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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9호 나, 미디어활동가] 현장 속으로, 현장 밖으로! - 비정규직노동자 영상운동에 대한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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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9호 / 2005년 3월 22일 

 

 

현장 속으로, 현장 밖으로!

- 비정규직노동자 영상운동에 대한 모색

 

 

강준상 (영상활동가, 프로메테우스 영상 담당)

   
[편집자주] 이번 호부터 <ACT!>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국내 영상활동가들이 직접 쓴 원고를 연재한다. 오랫동안 활동해 온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로부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통해 새로이 유입된 인터넷 매체의 영상활동가까지,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를 고민들을 담아보는 기획이다. 원고의 내용과 형식 모두 자유이며, 기고하는 활동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솔직한 필치를 기대해 본다.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80여명 조합원이 2달여 동안 투쟁 중이다. 그밖에도 한원 CC,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코오롱 구미공장 노동조합, 전남대 병원 하청지부, 울산지역 플랜트 노조 등이 뒤를 이어 파업 중이거나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대공장 조직된 정규직 사업장이 아닌 미조직된 비정규직 혹은 영세한 정규직 사업장에서 투쟁이 진행 중이다. 10여년을 거치며 관성화 된 대기업 중심의 정규직 노동조합 운동은 작금의 민주노총 사태와 노사정위 복귀 선언 등으로 알 수 있듯이 이미 주류가 되었다. 이런 변화되고 있는 흐름 안에서 노동자 영상운동의 대안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운동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노동자 영상운동의 미래를 말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기만 한다.

 

 

1. 현장 속으로!

 

 

사진출처 : 미디어참세상

작년에 간병인으로서는 처음 서울대병원 지부에 간병인 노동조합이 생겼다. 작년 한 해 동안 간병인 노조 투쟁은 대구 ‘노동자의 눈’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과정은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들도록 처절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조직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간병인들의 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간병인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간병인은 정말 노동자인가? 노동자라면 어떤 노동자이고, 간병인의 교섭 대상인 사측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퇴색하고, 노동자 안에 차이가 발생한다.

 

서울대병원 지부 간병인 노조를 찾아가 조합원들을 만나보았다. 그 중 한 조합원 아주머니에게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과거보다 노동조건이 좋아졌는지 물어보았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대답하신다. 그럼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가 물어보았다. “희망이죠. 나도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죠.”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핵심이었던 자동차의 도시 울산, 그곳에 갔을 때 파업 중인 5공장은 이미 고립되어 있었고, 공장 안으로는 들어갈 수도 없었다. 사측은 카메라 반입을 막았고, 정규직 노동조합은 노노간에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취재에 협조하지 않았다.

 

3일째가 되는 날 한 조합원을 만날 수 있었다. 28살의 청년인 그를 만난 것은, 5공장 안에서 옥쇄파업에 결합해 있다가,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파업현장을 나와 울산 시내를 한나절 방황한 후, 다시 공장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사무실에 들렀던 차였다. 이미 떨어져 있는 손배가압류, 사측의 경고장들과 무자비한 탄압, 투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파업현장을 나왔던 것이다. 그는 다시 공장에 들어가면서 말한다. “뒤돌아 볼 곳이 없다”고. 또 “정규직이 돕지 않더라도 투쟁하는 동지들과 함께 하겠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르고 분열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유연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여러 단계로 분열시키는 것이야 말로 자본의 논리이다. 하지만 그에 맞서기 위한 전술로서 “노동자는 하나다”란 빛바랜 구호는 이제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면 이제 차이를 말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청노동자들은 결국 원청노동자들에게 대리교섭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기 운명을 자기 주체로 써나갈 수 없는 상황, 다시 말해 노동자 주체로서 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란 한계에서 재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휘날리는 깃발아래 뭉친 노동자들의 자본과 정본에 맞선 투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혁명을 꿈꿀 수 있었던, 적어도 선전선동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상황은 이제 끝난 것 아닌가? 노동하는 주체로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기 시작했다. 임단투가 아니라 “난 노동자다. 노동3권을 달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의례적인 큰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치열하지 못함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닌가? 20년 동안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노동자운동의 관성에 도전해야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그럴수록 구호로만 설명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현실 속에서 다시 출발하고,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진보진영에 대해서는 엄숙히 비판하고, 98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자문해 본다.

 

 

2. 현장 밖으로!

 

 

난 영화학교를 33살의 늦은 나이에 졸업했다. 영화는 이미 귀족적인 예술이거나, 산업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섭된 것으로 보였고, 영상이론으로 현실을 설명하거나 변화시킬 힘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공부에 게을러서이거나 능력 부족이었을 것이지만, 졸업과 함께 영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단절하고 싶었다.

 

졸업 즈음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90년대 전부를 학생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바쳤고, 난 주변을 기웃거리며 방황하기만 했다. 난 그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다. 그런 그가 30대가 되어서 백혈병에 걸렸다. 백혈병에 걸린 이후 병마와 투쟁하면서도 그는 두 가지 일(실천)을 했다. 하나는 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빠가 된 것이고(동화책을 읽어주고 그 감상평을 써서 가영아빠란 이름의 작가가 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백혈병 환우회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그는 항상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실천들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한 인터넷매체를 만들 계획이라며 같이 일하지 않겠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내 과거에 대한 환멸로 관념적 고민만 하던 나는 부끄러워졌다. 내가 선 자리는 무엇인가? 내가 배운 것이라곤, 카메라를 드는 일이거나, 영상이론에 대해 조금 공부한 것밖에 없다. 이제 부채의식 같은 것은 던져버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이 부조리한 세상에 겨자씨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난 지금 프로메테우스라는 인터넷매체에서 영상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만약 노동자라면 카메라를 든 노동자이고, 활동가라면 영상활동가이다. 영상활동가는 영상을 통해 운동하는 주체이지, 다른 운동에 종속된 대상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거리감 그리고 직접 행동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동의 주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현장에 나가기 전의 준비와 기획, 멀리 떨어져서든 혹은 개입하면서든 촬영하는 행위, 그리고 편집, 배급, 상영, 교육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의 주체이다.

 

고다르는 베트남에 대한 옴니버스 영화를 찍을 때 베트남 입국이 거절되자, 베트남의 포화 속에서 르포르타주 영화를 찍기를 포기하고, 프랑스 파리의 안온한 거리에서 <베트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란 제목의 영화를 찍는다. 그 영화 안에서 고다르는 “베트남이 아닌, 그렇지만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프랑스의 일상적 거리에서 영화를 찍기 때문에 더 혁명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또 "할리우드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스타일에 저항하는 자신의 미학적 영화는 분명 노동자 혁명을 다루고 있는 영화임에도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 거리만큼 더 혁명적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한다.

 

난 노동자 운동의 주체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촬영을 하면서 그들과 친해지고 조금씩 노동자 운동에 대해 알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될 수는 없다. 그 거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비정규직 영상운동의 주체일 수 있다. 또한 그 거리에서 영상운동으로서의 전복적 상상력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하면서, 현장 밖에 머물러야 하는 역설 속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3. 전국의 영상활동가들을 조직하라!

 

 

큰 집회에 촬영을 나가면 수십 대의 카메라가 모인다. 노동조합 선전국에서, 방송국에서, 인터넷매체에서, 또 수많은 개인활동가들까지. 전복적 상상력이라고? 그것은 이론뿐이다. 현장에서 그 수많은 카메라들 틈바구니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자면 무력해진다. 다들 엇비슷한 곳에서 발언자들의 발언을 담고, 참가자들을 스케치하고, 조금 더 한다면 몇 명을 인터뷰한다. 그 무력함이 반복되다 보면 촬영을 하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대안적 매체 종사자는 한 사안에 집중할 수 없어 긴 호흡의 기획영상이 불가능하고, 개인활동가는 안정적 기반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작업을 한다고 해도, 대안적 매체의 배급력은 공중파의 100분의 1도 되지 못하고, 개인활동가들의 영상작품은 소수만 찾는 영화제를 통하거나, 잘 해야 수상작 중심으로 편성된 공중파의 협소한 채널을 통하는 정도다. 이렇게 해선 전복적 상상력으로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대안적 영상운동이 있을 수 없다.

 

디지털 캠코더의 대중적 보급으로 아이에서 어른까지, 일반인에서 활동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캠코더를 들고 영상을 찍고 있다. 이 수많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조직화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힘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 조직화의 주체는 영상활동가들이 될 수밖에 없다.

 

영상활동가들의 조직적 연대사업, 아직 맹아적인 단계인 영상미디어교육운동, 영상운동의 물질적 기반을 위한 미디어센터 운동, 주류에 대해 대안적인 스크린, 방송, 인터넷을 통한 배급과 상영 운동, 그런 전반적인 영상운동의 현실에 대한 고민 속에서 정치적, 미학적으로 새로운 영상운동의 흐름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1년간 일한 초보영상활동가가 이런 에세이류의 글을 쓴 것이 여러 선배들에게 무척 송구스럽지만, 이제 세상에 발을 반발짝 내민 초보로서, 고민을 공유하고 연대하자는 의도로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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