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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시기, 미디어로 연대하고 행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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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 acteditor 2019. 11. 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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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경험 축적은 비록 실패했거나 미온에 그쳤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발전적 실험을 이어가게 된다. 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연대기가 바로 그 근거다."
[편집자 주] 본 글은 2018년 11~12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백서』 수록을 위해 작성했으며, 「ACT!」에 공동 게재함을 밝힙니다.

 

변혁의 시기, 미디어로 연대하고 행동하다.

 

최은정(미디액트 정책팀장)

 


들어가며

  독립미디어는 언제나 치열한 투쟁의 현장과 함께 해왔다. 그것은 긴박한 현장에 남은 유일한 카메라이기도 했고, 숱한 말과 이미지를 구조화하는 야간의 작업실이기도 했으며, 같이 구호를 외치며 바라봤던 스크린이기도 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을 거치면서 미디어 환경에 따라 매체나 표현방식은 변화해왔지만, 적극적으로 사회변화를 추동하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대안을 모색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민중의 목소리가 결집되는 시기엔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 함께 행동하기도 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토론했으며, 자율적으로 역할을 나누고, 각자가 가진 고유한 방식으로 함께 했다. 이 같은 공동 작업은 현장과 현장의 카메라, 스크린과 온라인까지 이어지는 제작 및 유통의 전 과정을 집약한 형태로 진행됐다.
  이 글은 일종의 연대(連帶)의 연대기(年代記)로 앞서 말한 특정 시기의 이슈나 현장에 대한 공동 작업의 흐름을 사례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각 활동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공개된 기록과 발언을 수집하고 배치했으며,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해 연대의 방식이나 제작 및 유통 방법 등을 최대한 담고자 했다. 
  개인적 경험의 한계와 자료 분류의 어려움으로 충실하게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사례도 있고 미처 담지 못한 사례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양해를 구한다. 또한 후반부 사례 소개의 경우 이미 한 차례 작성된 바 있었던 ‘「ACT!」 100호 기록의 연대’(*주1)와 중복됨을 미리 밝힌다.

 


1. 영화운동의 출발선에서

  1980~90년대는 한국 독립영화의 태동기로 영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상영장 침탈이나 필름 압수, 대표자 구속과 같은 표현의 자유 탄압에 맞선 공동투쟁이 진행된 시기다. 노동자 파업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탄압당한 <파업전야>(장산곶매, 1990) 상영을 위해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전국적인 상영 투쟁을 벌였으며, 심의 받지 않은 다큐멘터리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벌어진 푸른영상 압수수색 및 김동원 감독 구속을 계기로 96년 ‘표현의 자유 쟁취와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폐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이듬해인 97년 인권영화제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대응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류 미디어가 외면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크고 작은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독립영화제와 지역별 씨네마떼끄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후 독립영화 현안을 함께 논의할 상시적인 연대 단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1998년 9월 흩어져있던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사)한국독립영화협회를 창립했다.(*주2)

1) <민중의 나라 1, 2, 3부>(1992)
  이 같은 흐름 속에서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 ‘민중후보 백기완 선거대책본부 홍보위원회 영상팀’이 제작한 <민중의 나라 1, 2, 3부>는 “독립영화가 선거 시기 정치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한 최초의 경험”(*주3)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상팀에는 노동자뉴스제작단, 서울영상집단, 바리터, 장산곶매 등이 결합했으며, 짧은 기간 동안 3개의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민중의 나라> 1부는 선거대책본부 활동과 민중대통령후보 추대대회, 2부는 정치 강령과 뮤직비디오 ‘민중의 나라’, 3부는 경제 강령과 뮤직비디오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구성됐으며(*주4) 비디오테이프로(VHS)로 제작되어 전국의 지역 모임과 거리에서 상영됐다.

2) 노동자 총파업 승리를 위한 공동영상제작단(1997)
  1996년 12월 말, 김영삼 정권은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을 위한 노동악법을 날치기 통과했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전개된다. 1997년 1월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총파업 승리를 위한 공동영상제작단’이 만들어졌으며, “그 상황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투쟁 현장 곳곳을 촬영했다. 그러나 이 활동은 공동 작업의 목표와 진행 방식에 대한 참가 단체들 간의 의견 차이”(*주5)로 짧게 마무리됐으며, 그 상황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 독립영화에 대한 특별한 시선>(홍형숙, 1997)(*주6) 안에 ‘고민, 충돌은 희망이다.’라는 소제목(*주7)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의견 차이를 담은 이 장면에 대해 “현실은 ‘함께 연대하여 싸운다.’는 단순한 결의보다 훨씬 복잡한 것”(*주8)이라는 비평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공동영상제작단의 활동은 짧게 활동을 마무리 됐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제작했던 <총파업 투쟁 속보 1, 2호>(*주9)는 96년 12월 26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선언을 시작으로 97년 1월 26일까지의 파업 투쟁을 충실히 담아냈고, 비디오테이프(VHS)로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배포됐을 뿐만 아니라, “제27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특별프로그램으로 초청되어 상영”(*주10) 되기도 했다.

3) <낙선>(2000)
  2000년 1월 유권자 혁명을 외치며 총선시민연대가 출범했으며 4.13 총선 후보에 대한 전국적인 낙선운동이 진행된다. 영화인회의와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낙선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멘터리 분과가 담당하게 된다.(*주11) 이렇게 출발한 <낙선>(오정훈, 이안숙, 2000)은 각기 다른 단체의 제작자들이 모여 기획과 연출 등의 역할을 나눠 맡아 완성됐으며, 촬영의 경우,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원주 등 지역별로 나눠 진행됐다. <낙선>은 총선시민연대와 자원활동가들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아내면서 민주주의와 연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독립영화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규모와 조직력을 과시”(*주12)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공동 작업의 결실”, “독특한 연대적 제작방식으로 주목받았다.”(*주13)고 언급되고 있다. 

 


2. 온라인, 스크린, 퍼블릭액세스를 넘나들며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공공 영역과 공동체미디어의 확대, 디지털과 온라인에 대한 성찰과 발견, 그리고 이에 따른 운동 주체의 변화다.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자기 발언을 위해 주류 미디어에 일정 시간을 요구하고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 퍼블릭액세스(PublicAccess)는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시 방송법 69조 7항(*주14), 70조 7항(*주15), 방송법 시행령 51조 1항(*주16)에 따라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국내에 도입됐다. 2001년 KBS <열린 채널>(*주17)을 시작으로 2003년 종합유선방송(SO), 2005년 지역 지상파로 확대됐으며,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전문 채널인 ‘시민방송 RTV’가 2002년 개국, 2005년 재편되기도 했다.(*주18) 2002년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 거버넌스로 출발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개관을 시작으로, 지역 미디어센터 설립, 계층과 주제를 아우르는 미디어교육의 확대 등이 진행됐으며, 2005년 7개의 공동체라디오가 FM 주파수를 통한 정규방송을 시작했다.
  물론 이 같은 제도적 기반 구축과 진보적 정책 마련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몰이해는 방송위원회의 일관성 없는 정책, 방송사의 고압적 태도와 자의적 심의 등으로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으며, KBS <열린 채널>의 경우, 편성불가 결정(*주19), 방송보류 판정(*주20)에 항의하는 1인 시위 및 집회, ‘닫힌 채널’(*주21) 활동이 이뤄지기도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적인 분야별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져 지역별 현안을 공유하고 정책적 요구를 모아냈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주22)해 실질적 대안 수립을 위한 싸움이 이어졌다. 이 시기의 제도화와 공적 지원의 확대는 “실험의 공간이자 지원 공간”(*주23)으로서의 공공 영역에 대한 규명과 실험, 논의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편 디지털의 보편화와 온라인의 성장은 영상 제작과 유통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미디어참세상과 같은 인터넷 영상 매체는 현장과의 소통을 상시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진보네트워크 속보게시판은 투쟁 현장의 긴급한 상황을 빠르게 공유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을 중심으로 내부적 성찰을 하게 만들었고, “진보적 성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산물”(*주24)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새로운 철학이 필요”(*주25)하다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미디어 진영을 이끄는 주체의 확장이다. 다양한 분야의 시민 제작자들과 새로운 경향의 창작자들이 등장했으며, 배급 및 상영, 정보통신, 정책 등의 다양한 역할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형성됐다. 이 같은 확장은 “전선의 재편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현실 인식과 함께 “주체의 질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조직적 체계의 구축”(*주26)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진행된 공동 작업들은 필연적으로 온라인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진행됐으며,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방송이라는 창구도 활용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다양한 주체들의 결합은 미디어운동 진영이 연대의 경험을 축적하고 급진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1) 민영화 저지 미디어 활동단(2000)
  2000년 발전노조의 민영화 저지를 위한 38일간의 총파업에 결합했던 ‘민영화 저지 미디어 활동단’은 노동자영상패, 노동자뉴스제작단, 노동네트워크, 진보네트워크가 꾸린 연대체다. 당시 발전노조는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산개투쟁을 진행했다. 자칫 흩어질 수 있었던 파업 대오는 미디어 활동단 사이트를 통해 다른 현장과 투쟁 현황을 알 수 있었으며, “한 건의 지침이 내려지면 순간 클릭 수가 몇 천 건이 될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을 형성할 수 있었다.”(*주27)
 이후 미디어 활동단은 당시에 촬영한 영상을 인터뷰와 함께 재편집해 <2002 발전노조 싸움을 다시 보다>(2004)를 만들었으며, 이는 인권영화제를 통해 상영됐다. 그리고 “발전노조 투쟁에 미디어 활동단의 연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노동운동 진영 내외부의 평가”(*주28)를 받기도 했다.

2)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2004)(*주29)
  2003년 11월부터 378일 동안 이주 노동자들의 명동성당 천망농성이 진행됐다. 정부의 고용허가제 실시와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발점이었다.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2004)는 당시 명동성당에서 천막 농성 중이던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됐다. 기획부터 상영까지 2달 정도 소요됐으며,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 분과 구성원들이 프로듀싱을 맡고,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장비와 공간을 지원했다. 또한 기획 단계부터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참세상에 독자 페이지를 제작했으며, 2004년 8월 명동성당농성장 공개 시사회 후 매일 순차적으로 여기에 공개됐다. 이후 90분 버전으로 재편집되어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상영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는 천막 농성 중이던 11명의 이주 노동자들과 제작진이 1대1로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진행됐으며, 공개 모집을 통해 미디액트 수료생, 영화 전공자, 미디어 활동가 등 8명이 연출로 참여했다.

3)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아펙을 반대하는 미디어문화행동(2005), 한미FTA저지 독립영화실천단(2006), <No FTA 퍼블릭액세스 프로젝트>(2006)
  2005년과 2006년에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공동 작업들은 그 영역을 보다 확장한다. 영상 제작과 상영뿐만 아니라 온라인 생중계, 라디오, 문화제, 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아울렀으며, 이러한 역량은 2010년 광우병 촛불 생중계로 이어지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아펙을 반대하는 미디어문화행동’은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펙에 반대하는 활동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며, 공동체라디오연구모임 ‘씨알’, 노동네트워크, 문화연대, 민중언론 참세상, 비정규직 완전 철폐를 위한 영상 프로젝트, 수도권영상패, 우리만화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다양한 미디어문화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이후 홍콩 WTO 반대 투쟁에 결합해 투쟁 현장을 생중계 했으며, 홍콩 정부의 투쟁단 연행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미FTA저지 독립영화실천단’ 역시 교육 영상물 제작, 뉴스릴 제작, 배급 및 상영, 기획 다큐멘터리 및 극영화 제작 사업으로 나눠 활동이 이뤄졌다. 2006년 4월 첫 회의를 가졌고 <장마, 거리에서>, <한미FTA는 없다> 등을 영화제와 온라인을 통해 배포했다. 

  <No FTA 퍼블릭액세스 프로젝트>(2006)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방영을 우선 과제로 설정했으며, 지역 미디어 활동가들과의 토론을 거쳐 교육, 에너지, 의약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4편의 영상을 기획했다.

4)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2005)(*주30) 
  공동 작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2005년 16명의 미디어 활동가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 참여한 작업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한미FTA, 새만금, 줄기세포, 비정규직, 양심적 병역 거부 등 당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다양한 현안을 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했으며 이를 총연출이 재배치했다. CG, 디자인, 예고편 및 웹 제작에도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했으며, 웹에서 고화질 영상을 다운로드 받는 형태로 배포하여 각 지역에서 상영하기 쉽도록 유도했다.(*주31)

5) 황새울방송국 <들소리>(2006~7)(*주32)
  2006년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황새울방송국 <들소리>는 일요일을 제외한 주 6회, 10분 내외로 제작되었다. 밤 10시 평택 대추초등학교에서 열린 미군기지 이전 반대 촛불 집회 때 매회 상영됐으며, 참세상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에 공개됐다. 2007년 4월까지 총 200회의 방송이 만들어진 <들소리>는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인터뷰, 집회 현장, 연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직접 앵커가 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6년 별세한 고(故) 이태헌님의 인터뷰가 담겨 있기도 하다. 

7) <행동하라 비디오로! 액션V>(2006~7)(*주33)
  2005년 시민방송 RTV 재편에 따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졌으며, 이는 전국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제작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행동하라 비디오로! 액션V>는 2006년 4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약 3년 동안 시민방송 RTV를 통해 방영된 지역 프로그램이다. 격주로 30분씩 총 73회 방영되었으며, 각 지역에서 퍼블릭액세스 활동을 해왔던 미디어 활동가들이 네트워크를 꾸려 제작했다. 네트워크에는 전국 19개 지역 44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당시 청주와 서울에서 활동하던 2명의 미디어 활동가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가 되어, 지역 네트워킹 및 영상 수급 등의 운영 전반을 도맡았다.
  <액션V>는 크게 3번의 개편을 거쳤다. 1기는 2006년 4~6월까지로 지역 현안을 담은 영상을 모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으며, 회당 3~4개 지역이 참여했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영상의 수가 적었고 코디네이터의 적극적 독려에도 쉽사리 늘어나기 어려운 한계에 직면했다. 이에 2006년 9월부터 2007년 7월까지인 2기부터는 고정 진행자를 두고, 지역 공동체를 직접 탐방하거나 진행자와 활동가가 이야기 나누는 코너를 추가해 지역에서 직접 제작하는 영상 분량을 3분의 1로 줄였다.
  3기인 2007년 8월부터는 ‘퍼블릭액세스 지역영상보고서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각 지역이 순번을 정해 한 달 동안 제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역과의 사전 공동 기획을 통해 필요에 따라 인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지역별 퍼블릭액세스 모임 및 GM대우 비정규직지회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영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었으며, 각 지역에서는 퍼블릭액세스 활동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액션V>는 지역 공동 제작 방식, 제작자 네트워크의 의미, 코디네이터의 역할 등 퍼블릭액세스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실질적인 실험 속에서 진전시킬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지점들이 많은 중요한 사례 중 하나다. 



3. 정책 파행과 블랙리스트를 넘어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설치된 방송통신위원회는 2009년 2월 위성방송사업자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 방송채널사업자(PP)를 선정하는 기형적인 PP공모제를 도입했고, 이에 따라 RTV로 지원되던 방송채택료가 5~6개 PP로 분산되면서 RTV의 제작 지원 예산이 80% 이상 삭감된다. 또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예산은 2009년 30억에서 2011년 15억, 2013년 12억 1,500만원으로 5년 동안 72% 삭감됐으며, 방송사 자부담, 지원 기간 축소 등의 정책적 파행이 계속되면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던 퍼블릭액세스 활동을 위축시켰다. 
  1980~90년대 독립영화 진영의 비판적 유산을 토대로 구축된 영화진흥위원회와의 거버넌스 붕괴(*주34),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로 이어지는 조직적인 차별과 배제인 블랙리스트 사태는 독립영화의 성장과 발전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공모 파행으로 인한 공간 철수, 2014년부터 시작된 예술영화전용관과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예산 축소 및 중단, 정부 정책에 반하는 작품의 직영 전용관 상영 불가 통보(*주35) 등의 파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기에 2010년 위원장의 특정 작품의 제작 지원 강요(*주36)과 같은 상식과 도덕성을 잃은 실상들이 더해졌으며, 2018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조사 결과를 통해 정부 비판적 성격의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배제됐다는 실체가 밝혀지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 파행과 블랙리스트 사태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으며, 같은 시기 확산된 페이스북, 트위터, 유투브, 팟캐스트 등과 같은 통로와 텀블벅과 같은 소셜 펀딩을 통해 또 다른 방식의 활동 모델을 만들어갔다. 물론 안정적 자원의 부족과 플랫폼의 상업성, 한정된 파급력 등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있으며, 2016-17년 촛불 이후의 방향 설정과 전략에 대한 고민은 아직 진행 중이다. 

1) 촛불방송국 ‘레아’(2009~10)(*주38)
  ‘레아’는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 참사 현장에서 운영된 촛불미디어센터이자 촛불방송국이다. 원래 ‘레아(Rhea)’는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뒤편에 있는 호프집으로 고(故) 이상림님 가족이 참사 당일까지도 운영했던 곳이다. ‘레아’는 철거민과 시민들의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으며, 미디어센터와 방송국(*주39) 외에도 갤러리, 까페 등이 생겨나면서 ‘복합투쟁문화공간’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작된 프로그램은 크게 영상과 라디오로 나뉜다. 2009년 4월부터 2010년 2월까지 만들어진 영상 <철거민방송>은 용산 지역 철거민들의 이야기와 함께 용역과 경찰의 폭력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주로 빠르게 제작이 가능한 영상 속보와 광고로 구성됐으며, 50편 가까이 제작됐다. <행동하는 라디오 – 언론재개발>은 200편 넘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요일별 코너를 정해 운영됐으며, 철거민뿐만 아니라 함께 연대하고 있었던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다.(*주40) 이후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렸던 칼국수 가게 ‘두리반’ 철거 문제를 다룬 방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현장 생중계, 독립영화 상영, 다국어방송 등이 진행되기도 했으며, 용산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구술사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41)
  ‘레아’는 투쟁 현장에서 가능한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나 음악 공연 같은 문화 예술 활동과 결합된 점이나 철거민들과 연대 활동가들에게 위로를 주는 역할을 했다. 

2) 4대강 살리기 옴니버스 <江,원래>(2011)(*주42)(*주43)
  2008년부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은 예산 낭비, 환경오염, 멸종위기종 폐사 등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미디어 활동가들은 공동 작업을 제안했고, 금강, 낙동강, 남한강, 영산강 지역 미디어 활동가들과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 4대강 반대 퍼포먼스와 거리 상영 등을 진행한 ‘인디보’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江, 원래>는 4대강 지역의 생태계 파괴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정치, 경제, 노동 등을 주제로 구성됐으며, 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부터 4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제작자들은 회의를 통해 주제와 형식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했으며, 중간 시사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2011년 3월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6편이 공개됐으며, 그 해 연말까지 총 13편이 제작됐다. 전국 80여 곳에서 공동체상영을 진행했으며, 시청자참여프로그램과 온라인, DVD 등을 통해 유통되기도 했다. 이는 전편이 아닌 각 현장에 맞는 영상을 개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가능했기도 하다.(*주44)

3) <복지갈구화(畵)적단 – 너네 동네 살만 하니?>(2012~14)(*주45)
  지속적으로 전국적인 유통망을 고민해온 미디어 활동가들은 당시 스마트폰 활성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팟캐스트에 주목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나는 꼼수다>가 영향도 있었지만,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부산 미디토리가 제작한 인디 음악 방송 <인디야>의 1만 다운로드였다. 비록 매체와 분야는 다르지만 고유한 콘텐츠가 주는 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복지갈구화(畵)적단>이라는 이름은 복지의 사전적 의미가 ‘행복한 삶’이라는 점에 착안해 출발했으며,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뜻에서 화(畵)를 결합했다. 1년 정도의 간헐적 준비를 거쳐 2012년 4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약 3년간, 주 1회, 총 89회를 팟캐스트 채널로 내보냈다.
  전국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순번을 정해 제작했으며, 코디네이터가 주축이 된 편성팀 회의를 통해 시기에 맞게 주제를 조정했다. 시민방송 RTV와 온라인 영상 플랫폼을 통해서도 나갔으며, 클라우드를 통해 지역의 영상을 수급했다. 홍보 등에 필요한 공동 콘텐츠는 각 지역이 역할을 나눠 만들었고, 운영에 필요한 비용 역시 십시일반 했다.
  밀양 송전탑, 희망버스, 세월호, 삼척 원전 등 굵직한 사회 이슈들부터 지역 내 비정규직, 공교육, 대형마트 문제 등을 5~30분 영상으로 두루 다뤘다.(*주46) 
  <복지갈구화적단>은 전국의 시민 제작자들과 함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을 다뤘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지만, 새롭게 등장한 채널에 대한 실험, 전문적이고 대중적인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사례다. 

4)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2012~)(*주47)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은 수년간 투쟁 현장을 기록한 이상현(숲속홍길동), 김천석 활동가의 황망한 죽음 이후, 현장 영상 활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으로 2012년 4월 발족(*주48)했다. 두 활동가의 죽음이 생계의 어려움과 고립감에서 비롯됐기에, 초기부터 기금을 조성해 현장 영상의 제작, 상영, 배급, 의미화, 네트워크 등을 지원하고자 했다. 모임에는 미디어 외에도 노동, 인권, 문화예술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촬영 현장이 워낙 광범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故) 이상현 활동가는 ‘숲속홍길동의 현장 취재’라는 사이트를 통해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집회부터 경찰이나 용역의 폭력 현장 등을 알려냈으며, 고(故) 김천석 활동가는 기륭전자 파견 노동자들의 투쟁을 묵묵히 기록하면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2013년부터 매년 3~4편의 현장 영상 사전 제작 지원을 시작했다. 그간 GM대우 비정규직,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세월호, 밀양 송전탑, 청소 노동자 등을 다룬 영상을 지원했으며, 추도식 현장에서 ‘현장 영상 활동가 제작 지원 시상식’을 진행했다.(*주49)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은 무엇을 현장 카메라로 볼 것인지, 현장 영상의 연대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으며, 미디어 활동가들의 의미와 역할, 보다 안정적인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제기한 활동이기도 하다. 

5) <쌍용자동차 노동자 철탑 농성 옴니버스 - 하늘을 향해 빛으로 소리쳐>(2013)(*주50)
  2012년 11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평택에 위치한 철탑에 올라갔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연이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였다. <하늘을 향해 빛으로 소리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대한문 앞 농성을 촬영하고 있던 영상팀 ‘대한문에서 만나’를 비롯한 4명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영상이다.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각자 짧은 영상을 만드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했으며, 철탑 아래에서 진행된 송년문화제에서 첫 상영을 한 후, 페이스북과 인디다큐페스티발, KBS <열린 채널> 등을 통해 선보였다. <하늘을 향해 빛으로 소리쳐>라는 제목은 “영상 활동가들이 빛으로 하는 연대를 통해 하늘의 목소리가 땅으로, 땅의 목소리가 하늘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51)

6) 밀양 송전탑 투쟁 연대를 위한 미디어 활동(2012), <밀양, 반가운 손님>(2014)
  밀양 송전탑 문제는 10년이 넘는 싸움 속에서 주민들의 건강권 침해, 환경 훼손, 공동체 파괴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에 대구 지역 미디어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밀양 현장 기록과 현실을 알리는 퍼블릭액세스 활동이 시작됐으며, 이후 다수의 활동가들이 다각도로 밀양 문제를 다뤘다. 이 같은 미디어를 통한 연대는 자칫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립될 수 있는 밀양의 현실과 주민들의 목소리를 알려내는 역할을 했다.
  <밀양, 반가운 손님>(2014)은 밀양 구술사 프로젝트 및 다양한 연대 활동을 통해 만난 5명의 활동가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제작한 100분 분량의 옴니버스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직접 연기한 극영화부터 밀양 주민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밀양의 설화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인 영상 등이 담겨 있다. 인권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밀양 투쟁에 함께 한 활동가는 ACT! 리뷰를 통해 “거대한 국가 폭력이 힘없는 민중의 삶을 얼마나 짓밟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할매들의 입이 되고 눈이 되어 억울함을 여과 없이 전해준다”(*주52)고 소개했다.

7) 416연대 미디어위원회(2014~8)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2018년 12월까지 4년 8개월 동안 상시적으로 활동했다. 진도 팽목항과 안산, 서울을 오가며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활동을 꾸준히 기록했으며, 각 시기별로 필요한 영상들을 제작해왔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이어지던 때에 이 같은 활동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이었다. 2기 위원장이었던 고(故) 박종필 감독은 2015년 청주에서 열린 ‘체인지온@공룡’ 사례 발표 자리에서 “416은 기억이 투쟁이고 정치적 영역이자 실천”이라고 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 기록이 중요한 투쟁”임을 강조하기도 했다.(*주53)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2, 3, 4주기를 기점으로 3번의 416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매번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작과 상영을 위한 텀블벅 후원에 참여했다.(*주54) 416프로젝트는 모두 옴니버스 형태로 제작됐고, 유가족과 생존자, 잠수사 분들의 목소리와 연대 활동, 세월호를 둘러싼 쟁점 등을 다각도로 담았다. 상영의 경우, 유투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나 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지역별 인권영화제 등의 국내 영화제들을 통해 이뤄졌으며, RTV나 TBS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었다. 416프로젝트 공동체상영인 ‘우리 동네 상영회’가 자발적으로 전국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그 의의가 크다.(*주55)
  한편 2017년 7월 곁을 떠난 박종필 감독을 추모하기 위한 영상 제작과 추모 현장 기록 및 진행을 도맡았었으며, 미디어 활동가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기도 했다. 같은 해 KBS <추적 60분> 영상 무단 도용에 대한 항의 성명을 낸 바도 있다.(*주56)
  오랜 기간 상시적으로 움직인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는 경험이나 영역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결합했으며, 활동 방식과 정체성, 소통 방법 등에 대한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꾸준한 활동에 힘입어 2017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 한국 다큐멘터리상’, 2018년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 동전상’, 인디포럼2018 ‘올해의 활약상’ 등을 수상했다.

8) 박근혜정권퇴진행동 미디어팀(2016~7)(*주57)
  2016년 10월 29일 첫 번째 촛불 집회 이후,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꾸려졌으며, 미디어팀은 2016년 11월 19일 4차 범국민행동 촬영을 시작으로 총 25번의 촬영을 진행했고, 20차례의 회의를 통해 기록 방향과 운영 원칙 등을 정리해나갔다. 장기간 이어진 대규모 집회 촬영은 다수의 인원이 요구됐으나 이는 좀처럼 쉽지 않았고 그나마 시간이 가능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틈틈이 결합하는 형태로 55명이 참여했다. 5번의 본무대 영상과, 박근혜정권퇴진행동 옴니버스 프로젝트 <광장>(2017), <모든 날의 촛불>(2017)을 제작했다. 

9)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 in 밀양, in 충북, in 성주/김천>(2014,5,6,7)
  <미디어로 행동하라>는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일정 기간 동안 지역에 머물며 영상, 라디오, 음악, 상영, 출판 등을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현재까지 삼척과 밀양, 충북, 성주/김천에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의 발단이 된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은 2014년 10월 삼척 핵발전소 유치 찬반 투표를 앞두고 제안됐다. 사전 신청을 통해 4박 5일 동안 투표 전후 과정을 담을 활동가들을 모집했으며, 이렇게 모인 10여 명의 활동가들은 3편의 영상과 1편의 라디오를 제작했다. 앞서 소개한 ‘복지갈구화적단’을 통한 유통을 전제로 진행됐으며, 유투브와 인디다큐페스티발(개막작)을 통해서도 배포됐다.
  당시 투표는 67.9%의 주민이 참여해 84.9%의 주민이 원전에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은 자칫 묻혀버릴 수 있었던 승리의 기록과 함께 이미 두 번이나 정부의 원전 계획을 물리친 주민들의 역사를 반추하는 역할을 해냈다.(*주58)
  2015년 6월 진행된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밀양>은 ‘밀양에 미디어로 농활 가자’는 컨셉으로 4박 5일 동안 총 45명의 활동가들이 진행했다. 송전탑 투쟁 10년, 행정대집행 1년을 넘긴 밀양 주민들의 삶을 영상과 라디오, 음악, 잡지 등 다양한 미디어로 담아냈다.(*주59)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충북>은 2016년 5월 ‘미디어로 노동하자’를 컨셉으로 유성기업과 청주노인병원, 피엘에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며(*주60), 2017년 6월 진행된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과 연대 단위의 모습을 담은 3편의 영상 제작, 공연과 라디오 생방송, 7곡의 노래를 만드는 활동을 진행했다.(*주61)
  <미디어로 행동하라>는 가장 과정 중심적인 공동 작업으로,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여러 매체를 활용해 짧은 기간 동안 기획부터 제작 및 상영까지를 마친 사례다. 2018년에도 진행될 수 있길 바란다.



마치며

  공동 작업은 당대의 중요한 이슈나 투쟁 현장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미디어를 통해 가장 손쉽게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실험하는 장이기도 했다. 어떤 투쟁에 결합할 것인지 논의하고, 현장에 필요한 미디어를 고민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제작 및 배급 방식을 꾸려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해당 시기 독립 미디어 진영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을 중요한 시대적 요구로 보고 있는가? 기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어떤 영역과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민주적이고 평등한 논의 구조는 무엇인가? 누구와 소통할 것인가? 공동 작업은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답해야 하며, 때문에 연대의 경험 축적은 비록 실패했거나 미온에 그쳤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발전적 실험을 이어가게 된다. 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연대기가 바로 그 근거다. 
  남겨진 과제들은 많다. 안정적 아카이빙의 어려움, 기획자의 역할의 중요성,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보호, 보다 자유로운 플랫폼, 자원 확보 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의 발전적인 복원이 아닐까. 촛불 이후 일어난 정권 교체와 개혁에 대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및 미디어 활동가들은 실질적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미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무너진 많은 것을 바로잡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다. 결국, 과거로의 복원이나 미온적 전환이 아니라, 보다 급진적인 내용과 큰 프레임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동 작업은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연대의 모습이며 다양한 주체들과의 소통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변혁의 시점과 맞물려 끊임없이 실험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투쟁과 쟁취, 또 다른 투쟁과 쟁취의 과정을 겪어온 역량이 이 실험과 실천의 토대가 되리라 기대하며, 미약하나마 이 글이 작은 실마리라도 줄 수 있길 바라며, 마친다. □


▮ 주

1) 기록의 연대 – ‘ACT!’로 돌아본 프로젝트 작업, 「ACT!」 100호, 2016 http://actmediact.tistory.com/1078 
2) 본 단락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함 
  - 『한국독립영화의 모든 것』, (사)한국독립영화협회, 2000 
  -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술사 프로젝트 - 다시 만난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2018 
3) 김명준, 1980년대 이후 진보적 영화운동의 전개 과정, 『영화운동의 역사』, 프리즘, 2002 
4) 일민미술관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작품 소개를 참고함 http://ilmin.org/documentary/archives-all/ 
5) 남태제, 1980~90년대 초반의 영상운동과 다큐멘터리,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독립 다큐멘터리 연구모임, 2003 
6) 초기 한국 독립영화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그 시기 독립영화인들 활동과 고민들이 담겨 있다. 
7) 배수경, 이제는 지류와 역류를 찾아야 할 때, 「영화천국」 33호, 한국영상자료원, 2013 
8) 김유리, 독립영화 혹은 이 세계의 영화, 『카메라는 어떻게 역사를 기록했나? - 서울영상집단 20주년 특별전』, 제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한국독립영화협회, 2010
9) 노동자뉴스제작단 유투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wCTQCx5PSo 
10) 한국독립영화사 중 발췌, 『한국독립영화의 모든 것』, (사)한국독립영화협회, 2000 
11) 한겨레21, 문화의 힘으로 정치를 바꾸마!, 제296호, 2000
12) 김동원, 낙선 - 공동작업의 소중한 결실, 서울영상집단 홈페이지, 2004  http://www.lookdocu.com/227 
13)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주요 작품 리뷰,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독립 다큐멘터리 연구모임, 2003 
14) 방송법 제69조(방송프로그램의 편성등) ⑦ 한국방송공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을 편성하여야 한다.  
15) 방송법 제70조(채널의 구성과 운영) ⑦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및 위성방송사업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청자가 자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방송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방송하여야 한다. 
16) 방송법 시행령 제51조(시청자 참여프로그램) ① 법 제69조제7항에 따라 공사는 지상파텔레비전방송사업의 허가를 받아 행하는 텔레비전방송의 채널에서 매월 100분 이상의 텔레비전방송프로그램을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으로 편성하여야 한다. 
17) KBS <열린 채널> 첫 방송작 - <호주제 폐지, 평등 가족으로 가는 길>(오정훈, 2001) 
18) 석보경, 이진행, 이주영, 최은정,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넘어서는 퍼블릭액세스』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퍼블릭액세스네트워크, 미디액트 2014 
19) 2002년 4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이마리오, 2001), 같은 해 7월 <에바다 투쟁 6년>(박종필, 2002)에 대해 ‘편성 불가’ 결정 통보 

20) 2005년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 2005) 방송 보류 판정

21) 막심, <닫힌 채널을 열어라> 제작기, 「ACT!」 36호, 2006

22) 박채은, 우리는 라디오 ‘운동’을 실천한다!, 「ACT!」 19호, 2005

23) 김명준, (영상) 미디어 운동의 전략 가다듬기 Ver. 0.9 - 주류 미디어, 공공 영역, 대안(독립) 미디어의 상호 역학, 「ACT!」 1호, 2003

24) 삼동이, 독립 다큐멘터리 디지털을 만나다 v0.9, 『독립다큐멘터리 반쪽의 선택?』, 미디액트 정책위원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회, 2003 

25) 박진수(토론자 이진필), ‘독립다큐멘터리, 반쪽의 선택?’ 참관기, 「ACT!」 5호, 2003

26) 김명준, 1980년대 이후 진보적 영화운동의 전개 과정, 『영화운동의 역사』, 프리즘, 2002

27) 이미영, 디지털 시대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독립 다큐멘터리 연구모임, 2003

28) 이진영, 제8회 인권영화제 비디오 액티비즘 섹션 프로그래밍, 「ACT!」 11호, 2004

29) 미디어참세상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홈페이지 http://interview.jinbo.net 

30)<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홈페이지 http://www.newscham.net/Furnaces/intro.html

31) 관련 글: 강준상,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지옥에서 보낸 한 철?, 「ACT!」 29호, 2006

32) 참세상 <들소리> 페이지 http://www.newscham.net/news/list.php?board=deulsori

33) 관련 글: 강수연, 다시 시작하지만 괜찮아! 독립제작자네트워크를 상상하다, 「ACT!」 37호, 2006

34) 김지현, 독립영화가 걸어온 길 - 정책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21세기의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2014

35) 2012년 1월 <잼 다큐 강정>, 2014년 10월 <다이빙벨> 

36) 영화단체, 국민권익위국민권익위원회 부패행위신고접수 ‘알선 및 청탁을 금지’하는 공직자 행동 강령 위반으로 해임
38) 촛불미디어센터, 촛불방송국 ‘레아’ http://cafe.daum.net/Cmedia

39) 관련 글: 김지현, 장문정, 폐허에서 다시 일구는 삶의 공간 용산 촛불방송국 ‘레아’를 가다, 「ACT!」 60호, 2009

40) 관련 글: 김설해, 용산에 관한 그치지 않는 수다, 레아 사랑방 이야기, 「ACT!」 68호, 2009

41) 관련 글 – 김윤진, 정주할 수 없는 도시 이주민들의 자기 기록, 「ACT!」 64호, 2009

42) <江, 원래> 다음 까페 http://cafe.daum.net/free4river43) 

     <江, 원래>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a0TLbwciDBc&feature=player_detailpage

44) 관련 글: 나비, 아직 끝나지 않은 江의 이야기를 위하여, 「ACT!」 74호, 2011

45) <복지갈구화(畵)적단>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wajuck/

46) 권용협, 석보경, 2012 퍼블릭액세스네트워크 워크숍 ‘액세스 그리다’ 자료집

47)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ieldcam/

48) 스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발족식에 다녀와서, 「ACT!」 78호, 2012

49) 개미,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세 번째 제작지원 수상자 인터뷰 - 변규리, 이병기 감독을 만나다, 「ACT!」 94호, 2015

50) <하늘을 향해 빛으로 소리쳐> 유투브 페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v=3kMSH0NeAgA

51) 관련 글: 하샛별, 하늘을 향해 빛으로 소리쳐, 「ACT!」 83호, 2013

52) 심명선, 할매들의 입과 눈이 되어 <밀양, 반가운 손님>, 「ACT!」 91호, 2014

53)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 전하는 미디어와 사람 이야기, 체인지온@공룡, 2015

     http://changeon.org/체인지온-생활교육공동체-공룡이-전하는-미디어와

54) 2주기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1,134명, 3주기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2 : 돌아 봄> 1,559명, 4주기 416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1,306명. 텀블벅 홈페이지를 참고함 https://tumblbug.com

55)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를 참고함 https://www.facebook.com/0416media
56) KBS의 무단도용을 규탄하는 독립제작자 연명서 http://416act.net/notice/7806457) 

57)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백서팀, 『박근혜정권 퇴진 촛불의 기록』,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2018

58) 관련 글: 옥수수, 미디어가 풍경을 만든다, 역사를 만든다. - 복지갈구화적단의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 「ACT!」 91호

59) 관련 글: 최종호, 만남과 기억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밀양> 기록, 「ACT!」 94호, 2015 

60) 관련 글: 김슬기, 미디어로 노동하자!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충북> 후기, 「ACT!」 99호, 2016

61) 관련 글: 오재환, 내가 경험한 네트워크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김천>의 기획과 진행, 「ACT!」 105호, 2017

 

사진 출처: <416프로젝트-망각과기억> 텀블벅 페이지 https://tumblbug.com/0416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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