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공인 상영회로 자리 잡고 싶다. 배우 한 명만 포커스하는 상영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를 주인공으로 느끼는 상영회가 되기를 바란다."
[ACT! 115호 인터뷰 2019.08.14.]
“계속 찾다보면 언젠가는”
- 배국한, 신진철, 최아름 (낫띵벗필름)
차한비 (ACT! 편집위원)
‘영화만이 전부다’라는 야심찬 슬로건을 내걸고, 매회 색다른 상영회를 열어온 낫띵벗필름의 세 기획자를 만났다. 그들은 독립단편영화에서 발견한 매력적인 얼굴들에 주목한다. 재능 넘치는 배우와 좋아하는 영화를 좀 더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시작한 상영회는 어느덧 2주년을 맞이했다. 그들이 조명한 배우가 늘어날수록 객석을 채우는 관객도 점점 다양해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낫띵벗필름은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재밌고 즐거운 것, 그들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 또한 더불어 재밌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낫띵벗필름은 오늘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다. 영화가 전부일 수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만 들여다보면, 영화가 전부인 듯 느껴지는 하루를 만들어내려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낫띵벗필름의 배국한, 신진철, 최아름을 소개한다.
동료 찾기
차한비(이하 한비) 세 사람 모두 본업을 병행한다고 들었다. 낫띵벗필름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현재 본업은 무엇인지 먼저 이야기해보자.
최아름(이하 아름) 낫띵벗필름에서는 기획과 홍보마케팅을 담당한다. 작품 및 배우 선정은 세 명이 함께하고, 나는 전반적으로 아이디어를 모아내는 역할이다. 많은 분들이 혼동하시는 부분인데, 우리 모두 돈 버는 일은 따로 한다. (웃음) 나는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에서 일하다가 퇴사했고, 현재는 개인적으로 영화 홍보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낫띵벗필름이 우리에게 생업이 아니라는 점은 때로 도망칠 구실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직까지 직업으로 삼는 단계는 아니라서 여전히 ‘즐기자’가 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배국한(이하 국한) 상영본 수급을 담당하고, 가끔 상영회에서 모더레이터도 진행한다. 본업은 수입배급사 직원이다.
신진철(이하 진철) 낫띵벗필름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컴퓨터 관련한 작업은 내가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웃음) 그림은 취미로 꾸준히 해온 일이고, 직장은 그림과 영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이다. 어쩌다 영화를 보러 갔다가 아름 누나를 만나서 함께하게 되었다.
한비 모든 단체에는 꼬드기는 사람이 한 명씩 있더라. (웃음) 셋은 어떻게 만났나.
아름 낫띵벗필름은 애초 <비치온더비치>(정가영, 2016)에 출연한 김최용준 배우의 기획으로 시작된 상영회다. 나도 용준 배우에게 제안을 받았는데, 당시 용준 배우가 군 복무 중이라 첫 상영회를 열기까지 준비기간이 꽤 길었다. 그때 에무시네마에 <비치온더비치>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관객으로 왔던 진철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진철이가 그림을 보여줬는데 너무 좋더라.
진철 그 후로 몇 번 만나고 나서,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전혀 다룰 줄 몰랐다. 지금은 주로 그걸 하지만. (웃음)
아름 그렇게 진철을 포함해서 총 4명이 첫 상영회를 진행했고, 국한은 2회부터 합류했다. 국한 역시 <비치온더비치>를 보러 갔다가 만났는데, 낫띵벗필름 1회 상영회 때도 관객으로 와주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달라고 해줘서 든든했다. 마침 2회 상영회를 준비할 당시 내가 취직을 했고, 일과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들더라. 그때 국한에게 연락했다. 얼마 전에 그만둔 다른 친구까지 포함해서 1년 정도는 총 6명이 활동했다.
한비 <비치온더비치>가 이어준 인연이다.
국한 다들 그 영화를 좋아했다. 관객으로 만나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한비 지금처럼 세 사람이 상영회를 진행해온 것은 언제부터인가.
아름 얼마 안 됐다. 올해 6월 장준휘 배우전부터 셋이 만들고 있다. 우리도 낯설고 새로운 상황이다. 대외적으로는 ‘동료로서 신뢰를 쌓아가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웃음)
이유 찾기
한비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 만나서 자연스레 이야기가 흘러갔다고는 하지만, 낫띵벗필름 활동을 결정했던 배경에는 각자 다른 욕구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진철 음악과 영화는 어릴 적부터 접해온 매체이다. 뭔가를 보고 듣고 난 다음에 너무 좋으면, 내가 받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더라.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린 지 거의 10년 정도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낫띵벗필름에 합류하면 그릴 대상이 계속 생긴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름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혼자 자유롭게 그리다가 이제 대상이 정해질 뿐만 아니라, 의견을 맞춰나가는 과정도 필요하니까. 스스로 작업할 영역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한 번은 그만둔다고 말한 적도 있다. (웃음) 나는 네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데, 우리가 아직 그걸 못했으니 좀 더 같이 하자고 말렸다.
국한 낫띵벗필름에 제안 받았을 당시, 직장을 관두고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원래는 연구직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재취업을 준비했다. 여러 곳에 지원했는데, 나이에 비해 경력이 없다 보니 서류 단계에서 탈락하더라. 어쨌든 일을 쉬는 동안 극장을 체험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비치온더비치>를 봤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좋은 독립영화를 소개할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낫띵벗필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후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에서 한국영화는 배급하지 않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낫띵벗필름을 통해 아쉬움을 해소하는 면도 있다. 경험을 쌓아두면, 이후 회사에서 기회가 왔을 때도 좋은 계기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한비 굳이 노동과 활동으로 구분한다면, 진철은 분야가 명확하게 나뉜다. 반면 아름과 국한은 기본적으로 영화 일을 한다. 일을 마치고 또 일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나. 상영회는 하루로 끝나지만, 준비에는 거의 한두 달이 소요된다.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는 없는지 궁금하다.
아름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하고 또 영화 일을 하면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낫띵벗필름은 일이라기보다, 일을 마친 후에 하는 취미활동에 가깝다. 아직까지는 생활의 활력소처럼 다가오는 부분이 훨씬 크다.
국한 나는 생각날 때마다 일하는 편이다. 당장 확인하거나 연락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낫띵벗필름에 할애할 시간을 딱 정해두기보다는, 출퇴근하는 길이나 쉴 때를 이용해서 틈틈이 진행한다. 상영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많은 영화를 봐두어야 하기에, 영화제에 갔을 때 최대한 관람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아름 물론 힘들고 아쉬운 점도 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아직은 욕심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낫띵벗필름에 전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우리한테 무리라고 판단되면 진행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낫띵벗필름은 비교적 ‘각자 알아서’ 돌아가는 면이 있다. 최근에야 일정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수급은 이때까지, 그림은 며칠까지, 홍보 텍스트는 언제까지, 하는 식으로 각자 마감일을 알리고 서로 체크하는 거다. 물론 잘 지켜지지는 않지. (읏음)
한비 진철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을 하는데,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궁금하다.
진철 낫띵벗필름을 시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 패턴이 유지되는 편이다. 사실 영화 일을 잘 모르기도 하고, 영화계에서 커리어를 쌓으려는 욕심도 없다. “알아서 하세요”라는 입장이랄까. 제일 스트레스가 적은 것 같다. (웃음)
아름 셋뿐이지만 각자 성향이 정말 다르다. 진철이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나는 제안을 던지고, 국한이는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업무인지 판단한다.
한비 밸런스가 좋다. (웃음)
아름 우리도 들여다보면 꽤 시끄럽다. 아무래도 내가 여러 일을 맡는 포지션이다 보니, 이전에는 상영회를 한 번 마칠 때마다 울었다. 너무 힘들다고. (웃음) 이 패턴은 안 되겠다 싶어서 최근에 터놓고 대화를 했다.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는 중이다. 시간이 좀 쌓이다 보니, 각자 스타일을 알기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생긴다.
한비 낫띵벗필름 소개서에 “문화창작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상영기획에서 나아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아름 상영활동에 공통된 관심이 있기에 시작했지만, 각자 하고 싶고 잘하는 분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개인 활동이 낫띵벗필름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받아서, 어떤 시작을 만들어낸다면 좋겠다. 진철이는 전시회를 열 수도 있고, 나는 홍보마케팅을 해나가면서 영향을 주고받고, 국한 역시 해나갈 영역이 넓다. 처음 모더레이터를 했을 때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유머도 섞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활동이 확장된다면, 넓게는 ‘문화’라는 영역에서 다양한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상영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오래 활동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화창작자로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진철 누나가 처음 제안했을 당시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기에, 이렇게 쭉 함께하는 거겠지. (웃음) 돌이켜보면 점점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낫띵벗필름이라는 이름에 갇히기보다, 이를 통해 조금씩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한비 확장성을 고민하는 동시에, 말하자면 ‘브랜딩’을 위한 의지도 엿보인다.
아름 일정 부분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가 너무 유명하지 않거나 인기가 없으면, 상영회를 안정적으로 끌어가기 어렵다. 배우와 감독을 초청하고,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낫띵벗필름이 하는 일을 궁금해 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배우 찾기
한비 말한 것처럼 낫띵벗필름의 두드러지는 정체성 중 하나는 배우를 조명한다는 점이다. 김최용준 배우가 기획멤버로 참여한 초창기에는 자연스러운 방향이기도 했겠지만, 현재 구성원들은 어떤 이유로 배우에 주목하는지 듣고 싶다.
아름 올해 많이 고민하게 되더라. 배우 중심의 기획상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우리 역시 끊임없이 방향성을 검토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현재 상영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 보고, 그만의 매력을 찾아서 관객에게 소개하는 모든 과정이 여전히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재미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방향성을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현재 포맷에서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한비 배우를 선정하는 기준과 과정도 궁금하다.
아름 현재 정기상영회는 이번 달 배우가 다음 달 배우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작품을 확인하고 논의를 거쳐서 이 달의 배우를 확정한다. 그전에는 사실 선정하기가 힘들었다. 각자 매력을 느끼는 배우들이 워낙 다르다 보니, 일단 아이디어를 던지고 보는 식이었다. (웃음) 요즘에는 고민하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우리가 이 배우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지, 상영 이외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한비 다른 두 사람은 어떤가. 각자 강력하게 주장한 배우는 누구였나.
국한 주로 내가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웃음)
아름 다가오는 12월에 국한이가 추천한 강길우 배우와 기획상영회를 열 예정이다. 꼭 해야 한다며 엄포를 놓더라. (웃음) 4월 기획전 주인공이었던 김금순 배우는, 내가 너무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했다. KU시네마테크에서 진행한 첫 정기상영회이기도 했는데, 굉장히 의미 있고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한 김금순 배우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색깔을 입혀준 계기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독립단편영화를 통해 소위 ‘중년배우’를 주목한 자리는 없다시피 했으니까.
한비 개인적으로 그때 상영회를 통해 낫띵벗필름이 존재하는 의미를 인식했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기대되더라.
아름 금순 배우님과 첫 미팅하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면서, 우리한테 계속 감사하다고 하시는 거다. 지금까지 우리가 뭘 놓쳤는지, 배우의 범위를 은연중에 제한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기 자리에서 활동해온 매력적인 배우들이 정말 많은데,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비 실제로 배우나 감독을 만났을 때, 상영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나.
국한 단편영화는 영화제에 공개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고, 영화제가 끝난 다음에는 그마저도 힘들지 않나. 배우와 감독 대부분은 우리 상영회뿐만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든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
아름 5월에 진행한 임호준 배우전 상영작 중에는 아직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이전까지는 신작 상영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감독이 적극적으로 배급사에 이야기하며 방법을 찾아준 덕분에 상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창작자와 직접 만나서 대화해보면, 작품 상영을 향한 의지와 갈증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영화제나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상영하는 방식 자체를 이전보다 편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한비 지난 상영회를 살펴보니, 상영 외에도 공연·전시·굿즈 제작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더라. 배우를 소개하는 느낌과 더불어, 배우의 오랜 팬이 만든 자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름 그래서 기획이 재밌다. 한 번 미팅하면 꽤 오래하는 편이다. 보통은 커피만 마시고 끝나지 않지. (웃음) 상영회 소개로 시작해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 자연스레 사는 이야기까지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얼추 콘셉트가 잡힌다. 예컨대 이 배우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전시를 해볼까, 이 배우는 연극을 오래 해왔으니까 소극장에서 상영회를 해볼까, 하는 식이다. 배우가 참여하는 부분을 늘리려고 한다.
진철 우리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적은 없다. 이미 그 배우를 잘 알아서 제안했다기보다는, 만나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며 발전시켜나가는 거다.
국한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배우의 전부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 외에도 다른 모습이 많다. 정기상영은 기획전만큼 깊게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아름 보통 정기상영회를 준비할 때는 배우와 두세 차례 만난다. 기획상영은 기간을 오래 잡고, 더 자주 만나려고 노력한다. 모두 합하면, 한 달에 두 번씩은 미팅을 진행하는 것 같다.
한비 품이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름 그런 편이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려고는 하지만, 이것저것 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설 때도 있다.
국한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름 맞다. 내가 좀 과하게 나간다 싶으면, 적절히 피드백을 해준다. 아직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한다. 아무래도 진철이는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일이 늘어나면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본인이 할 수 있을 때는 입버릇처럼 “일도 아니죠!”라고 하는데, 그 말이 되게 좋다. (웃음) 국한이한테 ‘근데’나 ‘하지만’ 같은 단서 없이, “좋아요”라는 말 들을 때도 기쁘다. 진짜 좋다는 뜻이거든. (웃음)
한비 함께했던 배우 중에 기억에 남는 배우를 말해본다면.
진철 모든 배우들이 기억에 남지만, 한 분만 꼽는다면 황미영 배우. 정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상영장소도 여러 군데 찾아다녔고, 그만큼 만족감이 컸다.
아름 나는 이태경 배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먼저 방향을 제안해주기도 했고, 본인으로서도 힘든 점이 많을 텐데 굉장히 노력하셨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태경 배우는 만나면 만날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이다. (웃음) 준비 과정에서 ‘상영회 당일에는 태경 배우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상영회 때 웃는 모습을 많이 봐서 기분이 좋았다.
국한 황미영 배우 기획전 당시 모더레이터를 맡았는데, 그때 기억이 오래 남는다. 미영 배우가 워낙 아이디어도 넘치고 장난기도 많아서, 예고에 없던 일이 많이 벌어졌다. 나는 되게 전형적으로 준비해갔거든. 일단 세팅부터 엎어졌다.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는데, 관객들과 멀리 앉을 필요가 있냐면서 관객석에 같이 앉자는 거다. (웃음) 그 순간에는 당황했는데, 돌이켜보면 내내 유쾌했다. 김금순 배우님 기획전도 좋았다. 배우뿐만 아니라 참여한 스태프와 관객 모두 신나 보이더라.
아름 금순 배우님이 GV 마지막에 “낫띵벗필름에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릴 챙겨줘서 감동한 게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배우님이 고맙다는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하셨거든. 어떻게 보면 상영회는 배우의 재능과 노력 덕분에 만들어진 자리인데, 계속 우리가 감사를 받으니까 마음이 복잡했다. 울지는 말자 싶어서, 손키스를 날렸다. (웃음)
관객 찾기
한비 올해 4월부터 KU시네마테크에서 월 1회 상영회를 진행 중이다. 극장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안정적인 상영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 말고도, KU시네마테크를 찾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국한 KU시네마테크가 올 초에 짧게 휴관했다가 재개관했다. 현 극장 대표님이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다. 재개관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가 먼저 준비해서 찾아갔다.
아름 우리는 상영회를 매달 기획하지 않나. 우리만 즐기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누구 한 명이라도 힘을 받고 시너지를 내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계속 사라지는데, 조금이나마 그 시기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었다. 진짜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같이 힘내자는 마음이다.
한비 낫띵벗필름이 주 관객층으로 설정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아름 기본적으로는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인데, 현재 상영회에 오는 관객들은 생각보다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가 제일 많다. 길게 보았을 때, 좀 더 젊은 층을 유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계속 고민해나갈 부분이다.
국한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 최근 독립예술영화 현장의 공통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한비 동감한다. 개봉관에도 관객이 들지 않는다. 관객을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결국 대안 없이 비슷한 말이 돌고 도는 느낌이다. 자체적으로 상영회를 꾸려가는 활동가 입장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다.
아름 우리 내부에서 계속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최근에 책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진철에게는 포스터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워크숍을 추천하기도 했다. 결국 자체적으로 판을 넓혀가지 못하면, 점점 더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한에게도 제안하고 싶은 건 있다. ‘현생’을 힘들어해서 얘기는 못했는데. (웃음)
국한 아니, 나한테 뭘 더 맡기려고. (웃음)
아름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국한이가 남기는 리뷰가 되게 좋다. 글을 쓰고 영화를 정리하는 자기만의 온라인 공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국한이한테도 도움이 되고, 낫띵벗필름을 같이 하는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한비 관객이라는 존재에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나. 두 사람은 영화를 배급하고 개봉한 경험도 있으니, ‘스코어’라는 압박을 느껴봤을 법도 하다. 나는 최근 독립영화 개봉관에 갔을 때, 막막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이 정말 이걸 원하는 게 맞을까, 싶어지더라.
국한 어렵다. 소위 아트관객이라고 부르는 관객층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20대 관객층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 대부분 아트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달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데, 이미지나 분위기 등 어떤 한 가지에 꽂혀야만 극장에 가는 상황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관객을 끌어당길 압도적인 콘셉트를 궁리하고 생산해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데다 늘 성공을 보장할 수도 없다. 업계 내부적으로도 이야기가 많다. 다들 힘든 것 같다.
한비 자연스레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도 양극화 되어간다고 느낀다. 아트시네마 위주로 영화를 찾아보거나, 아니면 놀이공원에 버금가는 경험을 기대하며 멀티플렉스에 간다.
국한 매체도 너무 다양해졌다.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플랫폼이 확고히 자리 잡았고, 핸드폰만으로도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유튜브와 케이블 채널 드라마까지 놓고 보면, 극장에 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노력인 셈이다. 선택권이 늘어나면서 영화가 경쟁해야 할 대상도 많아졌다. 영화 수도 이전에 비해 늘어났는데, 지금은 영화 말고도 볼 것이 너무 많은 거다.
한비 단편영화 상영회에서 보는 작품들이 오히려 경쟁력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오늘 이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국한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다. 낫띵벗필름을 포함해서 필름다빈, 오렌지필름, 피플 등 다른 단체와 상영회에도 함께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다. 우연히 여기서 독립영화를 접한 관객들이 새로운 극장과 영화를 찾아가게 된다면, 우리도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름 처음에는 ‘지인파티’가 될까 봐 걱정했다. 당장 관객을 끌어오는 방법이 주변 사람을 불러 모으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근데 말한 것처럼 이 중 한 명이라도 독립영화에 관심이 생긴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보니 정신 승리 같지만. (웃음)
진철 거의 세뇌에 가깝다. (웃음)
한비 관객이 없다, 독립영화 위기다, 같은 말이 심심찮게 나오지만, 동시에 아주 적극적인 형태의 관객 움직임이 이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관객 스스로 굿즈를 만들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시나리오 북을 제작한다. 상영회 역시 넓게 보면 관객운동의 범주에 있지 않나.
아름 처음 낫띵벗필름 소개서를 만들 때, 그런 이야기를 꽤 진지하게 쓴 적이 있다. (웃음) 관객 욕구는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개봉관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렵다. 극장에서도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의 상영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지 않나. 좋아하는 배우의 전작을 모아 본다든지, 관심 있는 주제의 영화를 묶어서 관람하는 건, 결국 원하는 사람이 기획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어쨌거나 관객으로 만났고, 관객으로서 느낀 아쉬움을 활동하면서 푸는 것 같다.
국한 결국 팬심이다. (웃음) 우리가 좋아하고, 내가 재밌으니까.
재미 찾기
한비 재미라는 단어가 나온 김에, 각자 느끼는 재미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아름 배우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재밌다. 말을 주고 또 받으면서 뼈대를 잡고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아주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걸 시도해본다는 것만으로도 때론 뿌듯함을 느낀다. “와, 우리 이번에 새로운 거 해봤네!”라면서. (웃음)
진철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보면, 관객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적더라. 정말 영화 보고 나오면 끝이니까. 심지어 그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의 틀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극장을 찾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모르는 장소에서 낯선 영화를 보고,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무척 좋더라. 그 연장에서 상영회 역시 매번 새로운 배우들과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점이 즐겁다.
국한 초기에는 나 역시 배우들과 이야기하고, 이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재미로 다가왔다. 지금은 좀 달라졌는데, 관객을 볼 때 좋더라. GV가 진행될 때, 관객들을 보면서 그 순간을 같이 즐기고 좋아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아름 처음 알았다. 다 다르구나. (웃음)
한비 어떻게 하면 이 재미가 지속될 수 있을까. 각자 낫띵벗필름을 시작한 이유가 조금씩 달랐던 것처럼, 목표하는 바와 현재 상황에서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도 다를 것 같다.
아름 처음에는 그냥 재밌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점점 커졌다. 그래도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10년은 본다. 10년은 채워봐야지. (웃음) 사실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멤버들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고, 최근 멤버 구성에 변화를 겪으면서 예민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근데 지금 나한테 두 사람은 당근과 채찍이랄까, 이상하게 밸런스가 맞는다. 이렇게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요즘 나의 화두는 ‘신뢰’다. (웃음)
진철 항상 생각하는데, 내게는 지금 이 생활패턴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느껴진다. 육체적으로는 확언하지 못하겠지만. (웃음) 주변을 보면 퇴근한 다음 뭘 할지,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누구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그 시간을 우왕좌왕하지 않고 즐기는 방법 몇 가지를 아는 거다. 아직까지는 어떤 목표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균형 속에서 큰 스트레스 없이 지속해나가고 싶다.
국한 단편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하다. 다만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어떤 안정성을 바라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상영회에 들어가는 돈이 있다. 영화를 수급하고, 극장을 대관하고, 사람을 초청한다. 결국 안 좋은 관행인데, 페이를 정확히 계산해서 맞추지 않고 양해를 구하는 상황이 온다. 감독, 배우, 모더레이터, 영화사, 극장 등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상영회를 꾸려나가고 싶다. 그래야 이 일을 계속, 또 웃으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 이번 낫띵벗필름 2주년 때, 작게 떡을 맞춰서 배급사와 극장에 드렸다. 축하해달라는 뜻이 아니라, “저희 좀 더 노력할게요. 예쁘게 봐주세요.”라는 의미였다. 시작할 때는 별 생각 없이 우리끼리 놀기 바빴는데, 이젠 발맞춰서 해나갈 부분이 있다고 느껴진다.
한비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아름 딱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억나는 장면은 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커뮤니티시네마 포럼에 참석했는데, 그때 어떤 분이 “낫띵벗필름은 독립영화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무슨 거창한 포부와 입장을 갖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당시에는 되게 당황스러웠다. “저희는 그냥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라고 답했는데, 요새 그 질문이 자꾸 떠오르더라. 뭘 어떻게 더 해볼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 당장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상영공간에 힘을 실어주는 일 같다. 올해 KU시네마테크와 정기상영회를 함께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앞으로 다양한 공간들을 만나고 싶다.
한비 끝으로 하반기 계획과 소망을 들으며 마무리하자.
국한 방금 얘기했듯 참여자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다. 건강한 상영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아름 내년쯤에는 작업실이 생기면 좋겠다. 지금은 배우나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춰서 상영회를 진행하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고 싶다. 술 마시면서 다 같이 뮤직비디오를 본다든가, 어린 시절에 처음 접한 ‘야한 영화’를 다시 본다든가 하면서. (웃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진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주인공인 상영회로 자리 잡고 싶다. 문화컨텐츠 제작자로서의 역량이 커져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 한 명만 포커스하는 상영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 서로를 주인공으로 느끼는 상영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은 아름과 국한이 이야기를 나누면 “그 배우가 누군데? 그건 무슨 영화인데?”하며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익숙해져서 ‘고인 물’이 되겠지. (웃음) 그때는 그림도 더 많이 그리고, 전시회도 열고 싶다. □
[편집자 주] 이날 인터뷰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공간 현기증에서 진행되었다. 영화배급사 필름다빈과 커피코가 합심하여 최근 6월에 문을 열었다. 커피, 술, 비건브레드, 안주 등을 판매하며, 다양한 단편영화를 상시 상영한다. 상영작 및 기획전 일정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낫띵벗필름 https://www.instagram.com/nothing_but_film/
▶ 공간 현기증 https://www.filmdabin.com/spacevert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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