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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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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11. 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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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블랙리스트는 아직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블랙리스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블랙리스트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짚어보겠습니다." 

 

[ACT! 117호 이슈와 현장 2019.12.16.] 


영화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위한 과제


원승환(인디스페이스 관장)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집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한국일보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난 지 3년여가 지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제1 국정 과제로 설정했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블랙리스트는 직권남용이면서 형법 위반’이며 ‘동시에 헌법 위반’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1개월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를 출범시켰습니다. 1년여의 기간 동안 짧게 운영된 진상조사위는 기간과 인력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에 자행된 여러 블랙리스트 사건들의 진실을 규명했습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 주요 사건

  영화계와 관련된 사건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가 실행된 건들을 나열해 보면 청와대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문체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부산시 등을 동원해 실행한 부산국제영화제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고, 영진위를 통해 실행된 블랙리스트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단체를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 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하던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여 배제한 뒤 급조한 화이트리스트 단체에 위탁한 건, 영진위가 직영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에서 제주해군 기지에 반대하는 <잼 다큐 강정>, 4대강 시책에 반대하는 <江, 원래 프로젝트>과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를 비판한 <MB의 추억> 등을 상영금지한 건, 독립영화 제작・다양성영화 개봉 지원 사업에서 ‘4대강’, ‘세월호’ 등 ‘배제 키워드’에 해당하는 38편의 영화에 대해 지원 배제를 실행한 건,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의 심사배점 조정과 사업 개편으로 10곳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 배제한 건, 영화의 내용 및 제작자 등을 이유로 19편의 영화를 검열하고 상영 금지 조치를 실행한 건 등이 있었습니다.

  영진위 외에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 한국모태펀드 등을 통해서도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었는데요,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기준을 활용하여 영화 <자가당착 : 현실 인식과 시대 참여>에 대하여 4년여 동안 실질적 상영 금지를 실행하였고, 영화 <불안한 외출>에 대해서 사후 관리 제도를 활용하여 소형영화의 공동체 상영은 등급분류 없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고발이라는 불필요한 외압 조치 실행하였습니다.

  자료원은 2008년 10월 ‘박정희 정권기, 산업 근대화 프로젝트와 미디어정치’ 심포지엄을 정치적 이유로 취소했고, 2010년 후원을 약정한 서울독립영화제가 ‘4대강 프로젝트’를 특별상영 프로그램으로 초청하자 약속된 장소 대관 및 후원을 취소하는 일이 있었으며, 한불 수교의 130주년 행사 관련하여 프랑스 파리 ‘포럼데이마주’ 기획의 ‘매혹의 서울’에서 <변호인> 등 4편의 영화를 배제하고, 봉준호 감독과 이송희일 감독, 그리고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대한 초청 배제를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5 한국영화 기획전’에서는 영화 <위로공단>에 대한 배제 지시에 따라 상영 규모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하였습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 청산 현황

  영진위의 경우, 오석근 위원장이 취임하고 2018년 4월, ‘영진위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해 사과하고 혁신을 다짐하는 ‘대국민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자체 조사한 56건의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해 사과하였고, 후속 조치를 위해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체 진상조사 작업 및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2월 문체부가 진상조사 결과로 송부한 ‘책임규명 권고 관련 징계의뢰 대상자’ 14인 중 퇴직자 4명을 제외한 10인에 대해 징계 처분(해임1, 정직1, 감봉5, 견책3)하였습니다. 

  하지만 영등위와 자료원은 각각 2018년 2월과 2018년 12월 각각 새로운 기관장이 선임되고 위원과 이사가 교체되었지만, 진상조사위 조사를 통해 밝혀진 블랙리스트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 영화인에 대한 사과도 없었으며, 당연히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후속 조치도 없었습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는 아직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블랙리스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블랙리스트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짚어보겠습니다. 

 

2019.10.16. 영화진흥위원회의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 토론회



과거사 청산의 첫 번째 원칙, 진실 규명

  일반적으로 국가범죄 등 잘못된 과거사의 청산을 위해서는 피해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실 규명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은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 개별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뿐 아니라 블랙리스트가 일어날 수 있었던 원인과 작동방식, 배경 참여자 등을 규명해야하며 사건의 총체적인 실체를 정의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어야 합니다.

  진상조사위를 통해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범죄로 정의되었고 청와대에서부터 직접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작동방식도 밝혀졌습니다. 영진위, 영등위, 자료원 등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에서는 조직 내에서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었던 작동 구조를 점검하고 조직적 차원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상조사위를 통해 조사된 사건 중에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 있으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블랙리스트 사건도 있을 것입니다. 명확한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제2의 진상조사 작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과거사 청산의 두 번째 원칙, 정의의 회복 

  부정의한 일이 실행되었다면 반드시 정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정의 회복에서 중요한 것은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입니다. 블랙리스트를 직접 실행한 자에 대한 처벌은 현직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직 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한 면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블랙리스트 실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전직 위원장과 위원 등에 대한 처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불법적인 지시에 따랐다고 해서, 방관하고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적인 지시를 거부하지 않은 것, 불법적인 일을 보고도 방관한 것 역시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이를 제대로 인식할 때 정의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의 세 번째 원칙, 피해자의 명예와 피해에 대한 회복 

  과거사 청산 과정의 기본적인 회복은 ‘원상 복구’입니다. 예를 들어 재산상 피해가 있다면 돌려받아야 하고, 직장을 잃었다면 복직되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복구와 함께 정신적인, 심리적인 회복도 필요합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다친 많은 피해자가 있습니다. 블랙리스트가 청산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이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많은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물질적 배상 이전에 정신적 피해에 대한 회복이 필요합니다. 

  블랙리스트 실행과정에서 발생한 재산 상 피해에 대한 배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도 필요합니다. 일례로 2014년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블랙리스트 실행에서 부당하게 지원 배제된 동성아트홀은 결국 운영난에 시달리다 사업자가 바뀌었고 거제아트시네마는 지원 배제와 함께 폐관하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사업체와 일자리를 잃은 것입니다. 명백한 피해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배상과 보상이 필요합니다.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가 확인된 피해 영화나 영화인에 대한 배·보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점은 배·보상의 과정이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재차 입증해야 한다면 또 다른 가해가 될 뿐입니다.


과거사 청산의 네 번째 원칙, 제도 개혁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는 과정에서 원인과 작동 방식, 작동 배경 등이 밝혀졌다면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제도를 개혁한다고 해도 그 제도를 작동시키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큰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사람의 태도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국가기관의 공무원이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의 ‘복무’ 조항에 헌법 제22조가 보장하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여 국민 권리 보장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공무원 채용 과정에도 관련 내용을 추가하여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경우는 블랙리스트의 위법성과 관련된 교육 과정을 신설하여 모두가 블랙리스트가 범죄임을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 실행의 기반이 된 관행 등 조직 문화를 개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사 청산의 다섯 번째 원칙, 문화적 구축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사상과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블랙리스트가 범죄임을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인식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알아야하고 부당한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이 공인된 사실이 될 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가 범죄임을 모두가 인식해야 이후 블랙리스트가 시도되더라도 이에 저항하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에 대한 저항이 정의로운 일임을 공동체가 함께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블랙리스트 사건을 공동체 모두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밝혀진 내용들을 많은 사람들이 접근해서 인지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알려야 합니다. 블랙리스트 실행 기관이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항상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위한 공통의 사회적 기억 사업도 필요하며, 실행 기관별 기억 사업도 실행되어야 합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위한 과제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청산을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한 인정과 사과는 고사하고 어떠한 입장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있는 영등위와 자료원, 한국모태펀드 등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의 인정과 제대로 된 사과, 그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의 명예 및 피해에 대한 회복,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영진위는 사업의 복원과 개편, 심사제도의 개편 등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가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심사를 통한 경쟁적 선별 지원만이 아닌 다른 방식의 지원도 모색해야 합니다. 문화나 예술에 대한 지원이라면 비경쟁적이고 보편적인 지원 방식의 도입도 검토해야 합니다. 심사를 통한 경쟁적이고 선별적인 지원 정책만 존재한다면 보조금을 빌미로 한 통제는 재발될 수 있습니다. 영등위의 경우, 블랙리스트 실행의 도구가 되었던 제한상영가 등급을 폐지해야 하며, 비영리 목적의 영화 상영까지 등급분류로 규제하는 과도한 규제도 개혁해야 합니다. 아울러 공공기관만이 독점하는 등급분류가 아니라 민간도 참여하는 자율등급의 도입 등도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자료원의 경우, 프로그램에 대한 정치적 배제가 실행되지 않도록 작품 선정과 프로그램 기획 등의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한국벤처투자의 블랙리스트 및 화이트리스트 실행 등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안들도 많습니다. 각 기관 차원에서 진실 규명이 어려운 부분도 있기에,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제2의 진상조사기구 설치 및 진실 규명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는 진실 규명이 일부 진행되긴 하였으나 정의의 실현, 피해자의 피해 회복, 제도 개혁, 문화적 구축 작업 등은 미진한 상태입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청산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정부와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을 압박하여 문제 해결을 요구해야 합니다. 피해자만 싸우지 않도록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함께 해주십시오. 블랙리스트가 없는 세상은 피해자 뿐 아니라 모두가 공히 누릴 세상이 될 테니까요. □


글쓴이. 원승환

- 인디스페이스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 관련 ACT! 기사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 블랙리스트는 계속된다. (박채은, ACT! 113호, 2019.3) 


▮ 관련 일정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읽기 - 영화 분야 첫 번째 모임

- 주제: 한국영상자료원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

- 일시: 2019년 12월 23일(월) 오후 3시 ~ 6시

- 장소: 미디액트(서울시 마포구 서강로9길 52, 3층)

- 참가안내 : 별도의 참가 자격과 참가비는 없으나, 해당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은 참여 제한 
- 읽고 올 자료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부록 2-5권

p.92 ~ p.168 한국영상자료원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전체 다운로드

http://bit.ly/blacklistwhitebook 

 

▷ 한국영상자료원 블랙리스트 실행사건 부분 다운로드

http://bit.ly/2s1yl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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