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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제작현장의 퀴어 노동자를 말하다, <스탠바이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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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1. 4. 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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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를 진행해 온 <STANBY-Q> 프로젝트의 성과나 고민을 갈무리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미디어 제작 현장에 퀴어 노동자는 존재하며, 지금도 일하고 있다. 퀴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ACT! 124호 인터뷰 2021.04.09.]

 

방송 제작현장의 퀴어 노동자를 말하다, <스탠바이 큐>


인터뷰 진행 : 김초롱(비혼 퀴어·여성 함께/살기 반달),
기획 및 정리 : 김초롱(비혼 퀴어·여성 함께/살기 반달), 이세린(ACT! 편집위원회)


 “카메라 뒤에 퀴어 노동자가 있습니다!” 한류 문화에 대한 갈채 이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미디어 제작 현장의 노동 이슈에 대해 ‘퀴어’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획된 <스탠바이 큐(Stand-by Q)>프로젝트가 내건 슬로건이다. 2004년부터 ‘여성주의 미디어 공동체’를 표방하며 시의적절한 영상물을 발표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이하 연분홍치마)’와 2018년부터 미디어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두 단체가 함께 진행한 <스탠바이 큐> 프로젝트는 작년 한 해 ‘퀴어 프렌들리한 미디어 제작환경을 위한 토크쇼’를 개최하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미디어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숨 가쁜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지난해 퀴어계 아이돌 격인 홍석천, 이혁상, 슬릭, 손희정이 참여한 토크쇼는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소규모의 현장 방청객과 온라인 채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시간을 30분이나 넘겼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 2020년 9월 진행된 <스탠바이 큐> 토크쇼 진행 후, 패널로 참여한 홍석천 씨의 생일을 함께 축하했다. (사진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2020년 한 해간 진행해 온 <스탠바이 큐> 프로젝트의 성과나 고민을 갈무리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바쁜 일정에도 연분홍치마의 일란, 빼갈 활동가, 그리고 한빛센터의 상민 활동가가 인터뷰에 응해줬다. 미디어 제작 현장에 퀴어 노동자는 존재하며, 지금도 일하고 있다. 퀴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단체 및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상민: 저는 상암 DMC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상민입니다. 2016년 이한빛 PD가 CJ E&M 산하의 가장 큰 채널인 tvN에 입사해 신입 조연출로 일을 하다가 드라마 촬영 마지막 날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신 일이 있었죠. 유서에는 프리랜서로 처리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하루에 20시간을 근무하게 하는 현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빛센터는 고인의 뜻을 기려 방송 미디어 환경을 개선하고자, 진상조사 이후 CJ E&M이 사과와 함께 전달한 보상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2019년에 들어와서 미디어 신문고 운영 업무와 논평 작성 등을 하고 있고, 작년부터는 <스탠바이 큐(Stand-by Q)>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란: 연분홍치마는 2004년에 발족했는데요. 성소수자 여성, 그리고 국가폭력의 현장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왔습니다. 처음부터 영상 촬영을 목표로 한 단체는 아니었어요. 성명서를 쓴다거나 실태조사를 하는 것처럼 현장을 전달하는 운동의 방법론이 있을텐데, 문화운동으로서 현실을 다르게 해석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고민으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6명의 활동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현장의 집회 영상, 기록 영상, 홍보 영상, 장편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빼갈: 저는 이한빛 PD의 친구이고, 연분홍치마의 활동가인 빼갈입니다. 그리고 현재 프리랜서 퀴어 방송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분홍치마의 경우 유튜브 채널에서 <퀴서비스>, <애기레즈의 고백법> 등을 발표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는데, 두 단체에서 최근 집중하는 활동과 올해의 첫 사업은 뭔가. 

빼갈: 작년에 슬릭 님, 홍석천 님, 손희정 님, 이혁상 님을 모시고 진행했던 토크쇼에서 100% 퀴어 앨라이가 만들어가는 현장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 취지로 작년에 저희 <스탠바이 큐> 프로젝트의 가이드라인을 담은 대본집으로 웹드라마(<으랏파파>)를 찍었고요. 전체 스태프들이 퀴어 앨라이로 구성되어 있었고, 퀴어 스태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소중했습니다. 지금 그 드라마를 편집 중이고, 3월 말에 나올 예정이에요. 그때 같이 일했던 스태프 분이 일하시는 다른 영화 현장에 한빛센터와 함께 커피차를 보내서 <스탠바이 큐>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상민: 저희는 요즈음 작년 활동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저희가 5년도 안 된 단체인데, 요즘 ‘오래 일하는 건 안 되지, 뭔가 바뀌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늘었다는 게 체감이 돼요. 하지만 이슈에 대한 공감을 넘어서 어떻게 해야 실질적으로 정책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떤 판을 만들어서 방송사나 문화체육관광부 혹은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을 실제로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또 작년에 미디어 신문고를 운영하면서 느낀 건데, 임금 체불이나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제보도 많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제보가 늘어나고 있어요. 나이, 성별, 지위에 따른 위계를 행사한다든지, 스태프 직군에 따라서는 기술 분야의 사람들이 분장, 미술 같은 분야는 힘을 덜 쓴다고 차별하는 때도 많고요. 방송 노동 문화의 위계가 너무 확실하고, 실수를 지적하는 걸 넘어서 필요 이상으로 욕하고, 폭언하고. 그런 것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의 제보가 많았어요. 노동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스탠바이 큐>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소개 부탁드린다. 

상민: 빼갈님이 한빛센터에서도 활동 중이셔서, 연분홍치마와 한빛센터가 함께 할 수 있는 기획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처음부터 뚜렷한 방향이 있었다기보다는, 뭘 해야 할까, 어떤 게 필요할까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조금씩 밑에서부터 쌓아 올리는 식으로 기획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빛센터의 미디어 신문고 활동처럼, 미디어나 방송 쪽 퀴어 노동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익명으로 말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 현장 등에 성평등 가이드라인이 있듯이, 퀴어들도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고 같이 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대나무숲이 만들어지고, 가이드라인도 만들고, 토크쇼도 진행하게 됐습니다.

 

▲ 촬영현장에 배포된 가이드라인 (사진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성소수자 친화적인 미디어 제작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이 작년 말 공개됐다. 이에 대한 구성원 내부 평가는 어떤지. 

빼갈: 핵심은 ‘당사자가 썼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썼다’ 인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서 만든 가이드라인도 있는데,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엔 난이도도 높고, 번역 투 때문에 읽기 어렵기도 하고요. 저희는 그러한 가이드라인을 한국 상황에 맞게 현실화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당사자가 썼다는 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쉽게만 적혀 있으면 당사자인 퀴어들은 힘을 얻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퀴어 당사자가 썼다는 것이 보는 사람에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스탠바이 큐에서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 평가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앞으로 현장이나 사회가 바뀌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거예요. 

성소수자 친화적인 미디어 제작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
1. 모두가 나와 같지 않습니다.
2. 성중립적 환경을 만들어보아요.
3.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세요.
4. 동료의 커밍아웃을 지지해주세요.
5. 아웃팅을 방지합니다.
6. 정체성으로 전문성을 판단하지 마세요.
7. 동료 여러분, 모범이 되어 주세요.
8. 동료 여러분, 현장의 차별과 혐오에 함께 맞서주세요.
9. 모르는 게 당연해요. 그러니 언제든 물어보세요.
10. 제보하세요! <스탠바이 큐>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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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바이 큐> 프로젝트를 통해 마주한 이들의 경험이 궁금하다. 방송 노동자 또한 노동자로서의 보편적 특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방송계 종사 노동자로서 갖는 특수성도 있을 것 같다.

상민: 한빛센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소위 ‘무늬만 프리랜서’ 라고 일컬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구나 싶었죠. 한 현장에서 적어도 50명, 많으면 200명, 300명 넘어가는 노동자들이 이런 프리랜서 계약을 하고 일해요. 다시 말하면, 방송사 내의 일부 정규직을 제외하면 근로계약서를 쓰는 사람이 없는 거죠. 이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노동의 형태가 건설현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청의 하청의 하청…. 이런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고, 위에서 밑으로 갈수록 격차가 엄청 커지고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가 쉽게 무시되는 경우도 많고요. 예전에 소위 ‘공정언론’ 운동을 하셨던 분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미디어 산업은 다른 산업 영역에 비해서도 페미니즘, 성평등 같은 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방송 산업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는데, 산업을 대하는 자세가 아직 부족한 면이 많죠. 



퀴어이자 노동자로서, 퀴어로서의 측면이 나의 노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큰 영향이 없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퀴어 노동자로서의 특수성은 무엇으로 보는지.

빼갈: 퀴어이자 동시에 방송 노동자인 제 입장에서 둘이 분리가 되나 싶기도 해요. 어떤 때는 저도 분리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저에게도 노동자성이 당연히 있겠죠, 퀴어도 노동자니까요. 그걸 따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초반에는 일을 배우고,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한 게 컸는데, 저는 기획 쪽 일을 하다 보니까 대본에 있는 내용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게이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대부분 홍석천 님을 소비하는 이미지처럼 웃기는 캐릭터,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로 등장시키는데, 그렇게 소비되는 모습을 봤을 때 뭐랄까, 굉장히 망설이게 되는 과정이 있어요. 그리고 작가님이 퀴어 캐릭터를 써보려고 한다고 했을 때, 우리 중에는 퀴어가 없으니 인터뷰를 연결해줄 수 있냐고 말씀하시는데, 방송 현장이나 이런 곳에 퀴어가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거죠. 제가 방송 현장에서 느꼈을 때는 (퀴어라는 게)티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단 말이에요. (웃음)
어쨌든 거의 24시간을 함께 일하는 상황에서 삶의 여러 부분을 침투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퀴어로서의 나와 노동자로서의 나를 분리할 수 있냐고 할 때 그게 아닌 거죠. 



노동자로서의 경험과 퀴어로서의 경험을 이분화해서 말하기 어렵다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퀴어가 아닌 노동자들의 경험과 퀴어 노동자들의 경험 간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일란: 빼갈이 이야기한 것에 더불어서, 퀴어 노동자가 마주하는 차별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감안해야 할 다양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퀴어이든, 비 퀴어이든 간에,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전제되는 노동환경인지 아닌지가 중요하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노동의 불안정함으로 인해 퀴어 미디어 노동자와 같은 집단의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조건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방송 제작 현장은 잘 모르지만, 단기 계약을 하고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커밍아웃을 하든, 아웃팅을 당하든 이런 문제는 일차적으론 노동환경에서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요.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이런 부분을 고민하긴 쉽지 않죠. 커밍아웃을 하거나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지속적 관계 안에서 생기는 의지와 조건이 필요한데, 그런 욕구까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 끝나면 흩어지기 바쁜데 지속적인 관계를 맺긴 어려울 수 있죠. 
그런데 한편, 프리랜서의 경우 지속적 관계를 맺지는 않아도, 평판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잖아요. 평판이 생계와 직결되는데, 커밍아웃이나 아웃팅이 평판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퀴어 노동자의 특수성일 수 있을 거 같아요. 평판 관리는 불안정 노동을 경험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공통 사항이긴 하지만, 여기에 퀴어로서의 고민이 얹어지는 거죠. 그래서 직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커밍아웃을 하는 등 평판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인터뷰 동안 꽤 많이 들었어요.  
한 편, 퀴어 중에서도 어떤 정체성이냐에 따라 경험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봐요. 비가시적인 정체성인지, 의도치 않게 가시화되는 정체성인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집단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정체성인지에 따라서요. 개인의 특성도 있지만 이런 퀴어 내의 집단적 특성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각자가 일하는 방송의 영역에 따라서도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 현장에서 어떤 파트를 맡고 있는지, 제작 과정 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밀접하게 동료 및 타인과 붙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색 보정처럼 비교적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일인지에 따라서도 경험이 달라지겠죠. 정리하자면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노동환경인지, 가시성이 있는지, 업무의 특성이 어떤지에 따라 경험이 다를 거라고 추측돼요. 

빼갈: 정체성별로 다르게 경험하는 것들이 있어요. ‘존재 자체가 커밍아웃’인 사람이 있고, 아닌 경우도 있고. 여성인 경우와 남성인 경우가 또 다르고. 그리고 키 스태프(Key Saff)인지 아닌 지도 중요해요. 권력이 있는 감독과 막내를 비교한다고 했을 때 각자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다르고, 어떤 모임을 필요로 하느냐 아니냐도 달라요. 하지만 감독이라고 해서 커밍아웃을 잘 할 수 있다, 아니면 막내가 더 쉽다, 이런 건 아니고 마주하는 차별의 다른 결이 있는 것이죠. 이에 대한 언어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퀴어 노동자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일란:  이런 연구는 한빛센터와 연분홍치마가 할 일이긴 하지만, 조금 더 많은, 이를테면 미디액트라든가,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연구자가 대대적으로 조사해야만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퀴어들이 겪고 있는 곤란함, 아까 빼갈이 말한 것과 같은 곤란함은 무엇인지 포착하고, ‘이것은 어떤 경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이 들어요. 

빼갈: 또 각자의 상황뿐 아니라 현장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를테면, 제가 연분홍치마 활동을 하면서 지보이스(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합창단 소모임)촬영을 했을 때 만났던 분을 다른 현장에서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할지 말지, 그분께 연락해서 같이 찍자고 할지 말지, 이런 고민 속에서 “얘기해봐도 좋겠다”고 결정하게 되는 건 현장의 분위기거든요. 그래서 한빛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꼈던 건, 커피차에서 스티커를 나눠줬더니 자기 장비에 붙이는 분들이 생기고, 현장이 조금은 달라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만약에 그런 현장이었다면, 말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 <스탠바이 큐> 프로젝트에서는 지난 2020년 12월 영화 촬영현장에 커피차 캠페인을 진행하며 퀴어 스태프에 연대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촬영 현장 커피차를 통해 노동인권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사진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앞으로 활동 전망은 어떤지 궁금하다. 

상민: 올해 활동은 아직 논의를 좀 더 해봐야 하는 상황이에요. 작년의 토크쇼와 같은 방식으로 방송, 미디어 노동환경에 대한 이슈화에 더 주력하고 싶어요. 가이드라인을 더 알리고 싶고, 이를 위한 단계별 절차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란: 연분홍치마에서는 작년에 제작한 퀴어 웹드라마를 3월에 발표할 예정이에요.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더불어 조금 더 많은 퀴어 스태프들과 앨라이가 함께 제작할 수 있는 조건을 조금씩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이런 목표가 여러 의미에서 본격화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고요. 온라인 기반 콘텐츠만 하는 게 아니고, 변규리 감독의 다큐멘터리도 올해 공개될 예정이에요.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다루는 다큐고요. 장편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 등에서 퀴어 스태프 참여를 늘리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 <스탠바이 큐>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노력을 꾸준히 이어나가려면 제작비가 안정되어야 하는데, 올해엔 여기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마지막으로, 작년 가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재점화되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활동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 같은지.   

일란: 가장 크게는 가이드라인이 바뀌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는 존재한다, 이게 가이드라인의 첫 번째 항목이었는데, 다시 말해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가이드인 셈이죠. 우리는 존재한다. 당신 곁에 존재한다. 이게 가이드라인이 알리고자 했던 존중이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상민: 다른 환경도 마찬가지겠지만, 방송이나 미디어 현장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데, 이를 의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근로기준법상에는 성평등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방송 및 미디어 현장은 오랫동안 근로계약 자체를 안 하고 있어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환경이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쓴이. 김초롱

비혼 퀴어·여성 함께/살기 반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평범한 레즈비언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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