정한 삶에 놓여 있잖아요? 특히 경제적인 불안정함이요. 고용이 되어 있지 않으니 사장이 없어서 좋지만, 사장이 없어서 고용이 될 수 없고요. 독립적이라 좋긴 하지만 개개인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요. 조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조직들도 크게 다르진 않은 상황. 

  미디어 활동가들의 건강권 관련해서 계속 제작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동료들이 경쟁자이기도 하잖아요. 동료가 제작지원에 선정되고 자신이 떨어졌을 때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기도 하지만, 내가 제작지원에 떨어졌기 때문에 막막해지는 미래, 특히 이 작업을 완성할 수 있을 지, 출연진들과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지, 이런 엄청난 압박감들이 건강을 손상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영상은 다른 운동 조직들과 달리 일반적 활동 구조가 아니고 계속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활동이잖아요. 영화제 출품 형태가 되었든, 개봉이든, 어떤 형태이든 평가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작업물에 대한 평가가 좋으면 에너지가 올라갔다가, 다음 작품 했는데 제작지원도 못 받고 상영 했는데 평가도 안 좋고 하면 에너지가 떨어지고. 이런 기복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런 것들이 다 건강과 연결이 되잖아요. 박수와 갈채가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는 있겠지만요.

▲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2019, 동녘) 



=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미디어 활동가들이 처해있는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을까요?

- 다큐멘터리 제작은 1인 시스템이 많았는데, 요즘은 팀으로 작업을 많이 하고 촬영도 여러 명이 같이 하고 규모가 점점 확대되고 있잖아요. 이런 환경 변화는 노동 환경을 더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한 명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다른 스태프가 나갈 수 있고 이런 여지를 더 만들어나가는 변화니까요. 하지만 결국 자본이랑도 연결되어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영상은 다른 운동 영역과 달리 경쟁 구조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제작지원이 많아진 건 장점이지만 그만큼 산업화 되어 있고, 산업화 된다는 것은 상품화 된다는 거잖아요. 아무리 운동적으로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결국 퀄리티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니까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이게 출발인 거 같아요. 뭐가 아프고,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떤 과정 안에서 내 마음이 자꾸 부서지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감독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출연을 결심해준 인물들이 있는데, 이 영상을 완성했을 때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면 출연진에게 갖게 되는 미안함도 크거든요. 이런 경쟁 구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쉬운 구조 속에서 마음의 부대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부대낌을 드러내기 어렵잖아요. 경쟁 구도 안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 누가 잘 됐을 때 순수하게 박수를 치는 마음, 한편으로는 질투를 하는 복잡한 마음. 내가 대단히 유명한 감독이 되려고 영상을 시작한 게 아니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영상을 시작했는데 경쟁심과 질투심에 시달리면서 자기 분열을 겪게 되는 거죠. 내가 졌다는 패배감에 시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어요. 이런 감정을 말하지 않고 이 영화가 사회 운동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해서는 건강해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을 계속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도적인 대안들도 필요하죠. 하지만 제도적인 대안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이를 위한 싸움도 필요하잖아요. 제도가 있다고 삶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요. 미디어 활동가들이나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어요. 당장 대안을 만들 수는 없지만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실태조사에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 훨씬 많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도를 만들고 개선하는 싸움은 한 축으로 가야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자꾸 마음이 아픈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자기 안에서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아요. 


= 최근에 동료들과 만나면 각자의 불안과 고민들 때문에 별자리점이나 사주를 서로 소개해주거나, 상담 다니는 병원을 공유하기도 하는데요. ‘활동가 건강권’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논의도 나오고 있는 게 있을까요?

- 정신건강은 모두 다 매우 나빠요. (웃음) 근데 그걸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자각하고 있는 사람과 자각이 없는 사람,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가 어떤지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각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정신건강은 매우 나쁜 것 같아요. 한국사회 전반이 정신건강이 다 안 좋잖아요. 자살률 1위라는 거는 그게 자살한 사람들만 정신건강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사실 자살까지 이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고, 한국은 정신건강이 나쁜 사회겠죠. 

  운동 사회 안에서는 어떨까요? 자신의 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해고시키는 경우도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과연 조직 내 민주주의의 문제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해고시키거나 해고시킬 수 없으면 정서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해를 저지르는 것 같습니다. 가해자들은 자기 성찰이 잘 안 되고, 절대 상담도 안 받고 본인이 상담을 안 받아서 피해자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기도 하죠. 

  정신 건강이 나쁘다고 자각하고 인정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 안전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돌아가면 좋을 것 같고요. 궁극적으로는 가해자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죠. 가해자들이 내가 여기에서 계속 활동하려면 내가 변화를 하거나, 치료를 받든가, 최소한 조심을 해야 하구나 각성을 해야죠. 가해자들이 가해자임이 밝혀져도 그 판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가해자들이 발붙일 수 없는 판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고민의 포커스가 조금 달라져야 하는 것 같아요. 가해자를 당장 바꾸는 건 하기 어려운 영역인 것 같고요. 가해자들이 발붙일 수 없는 문화, 그런 행위를 했을 때 우리 조직에서는 이런 행위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로 잠시 돌아가서, 아파서 미안해하던 시기가 있으셨기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지으신 것 같다고 추측을 해보았는데요. 아픈 나의 상태에 대해 인식을 전환하신 어떤 계기나 과정이 있으신지 궁금했습니다.

- 건강은 개인의 노력으로 지킬 수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해왔지만 사실 자기모순이 있었어요. 저는 건강은 개인이 지킬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에요. 스포츠 매니아이기도 했고 수영, 등산, 암벽 이런 걸 좋아하는 정신승리형 인간이었어요. 그래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나의 생활 습관이나 삶에 대해서 어디서 문제가 있었던 걸까 후벼 파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아프고 삶이 불안정 할수록 더 아프다는 구조는 명확하게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했거든요. 차별 받을수록 아프다는 것을 수용하고 있었고, 건강은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동시에 개인이 노력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의 상태였던 거예요. 이중적인 잣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거죠. 

  아프고 나서 질병을 개인 습관의 결과라고 규정하는 것이 누구에게 유리한 것이고 누구의 관점에서 규정된 문장인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 이게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랑 지금 같은 이야기구나. 자본주의의 신화와 같은 거구나. 아픈 게 나의 책임이고 아픈 게 미안해야 할 일인 게 건강중심사회가 심어 놓은 생각이구나. 이걸 깨닫게 된 순간 저에 대한 자책감이 옅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들이 어느 순간 이게 나의 시선이 아니고 가부장제의 시선이구나, 라는 걸 자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걸 깨닫는 어떤 순간 바뀌는 거잖아요. 건강에 대한 나의 사고가 건강중심세계가 심어놓은 논리이고, 그 시선으로 내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많은 것들이 풀렸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정상 신화를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거죠. 여전히 공동 작업을 할 때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내가 내 몫의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내가 아프다고 일을 줄이면 누군가 그 일을 대신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나름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 오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에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신지 들어보며 인터뷰를 마치려 합니다.  

- 질병 세계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책을 가지고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계속 커밍아웃하는데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람들이 왜 앉아서 글만 쓰냐고 하는데, 제 몸에 맞는 활동 방식을 찾은 게 글이예요. 내 몸의 한계를 한탄하지 않으면서 마감을 지키면 되는 일이니까 내 컨디션에 맞게 조절할 수도 있고요. 이후에 페미니즘 관련 책과 질병 관련 책이 몇 권 더 나올 예정입니다.

  저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운동영역과 형식을 넘나들며 활동해왔어요. 특히 요즘은 교차성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여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저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젠더와 장애 없이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성차별은 다양한 영역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현되기 때문에 빈곤, 노동, 장애, 민족, 인종 등 각 영역 내부와 그 복합성을 잘 아는 게 필요하고요. 여러 영역을 가로지르며 활동했기 때문에 보게 되고 분석하게 된 것 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토대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데, 제가 실제로 활동 가능한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겨우 십년 남짓 이예요. 제 건강상 수명이 다른 사람에 비해 짧을 테니까요. 그래서 뭘 하면서 삶을 정리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 동안 해왔던 운동들에 대해 잘 정리하기로 했어요. 운동 안에서 나의 역할을 정리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축적시킨 고민과 진전시킨 고민의 결들이 있는데 제대로 기록되어지지 못했어요. 기록되지 않으면 뒤에 오는 사람은 또 맨땅에 헤딩하면서 시작해야 하거든요. 뒤에 오는 얼굴 모를 동료들이 맨땅에 헤딩하지 않을 수 있게 잘 기록해 놓으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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