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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이슈와 현장] 미디어 활동가, 용산 참사 10년을 마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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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9.03.0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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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3호 이슈와 현장 2019.03.14.]


미디어 활동가, 용산 참사 10년을 마주 보다

- 용산참사 10주기 미디어활동가 포럼

‘용산참사 그리고 카메라 : 재난을 기록하다’


성상민(ACT! 편집위원)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에 위치한 남일당빌딩 옥상의 망루에서 큰 불꽃이 솟았다. 용산을 비롯해 한국 이곳저곳에서는 정부의 비호와 경찰의 합심 아래 건설사와 용역 깡패의 재건축을 위한 일방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철거민 투쟁 지역이 그러하듯, 용산의 철거민들도 장기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 그 전날 남일당빌딩의 옥상을 점거하고 망루를 지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경찰특공대의 진압이 강행되었고, 이윽고 비극이 발생했다. 여전히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용산 참사’가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용산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가져왔다. 용산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도 한국의 수많은 지역에서 철거민 투쟁이 빈발했고, 경찰과 용역이 합동으로 철거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 역시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농성 투쟁을 시작하자마자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진압 작전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2008년 여름에 한국을 뜨겁게 한 촛불 시위가 정부가 시민 사회의 요구에 소통 없는 자세로 일관함을 드러낸 전조였다면, 2009년 초에 발생한 ‘용산 참사’는 정부가 소수자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낸 단적인 사건이었다.


▲ 용산참사 10주기 도시영화제 포스터.


  용산 참사를 일으킨 정부와 경찰, 탐욕적인 건설사와 용역에 항의하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용산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는 ‘미디어 활동가’들도 있었다. 극장을 통해 개봉한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디어 활동가들이 용산 문제를 탐사하는 작품들을 만들었고,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상당수의 미디어 활동가들은 2019년 현재에도 꾸준히 각자의 영역에서 미디어 활동가로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어떠한 심정으로 용산 참사와 함게 연대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의 미디어 활동에 대하여 어떤 고민과 전망을 가지고 있을까. 2019년 1월 12일, 종로3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도시영화제의 미디어활동가 포럼 ‘용산참사 그리고 카메라 : 재난을 기록하다’에서는 미디어 활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3명의 미디어 활동가, 용산이 미디어 활동의 기점이 되다


  얄궂게도 포럼이 열린 1월 12일은 아현2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철거민 박준경 씨의 장례식이 열린 날이었다. 그는 아현동의 단독주택에서 10년간 어머니와 함께 살다, 2018년 9월 6일 마포구청의 강제집행으로 졸지에 집을 나와야 했다.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아현2구역의 빈집을 돌아다니며 가까스로 거처를 구했지만, 끝내 재건축조합 관계자와 철거용역에게 걸리며 빈집에서도 나가야만 했다. 어느 곳에서도 자신과 가족이 살 곳을 찾지 못한 그는 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동시에 1월 12일은 세운상가를 비롯한 을지로 지역의 재건축 계획안이 발표된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여전히 철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소식들에 조금은 분위기가 숙연해진 상황에서 신은실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포럼이 시작되었다.


▲ 신은실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김설해 감독, 넝쿨 감독, 박채은 활동가와 함께 

미디어활동가 포럼이 진행되었다.



  포럼에는 총 3명의 미디어 활동가가 참석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객석으로 들려주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자기 소개를 한 활동가는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하는 김설해 감독이었다. “용산 참사 당시에는 촛불방송국 레아에서 ‘레아소식꾼’이라는 ID로 활동했습니다. 철거민과 현장 활동가들의 소식을 담아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냈어요.” 김설해 감독은 지난 2018년에는 유성기업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수>를 공동으로 연출해, 2019년에도 활발한 지역 상영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두 번째로 자신을 소개한 활동가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에서 활동 중인 넝쿨 감독이었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 때 공동체 미디어 ‘황새울방송국’을 만드는 시도를 함께 참여했었어요. 이후에 평택에서 같이 활동하던 전진경 작가와 김준호 감독이 용산에서 같이 활동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흔쾌히 수락해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넝쿨 감독은 최근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광화 – 촛불로 역사를 피우다>를 완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자기 소개를 한 활동가는 최근까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박채은 활동가였다. “용산에서 처음 시작한 미디어 활동이 공동체 라디오 ‘언론재개발’이었어요. 라디오처럼 꾸준하게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너무나도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여서, 철거민 노래방을 열거나 장기자랑을 하는 등 일상을 흥겹게 만드는 활동을 만드려고 노력했었죠. 심지어는 ‘언론재개발’ 열성 청취자 중에서 당시 남일당을 감시하던 전경들도 있었어요.”



왜 미디어 활동가들은 용산으로 모여들었을까


 김설해, 넝쿨, 박채은 활동가는 각자 다른 영역을 통하여 미디어 활동을 접했지만, 이 세 명의 활동가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용산 참사는 또 다른 기점과도 같았다. 왜 미디어 활동가들은 용산으로 모여들었던 것일까. 박채은 활동가는 당시 공동체 라디오 활동을 하며 겪었던 현장의 분위기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었다.


  “현장에서 라디오를 녹음하고, 녹음한 파일을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사이트(http://mbout.jinbo.net/)에 올리는 식으로 온라인에 뿌렸죠. 그때는 아직 ‘팟캐스트’ 개념이 한국에 정착하기 전이라 그럴 수밖에는 없었어요. 동시에 이후 <두 개의 문>이나 <공동정범>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된 재판 기록 녹취, 장례식 현장 촬영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살리며 함께 행동했어요. 절망적인 현장이었지만, 많은 미디어 활동가이 그 안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며 재미를 느끼려 했었죠. 아무도 활동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한다는 것에서 의미를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요.”


▲ 촛불방송국 레아가 만든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의 한 장면.



  용산 참사 현장에서 펼쳐진 미디어 활동의 한 축이 현장의 활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공동체 라디오’였다면, 또 다른 한 축의 움직임은 ‘비디오’를 활용한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였다. 2009년 겨울에는 ‘촛불방송국 레아’에서 활동가들이 촬영한 영상들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 형태의 용산 참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이하 <337가지>)가 공개되었다. 해당 작품은 포럼이 개최된 당일 도시영화제를 통해 다시 상영된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넝쿨 감독은 <337가지>가 제작, 발표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당시에는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투쟁이 마무리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어요. 어떤 식으로든 1년 간 용산에서 펼쳐진 미디어 활동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나온 다큐 프로젝트였죠.”


  동시에 <337가지>는 용산 참사 이후 4대강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 목적으로 제작된 <강, 원래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새로운 다큐멘터리 옴니버스 프로젝트가 제작된 산실이기도 했다. 김설해 감독은 <337가지>가 이후 미디어 활동에 준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했다.


  “많은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용산이 하나의 분기점이었어요. 저처럼 당시에 카메라를 직접 들지 않았던 미디어 활동가들에게도 미디어를 고민하면서 활동할 수 있던 순간들이었죠. 그저 어떤 중요한 사건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계속 연대를 지속하기에 나올 수 있던 작품이 <337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때 느꼈던 경험이 ‘공룡’ 활동이나 <사수> 제작, 그리고 매년 특정 지역을 선정해 게릴라로 작품을 촬영하는 ‘미디어로 행동하라’ 프로젝트에도 이어지고 있죠.”



용산 이후, 미디어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만난 고민들


  김설해 감독의 말대로 용산 참사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미디어 활동 프로젝트는 이후의 미디어 활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전에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같은 프로젝트 형식의 미디어 활동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용산 참사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한 미디어 활동이 촉발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337가지>가 지니고 있던 의의는 이후 ‘미디어로 행동하라’ 같은 정기 미디어 프로젝트로, 다른 한편으로는 <밀양, 반가운 손님>, <Jam Docu 강정>, <나쁜 나라>, 그리고 2016-2017년의 촛불 시위를 기록한 <광장>과 <모든 날의 촛불>과 같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형식의 미디어 제작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용산 참사 이후 10년은 박채은 활동가의 이야기처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미디어 환경이 변화한 시기기도 했다. 2009년까지만 해도 북미나 유럽에서만 퍼진 개념이었던 ‘팟캐스트’는 한국에서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고, 심지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팟캐스트’를 넘어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한 1인 영상 제작 활동이 거세게 맹위를 펼치고 있다. 어떠한 지점들이 용산 이후로도 꾸준히 미디어 활동이 지속되는 계기를 만든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의 미디어 활동은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포럼에 참석한 미디어 활동가들은 공통적으로 용산 참사가 발생한 2009년과 2019년 사이 ‘현장성’의 요소가 큰 차원으로 변화했음을 지적했다. 넝쿨 감독은 용산 참사와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의 차이를 ‘일상성’으로 설명했다.


  “용산 참사 현장은 일상적으로 계속 활동가들끼리, 활동가와 철거민 사이 함께 교감하는 것이 중요한 현장이었어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다들 그게 중요함을 인식했던 것 같아요. 동시에 그러면서도 활동가는 활동가대로, 철거민은 철거민대로 각자 살아온 궤적이 다르기에 작품으로도 다양한 결이 구현되지 않았을까요. 반면 2016-2017년 촛불의 목적은 너무 명확한 ‘왕의 목을 치자’였죠.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이미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각자가 지닌 다른 결들을 접근하지 못한 한계가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 김설해 감독은 최근 공동으로 연출한 <사수>를 통해 

지역에서의 미디어 활동에 대한 고민을 작품으로 드러내었다.



  한편 김설해 감독은 미디어 활동을 수도권 중심적 시각에서 탈피해, 지역별로 다른 맥락이 존재함을 설명했다.


  “지역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려면 단순히 누가 옳다, 틀렸다, 아니면 이 사람은 억울하게 당했다는 이야기만을 강조할 수는 없어요. 이미 한국에서 지역 이슈는 전국이나 수도권 차원의 거대 이슈에서 철저히 묻히는 상황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지역 이슈를 접근하고 다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지역은 수도권에 비하여, 특히 세대가 높을수록 디지털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장비 활용법이나 인터넷-컴퓨터 활용 교육이 여전히 중요한 프로그램이 됩니다. 지역 활동가들은 각자 활동하는 지역대로 지역에 걸맞는 활동 방향성을 고민할 수 밖엔 없죠.”


  이어서 박채은 활동가는 현장성과 지역성의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고민을 들려주었다.


  “현장성은 여전히 미디어 액티비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용산에서는 ‘촛불방송국 레아’에 속해있지 않아도 현장을 바로 생중계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어요. 용산에서 수많은 형태의 미디어 활동을 기획할 수 있던 건, 이미 현장에 참여한 미디어 활동가들이 상당히 많으니 다른 결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 컸어요. <두 개의 문>이나 <공동정범> 또한 용산 참사 현장에서 미디어 액티비스트가 고민한 시선과 고찰을 담아낸 결과물이었고요. 하지만 용산 이후로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지났고, 그 때 가졌던 고민과 방향성이 지금 현재도 유효한지는 또 다시 논의해야 할 문제에요.”



미디어 활동가, 이후의 방향성을 고민하다


  용산 참사 이후 미디어 활동가들이 시기마다 다르며, 지역마다도 다른 미디어 활동의 조건으로 고민했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미디어 활동가들을 고민하게 만든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이 날 박채은 활동가는 스스로 “감독이 아니라 ‘미디어 활동가’로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미디어 활동가들을 어떠한 존재로 바라보고 인식해야 할지는 미디어 활동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들이다. 기술적-사회적 조건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상황에서, 미디어 활동가들은 어떠한 정체성을 지니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넝쿨 감독은 진솔하게 자신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이야기했다.


  “<337가지>를 만들 때 수많은 내면적 갈등을 겪었어요. 특히 저를 제가 표현할 때, ‘감독’이라고 말하는 게 쑥스러웠어요. 그 갈등은 실제 현실에서 ‘활동가’와 ‘감독’이라는 호명 사이의 위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감독’이라 불리우면 미디어 액티비즘을 하면서도 예술적인 고민을 담은 창작적 고뇌를 기대받지만, ‘활동가’로 불리우는 순간 예술적인 선택은 별로 없이 적극적으로 현장의 변화를 위해 싸우는 존재로 여겨지는 일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건 정말 이상한 갈등이었어요. 사실 중요한 건 호칭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작업이 어떻게 인정받는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는데 호칭과 위계 관계라는 틀 안에서만 방황했던 것이죠.”


  동시에 넝쿨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미디어 활동가’라는 호명과 정체성이 처한 변화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최근에는 자신을 ‘미디어 활동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자체가 점차 주는 것 같아요. 옛날 용산 참사나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에서는 속보성 영상이 무척 중요했어요. 만드는 것도 어렵고, 퍼트리는 건 더더욱 어려웠죠.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아프리카TV, 유튜브, 페이스북으로 생방송을 할 수 있죠. 더 이상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생방송’은 중요한 역할이 아니게 되었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이 되었죠. 시대와 기술이 변한 만큼, 미디어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과 지점을 모색해야만 해요.”


  한편 김설해 감독은 시대와 기술이 변하는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지역과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가가 만드는 힘이 분명 존재함을 이야기했다.


  “카메라를 다루고,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하는 건 이제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인터넷 기술도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발전했죠. 이젠 단순히 현장에서 오래 붙어 있는 것이 좋은 활동은 아니에요. 하지만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에너지, 그리고 이들이 결합하며 만드는 ‘케미스트리’ 역시 쉽게 간과하면 절대 안 될 것들이에요. 미디어 활동가들이 기술적인 진보를 이해하는 만큼, 현장의 일원으로써 관계를 맺는 의식을 함께 신경 썼으면 해요.”


  박채은 활동가는 넝쿨 감독과 김설해 감독의 의견을 종합하는 동시에, 정부와 사회적 차원의 인식 개선과 지원의 중요함을 역설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면서 정책적인 차원에서 미디어 활동가들이 철저히 배제된 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영국 BBC의 ‘미디어 액션’(Media Action)(https://www.bbc.co.uk/mediaaction/)처럼 긴급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 작품 촬영을 돕는 정부나 공공적인 차원의 지원책이 늘어나고 있고, 미국에서는 2018년을 다큐멘터리 제작 편수가 급증한 해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영화 지원 기관 NFBC의 경우에는, 젠더 이슈나 미투 운동이 캐나다에서 부각된 이후로 자체 플랫폼을 통하여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독립 영화를 큐레이션했어요. 하지만 한국은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민간의 정책적 요구나 독립적인 흐름도 잘 보이지 않아요.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단절된 관계나 정책을 복원하고, 새로운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요.”


▲ 영국 BBC는 ‘미디어 액션’을 통하여 

국제적인 사건과 이슈에 대한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포럼을 마무리하면서 세 명의 미디어 활동가들은 각자가 느끼는 소회를 이야기했다. 넝쿨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디어 활동가를 ‘재능기부’에서 ‘파트너’로 여기는 사람이 늘었음을 말하며 조금씩 미디어 활동가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음을 말하는 한편, 미디어 활동 영역에서 장기적인 전략이 더욱 고민해야 함을 말했다. 김설해 감독은 직접적으로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다양한 미디어 영역에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음을 말하며, 지속적으로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늘기를 바랐다. 박채은 활동가는 지속적인 활동과 재생산을 위하여 현장은 물론, 이론적-정책적인 차원에서도 미디어 활동가를 존중하고 함께하는 관계 고민의 필요성을 말했다.

  2019년, 미디어 활동가 포럼이 열린 당일의 분위기처럼 여전히 철거민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끊임없이 개최한 촛불 시위를 통하여 2017년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새롭게 집권한 문재인 정권 역시 명확한 정책적인 방향은 설정하지 못한 채 이전과 큰 차이 없는 정책과 지향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8년, 극장 관객 1만명을 넘긴 독립영화의 편수가 2017년 대비 1/3 수준으로 감소한 것은 (30편 → 10편) 여러모로 상징적인 수치이다. 독립영화를 비롯하여 미디어 활동을 감싸는 다양한 사회적-기술적 환경이 변하는 상황에서 미디어 활동가들은 어떠한 관계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떠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확실한 수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 더욱 활발한 만남과 고민이 이어질 때 변화 역시 가능하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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