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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6호 공동체상영운동] 인권영화정기상영회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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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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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6호 / 2005년 10월 27일  

 

 

 

인권영화정기상영회 반딧불

 

 

 이진영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좀더 낮은 곳을 향해 인권영화의 턱을 낮추고자 시작

 


인권영화정기상영회 반딧불(아래 반딧불)의 시작은 200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권영화제를 통해 선보이는 영화는 매해 약 3,40편에 이르지만, 며칠간에 불과한 당해 영화제 기간이 끝나면 대다수의 인권 영화, 특히 해외 인권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사적인 듯 치부되는 일상에 침투하여 가려진 그늘을 비추는 가로등 역할을 자임하는 인권 영화의 존재 의의를 비추어 볼 때, 일회적 행사의 성격이 짙은 인권영화제가 채우지 못하는 공백의 부피는 작지 않다. 매달 인권영화정기상영회를 개최함으로써 인권영화를 매개로 좀더 일상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반딧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일년이 넘는 기간동안 인권영화제 기존 상영작 중 주목받았던 영화들을 매달 스크린에 띄웠는데, 관객들의 수가 점차로 잦아드는 게 사실이었다. 또한 좀더 ‘낮은 곳으로의 비행’을 추구하는 진보적 인권운동의 방향성에 걸맞게 반딧불 역시 보따리를 짊어지고 나서자는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며 바삐 달려드는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이들 대다수에게 인권영화의 턱을 낮출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문화적 권리가 일정 수준의 경제사회적 권리를 획득하고 나서야 확보할 수 있는 각박한 현실은 여전하다. 영화관을 찾는 행위 자체가 익숙지 않고 애써 정보를 찾아 문화생활을 누려본 경험을 간직하지 못한 이들을 직접 만나자는 생각에서 기인하여, 움직이는 영화제를 지향하는 반딧불로 거듭났다. 더불어 매달 현안에 부합하거나 사회적 관심을 촉구할만한 인권 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선정, 이를 다루는 영화를 상영하고 인권교육을 목적에 둔 부대행사를 신설하여 좀더 농밀한 반딧불을 준비하기로 했다.

 


반딧불의 세가지 유형

 


2004년 1월부터 2005년 10월 현재까지 총 18차례를 진행한 반딧불은 여성, 노동, 과거사, 어린이, 장애, 반전, 반핵 등 다양한 인권의 영역을 주제로 삼았고, 매번 30~80여명에 이르는 관객들과 호흡했다. 반딧불은 상영회가 열린 공간, 만난 사람들, 구체적인 목표 등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현장을 직접 찾아가자!

먼저 반딧불이 애초 구현하고자 했던 바처럼 소외받고 있는 인권 현장을 직접 찾아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소수자들과 연대한 사례들이다. 고용허가제에 반대하여 명동성당에 둥지를 틀고 농성에 돌입했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명동성당 이주 노동자 농성장에 반딧불을 지피자’, 갈수록 더해가는 자본의 유입으로 대리석 조각이 깔린 대학 건물의 화장실. 그 요란한 법석 뒤에서 걸레를 훔치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분노의 함성에 박수를 보내며 치렀던 ‘대학 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 빈부격차의 심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호화 주택과 주택난의 불합리한 공존. 쾌적한 한 뼘의 주거 공간 확보가 사유재산제의 당위성을 앞세우는 그 어떤 논리보다도 우선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던 ‘점거하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중,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평택 지역 어린이들의 주체적인 목소리를 발현시키고자 평택을 찾은 ‘평택의 작은 목소리들’ 등이 바로 그것이다.

 

9월 반딧불 '평택의 작은 목소리들'

 

인권 피해의 당사자이자 운동의 주체들과 일반 관객들이 해당 주제를 다룬 인권 영화를 함께 관람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감도는 공기를 한껏 들이쉰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 평택 어린이 등의 행보를 담은 짧은 영상물을 사전에 제작하여 반딧불 당일에 상영한 바도 있는데, 이는 평소에 영상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켜 스크린 앞으로 모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대상과 시선의 주체 사이에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스크린과 관객의 상호 교감은 더없이 활기차며, 상영장 안에 채워진 후끈한 공기는 다른 관객들에게 쉽사리 전이된다. 그리고 운동 당사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다채롭지 못한 운동진영의 현실을 감안할 때, 영상을 매개로 대화를 시도하는 반딧불의‘상영’운동은  여론을 환기시키고 서먹서먹한 거리감을 줄이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2. 영화로 인권교육을 행하다

다음으로 정해진 상영관에서 일반 대중들을 관객으로 상정, 인권 교육을 주목적으로 개최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핵폐기장 반대 투쟁을 활발히 벌였음은 물론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을 감행한 부안 투쟁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 본‘부안을 가다, 핵을 넘다’, 사회의 기강을 뒤흔드는 혹은 그저 피곤한 존재로 매도당하기 십상인 페미니스트. 가부장제 사회에 반기를 드는 그녀들의 유쾌한 정체성 밝히기를 기대하며 마련한‘나는 페미니스트다’, 김형율 씨의 사망을 계기로 국내 원폭 피해 2세들이 당면한 현실의 싸늘함과 연대의 필요성을 나눈‘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등이 특히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 상영과 함께 해당 분야의 활동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거나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부대행사로 곁들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한 반딧불은 특정 주제에 대한 사회 저변의 관심도, 영화를 향한 기대치에 따라 관객 수의 편차가 존재하며 부대행사의 참여도 또한 상이했다.


 

3. 운동에 개입하는 운동

마지막으로 인권사회단체 등이 주최가 된 행사에 결합하는 방식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해 개최된 5.29 페스티발에서 반전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작품을 상영했으며, 국민소환 ․ 국민발의를 주창한 만민공동회에 맞춰 ‘칠레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민의를 모아 부시 ․ 블레어 ․ 노무현을 전범으로 기소한 전범민중재판운동 중에는‘평화의 비로 바그다드를 적셔요’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운동 조직이 개최한 행사에서 영화 상영은 초반에 이목을 집중시키거나, 프로그램을 유연시키려는 목적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반딧불은 영화 상영 자체가 운동의 물줄기를 좀더 두터이 집결시키기 위한 고유한 운동일 수 있음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 상영은 유동적인 상황에 따라 선택가능한 ‘다홍치마’로 취급받는 순간들을 맛보면서, 여타 운동 진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을 절감한 동시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자문에 부끄럽지 않은 답을 갖추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고민, 행동해야 함을 깨달았다. 

 


반딧불의 의의와 남겨진 과제

 


영화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소비 수단, 고단한 삶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들을 잠재울 수 있는 도피처로만 규정되어, 사회 변화를 위하여 행동을 촉구하거나 인권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사색의 깊이를 더해주는 영화는 '영화'라는 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기 일쑤인 상황에서, 반딧불이 ‘다른’ 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한 창구였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인권운동에서 반딧불의 ‘실험’은 토론회, 인쇄매체, 증언대회,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말과 글로 행해지는 운동 방식에 더하여, 인권감수성의 지표를 높여줄 수 있는 영상의 색채를 입힌 새로운 행동이다. 정기적, 지속적으로 운동의 과제를 외화시키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견지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소중하다. 반딧불이 인권운동의 접촉 지면을 넓히는, 대중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장기적 전망을 갖춘 채 한 주제에 매진하여 깊이있는 실천을 지속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딧불은 미디어 운동의 축적된 성과에서 큰 힘을 받았지만, 남겨진 과제는 여전히 산적하다. 안정적인 상영 공간의 부재는 대다수의 ‘작은’상영회들과 마찬가지로 큰 어려움이다.  또한 반딧불의 주제가 전달하려는 바를 세밀하거나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국내배급가능한 영화들이 많지 않아서, 영화 상영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주제가 결정되기도 한다.무엇보다도 현재 노동자뉴스제작단과 인권운동사랑방이 맡은 해외인권영화의 배급에서 더 나아가, 세계 각지의 흩어져 있는 인권영화들의 배급과 데이터베이스화에 매진할 수 있는 상시적이고 전문적인 체계의 조직이 시급하다. 더불어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이니만큼, 일반 대중과 정치적 약자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울 수 있는 미디어 교육이 꾸준히 제공되는 것 중요한 과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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