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27호 특집] 튀니스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의 성과와 과제

이전호(78호 이전) 아카이브/특집

by acteditor 2016. 8. 17. 14:28

본문

  

튀니스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의 성과와 과제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

 

지난달 중순 아프리카 튀니스에서 열린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WSIS)는 회의는 지난 4년간 정보사회의 주요과제와 국제사회 공동의 실천방향을 둘러싸고 이루어져 온 복잡한 논의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마무리 지었다. 원래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는 유엔 기구의 맥락에서는 21세기에 반드시 해결하자고 회원국들의 합의로 설정했던 세기의 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를 혁명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의식 속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초의 목표는 처음부터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는데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개발도상국들의 리더격인 국가들(중국, 인도, 브라질 등 소위 브릭스(BRICs) 국가들과 중동국가들이 개발도상국들의 개발지원을 위한 기금조성 보다도 인터넷가버넌스라는 이슈에 중점적인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2년전에 끝났던 제네바의 정상회의는 인터넷가버넌스와 개도국 지원을 위한 자금조성문제 두가지 과제를 튀니스 정상회의의 중점 과제로 던져 놓았고, 그후 지난 1년간 준비회의를 거치면서 자금조성문제는 사실상 거의 뒷전으로 밀려났고, 오직 인터넷 가버넌스만이 거의 유일한 과제인 것처럼 부각되게 되었던 것이다. 개도국을 위한 자금조성문제는 여타 개발기금과 차별되는 필요성을 선진국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하여 결국 이를 위한 기금인 디지털연대기금(Digital Solidarity Fund)은 국가들의 자발적 공여로 조성하는 것을 결의하는데 그쳤을 뿐이었다.


브릭스 국가들이 인터넷 가버넌스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했던 이유는 앞으로의 정보사회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현재 미국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에 관련된 관리구조를 국제적인 관리체계로 확고하게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또한 정보사회의 기본 인프라로 인터넷이 점차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기존의 유엔의 정보통신관련 기구인 ITU가 심각한 존재위기를 느끼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원래 ITU는 국제 전화망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이나 정책적 합의를 모으는 기능을 해오던 기구였으나 지난 10여년간 급속하게 전통적인 전화망이 퇴조하고 그 대부분의 기능이 인터넷으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과 관련하여 극히 미미한 역할만을 해 온 ITU로서는 사실상 기구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 개최는 인터넷에 대한 다자간 관리구조를 ITU로 대체하려는 ITU의 전략의 하나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정상회의 직전의 준비회의까지 이러한 브릭스와 ITU의 시도는 부분적으로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준비회의에서는 미국의 확고한 정치적 지지블럭인 EU조차 인터넷 가버넌스와 관련하여 루트서버의 감독권한은 한 개 국가(미국)가 아닌 다자간 관리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물론 미국은 처음부터 이같은 브릭스의 시도를 완전히 무시하였다. 미국은 제네바 회의 단계에서부터 이번 튀니스 회의때까지 일관되게 인터넷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강조하였고, 민간부문 주도의 발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인터넷과 관련된 가버넌스를 ITU에는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천명하였다. 이같은 미국의 입장 대부분은 사실 유럽국가들의 입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단, 유럽국가들의 이견은 그러한 공통적인 이해 위에서도 인터넷 주소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루트서버에 대한 감독권은 다자간 관리구조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의 요구 또한 처음부터 실현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미국이 처음부터 인식하고 있었듯이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는 어떤 조약(treaty)과 같은 구속력있는 결정을 하는 회의가 아니라 단지 지침 정도만을 제시할 수 있는 포럼일 뿐이었고, 인터넷 루트서버의 감독권에 대한 결정은 미행정부가 미의회의 동의 없이 정치적으로 결단해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소한 그러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미국정부 자체가 어떤 정치적 타협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으나 적어도 이번 정상회의 전에 미상무부가 밝힌 인터넷가버넌스에 대한 공식입장은 적어도 지금은 미연방정부가 루트서버의 감독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결국 인터넷 가버넌스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정상회의는 논쟁의 핵심이었던 루트서버의 감독권에 관한 한 미연방정부의 권한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표현은 “정보사회에 대한 튀니스 의제”문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55. 우리는 인터넷가버넌스를 위한 기존의 구조(역주: 이것은 ICANN을 말함)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여 오늘의 인터넷을 고도로 뛰어나고 역동적이면서도 지리적으로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여기에서는 민간섹터가 일상적인 운영을 주도했으며 망에서가 아니라 망의 가장자리에서 기술혁신과 가치창조를 이루었다.”(Tunis Agenda for the Information Society)


정상회의는 인터넷 가버넌스와 관련하여 향후 5년간 인터넷 가버넌스 포럼(Internet Governance Forum, IGF)을 구성한다고 결의했으나 심지어 이 포럼에서 다루는 의제에 대해서도 “58. 인터넷 가버넌스란 (ICANN에서 다루는) 도메인과 같은 이름과 주소부여 이외에도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인터넷 자원과 인터넷의 보안과 안전, 인터넷의 활용과 관련되는 개발과 연관되는 여러 가지 이슈들이 우선적으로 포함된다.”(Tunis Agenda)고 명시함으로써 향후 만들어지는 IGF가 두차례 WSIS의 중심적 이슈었던 인터넷 주소체계 관리구조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물론 IGF는 중요한 인터넷 자원(critical Internet resources)에 대해서도 우선적으로 논의할 것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주소체계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IGF의 시한을 향후 5년으로 잠정적으로 정했고 기존의 인터넷 주소체계 관리구조를 인정한 이상 IGF에서 인터넷 주소체계 관리구조에 대한 문제를 중심적으로 논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 가버넌스 문제는 IGF에서 보다도 기존 ICANN의 정부자문회의(Government Advisory Committee)의 역할을 강화하는 형식으로 표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듯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인터넷 주소 관리구조에 대해서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면, 이번 정상회의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어낸 이해당사자는 바로 시민사회였다. 정상회의가 시작하기 전 유엔총회는 정상회의의 참여방식과 관련하여 정부와 민간부문,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multi-stakeholder approach)라는 방식을 제시하였으나, 실제 제네바 정상회의 때에는 중국과 아시아의 일부국가, 중동국가들이 시민사회단체들이 사실상 선진국들의 또다른 지렛대라는 판단에 의해 시민사회의 실질적인 참여를 거의 완전히 봉쇄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제네바 정상회의가 인터넷 가버넌스 문제를 둘러싸고 국가간 분열되는 양상으로 치닫자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인터넷 가버넌스 워킹그룹(WGIG - Working Group for Internet Governance)에는 정부/민간(시민사회포함)의 구도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동등하게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종문서 초안에도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그대로 수용되었다. 이에 따라 정보사회 문제에 관한 한 시민사회와 민간부문의 참여가 정부간의 대립, 교착된 입장을 타개하고, 전문성에 의거한 실질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며, 생산적인 논의 결과를 도출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이 확인되었고, 그 결과로 정상회의 최종합의문서인 튀니스 어젠다(Tunis Agenda)에서는 향후 구성될 인터넷 가버넌스 포럼(IGF)과 정상회의의 결과물을 집행하고 후속작업을 이어갈 향후 만들어질 구조(현재로서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의 과학기술위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에서 “다자간, 다양한 이해당사자"(multilateral, multi-stakeholder)의 참여를 허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물론 시민사회의 참여가 어느 만큼 보장될 것인지는 아직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튀니스 문서는 다른 구절은 시민사회의 영역을 지역사회(community)의 범주로 제한하고 있으며, 또 다른 구절에서는 정부, 민간부문, 시민사회는 “각각의 역할과 책임 범위 내에서”(in their respective roles and responsibilities) 참여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다루어졌던 다른 여러 가지 이슈들 중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한 문제는 사이버 안보 혹은 사이버범죄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구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프라이버시 권리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이미 제네바회의때의 문서에서도 프라이버시 문제가 “사이버 안보의 문화”(culture of cyber security)의 맥락속에서 언급되었던 데에 이어 정보사회에서 정보인권 문제를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 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사가 가장 날카롭게 부딪친 대목이었다.


또한 이 문제 못지않게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던 주제는 정보사회의 지적재산권 문제였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정상회의가 공개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정했지만 기존의 지적재산권 관련 국제적인 관리구조(regime)이나 지식정보의 공유(public domain) 혹은 공개 컨텐츠(open contents)에 대한 관심에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사야 말로 사실 정보사회의 개발(development)과 관련된 관심사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정상회의 선언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원래 저작권이나 특허와 같은 독점적인 권리들은 범세계적인 공공지식자원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인데 지금은 권리를 보유한 산업부문의 이해와 정보/지식자원의 디지털화로 인해서 이 양자간의 균형이 완전히 역전되었다고 천명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번 튀니스 정상회의에서도 국내 시민사회의 참여는 여전히 빈곤하였다. 그러나 이미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은 앞으로 정보사회의 중심적인 관심사들을 논의할 인터넷가버넌스 포럼(IGF)와 향후 구성될 WSIS의 후속집행기구에의 참여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했으며, 이제까지 두차례에 걸친 정상회의의 경험을 토대로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 프로세스와 구조를 정식화하는 시민사회단체 헌장(Civil Society charter)에 대한 논의도 시작하였다.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