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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마주해야만 알 수 있는 가치 - <바람의 언덕>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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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0. 4. 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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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박석영 감독의 <바람의 언덕>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는 관객과의 만남에 집중하는 상영회를 지속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했습니다. 「ACT!」는 이 과정 속에서 부딪히고 마주하는 지점들을 살펴보며, 독립 영화 배급 및 상영 방식 매뉴얼을 구축해보는 첫 걸음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 김세영(ACT! 편집위원) 

[ACT! 119호 이슈와 현장  2020.04.14] 


깊게 마주해야만 알 수 있는 가치

<바람의 언덕>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 


박석영(영화 감독)


  저는 <들꽃>, <스틸플라워>, <재꽃>의 감독 박석영입니다. 꽃 시리즈라 불리는 세편의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였고, 지금은 <바람의 언덕>으로 관객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바람의 언덕>과 <재꽃>을 상영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영화 커뮤니티들과 특별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간 커뮤니티 상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늘 극장 중심의 개봉에 집중해 왔었기에 마음을 쓰지 않았기에 무지했습니다, 영화 커뮤니티는 짧게는 일이 년 길게는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 지속적으로 상영회를 해오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열정과 헌신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는 영화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나눔의 솔직함에 감동하였습니다. 

▲ 영화 <바람의 언덕> 포스터 


  그 새로운 만남들 이후 저는 고민해 보았습니다. 매일 상영하지 않더라도, 한 주에 한번 전국의 영화 커뮤니티와 함께 상영회를 만들어낸다면 어떨까? 모든 상영에 영화 커뮤니티 멤버들과의 깊은 대화가 포함된다면 어떨까? 기존처럼 개봉관을 최대한 많이 잡는 일반 개봉으로 배급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서로를 대면하며 귀하게 만나는 방식으로 출발하는 것, 작업을 함께한 배우들과 함께 관객들을 만나러 전국을 다니는 방식, 마치 유랑극단처럼 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아직 홍보도 되지 않은 영화를, 일반적인 극장 개봉을 시작하지도 않은 영화를 누가 받아줄까.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컸지만, 독립영화 선배들과 동료들의 응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바람의 언덕>을 함께한 정은경, 장선, 김태희, 김준배 배우님도 매 상영 최대한 함께해 주시겠다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매주 한번 각 지역의 영화 커뮤니티들과 독립예술영화 극장들의 도움으로 상영회를 개최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의 배급방식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많은 영화 커뮤니티들이 있는지도 몰랐기에, 더러는 소개를 받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락을 해보기도 하면서, 각 지역의 영화 커뮤니티들을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 동안 전국을 다니며 정해진 상영회가 20회 차가 넘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시간에 맞춘 일정이었으니, 최소한으로 치더라도 사 개월에 걸친 전국투어가 준비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간 개봉을 하면 극장에서 우리 영화가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이주를 넘어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 지냈는데, 정말 족쇄에서 풀려나는 것 같은 해방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영회를 준비하는 것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상영을 위해서 저 자신이 배급사를 내야 했고, 커뮤니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홍보물도 제작해야 했는데, 모두 처음해 보는 일이니 그저 난감했습니다. 다행히 너무 고맙게도 <재꽃>때 처음 만난, 지금은 <아워스>라는 홍보마케팅 회사를 시작하신 최유리 팀장과 연다솔 디자이너님이 함께 해주시기로 하여서, 각 커뮤니티 상영회의 전단과 온라인 이미지도 매번 다르게 만들기로 하고, 귀여운 마그넷 굿즈도 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신없고 뒤뚱뒤뚱하는 걸음으로, 작년 12월 24일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정성일 선생님과의 크리스마스이브 상영을 시작으로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는 출발했습니다.

 

▲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 온라인 이미지 모음(아워스 제공) 



  각각의 상영회는 커뮤니티의 사정과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었습니다. 강릉과 대구, 파주처럼 독립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는 지역의 경우 극장과 협업하여 상영회를 개최하였고, 청주나 제주처럼 전용관이 없는 지역은 상영 가능한 공간을 대관하는 것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원이나 대구처럼 지역 극장은 있으나 커뮤니티를 섭외하지 못한 경우는 관객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상영했습니다.

  매 상영회마다 커뮤니티들은 이미 오래 함께 해오신 멤버분들과 노력해 주셔서 관객분들을 모아주셨고, 각각의 개성에 맞추어, 평론을 써주시기도 하고, 연주를 해주시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엽서를 만들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제안은 저희가 드린 것이지만 실은 커뮤니티 자체의 주도적인 행사로 이어진 것입니다. 

 

▲ 창원 시네아트리좀에서 장선 배우, 정은경 배우의 노래공연, 반주는 김태희 배우. (영화사 삼순 제공) 

 

  이러한 커뮤니티 주도적인 상영회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영화가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진주시민미디어센터의 상영에서는 진행 주체인 페미시네의 여성주의적인 시선을 만날 수 있었고, 인디하우스와 함께한 강릉 신영극장에서는 비평모임이 영화를 미리 보고 써주신 평론들을 작은 책자로 만들어 주셔서 좀 더 깊이 영화읽기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KU 시네마에서 함께 한 낫띵벗필름은 <바람의 언덕> 배우분들의 이전 단편영화를 모아 함께 상영해 주셨으니. 한 상영 한 상영이 늘 새로운 질문과 다른 이해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정말 기쁜 것은 이렇게 각 커뮤니티의 애정과 깊이를 마주하는 대면 속에, 영화를 만든 저희들도 매번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오마이뉴스>와 상의하여 매 상영을 주관하는 영화 커뮤니티가 직접 쓴 자기소개를 지금까지 연재기사(*주)로 묶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 하나씩 올라오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다 해내면 그래도 스무편에 가까운 근사한 소개와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9회 정도의 지역 상영회를 끝으로 잠시 모두 쉴 수밖에 없는 시절이어서 우선 로드쇼를 멈추고 있습니다. 이 막막한 코로나의 시절에 로드쇼를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서로에게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시간 동안 일반 개봉도 준비하고, 새로 포스터 촬영도 하며 다시 시작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이 행복한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직 남은 커뮤니티 상영이 지금까지 보다 조금 더 많고, 아직 절반에 미치지 못한 상태의 중간결산을 말씀드리면, 매 극장마다, 평균적으로는 좌석수 대비 60퍼센트 정도의 관객이 함께했고. 현재까지 통전망에는 625명, 통전망에 포함되지 않은 상영회를 포함하면 지금까지 800명 정도의 관객분들과 <바람의 언덕_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를 함께 하였습니다. 

  상업적으로는 너무나 미미한 숫자이지만 그것은 얼굴을 마주하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어쩌면 영화를 통해 조금은 가까워진 친구들의 숫자입니다. 그 안에는 관객분들과 커뮤니티의 노력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 청주 씨네오딧세이 멤버 (씨네오딧세이 제공) 

 

  저는 독립영화감독입니다. 저에게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잡아매려는 간곡한 노동입니다. 그 결과가 비록 불완전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함께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땀방울과 호흡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하나의 영화는 한 명의 사람과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은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기에 늘 역부족입니다. 모난 구석도 많고, 세상 물정을 몰라 안쓰럽고, 때로 지나치게 솔직해서 밉기도 하고, 그래도 눈에 밟혀 자꾸 뒤돌아보게 합니다. 인생사가 그렇듯 그런 사람은 오래 두고 깊이 바라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화도 그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영화가 세상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 더 얻고 싶었습니다. 그런 욕심에 이렇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배급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 개봉을 하기 전에, 온라인에 풀리기 전에, 영화를 들고 각 지역의 영화 친구들을 먼저 찾아가는 방식. 그렇게 최소한 두 달 정도 영화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각 지역의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 상영회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나누는 기회를 얻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저 더 간결하게는 개봉 전 두 달 정도 전국의 독립예술영화관 중심으로라도 먼저 영화를 들고 찾아가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시간을 먼저 가질 수 있다면, 한 두주에 극장에서 사라지는 많은 영화들을 간곡하게 매어 잡고, 조금은 더 시간을 가지고 관객들의 마음을 가까이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근사하게 써보려고 노력해도 <바람의 언덕>의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의 길은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저의 경험에 제한된 것이고, 미련하고 무모한 여정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희는 지금까지 조금도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장점이 있다고 해도, 이것은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이 모든 한계를 고백하며, 저는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을 기억해주셔요. 작은 영화들, 모난 영화들, 깊게 마주해야만 가치를 알 수 있는 영화들이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람으로 시작한 한 작은 영화의 실험으로 읽어보아 주셔요. □


글쓴이. 박석영

- 영화 감독. <바람의 언덕> 2019, <재꽃> 2016, <스틸 플라워> 2015, <들꽃> 2014 외 연출



* 주 - <바람의 언덕>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 연재 기사 

1. 박석영 감독의 편지 - 영화 본 모든 관객에게 직접 찾아가는 감독... 그의 편지

2. 페미씨네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 진주에서 분 '바람', 그 첫 번째 '항해'

3. 씨네아트 리좀과 이윤성 관객 프로그래머 - 마산서 만난 독립영화의 단단한 뿌리... 새로운 체험이었다

4. 파주 헤이리 시네마와 배우 장해금 -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파주의 '트뤼포'들

5.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 '외로운 섬'이 '엄마와 딸'로 확장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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