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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곳이 궁금하다 - 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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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20. 8. 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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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회적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을 공적 영역에 등장시키고, 그들의 삶을 보장하는 체계를 만들어내는 일의 시작이다.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평등해지기 위한 말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행정적으로든 교육적으로든 실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균열을 내겠지."

 

[ACT! 121호 인터뷰 2020.8.14.]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곳이 궁금하다

- 우야

차한비(ACT! 편집위원)

 

▲ 레인보우 플래그를 든 우야

 

  우야의 자기소개는 고정적이지 않다. 대개 자기소개라고 하면 직업이나 소속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우야의 경우에는 하는 일이 여럿인 데다 거쳐 온 조직도 수두룩하다. 대학 재학 시절, 마포FM과 레즈비언 라디오 제작팀 레주파로 공동체라디오를 접했고 자연스레 성소수자 운동과 미디어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청년 활동가로 호명되며 지역 운동에 참여했고, 마을미디어 활동이나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 참여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1인생활밀착연구소 여음을 만들었다. “혼자도 모여도 잘먹고 잘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생활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때와 장소에 따라 미디어 교육자, 성평등 교육자, 식생활 연구자 등으로 소개하는 편이다.

 

  굳이 바쁘냐고 묻지 않아도 이리저리 분주할 우야에게 만남을 청했다. 2007년 첫 등장 이후 오늘까지 번번이 입법화가 무산된 차별금지법이 올해 다시 한 번 발의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야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성소수자위원회 준비모임을 꾸려가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오랜 시간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키우는 활동을 지속해온 그에게 차별금지법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과제다. 법안과의 개인적 역사부터 향후 목표까지 차분히 술회하는 동안, 우야의 얼굴에 웃음만큼이나 한숨이 고루 섞였다. 다만 아쉽고 답답한 와중에도 말하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어 고맙다. ACT!를 모른 척할 수 없었나 보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적도 있는데, 언제부터 시작된 인연인가.

-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님을 대학에서 만났다. 2007년 당시 대안미디어 강좌를 들었는데 시민이라면 누구나 미디어를 갖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수업을 통해 레즈비언 라디오에 관해 알게 됐고 바로 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공동체 라디오에 입문한 다음 레주파와 마포FM에서 활동하면서 성소수자 운동, 미디어 운동, 지역 활동까지 자연스레 연결해 나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을 꼽아보면, 김명준 소장님이 5순위 안에는 들어간다. 정말 그분만 아니었어도 지금과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웃음)

 

= 원래 방송 일이 하고 싶었나? 공동체 라디오의 어떤 점에 끌렸던 걸까?

- 라디오 PD가 꿈이었다. 당시에는 무엇보다 레즈비언 방송국이라는 점에 제일 매력을 느꼈다. 지금처럼 1인 미디어가 발달한 때가 아니었고,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도 드물었다. 인터넷 카페나 홈페이지처럼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몇몇 커뮤니티가 전부였다. 목소리를 듣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에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의미에 관해 곱씹게 된 건 실제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시민이 미디어를 갖는다는 것, 특히 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주파수에 싣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 최근 ‘1인생활밀착연구소 여음을 열었다. 여음은 어떤 곳인가.

- 본래 여음은 잔여음처럼 공기 중에 남은 소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남을 에 음식 ''이라고 쓴다. 남은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여음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 논의해보고 싶다. 우선 친구들과 팀을 꾸려 ‘1인생활보장지표라는 걸 만들었다. 문화, 교육, 노동, 주거, 안전, 건강까지 총 6가지 권리를 포함하는 지표다. 우야식당이라는 미디어 콘텐츠도 여음으로 들어왔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에게 안부를 묻고 온라인에서 함께 식사하기도 한다. 관계망 형성을 위한 미디어 활동인데, 코로나19 시기에 접어들며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성평등 교육이나 공동체 교육처럼 기존에 해오던 일을 여음 안에서 모아내는 중이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개인 연구자들과 함께 스터디도 진행해나갈 계획이다. 우선 1인생활보장지표의 6가지 권리부터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 1인생활밀착연구소 여음
▲ 우야식당

 

= 연구하고 토론하고 기준을 정리하는 일은 말하자면 배경을 만드는 작업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활동은 아닌데,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나.

-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기존 언어를 갖고 계속 싸워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 언어를 만들어서 진입시켜야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점차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정부 정책은 계속해서 4인 가구와 세대주 중심으로 실행되지 않나. 1인의 삶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꿔내지 않는다면, 결국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다가 모두 억울해지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생활동반자법 역시 개인이 선택할 권리가 중심이어야 하는데, 늘 가족이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하는 논의에 머무른다. 지금까지는 개인이 제 삶과 가치관을 잃지 않으며 공동체를 이뤄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목표와 방향에 개인을 맞춰내기 급급했던 거다. 현재의 기준과 다르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새로운 언어와 1인 생활이라는 영역을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조직과 개인의 관계성과도 맞물리는 고민이다.

- 어쩔 수 없이 개인을 부속품처럼 여기는 구조라고 느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도 그렇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국민으로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구를 차별하지 말자는, 즉 소수자나 특정 그룹을 타자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 삶을 보장하길 원하는 거다. 물론 앞선 방식 또한 비가시화 된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필요하다. 다만 나는 이 문제를 내 일로 끌어 들이는 방법에 집중하고 싶다. 누가 누구를 배려한다거나 누가 누구보다 인권 의식이 높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나. ‘내 삶도 보장받고 있구나라는 감각 자체가 중요한 거 같다.

 

= 어렵게 들린다. 말 그대로 삶을 고민하는 거니까. 요즘 우야의 삶과 마음은 어떤가. 뭐랄까,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더 자주 힘을 빼앗기는 시기인 것 같다.

- 맞다. 힘들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결국 더 많이 책임지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분배하는 구조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걸 마련하지 않으면 나도 소진될 것 같더라. 예전에는 혼자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했다면, 이제는 일을 나눌 동료를 찾고 같이 책임지려고 한다. 빨리 움직여서 성과를 내고 싶은 건 내 마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웃음) 함께하는 친구가 내 마음과 유사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그들 스스로 올라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나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 같다.

 

=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텐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나.

-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과 시간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심리 상담에 큰 도움을 받았다. 비용을 지불하고 한정된 시간 동안 속엣 말을 전부 꺼내는 거다. 어떤 해결책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경청하고 격려해주는 역할로서 의지가 된다. 힘들다는 얘기를 누구한테 하겠나. 가족한테도 할 수 없고 동료에게도 어렵다. 특히 리더가 힘들다고, 못 견디겠다고 말하는 조직은 얼마나 불안정한가. 물론 서로 힘듦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리더에게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부분도 있다. 나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고충을 전부 털어 놓으면, 듣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해진다. ‘저 위치에 있는 사람조차 힘들어 하는데 나는? 저렇게 돈도 못 벌고 자기 삶도 없다는데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어지니까.

 

= 단지 지도자에만 한정할 이야기도 아니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 간에 지켜야 할 거리라는 게 있으니까.

- 맞다. 다만 나보다 경험이 적거나 더 취약한 환경에 놓인 사람에게 부정적인 말을 던지지 않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힘들다거나 어렵다고 말하는 대신, 적절하게 도움을 구해야지. 다행히 도와달라고 말하는 법을 차근차근 터득해 가고 있다. 논의와 요청, 그리고 감정의 배설을 잘 구별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우야는 어떤 리더인가.

- 작은 동아리부터 시작하면, 내가 있을 때는 너무 잘됐는데 이후에는 망하더라.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자 뒤에 올 사람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때 공동체의 속도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만 뛴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내 성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구나.’ 이제는 의식적으로 영역을 분리해 놓는다.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일, 예컨대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한다든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개인 영역으로 둔다. 단체에서는 한 가지 활동에서만 리더를 맡고, 나머지에서는 리더를 보좌하는 역할을 소화한다. 결국 알이 든 바구니를 나 혼자 껴안는다고 해서 모든 알을 살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적절히 바구니를 나누고 서로 살펴야 한다. 일단 바구니를 혼자 다 들고 있으면 여유가 없거든. 여유가 없으면 억울함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구성원을 다그치게 된다. 더불어 리더도 못할 수 있음을 명심한다. 실제 공동체 교육이나 리더 교육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어느 리더든 위기에 닥치고 때로는 실패할 수 있다. 다만 실패하더라도 구성원과 함께 실패를 결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회의하고 토론을 거쳐 선택한 결과이기에 모두의 책임이 된다. 그럼 실패한 후에도 여지가 있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해나가는 두 번째 논의가 가능해지는 거다.

 

▲ 2017서울청년의회에 참석한 우야(왼쪽)

 

= 사실 자료를 찾으면서 좀 놀랐다. 어쩜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나 싶어서. 그동안 서울퀴어문화축제, 마포FM,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허브, 서울시NPO지원센터 등에서 활동했고, 마을미디어나 마을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시에 우야식당이나 퀴어여성게임즈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 한 곳에만 있었으면 지쳤을 거 같다. 여러 가지 재밌는 일을 선택하면서 사는 법을 배워나간 셈이다. 물론 이후에 모든 선택이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았지. (웃음) 돌이켜보면 어디에 가야 빨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화두였던 거 같다. 예를 들어 퀴어문화축제에서 일할 때도 나이와 경력에서 훨씬 앞선 선배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그곳에서 지속해온 운동의 서사라는 것도 존재했다. 물론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긴 했지만, 내가 판을 주도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느꼈다. 마포FM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 조직에서 내가 목표를 설정하고 활동을 계획하는 그룹에 들어갈 수 있나? 실제 회의에서 내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인가?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했던 거 같다. 여기서는 이만큼까지구나, 하는 판단이 서면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른 곳을 찾아갔다. 지금이야 이렇게 맥락을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움직였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내가 중심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다녔다. 그 시기에 가장 적합했던 것이 청년이라는 위치성이었고 현재 1인 가구 역시 마찬가지다. 4인 가구, 가족, 파트너 중심적 논의가 주류인 상황에서 1인 가구에 관한 이야기는 희소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할 때보다 빠르게 나를 찾아주더라. 사실 성소수자 이슈에서는 나보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이미 많지 않나. 굳이 그 영역에 들어가서 같은 말을 하기보다는, 내가 자리한 곳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 시기마다 고민과 욕구는 달랐겠지만, 이 모든 선택과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해지더라.

- 2014년 서울시 시민인권헌장 폐기 사태 당시, 내 안에 엄청난 분노가 차올랐다. 시청 점거 시위에 참여할 때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메일링으로 활동가들에게 전체 메일을 돌려서 다 같이 커밍아웃하자고 했을 정도다.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나왔는데 제목이 박원순 시장 때문에 커밍아웃한다"는 식이었다. 운동권 선배들을 향한 불신도 컸다. 협상력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2015년에도 분이 가시지 않아서 단체 활동에 뛰어들었다. 내가 협상력이란 걸 배우고 쌓아서 어떻게든 뒤집어 버릴 거라고 씩씩댔지. 한두 해 지나고 나니 이상하게 다 부끄러워지더라. 기사 제목도 뒤늦게 바꿔달라고 요청하고. (웃음) 한편으로는 성장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어쨌거나 긴 시간 분노를 원동력 삼아 살아왔던 거 같은데, 이제 다른 에너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물론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한번 느껴봤으니 이후에는 뭔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분노로 삶을 지속할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다.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결국 힘을 갖고 싶다는 점에서 권력욕일 수도 있지만, 방식을 고민하는 태도는 점점 바뀌어가는 거 같다.

 

= 문화기획, 미디어교육, 정책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면서 내게 좀 더 맞는 역할과 노동은 무엇인지 탐구해볼 수도 있었겠다.

- 맞다. 결국 미디어가 모든 활동의 시작이긴 하다. 내 목소리를 어떻게 사회적 메시지로 가닿게 할 것인지, 내 삶을 어떻게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에 미디어를 만났으니까. 미디어를 통해 나와 유사한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삶의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해왔다. 공동체 라디오를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선택하고 지속해온 활동들은 서로 동떨어진 게 아니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여전히 미디어를 기반으로 관계를 고민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걸 보면, 나는 참 미디어를 버릴 수 없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잘하는 건 흔히 행사라고 표현하는 일이다. 사람을 모으고 즐겁게 해주는 일이 재밌다. 그래서 축제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고 라디오 공개방송 같은 자리를 좋아했다. 눈앞에 바로 그 현장이 펼쳐지는 순간을 되게 좋아하거든. 달리 말하면 통제 욕구가 심한 거다. ‘내가 만든 판에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걸 내 눈으로 보고 싶어!’ 라는 마음이지. (웃음) 근데 현장이라는 건 정말 대상이 한정적이지 않나. 정책이 갖는 영향력은 그에 비해 훨씬 막대하다. 내 눈앞에 없는 누군가의 삶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니까. 물론 가시적인 성과를 당장 확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들이는 노력이 한참 후에 발현된다고 해도 참고 기다리기, 그게 나의 현 과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더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좋아한다는 뜻이겠지.

 

= 여러 가지 일을 탐구한 끝에 얻은 결론 같다.

- 사실 일자리에 관심이 많다 보니 한동안은 식당 개업을 고민하기도 했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영역을 늘리고 싶거든. 내가 대규모 요식업 회사를 운영한다면, 자연스레 유통업, 농수산업, 디자인, 마케팅, 서비스업까지 일자리를 연결할 수 있겠더라. 현실적으로 따지면 일단 내 식당을 열고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한동안은 백종원이 되는 꿈을 꿔봤다. (웃음) 결국 자원도 자본도 없이 내가 가진 건 나뿐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그들과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부터 시작하기. 마구잡이로 만든 일자리 몇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파악하고 그 일을 정말 일로 존재하게끔 해야 하니까.

 

▲ 2019 마을청년컨퍼런스 <집도 일자리도 놀 곳도 없는데 어떻게 마을 활동을 해>에서 발언 중인 우야  

 

= 다수의 공공기관과 시민단체를 거쳐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 중이라고 들었다. 참여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으리라 짐작하는데.

- 우선 더불어민주당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의 반응도 그렇고, 더구나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다만 소수 정당에서 성소수자라든지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듯, 거대 정당에서도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하세요라고 요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로 들어가서 합시다라고 말할 때 훨씬 설득력을 가지지 않을까 싶었다. 동시대인이 감각하는 걸 외면하지 말자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다. 누군가 그런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럼 타인에게 기대지 말고 내가 시작하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는 당내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퀴어문화축제 참여단이 생겨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과 결합해서 성소수자위원회 준비모임을 만들었다.

 

= 목표는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적어도 이것만큼은 해낼 거라고 다짐한 게 있다면.

- 아직 준비모임 단계이니 일차 목표는 성소수자위원회를 실제로 설치하는 거다. 성소수자 의제를 놓고 보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상황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중이다. 사회적 합의가 안 돼서 못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결국 누구도, 무엇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라면 합의해 나가겠다고, 의견을 듣고 공유하는 과정을 만들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일이고 정당의 역할 아닌가. 성소수자와 관련해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찬반이 아니라, 실제 성소수자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에서다. 여전히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은 협소하고 대중이 접하는 양 자체도 적다. 공적 영역에 소수자의 권리와 안전이 포함되지도 않는다. 본인의 트랜지션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트랜스젠더는 있지만, 트랜지션이 건강권과 연결되어 보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성평등위원회의 경우,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라든가 보육과 양육 분야에 관해서는 활발하게 논의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을 정책 대상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공론장을 만드는 거다. 어떤 문제가 합의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때 실질적으로 당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 7월 한 달 동안 의원실마다 전화를 거는 응답하라, 민주당!”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어떤가.

- 반대하는 사람들 얼마나 부지런한가. (웃음) 비판하는 목소리만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봤다. 대부분 보좌진이 전화를 받는데 반응은 예상보다 각양각색이다. 대개는 잘 전달하겠다는 식이지만, 어떤 의원실에서는 의원님이 진짜 고민하고 계신다. 우리도 노력해보겠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같은 당이라고 해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더라. 자연스레 여러 고민이 동시다발적으로 얽혀들고.

 

▲ 평등법 제정 촉구 프로젝트 <응답하라, 민주당!>

 

▲ 평등법 제정 촉구 프로젝트 <응답하라, 민주당!>

 

= 차별금지법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 이 법안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궁금하다.

- 2007년에 차별금지법에 관해 처음 들었고, 그해 10월에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제외한 채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굉장히 많은 성소수자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함께 토론회도 열고 캠페인도 진행했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웠고, 법과 제도가 내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았다. 당시 활동 경험을 쓴 글을 ACT!에 기고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지. 아무튼 그때부터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안 된다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다.

 

= 시간이 흐르고 우야의 위치와 역할이 변화함에 따라 차별금지법과의 관계도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차별금지법이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 ‘이명박근혜정권을 통과하는 10년 동안 사회가 굉장히 보수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초반은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하리수가 데뷔했고 홍석천이 커밍아웃했다. 대학 총여학생회라는 활성화된 집단을 중심으로 영페미니스트가 등장했고, 페미니즘 운동도 각지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2014년 서울시 시민인권헌장 사태라든지 퀴어문화축제 신촌 개최 등을 통해 성소수자가 가시화됨에 따라 사회가 더욱 공격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한 것 같다. 지난 6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이 만들어졌나. 혐오 세력은 혐오를 견고히 하는 말을 만들었고, 퀴어와 페미니즘 영역에서는 놀랍도록 언어가 세분화되고 확장되었다. ‘차별금지'라는 말 역시 과거와 현재를 놓고 비교하면 달리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다.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정체성 또한 예전보다 세분화되고 층위도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논바이너리는 특정한 성별로 자기 삶을 고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정된 성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운동으로 보자면 예전보다 나아진 점만큼 어려워진 점도 분명히 있다. 지금 겪는 진통을 잘 넘어서야 한다.

 

=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기조에 따르면, 이 법안은 기준을 세우는 첫 번째 단계일 수밖에 없다. 이 법안이 실제로 제정되었을 때 현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기대하나.

- 법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웃음) 그러나 법은 어떤 정책을 실행하고 사업을 진행할 때 근거가 된다. 법은 사회적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을 공적 영역에 등장시키고, 그들의 삶을 보장하는 체계를 만들어내는 일의 시작이다. 성평등교육을 예로 들면 성별이분법적 설명에서 벗어나 논의를 확장할 수 있고, 나아가 개인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게 될 거다. 지금은 아예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나.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평등해지기 위한 말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행정적으로든 교육적으로든 실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균열을 내겠지.

 


 

  인터뷰 말미에 요즘은 무엇에 빠져 있냐고 물었더니, 관심사는 언제나 말하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야는 이미 말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곳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곳을 찾아가서 손을 건네고 어떤 말부터든 시작해볼 작정이라고. 우야가 들려줄 다음 말은 무엇일지, 그때 우야가 가리킬 풍경은 어떤 곳일지 기다려진다.

 

1인생활밀착연구소 여음 https://www.facebook.com/1PLFLYUUUM/

더불어민주당 성소수자위원회 준비모임 http://blog.daum.net/minjoowithqu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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