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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3호 사회운동과 미디어] FTA, 미디어, 그리고 미디어 운동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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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미디어, 그리고 미디어 운동 ① 

 

김명준 ( 미디액트 소장 )

[편집자 주] 한미 FTA 2차 본협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ACT!에서는 미디어 분야에 있어 한미 FTA가 가져올 충격파는 어떤 모습일 것이며, 이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은 또 어떠해야 할 것인지, 종합적으로 고찰해보는 원고를 싣는다. 미디어운동의 관점에서 이미 진행된 여러 논의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이후 활동을 위한 논점들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원고는 ACT! 33호와 34호, 두 차례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로부터 시작된 지금 미디어 운동의 상황을 FTA저지투쟁 국면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 협정의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든 체결된다면 우리의 삶 전반에 큰 충격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며, 그러기에 “제2의 IMF 위기가 온다”라는 카피는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법안에 대한 대응 역시 미디어운동 진영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지만, FTA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과 7월 5일-10일 서울에서 있을 2차 본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특히 7월초의 국면은 FTA저지투쟁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지난 수개월동안 FTA가 한국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쳐야할지, 그리고 미디어 운동 (혹은 언론 운동) 진영이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에 관한 입장도 여러차례 발표되었고, 시청각미디어공대위,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실천단 등의 체계를 통해서 다양한 실천도 이미 진행중이다. 초기 단계에 드러났던 약간의 거품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미디어 운동의 과제를 거칠게나마 중간점검해보기로 한다. 초점은 세가지다. 하나는 FTA 이전의 미디어, 말하자면 지금의 미디어 상황을 점검해보고, 두 번째는 FTA 이후의 미디어를 상상해보며, 세 번째는 FTA 전과 후를 관통해야 할 미디어 운동의 현실과 전망에 대한 진단이다.

 

 

1. FTA 이전 ; 복합적인 신자유주의적 재편 과정의 미디어

 

결론을 미리 말해 버린 셈인데,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현재 상황은 복합적이다. 
우선, 전반적으로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신자유주의적 재편 과정을 계속해서 겪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제도이자 정책이자 자본운동이다. 어떤 미디어를 향유하고 있고, 어떤 미디어를 생산하고 있는가, 그리고 미디어의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가에 따라 주관적인 느낌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양상은 뚜렷하다.

방송의 경우 공영채널 중심의 공중파 방송의 독점적인 지위가 깨진 이후 만들어진 채널들은 대부분 상업 채널이며, 공영방송 역시 시청률의 압박과 공정경쟁 요구의 협공 속에서 상업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보통신의 경우 민영화는 대세이고 공적 컨텐츠에 관한 담론과 제도가 공백인 상태에서 포털을 중심으로 한 상업적 서비스는 짧은 기간 동안에 심지어 전통적인 주류 미디어조차 위협하고 있다. 영화는 원래부터 시장 자체가 공공적 성격을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내국 컨텐츠에 대한 쿼터제 이외의 공적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들 미디어 영역을 모두 관통하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국가 경쟁력의 제고 및 시장의 확대로 수렴된다.

하지만 이런 재편 과정이 철저하게 모든 영역에 관철되거나 그 반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런 재편 과정은 동시에 공익성, 시청자주권 등의 전통적 공공성의 담론이 법제도적 형식을 확보해가고, 참여, 다양성, 접근권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공공적 의제들이 독립영화, 퍼블릭 액세스, 미디어교육, 미디어센터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대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울러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매체의 경우에는 대안적 성격이 강했던 초기의 ‘멋진 신세계’는 순식간에 끝나버렸지만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와 자기표현을 기초로 한 미디어 환경의 구성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권리의 면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는 가운데 아직은 모호하지만 사회적 격차의 극복 및 자율적 주체의 형성에 대한 인식을 근간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권리가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는 대안적이면서도 보조적인 권리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섬세한 검토가 없더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지점은, FTA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항해서 성장하고 있는 공공적 재편과 변혁적 재구성 운동의 흐름에 대한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공세라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상황의 본질적 측면을 표현하다면, 세계적 연관관계에 놓여있었지만 일상적으로는 일국적 수준에서 진행되어왔던 운동-자본-국가의 상호 역학은 그 게임의 규칙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으며, 이제 막 80년대와 90년대를 빠져나와서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거시적인 전략과 정책을 갖춰가며 연대의 폭을 확대해가고 있는 미디어 운동 진영은 또 한번 스스로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어떤 상황이 되든 운동을 펼쳐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고민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점만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갱신의 내용이 이미 과제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과 인식되어야 할 것을 모두 함축하며, 인식되어야 할 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위해 그리고 FTA저지 투쟁 과정에서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FTA의 미디어 영역에 대한 영향을 예상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디어에 영향이 있든 없든 FTA는 저지되어야 하지만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영향이 있든 없든’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영향은 무조건 있으니까), 미디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실천의 방향을 섬세하기 잡아가기 위한 전제중 하나이다.

 

 

2. FTA 이후 ; 저지하거나 혹은 성장하거나

 

상식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자. FTA는 무역장벽의 제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산업의 규제와 지원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비관세장벽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관세 이외의 모든 규제는 장벽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노동, 환경, 소수자 등 사회 전반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기까지야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런데, 다음 두가지 질문은 조금 특별하다. 첫 번째 질문은 주로 주류 미디어 내부의 종사자들로부터 자주 나온다. “미디어 영역은 제외되는 것 아닌가 ? 제외되면 그래도 현재의 제도는 유지되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질문은 주류 바깥의 미디어 운동 진영에서 가끔 나온다. “공공 미디어 영역이든 독립적 미디어 활동이든, FTA는 어차피 주류 바깥에 있는 우리의 활동과 관련해서 본다면 미디어 영역이 포함되든 안되는 별 상관없이 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첫 번째 질문은 완전히 틀렸고, 두 번째 질문은 틀렸다보기 보다는 실천을 제약한다. 우선 주류 미디어에 시선을 고정해보자.

 

(1) 주류 미디어의 공공성은 무조건 축소된다.

앞으로 진행될 상황을 몇 개의 시나리오로 예측하는 것은 다른 변수를 놓쳐버리고 현실의 변화앞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허망한 탁상공론이 될 위험이 있는 것이지만, 일단 이렇게 출발해보자. 경우의 수는 사실 훨씬 다양하지만, 이렇게 나눠보자. 미디어 영역이 FTA에 포함될 경우, FTA에서 제외될 경우, 방송과 영화 영역이 제외될 경우 (정보통신 영역은 포함된다는 의미다) 등으로 말이다. 이것은 좋은 FTA와 나쁜 FTA가 있다는 것을 구분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쁜 FTA와 저렇게 나쁜 FTA를 구분해보려는 시도다.

1) 미디어 영역이 FTA에 포함될 경우

별로 복잡한 예상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다. 현재 이런저런 통로로 언급되고 있는 미국측의 요구는 방송의 외국산 편성쿼터 및 소유금지 규제 완화, 미디어랩 민영화,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소유지분49% 제한 폐지 등등 주로 내국 컨텐츠의 생산과 소통 전반에 대한 규제 장치의 폐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범국본의 토론회나 대국민홍보자료집에 표현되어있듯 이렇게 된다면, “통신을 비롯한 방송 영역에 있어서 여론의 다양성과 커뮤니케이션의 권리가 무너지고, 자본/상업의 논리로 급격하게 미디어가 장악”해서 결국 “다양한 이야기와 목소리는 사라지고, 강한자와 있는자의 이야기가 TV를 장악하게 될 것”이며, “소비를 부추기고 우리의 이야기를 외면하는, 자본의 통제를 받는 프로그램만이 방송에서 판을 치게 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한다. 덧붙여, 미디어산업 내의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극소수에게 새로운 기회를, 그러나 절대다수에게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이런 간단한 논리적 예측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주류 미디어의 컨텐츠를 해서 드러나는 주류 미디어 내부 노동자들의 FTA에 대한 태도는 소수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소한의 상식적 이해를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표현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이 대세”라고 하거나 “세계적인 지역경제 통합이 일반적인 추세인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9시 뉴스에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의 자료집의 문구가 전제하는 주류 미디어의 현재 상태는 사실상 주류 미디어 바깥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기대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의 주류 미디어들이 과연 보호할 가치가 있을만큼 “여론의 다양성과 커뮤니케이션의 권리를 보장하고 약한자와 없는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그러니 망해도 싸다고 말하는건 천박한 접근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주류 미디어에 대해 이런 표현을 자신있게 할만큼, 가능한 전망을 제시하는 주체가 주류 미디어 내부에서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지, 어떤 전략 구상 혹은 실천이 있을지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이다. 이건 다음 세 번째장 운동의 과제 부분에서 간단히 검토해보자.

2) 방송과 영화 영역이 FTA에서 제외될 경우

이 경우는 본질적으로는 뒤의 ‘미디어 영역’이 제외될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큰 항목에 들어있지 않다고해서 해당 영역은 무사태평하다는 건 착각이다. 여기서는 한가지 지적만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지만, 정보통신과 방송 (그리고 영화마저도) 의 경계는 이미 모호하다. 각각의 소통체계는 특정한 컨텐츠에게는 서로 다른 윈도우들에 지나지 않으며, 새로운 기술 개발에 근거해서 아직 제도적 질서가 자리잡히지 않은 뉴 미디어 및 기술적으로 혁신되었지만 아직 기존 법제의 틀내에 있는 올드미디어는 모두 넓은 의미의 뉴 미디어이며, 어느것을 정보통신매체다 어느것을 방송이다라고 구분하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구분방법은 어느 정도는 정하기 나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방송과 통신으로 구분하지 않고 정보통신매체중 채널개념을 지닌 것과 오픈 플랫폼의 성격을 지닌 것을 나누고 매체들에게 딱지를 붙이기 시작하면 모든 매체는 정보통신매체다. 결국, FTA 협상 내용에 정보통신 영역이 포함되는 순간 미래의 미디어는 FTA에 모두 포함된다. 뒤에서 좀 더 언급할 캐나다 정부의 대응 및 미디어노조의 대응은 바로 그런 인식 부족에 따른 오류의 전형이다. “캐나다는 미래까지 저당잡혔다. 전자통신 서비스를 자유화시키는데 합의하고, 공익을 위해 전자통신을 규제할 수 있는 권리는 유지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2006년 5월 미디액트 공개 강좌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자”에서 도로시 키드 교수의 발제중)

3) 미디어 영역이 FTA에서 제외될 경우

미디어 분야가 제외된다면, 다시 말하면 스크린쿼터의 양보를 댓가로 삼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적지만 심지어 정보통신 분야 마저 협정에서 제외된다면 어떨까 ? 그렇다면, 현재의 규제조항들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그 생명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우선 첫째, FTA가 지닌 전방위적 성격은 영역별 구분을 무의미하게 한다. 영역별 구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규제의 철폐가 적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규제의 철폐가 그 영역에서는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의 예를 들어보자. 전통적으로 문화 다양성 보존에 힘써왔으며 우리보다도 훨씬 강력한 공적 구조와 노조가 있던 캐나다는 FTA에서 문화를 제외하는데 성공했다. “조약에서 명시적으로 부과되지 않는 한, 다른 강제조항들로부터 문화산업을 보호하는 대책들에 대한 문화예외조항이 있었고, NAFTA에서는 이에 따라 문화가 제외되었다. 헐리우드와 미국영화협회(특히 MPAA회장 잭 발렌티)는 이에 격노했다. 그들은 미국정부가 앞으로 있을 다른 FTA에서 절대로 문화예외조항을 넣어서는 안된가고 주장했다.” (도로시 키드)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건 사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조항이 캐나다 문화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는 없었다. FTA에서 캐나다는 수입 문화 상품에 대한 관세를 폐지하는데 합의했다. 캐나다는 캐이블 송신자와 TV 배급사들에 원거리 신호 재전송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데 합의했다. 캐나다는 또한 FTA의 조항을 위반하는 어떠한 사전조치가 있을 경우, 그에 대한 무역 보복을 감수하기로 합의했다. 문화 예외 조항은 캐나다 문화 산업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멈추지 못했다.... 캐나다는 문화를 국제 시장에서 교역될 수 있는 공산품으로 간주하기 시작할 때 이미 무역 보복의 가능성에 노출되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미디액트 홈페이지에 있는 도로시 키드 교수의 발제문과 토론 녹취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둘째,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렇다. FTA의 체결은 흔히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완성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이 표현은 FTA의 파괴력을 지적하는데 있어서는 타당한 표현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이며, 급속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며 정치적 역학관계 내부로 초국적 자본과 세계자본주의의 연관관계가 보다 직접적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투쟁 때문에 자본의 의도대로만 관철되지는 않는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FTA의 체결은 완성이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며, 그 악몽같은 결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전에 FTA 체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FTA에 의해 직접적으로 점령되지 않은 분야로 확산될 것이다. 미디어 영역은 그것이 새로운 이윤 창출의 영역이자 미국이 경쟁력을 지니며 군수산업과 함께 미국산업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영역이 아니다. 호주의 사례에서 보듯, 하나의 FTA에 대해 호주 정부는 미디어 영역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주장하고, 미국 정부는 미디어 분야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별다른 논쟁거리도 아니다. 내용이 공개가 안되니 정확히 알 도리는 없지만, FTA가 체결된 이상 호주 정부의 방어 주장은 아주 큰 진실을 작은 사실로 가려보려는 행동일 뿐이다.

그러니, 이젠 더 이상 FTA에 특정 산업 영역이 포함되는가 안되는가에 따라 전략적 태도를 결정하는 안이한 발상을 제발 떨쳐버리자. 미디어가 제외된다는 소문이 돌든 말든 지구상의 모든 FTA는 (베네주엘라와 볼리비아간에 추진중인 민중무역협정을 제외하면) 산업별 접근과 함께 자본운동의 포괄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특정 산업 영역이 제외된다 하더라도 심각한 영향은 필연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외된다는 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열심히 싸워야 제외라도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의도를 지녔을지는 혹시 몰라도 나쁜 행동이다.

 

(2) 공공적 규제의 약화는 미디어 운동의 불안정성을 강화한다.

그렇다면, 이제 독립 미디어, 공공 미디어 영역으로 넘어와보자. (여기서 공공 미디어 영역은 주류 미디어의 공영방송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액트 1호의 “미디어 운동의 전략 가다듬기 Ver.0.9”를 참고하기 바란다) FTA를 대하는 미디어 활동가들의 정서 속에는, 미디어 영역에 관한한 약간은 스크린 쿼터에 대한 정서와 유사한 점이 있다.

영화산업내부 혹은 자본주의적 영화시장구조 바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스크린커터에 언제나 이중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지지는 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닌데...” 이런 식의 정서 말이다. 이런 정서는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 스크린쿼터가 그 자체로는 내국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는 규제이고 컨텐츠의 문화적 정치적 성격과는 무관한 것이니만큼 탐탐치는 않지만, 시장규모에 의해 그 규모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국적 자본의 이해가 영화산업 노동자의 이해가 부분적으로 일치할 수 밖에 없고, 산업내의 한국영화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초국적자본의 컨텐츠에 비해 보다 비판적 성격과 다양성을 확보할 가능성(필연적으로 현실은 아니다)이 크니만큼 지지는 당연하다. 문제는 이것이 문화다양성 담론의 주요축이 되면서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공공적 의제들이 상대적으로 배제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주체의 면에서 보자면 주류영화산업이 스크린쿼터를 하위범주로 끌어내리고 새로운 문화다양성 의제를 제안하고 연대를 확장할만한 의지와 판단력이 부족했고, 영상운동 진영이 보다 섬세한 논리적 무장과 의제를 강제할만한 조직적 실천이 부족했던 탓이다.

물론 FTA는 다르다. 지겹게 반복해서 얘기했지만, 이건 우리 삶의 전반을 옥죄는 전방위적 공격이니까. 그러니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니 미디어 운동은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있게 투쟁할 수 있다...만은 아니다. FTA 과정에서 드러나는 직접적 표현은 주류 미디어의 용어로 되어있으나, 그렇다고 이것이 주류미디어만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아울러, 주류미디어의 문제는 미디어운동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크린쿼터와 느낌은 비슷해도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 현실에서는 겹쳐지는, 몇가지 초점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1) 주류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첫째, 우리의 운동이 공공성을 강조하며 그것을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시장과 공공성, 비판적 실험적 성격을 근간으로 하는 비시장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 운동의 구분법이며, 부분적으로만 법제로 공인되어있을 뿐이다. 사실 이 영역에서도 다른 의미의 판매, 수요와 공급, 보조금 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마치 정보통신의 개념처럼 시장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초국적 자본의 입장에서 우리의 비시장 영역이 확대되고 그것이 공적자원을 확보하면서 시장을 위협하면 그것은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NAFTA 11조의 예처럼 공격은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우리로서는) 황당한 해석은 노동운동에서는 국지적으로는 언제든 벌어졌었다. 예를 들어, 삼미특수강 노동자의 고용계승요구투쟁에 대한 포항제철의 화답은 안티포스코 사이트의 로고가 포철의 로고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지적재산권침해를 근거로 한 가처분신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내의 비영리 공공 미디어 지원이 존재한다는 것은 근거로 미국에 대해 양보를 요구할 수도 없다. 미국 정부는 이런 지적에 대해 미국 내의 우리 미디어 운동 동지들의 활동 근거를 공격하는 것으로 화답할테니까.

둘째, 공공적 미디어 영역의 본격적인 형성이 이제 겨우 5년 정도를 경과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특히 공공적 미디어 영역이 제도적 형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이 영역은 특히 FTA및 그 후폭풍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놓일 수 있다. 그것의 작동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에서 언급한 보조금 지원에 대한 공격이며, 다른 하나는 전반적인 공적 지원의 축소에 따른 국내 규제 및 지원기구의 공격이다. 특히 후자의 공격은 이런 모양일 것이다. 정부 기구 측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며 비효율적인 부분은 자생해야 한다고 우길 것이며, 이에 대항하는 정당한 투쟁에 대해서는, 필요하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우선순위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는 읍소로 이어질 것이다.

2) 주류 미디어의 문제는 미디어운동 전체의 문제다.

만일 현재의 주류미디어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우리의 미래는 주류미디어와 무관하다. 하지만 미디어 운동이 계속해서 현재의 수준을 고집하거나 혹은 현재의 영역 구분법에 만족하는 것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하면 미디어 운동이 사회 전반의 변혁과 그와 함께 진행될 미디어 전반의 변혁을 자기 과제로 삼는다면, 주류 미디어는 저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첫째, 비록 지금도 문제가 많지만 지금보다 더 상황이 심각해져서 “소비를 부추기고 우리의 이야기를 외면하는, 자본의 통제를 받는 프로그램만이 방송에서 판을 치게”되면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하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미디어의 대중장악력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다수 민중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의 생산적 경험이 실종되기 때문에, 전체 운동과 미디어 운동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건 보다 바람직한 상황에 비교한 상대적 비교를 뜻하지 절대적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초국적 자본이 국가보다 (수사적 표현인데) 우위에 서는 것은 다시 말하면 국가권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약화는 현재 넓은 의미의 국가 영역에 대한 변혁운동의 개입이 매우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류 영역의 근본적 변화와 공공 미디어 영역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미디어운동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러한 미디어운동 및 변혁운동의 성장과정에서 있게 될 국가 성격의 질적 전환 국면에서 역시 상당한 제약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쉽게 예를 들면, 현재라면 정책담당자의 결정에 의해 쉽게 이루어질 어떤 중요한 정책 결정이, 그 때는 제국의 질서를 위배하는 국제적 반역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퍼블릭 액세스 컨텐츠에 대한 전폭적 지원은 경쟁을 저해하는 것이고, 민중무역협정은 FTA를 위배하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면, 이러한 미디어 운동 진영의 FTA와 미디어의 연관관계에 대한 이해의 심화는 FTA가 만일 타결될 경우 구체적인 조항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원칙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부차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3) 저지운동은 필연적이지만, 운동의 성장은 필연적이지 않다.

다시 요약할 필요도 없이, 그러니 운동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어떻게 운동해야 할 것일텐대,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어차피 갱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또다른 갱신을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어떤 고민이 필요할지는 이미 많은 실천가들 사이에서 제안되고 논쟁되고 있고, 다음 장에서 그런 얘기를 정리도 해보고 몇가지 이야기를 덧붙여보려 하는데, 그전에 이점은 분명히 하자.

FTA는 반드시 저지해야 하지만, 저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저지하며 성장”하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100% 저지는 이루지 못해도, “파열음을 내며 성장하자”까지는 가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 과정을 거쳐가면서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떻게 현실을 바꿔가며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FTA의 전방위적 성격을 거꾸로 포착해서 주류를 포괄하는 새로운 전략의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그것만큼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운동의 단계에든 100% 성공의 보장은 없으며, 짧은 패배라고해서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후회없는 싸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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