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번에 어떤 불의한 일을 맞닥뜨리게 될 때 저의 행동은 다를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동의 되는 투쟁에 서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면 할 것이고, 제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불의가 생긴다면 투쟁을 하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ACT! 115호 이슈와 현장 2019.8.14.]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 6박 7일의 여정
이현주
올해로 여섯 번째로 꾸려진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 활동은 6월 12일부터 18일까지 6박 7일간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해에는 전국의 미디어활동가들이 제주의 난개발에 맞서 싸우는 다양한 활동가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각각의 개발 문제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기록하고 드러냈습니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는 타당성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민 수용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귀포시 성산읍에 강행되고 있는 ‘제 2공항’ 건설 반대 투쟁 지역, 공항을 연결하는 도로를 확충하겠다며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시작해 하루하루 벌목을 강행하고 있는 ‘비자림로 공사 확장 저지 투쟁 현장’, 제주의 다양한 이슈를 알리는 ‘도청 앞 천막촌’과 기타 난개발 현장, 과거에 공군기지 건설이 진행됐던 ‘송악산’을 담았습니다.
저는 공공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듣는 동안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 활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활동의 취지에 공감했고, 직접 활동가로 함께해보고 싶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는 날짜별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 활동과 제가 느낀 점을 담았습니다.
6월 12일
미디액트에서 지원해준 노트북과 카메라, 삼각대를 들고 제주 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제주 도청 앞 천막촌으로 향했습니다. 천막촌에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집회를 열어 제2공항 기본 계획 중단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헤매다 주차장에 계신 분께 도청 앞에 있는 천막촌에 가려한다 했더니 바로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도착해보니 다섯 개가 넘는 천막촌이 이어져 있고, 그 앞과 건너 편 길가에 플랜카드들이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이 모이고, 천막촌에 계신 분들께서 직접 만드신 예쁜 디저트와 빵, 샴페인을 주셨습니다.
간식을 먹은 뒤 옆의 벤치에 모여 앉아 간담회를 시작 했습니다. ‘제 2공항 반대 투쟁 지역, 비자림로 공사 확장 저지 투쟁 현장, 제주의 다양한 이슈를 알리는 도청 앞 천막촌, 강정 마을의 현재 모습’에 대해 제주활동가분들이 현재 진행 상황,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의원들과 그들의 잘못 된 행동들, 투쟁하는 이유와 심정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공사를 강제로 진행하고, 관광객 수를 조작하고,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원희룡 도지사’와 그로 대표되는 인물들과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제 2공항 반대 투쟁 지역’에 대한 이야기 중 제주도가 공군기지로 이용 될 수 있다는 말이 저에게 즉각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처음으로 이 이슈가,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군, 외군들의 전쟁에 이용당한다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저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셜 클럽에 음악팀, 잡지팀, 영상팀, 워크숍팀, 운영팀 모두 모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영상팀은 맡을 주제를 선택하고 팀원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제2 공항 반대’를 선택했는데 그곳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새로 의견이 나온 ‘송악산’팀으로 갔습니다. 그곳도 일제 강점기에 공군기지로 이용되었던 곳이었습니다. 같은 팀이 된 정준님과 간단하게 기획회의를 하고 숙소로 갔습니다. 숙소는 넉넉하고 깔끔했습니다. 화장실, 세탁실, 부엌 모두 이용하기 편해서 일주일 동안 안락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6월 13일
아침에 일어나니 청주를 근거지로 한 ‘생활 교육 공동체 공룡’ 대표이신 영길님이 만드신 비건 맞춤 요리들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비건 식단으로는 처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 후에 해주시는 모든 요리들이 맛있어서 식사 시간이 기대됐습니다.
식사 후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모여 퍼실리테이션을 했습니다. 상태를 나타내는 많은 단어들 중에 나의 지금 상태와 맞는 단어를 고르는 것 하나, 내가 생각하면 편안해지는 단어 세 개와 그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 하나, 좋은 듣기 동료가 되고 평등한 활동을 위한 ‘이런 행동을 피해 달라’와 ‘이런 행동을 하게 해 달라’는 글 쓰는 것 하나, 서로 마주보고 1분 동안 한 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하나 해서 같이 활동하는 동안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미술 심리 치료를 받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서로 선을 넘지 않으면서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 후에 팀별로 흩어져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송악산의 공군기지로 사용되었던 알뜨르 비행장에 가보니 제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관광지로 이용된다 해서 가게도 있고, 사람들도 많고 활동적인 분위기 일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휑한 벌판 사이사이에 둥그렇게 솟은 공군기지들은 무덤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앞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공군기지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밭일을 묵묵하게 밭일하고 계시는 모습이 이질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입구에 세워진,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9m 높이의 평화를 염원하는 <파랑새>라는 작품은 이곳에서 있었던 과거의 아픔들이 실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6월 14일
촬영 2회차. 비가 왔습니다. 우비, 물티슈, 물, 간식 등 필요한 것들을 사고, 송악산의 동굴 진지로 갔습니다. 송악산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제주도민들을 강제로 공군기지를 건설하게 해서 자신들의 전쟁에 이용하고, 토지를 수탈하고, 학살이 일어났던 곳으로, 지금 제 2공항건설 추진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장소입니다. 안내판이 없고, 산이다 보니 인터넷 지도를 봐도 위치를 정확히 찾기가 어려워서 한참 헤매다가 목적지를 발견했습니다.
처음 간 곳은 조그만 동굴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강제로 괴롭히며 일을 시킨 곳이라 생각하니,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목구멍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비 소리가 다 녹음되어서 신경 쓰였는데, 다행이도 촬영 할 때는 비가 많이 안 와서 벗고 할 수 있었습니다. 파리 소리와 뱃고동 소리를 녹음하고 싶었는데, 파리를 쫓으며 녹음하기도 쉽지 않았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뱃고동 소리도 녹음하기 어려웠습니다.
주위 마을회관에 비타500을 들고 어르신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사전 약속 없이 가서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어르신들이 우리의 말을 들어주셨고, 우리에게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청소년기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하며 괴로웠던 시간, 그로 인해 가족을 잃었던 아픔, 공군기지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이야기라 덤덤하게 말씀하시다가 힘들었던 기억이 나면 슬픈 표정이 나오기도 하고 그 때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하시기도 하고 피하고 싶어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6월 15일
편집 기간. 촬영한 영상들을 확인하고 기획을 더 구체화하면서, 영화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장면들이 생겼습니다. 도청 앞 천막촌으로 가서 천막촌과 도청을 촬영하고, 도청에서 촬영하신 활동가 분께 푸티지를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치열한 시위 당시 상황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공사하는 사운드가 필요 했는데, 마침 가는 길에 공사장을 발견해서 공사하는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저녁에 카페 ‘피스 아일랜드’에서 음악팀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제주 오기 전부터 기대했던 공연인데도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함께 어우러져 즐기고, 제주의 이야기가 노래로 나오는 것도 울림이 있었습니다.
6월 16일
2차 편집 기간. 종일 소셜 클럽, 숙소, 카페를 오가며 편집을 했습니다. 다큐에서의 편집은 촬영보다 더 만만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인터뷰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영상과 어떻게 어우러질지 고민하고, 화면 없이 녹음 된 사운드들을 들어보며 체크하고, 영상들을 어떻게 얼마나 자르고 붙일 것인지, 혹시 다른 효과를 줄 수는 없을지 등 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가장 잘 전달 할 수 있는 형태로 연결하는 일이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영상들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6월 17일
아침에 ‘인간 띠 잇기’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 팀도 그렇고 편집을 더 해야 하는 몇 팀들은 참여하지 못 하고 남아서 편집을 했습니다. 최종 마감 시간이 끝나고, 작업도 끝이 났습니다.
공유회가 열릴 예정인 천막촌으로 갔더니 피켓 시위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천막촌에서 투쟁하시는 분들이 도청 앞에 마이크로 그들의 잘못 된 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관련 된 노래를 틀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주민들을 상대로 거짓말 하는 의원들을 꼬집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미행팀도 피켓을 들고 도청 앞에 서서 시위를 했는데, 그 안에 속해서 밖을 바라보니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할 때도 가까이에 있었지만, 들어갔을 때는 삶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 더 봐주고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습니다. 문 닫고 듣지 않는 도청 앞에서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한 시간 정도의 시위가 끝나고, 상영회를 하기 위해 스크린을 설치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경찰이 와서 길을 내주었습니다. 미행팀과 같이 참여하신 분들, 더 오신 분들이 스크린 앞에 앉고, 제일 먼저 음악팀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외에서 보니 더 자유롭고 새로운 분위기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잡지팀이 만든 잡지 발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스크린에 잡지의 페이지들이 보였는데, 퀄리티도 좋고 투쟁하시는 분들의 인터뷰도 정성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스크린으로 영상들이 상영 되었습니다. 음악팀의 뮤직비디오들이 상영되고, 제주 활동가팀이 만든 영상이 상영 되었습니다. 원희룡 도지사의 잘못 된 언행과 행동을 꼬집는 내용을 재치 있게 이야기한 영상과 투쟁 활동하시는 분들의 심정을 담은 영상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팀이 만든 영상이 상영 되었습니다. 이미 파괴되었거나 파괴 될 예정인 장소들에서 열리게 될 개업식에 관객들을 초대하는 ‘인사말’, 난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다가올 미래의 제주의 모습과 뒤섞어 슬픈 마음을 담아 표현한 ‘제주에 도착한 일기’, 소성리에서 예전 강정에서 투쟁하던 친구들, 군산 오키나와 등에서 서로 연대하며 평화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을 감독이 같이 연대하며 만든 ‘휴가’, 현재 제 2 공항을 건설하려는 모습과 닮은 과거 송악산의 공군기지, 알뜨르 비행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경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 표현한 ‘제 2 공군기지’, 희귀 동물과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는 비자림로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눈의 이미지와 안과 밖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표현한 ‘지나가는 숲’이 담겼습니다.
상영 종료 후 영상팀 모두 앞에 나가 인사와 소감을 이야기하고, 모든 공유회가 끝이 났습니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뒤풀이를 하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소셜 클럽에 가서 밤새 뒤풀이를 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이야기 해보지 못 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 알아가고, 인연이 된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6월 18일, 그리고 현재
미디액트에서 저와 함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함께 들으며 올해 미행에 참여한 팀원들은 오후에 서울에 있는 수업에 복귀해야 해서 참여하지 못 했지만, 다들 활동 평가와 후속 계획 후 점심을 먹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전에는 천막촌이 있으면 그 앞에 붙은 문구들을 보고 ‘아 뭐에 대한 거구나’하고 지나친 뒤 잊었습니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활동을 하며 처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안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천막촌을 만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각각의 심정이 어떨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발걸음은 그곳을 그냥 지나칩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구에게 도움이나 될까,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나의 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다음번에 어떤 불의한 일을 맞닥뜨리게 될 때 저의 행동은 다를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동의 되는 투쟁에 서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면 할 것이고, 제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불의가 생긴다면 투쟁을 하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
글쓴이. 이현주
-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과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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