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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성 있는 공동체를 구축하려면 - 부산지역 관객 커뮤니티 ‘씨네키튼(Cinek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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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9. 10. 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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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ACT! ‘이슈와 현장’ 코너에서는 원주미디어강사네트워크 ‘공유’에 이어 주체적으로 미디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씨네키튼’은 2014년 여름에 시작된 부산지역의 관객 커뮤니티로 현재까지 다양한 방법과 전략을 가지고 영화연구와 비평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관객의 자리에서 영화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씨네키튼은 관객운동의 맥락에서 그 자체로 동시대 한국영화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임종우(ACT! 편집위원)


[ACT! 116호 이슈와 현장 2019.10.17.]


지속성 있는 공동체를 구축하려면
- 부산지역 관객 커뮤니티 ‘씨네키튼(Cinekitten)’


모나(씨네키튼 회원)

 


  ‘씨네키튼’은 스터디와 동호회 사이에 있는 부산의 영화모임이다. 모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 줄은 몰랐다. 2014년 6월에 첫 모임을 가졌으니 햇수로는 6년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일반인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서 2시간씩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2주, 설과 추석에 1주씩 쉬는 것 이외에는 공식적으로 스터디를 쉬어간 적도 없다. 심지어 한국인 특유의 안전불감증으로 태풍이 부는 날에도 어김없이 모였는데, 최근에야 “태풍상륙일에는 인간적으로 만나지 말자”는 건의가 나와서 처음으로 악천후로 인한 휴무를 가졌다. 어쨌든 이렇게 꾸준히 모임을 지속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해서, 한 번쯤 씨네키튼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매주 써온 영화 리뷰를 합평하는 모임으로 출발

  씨네키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된 영화 비평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 중에서 종강 이후에도 아쉬움이 남은 사람들끼리 영화 글을 써서 돌려 읽고 서로 피드백 해주자는 취지였다. 초기 멤버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민평론단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극장 상영작을 극장에서 한 번 보고 글쓰기’라는 원칙을 가지고 진행했다. 가끔 극장에 볼만한 영화가 없을 때는 다른 주제를 정해서 쓰기도 했다. 기억에 남았던 주제는 이창동의 <시>를 보고서 그 영화를 지지할 것인지 지지하지 않을 것인지 입장을 정한 후 글을 써와서 토론하는 것이었는데, 각자 가지고 있는 영화관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서 재밌었다. 물론 타고난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영화에 대해 정돈된 글을 일주일에 한 장씩 써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매주 영화 글쓰기’는 몇 달 정도 지속하다가 폐지되었다.

 
▲ ‘가장 좋아하는 감독 발표하기’ 중 난니 모레티 

 



  그 때부터는 『영화의 이해』, 『영화이론』 등 영화서적을 정한 후 돌아가면서 발제하는 것과, 스터디원이 각자 좋아하는 감독을 한 명씩 선정해서 그 감독의 감독론을 발제하는 것을 매주 번갈아 진행하였다. 감독론을 발제할 때에는 발제자가 고른 그 감독의 대표작 세 편을 다른 멤버들도 집에서 각자 보고 와서 발표를 들었고, 그 주의 ‘글 당번’들은 감독론에 선정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비평문을 써오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업도 따로 있는 사람들과 잘도 저렇게 빡빡한 계획을 세웠구나 싶다. 그렇지만 열정이 넘치던 모임 초기라 그랬는지 모두가 저 버거운 일정을 잘 따라갔고, 특히 감독론 발제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서 영업한다는 마음에서 더 열정적으로 준비했던 것 같다. 그 때 나왔던 감독이 크리스 마커,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와 스티븐 달드리 등이었다. 말은 거창하게 ‘감독론’이라고 붙였지만 평소에 본인이 제일 좋아하던 감독을 꼽아서 그 감독이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왔는지 소개하고, 자신이 그 감독의 어떤 점을 가장 좋아하는지 신나서 떠드는 시간이었다. 

 


재편하는 영화사(史) - 여성감독의 발자취를 좇아

  ‘좋아하는 감독 영업하기’의 차례를 한 바퀴 돈 후에는 ‘우리만의 영화사(史)’를 써보자는 의미로 초기영화에서부터 10년 단위로 흥미가 가는 감독들을 골라 함께 공부했다. 아무 영화 책을 집어 들어도 보이는 뤼미에르와 멜리어스, 독일 표현주의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프랑스 누벨바그- 같은 똑같은 목차는 진부하다고 느꼈다. 너무나 중요해서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언급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 천편일률적인 주류 영화사의 목차 속에서 누락된 이름들이 없을까 의심스러웠고 직접 찾아보고 싶었다.

▲ 영화사 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흥미로운 이름, 케네스 앵거와 마야 데렌


  그렇게 190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감독을 열댓 명씩 뽑아 그 감독들에 대해 알아보는 방식의 모임을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다. 다함께 선정한 일군의 감독 중 누구를 맡아서 발제할지는 각자 희망대로 정하는 것이었는데, 알랭 레네처럼 서로 맡고 싶어 한 감독이 있는가 하면 오슨 웰즈처럼 빼먹고 지나가긴 아쉽지만 아무도 발제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진 않아서 애물단지 취급당하는 감독들도 있었다. 동시에 격주로는 『헐리우드 장르』, 『사유 속의 영화』, 『페미니즘 영화이론』 같은 영화이론서를 읽어나갔는데, 이 세 권은 스터디 멤버들도 ‘우리가 공부했던 책 중 제일 재밌었다’고 종종 회고하는, 쉽게 술술 읽히는 이론서들이다. 특히 『헐리우드 장르』를 읽으면서 감독론에 나오던 1930~40년대의 뮤지컬, 필름누아르나 갱스터 영화와 책의 내용이 겹쳐서 유기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페미니즘 영화이론』을 읽을 때는 영화사에서 여성감독들이 성취한 바에 대한 흥미를 본격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즈음해서 우리가 감독론 발제에서 선정한 감독 목록이 너무 남성 중심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 여성감독 발표, 제르맹 뒬락 


  어떤 감독에 대해 공부할지 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그 감독의 영화를 실제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발제가 가능할 만큼의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조건을 충족하는 감독들만 선정하다보니 여성감독들이 누락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대안적인 우리만의 영화역사‘를 만들어 공부하자고 해봤자, 결국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이름과 익숙한 작품들을 고르기 마련이었고 그러다보니 이름부터 낯선 여성감독들이 거론되는 일은 드물었다. 우리도 결국 남성 중심적인 주류 영화사를 공부한 기성 평론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한 때는 그들을 롤 모델 삼아 공부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논해진 적 없는 여성감독들의 영화는 구하기도 힘들었고, 자료 또한 한국어 웹에서는 물론 영문 페이지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계속해서 누락되는 악순환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여성감독 주간’을 만들었다. 우선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활동한 32명의 여성감독의 목록을 작성했다. 당초에는 한 감독당 한 주를 할애하려 했는데, 2시간을 채울 만큼 자료가 많지 않은 경우는 두세 명씩 묶어서라도 짚고 넘어갔다. 다행히도 알리스 기 블라셰나 도로시 아즈너, 제르맹 뒬락과 박남옥, 이다 루피노처럼 연출작을 한 편 이상 구해볼 수 있는 감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튜브에 짜투리 클립이라도 올라와있으면 감지덕지고, 구글을 이잡듯 뒤져도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이름만이라도 기억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성감독 주간을 진행했다.

지방의 대안적인 관객 커뮤니티가 되기 위해

 그렇다고 씨네키튼이 대단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운영되는 곳은 아니다. 지방에서 열리는 모임이고, 구성원의 대다수가 퀴어-프렌들리(queer-friendly)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불합리함이 있었을 뿐이다. 덕분에 거창한 사명감이 없었어도 결과적으로 대안적인 모임이 되었다. 내 경우에는 어려서부터 제도권 안팎의 영화교육을 받았는데 여성주의적인 시각의 수업은 찾기가 어려웠다. <열차의 도착>을 서른 번쯤 보고 <달세계 여행>을 온갖 버전으로 트는 동안에도 알리스 기 블라셰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페미니즘 비평은 ‘한물간 유행’이라는 식의 조롱으로 언급된 것이 전부였다. 여성-시네필로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순간부터 배제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함께 부산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던 날의 기록 

 

  지역 영화모임으로서의 정체성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지방 거주자들은 “영화 하려면 서울로 가야지”라는 말을 질리도록 듣는다. ‘제2의 도시’, ‘영화 도시’라고 불리며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큰 혜택을 입은 광역시에 살고 있음에도 수도권과의 문화적 격차를 느끼는 일은 일상적이었다. 듣고 싶은 강의는 대부분 서울에서 열렸고,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동호회나 상영회도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제도권의 바깥에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영화 교육을 받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지금은 6년 전에 비해서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씨네키튼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왕복 3~4시간이 걸리는 지역에서도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곤 한다. 현재 구성원을 포함해 씨네키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는 다른 도시에 거주하며 매주 시외버스를 타고 와서 참여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는데, 그 분들과 함께 모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지방의 문화토양이 척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관건은 모임이 어떤 좌표를 점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의무감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로 즐겁게 운영될 수 있는가’였다. 씨네키튼이 오늘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동호회와 스터디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동호회 쪽으로 너무 기울면 흔한 친목-사교모임이 될 것 같았고, 스터디 쪽에 너무 힘을 주면 전공자도 아닌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부담을 느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중간에서 중심을 잡았지만, 언제까지 이 균형이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모임을 장기적으로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결국 매너리즘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매주 얼굴을 보다보니 구성원 사이에 자연스레 친분이 쌓이게 되고, 취미활동을 같이 하거나 집회에 함께 나가기도 했다. 삼삼오오 모여 부산과 대구, 서울의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 취향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만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은 오랜만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대로 너무 친밀해져서, 견고히 닫힌 집단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많이 한다. 흔히 지역 문화예술계가 ‘우리가 남이가’ 식의 폐쇄성에 빠지기 쉽듯이, 늘 흐르려고 하지 않는다면 고인물이 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성을 경계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씨네키튼이 언제나 수평적으로, 공정하게 운영되기를 희망한다. 애초에 ‘선생 문화’나 탑다운 방식의 교육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커리큘럼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6년째 나온 멤버든, 오늘 처음 나온 멤버든 구성원의 의견은 공히 존중 받고 누구나 쉽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노력한다. 결국 모임의 성격은 지금 현재의 구성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어떤 모임인지 한 줄로 정의하기보다는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로 증명하고 싶다. 그 일환으로 불참비를 모아 현재 구성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소액이라도 후원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반년에 한 번 정도 하는 수준이지만, 여건이 된다면 기부 횟수나 액수를 늘리고 싶다. 그게 지금 현재 씨네키튼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보여줄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멤버의 유입 가능성을 열어놓고자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매주 공부한 내용을 요약해서 올리고, 과외활동의 흔적도 남기고 있다. ‘현생’에 치이느라 당장 실행에 옮기진 못하더라도, 가능하다면 씨네키튼에서 발제했던 자료들, 특히 여성감독에 대한 발제 기록을 모아서 독립 출판물로 엮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어떤 날은 가벼운 여가모임 같더라도 어떤 날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모임, 대안적인 위치에서 지속가능한 지역 문화 모임으로 가늘고 길게 살아남아 서로에게 자극이자 동력이 되는 게 씨네키튼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부산지역 관객 커뮤니티 ‘씨네키튼’의 소식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씨네키튼’ 트위터: https://twitter.com/cinekitten 

 

 


글쓴이. 모나

 

- 부산에서 나고 자란 영화광. 연출과 비평에 애매하게 관심을 두기도 했지만, 관객일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을 깨닫고 허튼 욕심 부리지 않으며 살고 있다. 더 가열차게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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