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4호 인터뷰 2019.05.25.]

     

    “더 멀리 가보고 싶다” 

    - 강현택, 목충헌, 최은솔 (Fipple) 

     

    차한비 (ACT! 편집위원)

     

     

         지난 3월, Fipple의 다섯 번째 상영회에 다녀왔다. '객체지향'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기획전으로, <관찰과 기억>(이솜이, 2017), <혼다, 비트>(양주희, 2016), <콘크리트의 불안>(장윤미, 2017), <본>(김현수, 2017) 네 작품을 상영했다. 정성스레 만든 티켓과 맥주 한 캔을 받아들고 객석에 앉았다. 본격적인 상영 전, 감독들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었다. 낯선 곳에 방문한 사람이 지도를 펼쳐보듯 인터뷰를 지켜보았다. 다른 관객과의 거리가 꽤 가까운 편이었다. 뒤에 앉은 사람이 영화를 보며 웃을 때 따라 웃었고, 옆 사람이 숨을 죽일 때 함께 긴장했다. 상영과 GV가 종료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잠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영화가 데려간 곳은 매력적인 여행지였고, Fipple은 꼼꼼한 안내와 따뜻한 환대를 도맡았다.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더니 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빈 잔과 각자의 노트북으로 짐작컨대, 꽤 오래 전부터 앉아 있던 듯했다. 혹시 일하는 중이었느냐고 묻자, 그들은 “사는 이야기 했어요”라며 웃었다. 중간고사, 아르바이트, 연애, 그리고 영화. 세 사람이 나누었을 ‘사는 이야기’란 그런 대화였을 것이다. 나이도 전공도 다른 세 사람은 영화 덕분에 만났다. 교내 영화 동아리와 단편영화 촬영 현장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비슷한 고민과 호기심을 확인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더 가까운 곳을 찾다가, 아예 직접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졌다. 이제 세 사람은 더 멀리 있는 곳이 궁금하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영화와 어디까지 가게 될지 보고 싶다.

    ▲ 왼쪽부터 최은솔, 강현택, 목충헌 (Fipple) 


    = 소개 부탁드려요. 각자 Fipple에서는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 최은솔(이하 은솔): 전반적인 상영기획은 다 같이 해요. 작품과 주제를 선정하고 나면, 저는 인터뷰와 상영 후 GV를 진행해요. 
    - 강현택(이하 현택): 홍보와 브랜딩을 맡고 있어요. 기획전 카피와 콘셉트 등을 고민하고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역할이에요. 감독 섭외도 가끔 하고요.
    - 목충헌(이하 충헌): 프로그래밍에 좀 더 집중하는 역할이에요. 배급사와 연락하고 상영을 확정한 후에는 인터뷰 촬영과 편집도 하고 있어요.

    = Fipple을 시작하자고 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웃음)
    - 충헌: 저요. (웃음) 학교에서 영화 동아리를 했고, 계속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현택이와는 같은 동아리에서 만났고 은솔이와는 단편영화 연출부를 함께 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 Fipple은 Film(영화)과 Ripple(울림)의 합성어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지은 이름인가요. 
    - 현택: 첫 회의 때 이름 이야기가 나왔어요. 충헌이 빅 쇼츠Big Shorts를 얘기했는데, 그건 좀 아니다 싶어서… (웃음) 마침 회의 직전에 Ripple effect라는 음악을 들었거든요. 파급효과라는 뜻도 좋고, Film과 Ripple을 합쳐서 부르면 피플, 즉 사람들을 의미하잖아요. 중의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Fipple로 짓게 되었어요. 그날 이름을 정하고, 집에 돌아가서 간단히 로고를 만들었죠.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어요. (웃음)

    ▲ Fipple 로고 
    ▲ Fipple 로고 


    =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 현택: 이제 꼬박 1년 되었네요. 첫 상영은 2018년 5월 19일이에요. 기획회의는 그해 3월부터 시작했고요. 각자 학교나 일, 영화작업 때문에 바빠서 매달 1회 상영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중간에 공간 문제도 생겨서 6개월 정도 쉬기도 했고요. 

    = Fipple이 하는 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상영과 아카이빙이라고 생각해요. 먼저 상영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단편영화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프로그래밍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 은솔: 기간은 한 달 정도 잡고 준비해요.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중에 다시 한 번 상영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평소에 모아두는 편이고요. 주제를 선정한 다음, 기획과 여건에 맞게 상영작을 좁혀 나가요. 

    = 사실 독립영화를, 그것도 단편영화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잖아요. 애정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충헌: 단편영화는 항상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잖아요. 쉽게 관람 가능한 작품들이 아니어서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저 또한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작품들을 챙겨보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다시 보고 싶고 가능한 가까이 옆에 두고 싶은 영화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졌어요. 
    - 현택: 원래 영화제에서 가볍게 보는 정도였지, 단편영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영화를 찍을 때 충헌이 촬영을 도와줬는데, 장비 반납하러 가는 택시 안에서 <혜영>(김용삼, 2016)을 추천해주더라고요. 그 작품이 너무 좋아서 '극장판'(https://geukjangpan.modoo.at/)처럼 대안적인 상영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공부해나가는 중이에요.
    - 은솔: 충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고 또 배우고 싶은 입장에서, 단편을 지속적으로 볼 기회가 필요했어요. 영화제는 1년 단위로 열리고, 아무래도 같은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니까요. 한편 상영회를 꾸려나가면서 일종의 네트워킹을 경험하기도 해요. 연출자들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거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상업적으로 수익을 얻는 일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모로 힘을 얻어요. 관객들과 같이 해나가는 느낌도 들고요. 

    ▲ Fipple 목충헌 


    = 비극장에서 상영회를 열고 있어요. 공간은 어떻게 섭외하는지 궁금해요.
    - 충헌: 서강대학교에 있는 '키노빈스'라는 공간에서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사용하는 문화공간이자 카페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대표도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우호적이었고요. 그곳에서 상영회를 3회까지 진행하다가 내부공사가 시작되면서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어요. 지금은 김해나 배우가 운영하는 '연남가든'(https://blog.naver.com/yn_planet)에서 두 차례 상영회를 진행한 상태예요. 

    = 상영 전에 감독 인터뷰를 보여주는 방식이 새로웠어요. 확실히 연출자에 대한 정보를 얻은 상태에서 관람하니 영화가 좀 더 가깝게 다가오더라고요. 어떤 의도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충헌: 다른 상영회와 구분되는 Fipple만의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택이 인터뷰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마침 다들 기본적으로 촬영을 할 줄 아니 영상으로 남겨놓으면 아카이빙으로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 은솔: 보통 상영이 끝나고 GV를 하면 작품에 관한 질문만 하게 되잖아요. 그런 점이 아쉬웠는데, 관객들이 사전에 인터뷰 영상을 보니까 작품 내용뿐만 아니라 감독과 연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더라고요.

    = 인터뷰 때는 주로 무얼 물어보나요?
    - 충헌: 상영작에 특정한 질문보다는 평소 감독이 어떤 철학으로 영화를 만들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지 질문해요. 몇 년 후에 다른 작품을 만들더라도, 이 인터뷰가 온전히 그 사람의 인터뷰로서 유효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거든요. 

    = 대개 연출자는 카메라 앞에 서기를 어색해하던데, 영상을 보니 되게 자연스럽더라고요. (웃음) 인터뷰 노하우랄까요,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는 비결이 있나요?  
    - 현택: 인터뷰는 둘이서 진행해요. 한 명은 촬영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눠요. 스케줄 맞추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면, 혼자서 촬영과 진행을 맡기도 하는데 확실히 힘들더라고요. 
    - 은솔: 최대한 딱딱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려고 해요. 여유롭게 카페나 벤치에 앉아서 먼저 다른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분위기가 풀리면 그때부터 인터뷰를 하는 편이에요. 
    - 충헌: 처음에는 더러 민망해하시는데, 막상 시작하면 말씀을 잘 하셔서 놀라곤 해요. (웃음) 시간은 넉넉하게 잡는 편이에요. 상영회 때는 3-4분 내외로 편집한 버전을 상영하지만, 실제 촬영은 30분 정도 진행해요. 워낙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편집이 쉽지 않아요.
    - 은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고맙다고 해주시는 감독님들도 많아요.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면서요. 그런 말 들으면 힘이 나죠. 저희 입장에서는 도움이 많이 돼요. 미리 한 차례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상영회를 진행하니까 GV가 좀 더 풍성해지기도 하고, 어쨌거나 상영회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 Fipple 최은솔 


    = SNS를 통해 상영회 티켓을 판매하고 있어요. “1Ticket+3Films+1FreeDrink=10,000₩”이라는 문구가 솔깃하더라고요. (웃음) 독립영화라고 하면 으레 심각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떠올리는데, Fipple 상영회는 문화적 즐길 거리로 가닿는 것 같아요.
    - 충헌: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영화제 역시 대체로 영화를 공부하거나 만드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시네필이 찾는 창구잖아요. 독립영화에 관심 혹은 정보가 없는 일반 관객들도 편하게 올 수 있는 상영회를 고민하다가, 프리드링크와 티켓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 은솔: 술도 자유롭게 마시고 약간 이완된 상태에서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어요. 정작 관객들은 맥주보다는 탄산수를 선호하더라고요. (웃음) 10대 관객들도 종종 있고요. 

    = 주 관객층은 어떤 분들인가요?
    - 은솔: 연령대는 대부분 2, 30대예요. 안 그래도 최근 들어 누가 어떤 경로로 오는지 조사해볼 필요성을 느껴요. 현재까지는 Fipple 인스타그램이나 학교 커뮤니티에 홍보한 내용을 보고 찾아오는 분들이 다수인 듯해요. 아,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후배들이 놀러 온 적도 있어요. (웃음)  
    - 현택: 연남가든은 Fipple 외에도 자체 상영회나 모임을 진행해서, 그쪽을 통해 유입되는 관객도 있는것 같아요. 어쨌든 상영회에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시는데, 계속해서 새로운 관객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비정기적으로 출판물도 간행한다고 들었어요. 책에는 어떤 내용이 실리나요.
    - 은솔: 아직 책은 만들지 못했어요. 본래 계획은 상영작을 중심으로 작품정보, GV 녹취록, 비평 등을 엮으려고 했어요. 리뷰 투고까지 받았는데, 출판 자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올해는 관련 프로그램이나 지원 등을 통해 비용을 마련해보려고요. 동시에 정기상영회도 진행해야 하니까 일정 조율이나 편집을 담당할 인력 등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기 같아요. 그동안 꾸준히 아카이빙해온 기록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생각만큼 수요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하네요.  
    - 현택: 사실 저는 책 만드는 줄 알고 들어왔거든요. 속았어요. (웃음) 출판 자체가 아무래도 혼자서 하긴 어려운 경험이니까 여기서 같이 해보고 싶어요.

    = 책이 꼭 나오면 좋겠어요. 기록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관객을 포함한 참여자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기념품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포스터도 감각적이고 일러스트가 그려진 티켓도 귀여워요. 굿즈처럼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 현택: 디자인은 포스터와 웹 이미지를 만드는 친구 한 명과 티켓 일러스트를 담당하는 친구 한 명, 이렇게 두 사람이 진행하고 있어요. 티켓에는 개인적인 취미가 반영되기도 했는데요, 제가 영화를 본 후에 티켓을 모으거든요. 편하면서도 매력적인 인상을 주는 동시에, 작품과 어울리는 홍보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디자인팀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서 콘셉트를 논의하고 이미지를 조율해나가요. 디자이너들에게는 늘 미안하고 고마워요. 시간 들여서 고생하는데 마땅한 보상을 못 해주니까요. 

    ▲ Fipple 강현택 


    = 영화와 연출자뿐만 아니라, 관객도 굉장히 가까이에서 만나잖아요. 실시간으로 영화에 대한 반응을 느낄 텐데 긴장되진 않나요? 
    - 충헌: 상영작에는 불안감이 없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작품인 동시에 관객들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공간 상황이나 인터뷰에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너무 길지는 않은지, 어떻게 보일지 하고요.
    - 은솔: 저는 모더레이터로 GV를 진행하다 보니 초반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전문 사회자가 아니고 경험이 많지 않아서 조심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관객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환경에 맞춰서 유연하게 진행하는 방법을 고민해요. 단순히 질의응답 식으로 GV를 하기 보다는 좀 더 돈독하고 친밀한 분위기에서 연출자와 관객이 함께 대화를 나누면 좋겠어요. 
    - 현택: 상영 중에 관객 반응을 가까이에서 살피지는 못해요. 저는 늦게 온 관객이나 감독을 안내하기 위해 밖에 있거든요. 관객들이 웃는 소리가 문 밖까지 들려올 때 뿌듯하기도 해요. 실은 녹음한 적도 있어요. (웃음) Fipple을 지속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힘에 부치거나 회의감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좀 나아지기도 하더라고요. 좋든 나쁘든 관객 반응을 볼 때가 제일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 은솔: 동감해요. 굳이 질문이 많지 않더라도,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정말 집중해서 귀 기울여 듣는 얼굴을 보면, 작품을 흥미롭게 봤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아요.

    = Fipple 안에서 프로그래밍, 상영, 촬영, 편집, 홍보 등 여러 일을 해오고 있어요. 언제 가장 즐겁나요?
    - 충헌: 상영회 당일에 관객들이 도착해서 영화를 볼 때요. 그제야 안도하는 거죠. 해냈다, 같은 순간이기도 하고요. (웃음) 그동안 준비해온 일들이 실현될 때 즐거워요. 
    - 현택: 관객이 많지 않을까봐 매일 걱정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찾아오는 관객들 덕분에 Fipple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홍보를 맡고 있다 보니, 사전신청이 적으면 상영 직전까지 불안하더라고요. 물론 작품이 좋아서이지만, 다행히도 매번 많이 와주셔서 감사해요. 당일 상영회가 원만하게 진행될 때, 그리고 Fipple은 뭔가 좀 다른 느낌이라고 얘기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 기뻐요. 아, 상영회 마치고 나면 티켓에 감독님 사인을 받거든요. 집에 돌아가서 제 '티켓 북'에 오늘 상영한 작품의 티켓들을 넣을 때 제일 완결성이 느껴지죠. (웃음) 
    - 은솔: 저 역시 관객들과 영화를 보는 시간이 좋아요.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즐겁고요. 오늘처럼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거나, 저희를 격려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보람을 느껴요. 지난 상영회를 마치고 나서도, 한 감독님께 문자를 받았어요. 고맙다고, 이런 자리가 참 소중하다고요.  

    ▲ 왼쪽부터 강현택, 최은솔, 목충헌(Fipple) 


    = 그럼, 일하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던 순간이라든지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 현택: 상영 공간이 고민이에요. Fipple은 나름 유의미한 콘텐츠를 생산한다고 생각하는데, 저희가 아직 학생이다 보니 여러 가지 경제적인 한계에 부딪칠 때가 많아요. 공간과 관련한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어요. 관객에게 최적의 상영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는 점도 아쉽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해나갈 동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어요. 돈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지만, 정말 활동비가 제로인 상황이거든요. 그래도 당장 티켓 가격을 인상할 계획은 없어요. 적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요. 
    - 충헌: 애초에 Fipple을 하자고 사람을 모은 입장으로서 과연 우리가 어느 선까지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지 고민이 들어요. 세 사람 모두에게 본업은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는 순간도 생기고요. 개인적인 욕심은 있는데, 제가 그렇게 열심히 발로 뛰는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아서… 아, 이거 너무 고해성사네요. (웃음) 항상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빛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할까봐 고민스러운 것 같아요.
    - 현택: 우리가 코 꿰었지. (웃음)
    - 은솔: 하자고 했을 때 두 번은 생각했어야 돼. 한 번만 생각해서 코 꿰인 거야. (웃음) 저도 지금으로서는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긴 한데, 현재 재학 중인 상황에서 시간을 쪼개어 활동하다 보니 아쉬울 때가 있어요. 상영 의뢰나 좋은 제안을 받아도 현실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렴더라고요. Fipple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고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은 늘 갖고 있지만요.
    - 충헌: 안정적으로, 그러니까 돈 걱정 없이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머릿속에 있어요. 정말 어떤 주제로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지 등등 상영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합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싶고요. 
    - 은솔: 일을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최소한의 지원이나 내부적인 동력이 필요한 시기 같아요. 우선은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단발성으로 몇 회하고 끝나는 상영회는 아니었으면 좋겠거든요. 가능한 오래 해보고 싶어요. 
     

    ▲ Fipple 1회 상영회 포스터 


    = Fipple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와 지속하는 이유는 각자 조금씩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사람이 있나요?
    - 은솔: 금전적인 보상을 따질 수는 없지만, 영화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배우고 얻는 것이 더 많아요. 첫 상영회 때 이지원 감독의 <여름밤>을 상영했는데요, 감독님이 무척 진솔하게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주셨어요. 다음 상영회 할 때도 오셔서 이야기 나눠주시고요. 저희가 학생이라는 것을 아시다 보니, 다들 많이 도와주려고 하세요. 제가 그 후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촬영 준비할 때 연락드리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어요. 4회 상영회에서 상영했던 <병구>의 형슬우 감독님 통해서 촬영감독도 구할 수 있었고요. 아마 당시에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영화를 만들기 어려웠을 거예요. 
    - 현택: 저는 앞으로 영화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 좀 더 고민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은 스트레스 받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히 좋은 부분이 어디엔가 있는데, 제가 못 찾고 있나 봐요. 저도 형슬우 감독님이 기억나는데요, 인터뷰 촬영을 감독님 집에서 했어요. 감독님께 지향하는 바를 물었더니, "영화를 만들면서 가정도 꾸리고, 아이가 생기면 평범하게 학원도 보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빛은 잠깐 본 기분이었어요. 영화를 어떻게 제 삶에 받아들일지 계속 고민해보려고요. Fipple에는 욕심이 있어요. 아직은 노력에 비해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해서, Fipple로서 좀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지금 바람은 제대로 상영 시스템이 갖춰진 극장에서 상영회를 열어보고 싶다는 거예요.
    - 충헌: 프로그래밍하고 감독 섭외하고 한 분씩 인터뷰 할 때 즐거워요. 워낙 다 좋아하는 영화들이고, 그 시간 자체가 저한테 중요한 시간이에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아요. 상영회는 누군가와 더불어, 좋은 영화를 만나는 자리잖아요. 어떤 영화가 마음에 들어오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자리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다만 현택 말대로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지속해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들을 찾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 세 분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장래희망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웃음)
    - 충헌: 영화를 만드는 거요. 제 이야기 할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싶어요. 스스로 보고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껴주길 바라요. 
    - 은솔: 와, 바로 옆에서 이런 얘기 들으니까 민망하다. (웃음)
    - 충헌: 원래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거든요. 영화뿐만 아니라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어요. 나쁘게 말하면 판 벌리는 걸 즐긴다고 할까요. 수습은 잘 모르겠고요. (웃음) 어릴 적부터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거나 한 건 아닌데, 영화든 드라마든 애니메이션이든 하나에 꽂히면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돌려보곤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제가 영화에 애착을 느낀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영화를 가장 좋아하고, 그래서 제일 열심히 할 자신도 있어요.
    - 은솔: 저 역시 영화감독이 꿈이에요. 고등학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는데, 대학에서는 인문학 공부를 하며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싶더라고요.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점을 지니는 것이 중요해 보였어요. 지금도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있는데, 그냥 되는 대로 짜내지는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최소한 내가 좀 더 채워져 있을 때, 이전의 나보다는 발전된 모습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요. 본래 완벽한 서사나 스토리텔링에 매료되는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사고의 방향이 좀 바뀌었어요. 그런 강박을 덜어내고 저만의 언어를 갖는 것, 남이랑 비교하기보다는 나의 시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작품에 대한 욕심은 가지되, 외부적인 요인에는 집착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영화를 잘 만들지, 무엇을 덜어내고 무얼 더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에요. 
    - 현택: 20대 중반에 독립을 하면서 돈에 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막연하게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좋아하는 일과 경제적인 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궁리하는 중이에요. 그래도 여전히 영화나 광고를 만드는 순간 자체가 즐거워요.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저만의 필터를 거쳐 세상에 내보일 때 재밌는 것 같아요. 두 친구의 영향도 있고요. 뭐, 매일 고민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웃음)
    - 은솔: 돈은 늘 따라붙는 고민 같아요. 영화는 결국 공동작업이니까, 주변에 민폐 끼치는 걸 가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어렵네요. (웃음)

    ▲ 위에서부터 강현택, 최은솔, 목충헌(Fipple) 


    = 벌써 5월이에요. 남은 올해 Fipple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현택: 5월 말에 상영회를 열 예정이에요. 그 외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떤 제안을 받고 논의 중이에요. 공간이나 방향적인 측면에서 이전보다 보여드릴 수 있는 게 많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안 그만두면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아까 말했던 책도 차근차근 이야기 해보려고요. 

    =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현택: 나 놓아줘. (웃음)
    - 은솔: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웃음)
    - 충헌: 같이 해서 고맙고… 네, 고마워요. 요즘 생각하는 기획은 각자 프로그래밍을 해서 상영회를 여는 거예요.  
    - 현택: 처음 듣는 이야긴데?
    - 충헌: 말했었어. 네가 기억 못해서 그래. 네, 아무튼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프로그래밍을 맡아보면 좋겠어요. (웃음)
    - 은솔: 일단 고맙고요. 평소에는 낯간지러워서 잘 안 하게 되는 말이니까요. 맨날 저 빼고 둘이 술 마셔서 재밌는 이야기를 못 들을 때가 있는데,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충헌: 와, 제일 바쁘면서!
    - 은솔: (웃음) 지금처럼 지치지 말고 계속 해나가면 좋겠어요. 서로에게 솔직해서 좋은 것 같아요. 뒤로 감추기보다는 차라리 열어놓고 대화하는 편이 훨씬 낫잖아요. 속상하고 서운한 점 있으면 전부 털어놓고 '파이팅' 하면서 5월 기획전도 잘 해내자고 말하고 싶어요.
    - 현택: 두 사람과 디자이너 친구들, 상영회를 함께 만들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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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