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7호 / 2005년 12월 6일
WTO 홍콩 각료회의 반대투쟁 없이 진정한 문화다양성(협약)은 없다! 조동원 (미디액트 정책연구실장) 지난 10월 20일, 유네스코 회원국들은 프랑스 파리에서의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 체결을 통해 국제 사회가 “주권국가의 문화정책 수립 자주권을 국제법으로 보장했다”는 게 문화다양성협약의 가장 큰 의미로 부각되었다. 문화상품과 문화서비스가 다른 상품과 달리 갖는 특수성을 인정하는 온전한 협약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를 매개로 모든 영역이 시장화 되어가는 추세에서 문화 영역이 독립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이 협약 체결 과정에서 우선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 대표단의 압박에 의해 문화다양성협약의 내용이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논리로 악용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내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국제 시민사회와 전지구적 미디어운동 네트워크가 이를 막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단적으로, 유네스코에서 결국 체결된 문화다양성협약의 초안이 7월 중순께 나왔을 때 시민사회도 참여가능한 의견수렴 과정이 있었고, "정보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캠페인"(CRIS, Communication Rights in Information Society)라는 진보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국제운동 단체에서 의견서를 제출하였는데 (http://www.mediatrademonitor.org/cris-unesco.php), 이것이 실제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대표단의 지적재산권 강화 주장에 강력히 반대했던 브라질 대표단이 특별히 지적재산권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한 CRIS의 성명서와 연대 서명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언급했던 사실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도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를 통해 이 서명에 적극 동참했던 바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30개국 이상의 국회 비준 필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체결은 그러나 (당연히도) 그 자체로 끝난 것이 아니다. 이 협약이 그야말로 국제법적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30개국 이상의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 최소 30개국이 이 협약을 각 국가 내부의 합의 과정을 거쳐 비준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신자유쥬의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갈구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각 개별 국가 내부의 자본의 운동으로서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에도 모두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캐나다가 지난 11월 10일, 퀘백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이 협약을 통과시키면서 첫 번째 비준국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에서도 국회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 몇몇이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이 협약의 비준을 결의하는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순탄한 과정이 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아! 문화다양성협약의 명확한 한계 30개국 이상의 국회 비준을 추진해가는 과정은 지켜볼 사안은 아니고, 계속 설득하고 로비하며 만들어나가야 할 사안이다. 곧바로 12월 홍콩에서 예정되어 있는 WTO 각료회의를 통해 최대한 추진될 자유무역 협정이 30개국의 국회 비준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효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문화/미디어 서비스는 획일적인 자유무역 체제의 직접적인 위협에 처해 있다. 설령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30개국 이상의 비준을 얻어 문화다양성 협약이 국제법적 효력을 얻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이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이번 유네스코 총회에서의 문화다양성 협약이 체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주지하다시피 이 협약이 WTO 및 자유무역협정에 미칠 영향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에 있었다. 이번에 “압도적인 지지”를 통해 체결되었다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핵심 관건이 된 제20조는 동 협약과 기타 국제협정과의 관계를 명시한 것으로서, 무역협정과 같은 다른 국제협정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20조 중에는 “1. (b) 당사국은 이미 가입한 기타 협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혹은 기타 국제협정에 가입할 때, 본 협약의 관련 조항을 고려한다”고 되어 있다. 유네스코 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특히 이 20조에 대해 “기타 국제협정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주거나 변경, 손상하는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대표단은 동 협약의 조항 하에서 채택되는 조치가 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기타 분야의 국제협약에 명시된 권리 및 의무와 배치되지 않는 방식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는 이에 대해 “전세계 문화예술인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191개 유네스코 회원국이 논의하고 합의한 도도한 흐름을 애써 외면한 채 외교통상부가 앞으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려 하는지 국제사회의 조롱을 자처하면서까지 보여주고 있기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외교통상부의 해석은 이 문화다양성협약이 처한 엄연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다른 투자협정이나 무역협정에 대해 문화다양성협약이 비종송적이고, 이 점에서 최소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상압력을 상당히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이 협약과 무역협정들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문화다양성협약이 가질 수 있었던 보다 강력한 힘은, 자유무역협정 등에 부속되거나 그것들과의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 그것들보다 더 강력한, 그 보다 더 상위의 국제법적 강제력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기대하기 쉽지 않았고, 그나마 무역협정들에 종속되지 않고, 동등한 지위를 얻게 된 것을 성과로 여겨야 할 만큼 WTO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헤게모니는 강력한 것이었다. 그래서 단적으로 말해, (특히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체결할 때 각국 정부에서 문화/미디어 서비스 부문에 실제 이 문화다양성협약을 적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을 때, 대상 국가가 비준을 체결했더라도 이 협약 내용을 적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별로 효과가 없게 되는 것이고, 설령 이를 적용하려고 하더라도 미국이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 이 협약이 갖는 한계가 곧바로 드러난다. 국제법적으로 상위적 지위를 갖지 않는 한, 이런 협상 테이블에서는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힘의 논리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다양성협약에 포함된 “분쟁조정절차”를 적용해 볼 수 있지만, 이는 현재 체결된 협약에서 매우 애매모호하게 표현되고 있어 거의 쓸모가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이제 미국은 이 문화다양성 협약을 무력화시킬 다양한 형태의 무역협정들을 체결하기 위한 강도 높은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따라서 국제 시민사회의 서명 수준을 넘어, 지역/국가/전지구적 차원 모두에서 문화/미디어 영역에서 문화 다양성, 미디어 다양성의 개념 확대와 정책 마련, 실질적 문화 교류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체제에 맞서는 국제적인 공동 행동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다양성운동의 한계이기도... 또한, 유네스코 차원의 문화다양성 협약은 “국제적 국내적 차원에서 자국의 문화계가 진정한 문화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독자적인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각국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 머물 뿐! 각 국 내부의 문화다양성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아무런 진전도 아니다. 단적으로 한국의 경우, 한국영화(한국의 극장개봉 상업영화)의 일정한 상영기회 확보를 위한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은 우리 문화다양성운동의 주요한 매개였고 강력한 추동력이었다. 그런데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이 됨에 따라 (행여 이런 기대를 했을지 모르지만)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폐지축소/유지강화 논란이 말끔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논란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더 강력한 자유무역에 대한 압력이 외부에서 그리고 내부에서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며, 제대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지만, 한 국가 내의 다양성은 국제사회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한국 영화/영상 문화의 진정한 다양성을 보장하는 길일까? 주지하다시피 그렇지도 않다. 이를 테면 한류가 갖는 유사-헐리우드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리고 결정적이라고 보는데 문화적 향유와 공유 문화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돈벌이만이 아닌 여러 가지 문화/예술적 창작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결국 문화다양성을 파괴할 현재의 저작권법 강화 논리와 법제도적 변화의 문제는 문화다양성(협약)과 전혀 연관되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법 강화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한국의 (주류) 문화다양성운동 세력조차 사실상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국의 문화다양성운동이 갖는 모순적 특수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특수성: 문화주권 확보와 문화다양성 실현의 동시적(모순적) 작용 전체 영화계의 단일한 대오를 형성한 검열철폐 운동 이후, 1999년부터 스크린쿼터제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영화정책 연구자인 조준형은 이 투쟁의 의미에 주목하면서 한국 영화계 내부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각과 일국의 산업 보호를 넘어선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단적으로 이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에 대항하는 문화주권 확보와 문화다양성 실현으로 표상되었다. 스크린쿼터제 사수 투쟁은 1990년대 초반, 정부의 한미투자협정 체결 시도로 촉발되게 된다. 미국은 1994년 한미투장협정 체결을 제안했고, 당시 김영삼 정권은 국내 산업보호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IMF 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김대중 정권은 미국의 직접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1998년 6월, 유일무이하게 미국에 먼저 협정 체결을 제의하기에 이른다. 이 때 미국 측은 BIT(양자 간 투자협정)의 표준 문안에 스크린쿼터가 어긋난다는 이유로(제6조 ‘의무이행 강제의 금지조항’) 투자협정 체결의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 폐지를 주장하였다. 정부도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게 되자,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그리고 “우리 영화 지키기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조직적인 폐지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차 한국 영화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와 이에 저항하는 국제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대해 나가기도 하였다. 계속 진행 중에 있지만, 스크린쿼터제 유지 투쟁의 지속적인 성공은 스크린쿼터제가 신자유주의적인 한미투자협정의 핵심 고리임을 파악한 제반 시민사회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로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역시 민주노총, 전농,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51개가 참여하고 있는 ‘투자협정/WTO반대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주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적 투자협정 반대 투쟁은 문화다양성 보호 차원까지 동원하였으나 할리우드에 대항하는 개별 민족국가를 암묵적인 주체로 상정하는 문제를 넘어서지 못해왔다. 여기에 한국의 특수성이 투영되어 있다. 그것은 공존하는 두 개념이 모순적이라는 점에 있다. 문화적 다양성 개념은 근대 민족국가의 탄생과정에서 억압되었던 차이들이 부각되면서 생겨난 차이의 정치학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문화주권이라는 개념은 일국이 자신의 문화적 생산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민족국가를 그 주체로 상정하기 때문이다(조준형). 즉, 개별 민족국가 내부의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가 연쇄적인 과제와 쟁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문화산업정책에서 이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산업 지원으로 경도되어 있는 정책을 문화적 지원과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산업과 정책, 그리고 운동 차원 모두에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방향 설정과 실천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WTO 홍콩 각료회의 반대투쟁 없이 진정한 문화다양성(협약)은 없다! 특히, 이번 12월 홍콩에서 도하개발의제를 다룰 WTO 6차 각료회의가 어떻게 논의되고 결론 맺느냐에 따라 문화다양성협약이 갖는 실효성이 결판날 것이다.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다양성협약”이 WTO를 매개로 한 국제 자유무역 흐름으로부터 시청각 미디어를 포함한 문화 부문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대략 환영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사실상 문화다양성협약은 자유무역협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채택된 것임이 여실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WTO 6차 각료회의가 특히 문화 및 미디어 부문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 및 미디어와 관련된 서비스 무역협정(GATs)에 있어, 미국은 선진국의 개방(자유화)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타국의 서비스 자유화의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모든 WTO 회원국들이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벤치마크”를 추진하고 있다. 워낙에 서비스무역협정에 있었던 “양적 벤치마크”(quantitative benchmarks)는 선진국이 163개의 서비스 대상의 139개(85%)에 대해 개방한 상태라고 하고, 이를 기준으로 개발도상국이 93개(57%)에 대해 개방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3세계 정부들과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협정 문서에서 빠지게 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WTO 회의를 앞두고 유럽연합(EU)이 그 문안을 다시 포함시키려고 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즉, 이 서비스무역협정(GATs)에 합의하게 되면, 강도 높은 서비스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각국의 독자적인 문화 정책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수많은 공공적 문화 및 미디어 서비스들이 시장이 내맡겨지게 된다. 다른 한편, 문화 및 미디어 부문에 대한 더욱 심각한 위협은 “복수 국가간”(plurilateral) 접근이다. 다자간(multi-lateral) 협정이 잘 안되니까, 한미자유무역협정 등의 양자간(bilateral) 협정을 추진하다가 새롭게 등장한 복수 국가간 접근 방식은 이런 식이다. 일군의 국가들이 2006년 2월까지 특정한 문화 및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일련의 의무 이행 사항을 만들어 다른 모든 국가들에 그러한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게 된다. 이러한 국가군은 “친구들” 집단으로 불린다. 그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시청각 서비스의 친구들”이고, 그 외에도 텔레콤, 교육, 컴퓨터 서비스, 우편, 유통 등이 있다. 이번 WTO 각료회의에서 제출될 안건은 바로 이러한 친구들 그룹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고, 이 요구를 받은 WTO 회원국들은 협상을 거부할 수 없고, 그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난하고 힘없는 국가들, 특히 면화나 설탕 등을 수출해야 하는 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비교우위 품목을 위해 공적 서비스 영역을 포기하는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에 찬성하고, 자국 내에서 국회비준을 얻은 국가더라도 WTO의 시청각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라는 무역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통신 산업과 컴퓨터 관련 서비스 역시, 한국을 비롯해 제1세계의 초국적 자본이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세계 시장을 확보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한국 역시 제3세계를 압박하는 “친구들” 집단이 될 것임에 뻔하며, 이를 위해 다른 공공 서비스 부문을 양보하려들 것이다. 예컨대 이와 같은 “양적 벤치마크”이나 “복수 국가간” 접근 방식이 이번 WTO 각료 회의에서 논의될 것이고, 이것이 합의된다면 그 여파로 문화다양성협약의 체결과 같은 성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문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나 이렇게 비관적으로만 보자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게 아니라는 것이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문화다양성협약과 같이 기왕에 이렇게 마련된 장치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을 텐데, 국가적 차원에서 무역협정을 체결하는데 있어서, 이 문화다양성협약을 전제로 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그와 당시에 분쟁해결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여 이 협약이 공문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12월 홍콩에서의 WTO 6차 각료회의는 결국 공공적 문화 및 미디어 영역을 파괴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에 문화 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WTO도 반대하고 결국에는 아예 해체해버리는 투쟁을 벌어내야 한다. 이미 1999년 시애틀에서의 WTO 3차 각료회의와 2003년 칸쿤에서의 5차 각료회의는 제3세계 국가들의 반발과 민중 투쟁으로 무산된 바 있다. 12월 13-18일 홍콩에서는 WTO의 협상 결렬과 WTO 해체를 위해, 1999년 시애틀과 2003년의 칸쿤에서와 같은 민중투쟁이 준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천 여 명의 농민, 노동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와 동시에, 진정한 문화 다양성 실현을 위한 운동의 재설정 필요 문화다양성협약 자체를 실효성 있는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일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이제는 정말이지 확대되어야 한다. 문화다양성운동은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으로 국한되어 표상될 수 없고, 이미 다양한 문화운동/미디어운동이 포괄적인 의미의 문화다양성운동을 벌여왔다. 또한 최근 문화권 개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과제들이 제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한 국가의 문화 주권 차원으로 문화다양성이 제기되어 왔다면, 문화권 개념이나 정책적 의제 개발은 인권으로서의 문화다양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폭넓게 내재되어야 한다. 문화다양성협약 자체가 문화주권을 보장하는 반면 인권으로서의 문화다양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과제만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경계나 주권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체성의 차이에서 만들어지는 불평등, 획일화의 문제는 진정한 문화다양성의 실현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사회/문화/미디어 운동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진정한 문화다양성 실현을 위한 운동의 방향은... 결국, 문화다양성은 하나의 운동으로 그 진정성이 실현되어야 한다. 예컨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위시한 문화 제국주의에 맞서 보호되어야 할 것은 ‘자국영화’라는 차원의 제한적 “문화적 다양성”이 아니라, 대중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향유하고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수단과 조건을 제공하도록 하고 자율적으로 창출해 내는 문화적 “커뮤니케이션 권리”로 확장되어야 한다. 현재의 문화다양성 협약이 문화/미디어 상품과 서비스를 놓고 전세계 문화산업의 큰 시장과 작은 시장이 경합을 벌이면서, 작은 시장의 이권을 위해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한 가능성은 더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는 문화다양성의 가능성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한다. 스크린쿼터 유지하기도 바쁜데... 스크린쿼터 유지해줬으면 됐지... 와 같은 알리바이가 성립될 것이라면 말이다.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이 한국의 상업영화 자본의 수호가 아니라, 결국 독립영화 예술영화, 그리고 외국의 독립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들이 다양하게 제작되고 배급, 상영될 수 있는 영상문화의 다양성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문화산업의 노동자들, 공공적 문화 생산자들, 각 지역 수준의 자치문화들, 공동체 미디어 운동 등은 돈벌이 이전의 인권 차원의 문화다양성 개념에 있어서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다양성협약 역시 단지 국가나 지역적 차원의 문화산업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민중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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