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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이슈와 현장]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 블랙리스트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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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3. 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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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이슈와 현장 2019.3.14.]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 블랙리스트는 계속 된다


박채은 (미디어활동가, 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전문위원)


  그는 한 사람의 이름을 꺼내자 울음을 터트렸다. 공식적 조사는 아니었지만 사전 조사 형식으로 방문한 그의 집무실에서 그의 울음소리를 먼저 듣게 되었다. 눈물이 잦아들 때쯤, 목멘 목소리로 그가 말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그는 “직무를 태만히 하여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하였다는 장관의 경고를 받았다.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영화 상영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영화 분야의 ‘좌파척결’이라는 현안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문체부 국장, 과장, 사무관에게 일괄적으로 서면 경고가 내려졌다. 당시는 ‘블랙리스트’가 표면화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정권 초기 분위기를 잡으려는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다 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는 “깊고 집요한”, “계획적이고 치밀한” 윗선의 지시였다. 30년 가까이 성실히 일해 왔는데, 성실하지 못했다는 경고가 너무나도 모욕적이었다던 그는, 블랙리스트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2014년을 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다른 곳으로 쫓기듯 물러났다. 그의 통한의 눈물은 당시 부하 직원이자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과장이었던 고(故) 김혜선 과장을 향한 것이었다. 재직 당시, 영화 현장의 동의를 얻지 못할 부당한 지시들이 계속되자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토로하고 괴로워하던 김 과장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지병이 악화되었고, 결국 2015년 9월 사망하였다.


  11개월의 진상조사위의 활동에서 가장 안타까운 기억 중 하나이다. ‘문화융성’의 외피를 쓰고 내려오는 배제와 검열 지시, 부당한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양심과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해야 했던 한 여성 공무원의 업무상 재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결국 미완으로 남았다.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던 고위 공직자도 불의의 사고로 이제 더는 진실을 증언해줄 수 없게 되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본질에 접근해 갈수록 나는 이 문제가 단지 법적 책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누군가를 벌하고 누군가를 징계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블랙리스트로 인해 파괴된 것은, 그것이 개인의 양심이든, 행정과 현장의 신뢰이든, 예술적 표현의 자유이든, 결코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단순한 가해-피해 구도로는 이 사태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고 느꼈다. 사태의 원인을 특정 권력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의 측면은 다층적 층위에서 개개인의 목소리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야 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국가범죄의 피해와 상처들을 보다 세심하게 위로하고 대안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제당한 목소리를 되살리는 것이 진상조사위의 임무 중 하나였으나 그 일을 충분히 해내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범죄의 불편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와 기록을 위하여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이 글은 그 역사적 과정을 함께 하며 목격한 ‘진실들’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평가와 정리이다.



블랙리스트는 없다?


  국정농단 국정감사 중에 한 국회의원은 조윤선 당시 문체부 장관에게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은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수십 번 반복한 끝에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은 되고 있습니다.”라는 유체이탈 답변을 힘겹게 이끌어낸 적이 있다.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왜 그렇게 답변을 주저하고 망설였던 것일까. 블랙리스트의 쟁점 중 하나는 실증적 증거인 명단의 존재 여부였다. 정치적 성향 또는 작품의 내용을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된 사례들이 있었으나 그것이 구체적인 명단에 근거한 것이었는지, 즉 블랙리스트에 의한 검열과 배제였는지의 여부가 중요했다. 진상조사위도 이 실제 문건 확보에 주력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공개적으로 진행할 사안이 아니었던 점, 많은 배제 지시가 공문 또는 문서 형태가 아닌 구두, 전화, 이메일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식기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청와대와 국정원을 통해 내려온 직접 지시의 내용 또는 관련 문건 등은 진상조사위가 접근할 수 없는 권한의 한계도 문제였다.


  언론을 통해서 기사화된 9,473명 선언명단의 경우, 실제 블랙리스트로 활용되었는지의 여부가 쟁점이었다. 당시 조윤선 장관 시기 문체부는 대규모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부정하면서, 리스트가 있었을지라도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하여 실제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펼쳤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블랙리스트 문제가 사건화 되자, 영화분야 블랙리스트 대상에 대해 “지원한 내역을 찾으라”는 김세훈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원내역과 언론에 공개된 리스트를 일일이 대조하여 한번이라도 지원한 내역을 근거로 “우리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는 존재했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집요하고 광범위한 배제 지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도별 사업별로 꼼꼼하게 정리하고 기록한 사무관의 문서가 역으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만여 명에 이르는 선언명단을 일일이 확인, 배제를 실행하라는 윗선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한 직원이 보관하고 있던 당시 인쇄날짜까지 고스란히 찍힌 60여 페이지의 문서가 블랙리스트 실체를 고발하였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사찰의 결과물인 국정원 리스트도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공개되었다. 집요하게 묻지 않았으면 모두 사장되었을 기록들이다.



리스트와 검열의 이중주


  한국사회에서 근대적 검열은 1907년 신문지법에서부터 시작되어 90년대 중반까지도 음반과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던 시기까지 이어졌다. 검열이 작품이나 예술적 행위에 대한 통제라면, 리스트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찰의 한 형태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비판적 예술행위를 수반하지 않더라도 권력의 통제와 감시 하에 놓일 수 있다. 권력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리스트에 포섭될 수 있다는 묵시적 리스트의 가능성, 벗어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장치이다.


  영화분야 블랙리스트의 규모는 다른 예술 장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블랙리스트 82명 중 60명이 영화감독, 배우, 독립영화인이었으며, 박근혜 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로 등재된 인물 총 249명 중 104명이 영화 쪽 인사들이었다. 시국선언 명단 중 영화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육박하는 2,665명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영화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힘’을 두려워했다. 대중들의 의식 개조에 소위 말하는 좌파영화들이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권력이 영화의 힘을 과대평가한 것일 수도 있으나, 영화의 내러티브 양식 자체가 사회적 속성을 강하게 내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어떤 장르보다도 대중적이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리스트’ 검증만이 아니라 특정한 키워드를 포함한 ‘문제영화’들에 대한 검열 메커니즘도 동시에 작동하였다.


  국가정체성 훼손, 4대강, 촛불, 세월호, 국가보안법, 노동운동 등 배제 키워드를 포함한 ‘문제영화’에 대한 일상적 모니터링이 수행되었다. 검열은 과거처럼 대본에 빨간 줄긋기를 하거나 문제되는 내용을 편집하는 방식을 넘어서 소재, 주제에 대한 포괄적 검열로 나아갔다. 위의 배제 키워드에 해당하는 정치적 영화들은 지원에서 배제되고, 상영 거부되었다. 실제로 내용적으로 정치 비판적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세월호 집회’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배제의 사유가 되었다. 블랙리스트는 영화제작자나 감독, 배급사 등의 성향을 파악하는 리스트 검증에서 나아가 영화 자체가 ‘리스트’가 되었다.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자가당착>, <변호인> 등 문제영화 리스트에 오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와 영화관은 지원 배제의 타깃이 되었다. 


  국가권력이 블랙리스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 배제를 넘어 모든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에게 권력과 체제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위축효과이다. 이는 행동은 물론 내면까지 권력에 순응하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내포한다. 블랙리스트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시기, 사회적 주제를 담은 독립다큐멘터리는 지원에서 계속적으로 배제되었다. 공적 지원에서 배제는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제작 기반을 무너뜨렸다. 국가권력은 직접적 탄압 대신 ‘돈’을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고사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영화의 공공성은 위축되었고, 창작자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비참한 선택에 직면해야 했다. 



‘정책’이라는 이름의 편법과 불법


  블랙리스트는 정책범죄다. 청와대, 국정원 등 핵심 권력 및 정보기관이 주도하고 문체부와 영진위의 상호 교차 ‘검열’과 정보 공유, 그리고 ‘건전영화단체’로 불린 보수단체까지 개입하여 작동되었다. 이의 실행을 위해 사업의 내용을 변경하고, 내부 규정을 개정하였다. 정책이라는 공식적 수단을 활용함과 동시에 비공식적으로 심사위원들을 배제 실행에 회유, 동원했다. 


  문체부 공무원들과 소속 공공기관 직원들은 ‘블랙리스트’를 들키지 않도록 배제 논리를 개발했다. 그들의 정책적 역량이 총동원되었다. 명분은 지원의 폭을 확대하고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지역 독립영화전용관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블랙리스트 영화를 상영한 서울의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을 배제하였으며, 정부 지원을 받음에도 국정 철학에 배치되는 영화를 상영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직접 지원을 배제하기 위해 사업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으로 전환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넓혀주는 취지로 현물지원사업에서 ‘중복지원을 금지한다’고 지침을 개정했다. 지원의 폭을 확대한다는 외양을 띄고 있으나 기존에 지원받은 독립영화와 독립영화인들에 대한 배제를 위한 사전 조치였다. 청와대의 지시는 ‘배제’하라는 한마디였으나, 현장의 ‘정책’은 이의 실행을 위해 빠르게 화답했다.


  심사과정의 ‘공정성’도 조작되었다. 소위 ‘건전영화인’, 블랙리스트 실행에 동참할 인력을 중심으로 심사위원풀을 개편하였다. 윗선 혹은 위원장이 ‘꽂은’ 심사위원들은 추첨 과정도 없이 지원 사업 심사에 참여했다. 마치 위원장의 관여 없이 공정한 심사위원 선정이 이루어진 것처럼 공식적 심사과정을 조작하였다. 2015년 이후 심사위원은 더 노골적으로 배치되었다. 항상 심사하던 사람으로만 채워졌고, 심사위원 추첨을 하였다는 근거 서류는 행정적으로 문제없이 만들어졌다. 사업 담당자마저 ‘이번에는 완전히 영진위 심사 들어온 사람만 다 모였네’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당시 정부에서 영진위 지원 작품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으니 정치적‧이념적 편향 작품들이 지원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유념하여 달라는 위원장의 지시는 ‘사전에 소통이 잘 되는 심사위원’에게 전달되었고, 이들은 심사를 통해 윗선의 지원배제 의사를 잘 관철하도록 점수 등을 조작하여 심사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심사과정에서 지원작 선정을 위한 토론도 배제되었다. 선정작에 대한 토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무기명 투표에 의해 선정작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전에 포섭되지 않은 심사위원들이 선정에 대한 재고를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사위원 5명 중 3인만 설득하면 ‘문제영화’의 배제는 어렵지 않게 수행될 수 있었다.



가해와 피해의 구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서 법적인 가해와 피해의 구도는 ‘직권남용죄’에 대한 판단에 의해 좌우되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 부당한 행위를 하여 직권행사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였을 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 법적인 기준에 따르면, 문체부의 공무원은 청와대의 강요에 의한 피해자이고, 소속 공공기관의 직원들도 직권남용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직권남용’에 의한 가해와 피해의 구도는 문제의 본질을 ‘개인화’하며,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국가범죄의 폭력성을 거세한다.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가 실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직권남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조직의 집단적 공범화, 조직 내부 저항의 무력화, 조직 순응과 길들이기가 선행되어 빚어진 결과이다. MB 정부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좌파 인적청산을 목표로 정부 소속 공공기관의 기관장을 교체하였다. 당시 영진위의 경우 노조 간부들을 고소 고발하여 직원들 사이에 일종의 ‘공포감’, 위축된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직제개편을 통해 조직 순응 체제를 수립했다. 이러한 기반에서 정부 비판적 단체에 대한 배제를 단행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기조는 곧 배제정책을 의미했는데, 블랙리스트를 바탕으로 배제를 실행하기 위한 기반 조성은 MB 정부보다 더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이루어졌다. 정부의 의지를 철저히 관철할 인사들로 소속기관의 기관장 및 위원, 이사회를 구성하여 조직을 장악하였다. 정권에 협조하지 않는 문체부 고위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원치 않는 사직을 ‘강요’하여 본보기로 삼았다. 


  국가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지만, 한 공무원, 부서의 행위라도 시민들에게는 국가의 행위로 간주된다. 위계로 구조화된 ‘청와대-국정원-문체부-영진위 등 소속기관’들에서 발생한 블랙리스트 사건은 가장 큰 피해자인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핵심권력 및 정보기관의 개입, 위원장 또는 기관장을 포함한 위원, 간부 및 직원들의 관여 아래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총체적 국가범죄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그 누구라도 범죄에 가담한 실행자이자 관여자의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진위의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에서도 위원장을 비롯하여 영진위원들과 일부 간부, 그리고 민간 심사위원들의 적극적 부역, 가담행위가 있었다. 반면 강요에 의해 ‘순응’하거나 외면하는 정도의 ‘소극적 저항’에 머무른 직원들도 있다. 가해의 구조는 이처럼 다층적이다. 문체부와 소속기관의 권력관계 역시 소속 기관 직원들의 적극적 저항을 가로막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리스트 사태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리스트에 오른 사람, 부당하게 지원에서 배제당한 개인 또는 단체인가? 지금까지 밝혀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규모는 일부에 불과하다. 드러나지 않은, 확인되지 않은 사찰 감시의 피해가 여전히 많다. 또한 블랙리스트에 따라 직접적으로 배제당한 피해를 입은 개인·문화예술단체는 물론 배제를 예견하여 지원 사업 신청을 거부하거나 불이익과 위협을 피하기 위해 자기검열을 한 문화예술인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회적, 정치적 영화에 대한 지원 배제가 노골화되면서, 독립영화 제작자들은 지원 사업을 포기하거나 기획안을 변경하는 등 ‘자기검열’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당연히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블랙리스트가 작동되어 배제된 것이라면, 그 근거를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지원신청을 한 제작자들도 있었다. 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는 것은 작품 제작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진행하던 제작을 중단해야하거나, 개봉지원을 받지 못해 영화로서 관객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지원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좌절감, 트라우마 등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아우른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는 개별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진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보고서의 결과에는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영진위는 독립영화인이나 단체 등과의 협력을 실현하기보다는 불화와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상당수 영화인들은 영진위 지원 사업이나 심사위원 참여 등에서 ‘스스로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상황을 낳았다. 영진위는 영화인들로부터 ‘소외’되었고, 영화인들은 영진위로부터 ‘소외’되었으며 결국 이는 영진위가 한국 영화예술‧산업의 진흥의 구심으로 서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 행정은 공정성과 중립성, 이해관계의 조정의 역할과 같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블랙리스트 이전으로 복원은 단지 사업의 복원만으로 회복될 수 없다. 블랙리스트 10년이 말살한 것은 예술창작의 자유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들이 발화할 수 있는 물적 토대인 공공 지원정책의 발전을 위해 행정과 민간, 현장과 공공기관이 함께 쌓아왔던 신뢰와 협력 문화 그 자체다.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


  “당시에는 부당하기 보다는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지시에 대해 ‘이건 아닙니다’라고 일어서지 못한 자책이 있습니다.” 이 글의 시작에서 소개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진실을 증언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블랙리스트 특성상 피해자, 목격자, 고발자의 진술이 진상을 규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직급이 낮아 부당한 지시의 가장 말단에 있었고, ‘순응’하며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하면서도, 조사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실행한 블랙리스트의 실상을 증언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묻힐 수도 있었던 피해 사실들이 드러날 수 있었다. 물론 끝까지 허위 진술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블랙리스트 지시 혹은 실행에 직접적 관여가 있는 공직자들의 태도는 놀라울 만큼 전형적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술조서에는 ‘진술인은 진실하게 진술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음”, “묵묵부답”이라는 답변으로 그들의 반성 없는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법적으로 유죄를 받지 않으면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블랙리스트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던 실무자들만의 책임인가. 방관하고 침묵하고 외면했던 사람들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물을 수 있는가. 장관이 바뀌고, 위원장이 바뀌고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공식적 사과를 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태의 시작이었던 전직 대통령들부터 청와대 비서실, 국정원, 장관, 위원장, 기관장, 위원, 간부들, 그리고 배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심사위원들까지, 그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 책임에 대해 우리는 공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을까. 진상규명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




글쓴이. 박채은(미디어 활동가)

- 공동체미디어, 다큐멘터리, 미디어액티비즘, 운동의 연결과 네트워크가 주 관심사이며,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 본 글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발간하는 『독립영화』에 함께 게재됐습니다. 

『독립영화』문의처 http://kifv.org/


※ 기사 목록 사진은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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