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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4호 사회운동과 미디어] FTA, 미디어 ,미디어 운동 ② - 총체적인 FTA, 총체적이어야 할 미디어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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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4호 / 2006년 8월 14일

 

 

FTA, 미디어 ,미디어 운동 ②
- 총체적인 FTA, 총체적이어야 할 미디어 운동

 
김명준 ( 미디액트 소장 )
 
[참고] FTA, 미디어, 그리고 미디어 운동 ①- ACT! 제33호
 
깨닫는 만큼, 나아기기
 
미디어 운동이 FTA 국면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를 명백히 밝혀낸다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다. 그건 필자가 제작현장에서 뛰고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서로 분화된 공간 들에서 정확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전략을 그리고 있는지 혹은 전략이 아예 없는지 현재로선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 활동가들과의 논의를 통해서 이 글을 정리하긴 했지만, 공백과 갈증은 여전하다. 사실, 이런 연계의 공백 자체가 우리 운동이 처한 현실인데, 그것은 단순한 정보의 공백이 아니라 연결과 분산과 집중이 원활하지 못한 운동의 근본적 한계이며, 우리가 빠른 시일안에 극복해야 할 답답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를 전제로 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어떤 과제가 있을지 정리해보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이른바 FTA 국면을 그러한 집중적인 사회적 투쟁의 전선이 없는 시기 (일종의 일상적인 투쟁의 시기라고나 할까?) 와의 차이를 밝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보자. 말하자면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인가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집중적인 투쟁의 시기는 그렇지 않은 시기와 무슨 차이가 있고, 그 기간 동안 우린 무엇을 해야할까 ?”
87년부터 대중운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어떤 특수한 이슈, 혹은 특수한 공간, 특수한 일정 등이 운동이 주요한 돌파지점으로 부각되고 그에 대한 역량의 집중이 진행되었던 경험은 이미 적지 않다. 특히 미디어 운동의 입장에서는 92년의 대선, 97년의 총파업, 02년의 발전노조 투쟁, 03년의 NEIS 반대투쟁 등은 고정된 조직체계의 틀을 넘어서는 연대의 실험이 이루어졌던 주요한 계기들이다. FTA 반대투쟁의 시기는 한편으로는 이런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투쟁의 시기 중 하나이면서, 90년대 중반이후 일상적인 삶을 옥죄어온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완성이자 전환점을 둘러싼 격돌의 시기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 중요한 시기마다 열심히 활동하긴 했지만, 막상 그러한 특수한 시기가 묵은 관성을 깨고 다음 단계를 예비하는 시기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활동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조금 과장섞어 얘기하자면, 우린 어쩔 수 없이 일상적인 활동을 벗어나서 다른 방식의 활동을 진행하고 그것이 마무리되는 순간 다시 복귀했던 것이지 (물론 다른 방식의 활동에 지나친 무게를 싣고 투쟁이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대를 고집하는 또다른 모습의 관성이 이런 식의 관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어떻게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FTA 국면은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다. FTA의 총체적 성격은 서로 다른 운동을 모아내고 운동의 전략 프레임을 키워내며 그것을 검증할 기회를 제공하며, 사회 전반의 재편을 논쟁의 초점에 놓게 하는 FTA 국면을 미디어 운동의 발전 단계라는 틀에서 인식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결합될 수 있다면, 우린 저지하며 성장하든, 파열음을 내며 성장하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의 주장이 결국 잘못된 것들로 판명이 난다고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정확히 인식하자. 긴급한 현실의 요구에만 부응하다보면 전략이든 프레임이든 모두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수준만큼 우린 전진할 수 있다.
그 객관적 파악에 기초한 과제들을 여기서는 네가지로 나누어 접근해보겠다. 그것은 미디어 영역간의 역학, 소통구조와 콘텐츠의 상호관계, 정치적 기획, 조직적 재편 이라는 네 개의 축이다. 이미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이것은 콘텐츠 재생산구조 전반의 지속적인 재구성 모색이라는 미디어 운동의 고유한 임무를 기준으로 한 분류방법이다.
 
1,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 목표의 하나로서, 미디어 운동 영역간의 역학을 만들어가기
 
조금 큰 질문이지만, 이렇게 질문해보자. 미디어의 영역에 있어서, 우린 과연 지금보다 총체적인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
누구나 실감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7월 한달을 지나오면서 많은 활동가들은 이른바 여론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활동가들 말고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 듯 했던 FTA는 갑자기 여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노동조합이 특권층(?)으로 몰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흔치 않게 여론조사 결과는 대다수 국민의 FTA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 것은 아무래도 PD수첩의 방영과 그에 대한 정부의 몰지각한 비난이 있으면서였다. KBS에 이어서 (물론 그래봐야 KBS도 <KBS 스페셜> 한 프로그램 정도였지만) MBC의 PD수첩이 방영된 직후 반대 여론이 득세하면서부터 미디어 활동가들 사이에는 묘한 이중적 정서가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FTA반대운동의 목표에 걸맞게 저지 여론이 강해지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류 미디어의 프로그램, 그것도 몇 개 되지도 않는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여론의 방향을 바꿔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 이런 것이었는지는 분석해봐야 할 일이지만) 무력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느낌에 머무르지 말고, 현실로 들어가보자. FTA국면에서 나온 몇 안되는 주류 방송의 프로그램들은 다음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것은 이른바 개혁적 수장이 들어섰다는 방송국 전체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나온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 부분적인 공적 공간이 계속 위축되면서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방송사 내부의 위계구조가 부분적으로 무너지면서 경영측의 개입이 이전처럼 무차별하게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둘째, FTA 사안이 지닌 전방위적 성격에 대한 접근은 FTA 반대운동의 전문성 및 국제적 연계와 투쟁 대오, 그리고 방송사 외부 미디어 운동 진영의 거칠지만 발빠른 실천과 조직적 재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 고립된 소수에 불과한 방송사 제작진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종합해본다면, 그러한 프로그램이 이 정도의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과는 같지 않지만 여전히 강력한 지상파방송이 지닌 소통구조의 힘 및 이른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제작진의 역량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방송사 외부의 운동 진영과의 연계 및 지원에 결정적으로 힘입은 것이었다. (그 과정의 구체적인 분석은 아래에서 얘기할 운동 진영의 연계 과정에서 분석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잡아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끝물이고, 어떤 면에서는 시작이라는 것이다. 독재정권과의 투쟁을 막 빠져나온 (주로 지상파 방송사의)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재편 과정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으며, 방송사의 바깥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발전시켜온 독립/공공 미디어 영역의 활동가들은 강한 증오와 약간의 애정을 갖고 이들을 바라볼 뿐, 점점 끝나가는 한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기운은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운동이 발전하는 것에는 딱히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과학적 접근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고) 이러든 저러든 할 일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지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 미래의 미디어를 만들어가기 위한 운동의 과정이 가능하면 서로 다른 영역간의 상호 유기적 연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며, 이번 FTA국면의 상황은 거꾸로 그러한 연계의 전략을 빨리 만들어내고 실천하라는, 현실이 활동가들에게 외치는 마지막 호소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 연계의 과정은 두 가지를 함축할 것이다. 하나는, 주류 방송사 내부의 일부 노동자들이 지금과는 다른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소속이나 직능이나 직급이 아닌 정치적 지향에 따른 네트워킹의 구축을 통해서 비판적 콘텐츠의 소통을 위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대안적 방송 모델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모색하며 소속, 직급, 직능 분야로 그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네트워킹의 과정에서 독립/공공 미디어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연계하며 공동실천의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방송구조의 혁신이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것은 주류의 경험과 독립/공공 영역의 전략과 경험이 충돌하고 종합되면서 대안적 방송 모델의 주요한 키워드인 참여와 다양성을 확대하는 과정을 조직하는 것이다. (영화산업 분야와의 연계 역시 비슷한 지점을 지니고 있으나 프로듀서와 스탭 간의 상호관계의 차이 및 콘텐츠의 차이 때문에 다른 메커니즘을 조직해야 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분석하기로 한다)
아울러 이러한 네트워킹과 연계의 확대는, 공영방송이나 스크린 쿼터 등 주류 미디어의 전통적인 공공적 개념을 수호하는 것을 뛰어넘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전반의 공공성 및 소통의 권리 개념을 재구성하고 이것을 민중이 자신의 미디어 전망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주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물론, 현장에서 카메라 들고 뛰어다니고 편집실에서 졸린 눈을 부벼 뜨며 제작하는 독립 미디어의 활동가들이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조건과 연계 속에서 활동하게 할 이런 변화가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과연 그러한 네트워킹의 주체가 주류 미디어 내부에서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도 미지수이다. 다만, 공공성의 혁신과 의제 및 연대의 재구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이런 총체적 연계의 구조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앞으로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미디어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에서, 전선에 함께 선 방송사 내부 주체들과의 연계는 FTA 국면에서 반드시 시도해야 할 과제이다.
 
2, 그 무엇보다도, 콘텐츠와 소통구조를 확대하기
 
다음 이야기는 언제나 힘겨운 창작과 소통의 문제다. 우선, 첫 번째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아직 현실의 제작과 소통구조는 첨예하게 두 개로 분리되어있다. 그것은 주류다운(?) 주류와 퍼블릭 액세스 구조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독립되어있는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고립되어있기도 한) 대안/독립 미디어 영역이다.
여론이 FTA 반대로 돌아서기 직전까지, 이런 표현을 자주 듣고는 했다.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왜 티가 잘 안날까 ?” 물론 어찌보면 당연하다. 제작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만들어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만큼 배급과 소통의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구축되어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건 이상한 현상이기도 하다. FTA를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들 하지만 FTA만큼 보편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다가올 파괴적 영향을 설명할만한 소재도 없다. 게다가 80년대부터 발전해온 각종 대중조직이나 시민사회단체의 네트워크,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상당 부분 보장되어있는 인터넷 공간 등은 대안/독립 미디어 운동이 다른 운동의 주체들과 함께 가꾸어온 소중한 자산이니까 말이다.

더 총체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약간의 직관으로 살펴보면 여기에는 전통적인 운동의 관성과 새로운 운동의 미성숙이 함께 만든 악순환의 사이클이 있다. 현재의 운동은 두 개의 전선을 통해서 움직이고 있다. 하나는 조직을 중심으로 구성된 범국본이라는 시스템이다. 범국본은 그 내부에 다양한 쟁점과 한계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속된 조직들중 특히 대규모 대중조직들은 분명 소중한 교육과 소통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산적인 운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중조직에 일상적으로 결합되어있는 미디어 활동가들은 그 수자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FTA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쉽지 않은 반면, 그러한 대중교육 체계와 결합해보려는 새로운 활동가들은 관료들의 관성에 부딪쳐 쉽게 좌절한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대중이 따라오기 힘들다는 평가는 상당 부분 간부들이 따라오기 힘들다는 고백인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전선은 인터넷을 비롯한, 대중조직체계 외부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다. 한국 사회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이미 촛불시위의 사례에서 보듯 이 공간은 새로운 소통과 투쟁의 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아직 정서적 호소와 개혁적 동원을 넘어서서 급진적인 정치적 교육과 설득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전환되지는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공간에 초점을 맞춘 실천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 두 개의 커뮤니케이션 전선이 지닌 딜레마, 미디어 운동의 이중의 공백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아직 두 개의 공간은 콘텐츠 수용주체들의 태도에 있어서나 콘텐츠의 성격에 있어서나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게다가 그 차이는 그 내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 의해 과장되어 있기까지 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고 극복을 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작은 실천들과 문제제기들이 계속해서 터져나와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분적인 분석을 넘어서는, 기술적/사회문화적 변화를 고려한 소통 구조 전반의 전략을 집단적으로 함께 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후자의 경우를 조금 더 설명해보면, 그것은 주류 미디어 부분을 상대적으로 독립된 영역으로 일단 놓아두고, 독립/공공 미디어 영역에 초점을 맞추서 세 개의 소통구조 (퍼블릭 액세스 - 인터넷 - 대중조직 체계), 세 개의 소통형식 (방송 - 상영 - 온라인), 세 개의 수용층 (대중조직 - 진보적 공동체 - 전체민중)을 포괄하는 현재의 운동에 대한 진단과 전략 모색이 전국적 규모에서 서로 다른 운동 주체들간에 틈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FTA 반대 투쟁 과정은 이렇게 부분적인 활동에 여념이 없는 주체들이 스스로를 전략적 운동의 한부분으로서 진단해내고 새로운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다. 힘들지만, 아마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다는건 이런 정도의 댓가는 치러야만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주류 미디어 영역은 첫 번째 항목에서 언급한 실천이 진행됨에 따라 전체 전략의 한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독립/공공 미디어 영역은 주류와는 퍼블릭 액세스 구조라는 연계 고리를 지니는 ‘독립’ 전략을 계속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상영회, 퍼블릭 액세스 (열린채널-케이블-RTV), 대중조직의 교육체계, 인터넷 (참세상, 미디어문화행동, 에프키라 등) 등으로 분화되어 있는 소통 공간들은 어느 시점에서 서로의 공간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천을 집단적으로 소통하며 공유된 전략을 (어떤 도그마가 아니라 다양성과 집중성을 함축하는) 자신의 공간에서 검증해나가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범국본 체계는 조직 자체로는 이런 공유를 하기가 불가능하며,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는 이런 공유의 공간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집중된 논의를 끌고 갈만한 결속력을 갖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프레임을 전제로, 콘텐츠는 매우 다양한 형식와 내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콘텐츠의 활성화를 위해 다음 세가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첫째, FTA에 대한 콘텐츠들이 일관되게 함축해야 할 관점은 이 투쟁이 넓은 의미의 신자유주의적 발전 전략과 대안적 발전 전략간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좋은 FTA와 나쁜 FTA, 혹은 잘 준비된 FTA와 미숙한 FTA의 구분이 혹시 대중조직 수준에서 고착되더라도, 미디어 운동은 끈질기게 이것을 돌파해야 한다.
두 번째, 콘텐츠의 확보와 확대를 위해 분석과 수급과 공간창출이 FTA국면 동안 의식적으로 시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한 일상 구조를 만들어내는 독립적 제작/조직주체 및 공공 미디어 영역 주체의 준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의식적으로 있어야 한다. (미문동이나 에프키라 등의 지금까지의 성과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창작과 참여를 자극하는 공간의 창출, (노동 영화제와 인권영화제의 성과를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초점에 둔 콘텐츠의 일상적 확보를 위한 시스템의 강화, (간헐적이고 대부분 현학적인 학습을 넘어서는) 수급가능한 콘텐츠의 분석과 분석을 위한 수급 시스템의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들이 아니다. (여기서, FTA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소재로 한 진보적 콘텐츠들의 사례에 대한 분석과 현재 생산되고 있는 한국 미디어 운동의 콘텐츠들에 대한 분석은 다음 기회로 넘기자.)
세 번째, 최근 FTA에 대한 반대여론이 웹상에서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면서 어떤 견해를 표현하려 하거나 혹은 그것을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표현하는 활동들 (그 대부분은 익명이라 과연 그 주체들이 전통적인 개념의 활동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도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의 범국본 웹사이트가 보여주듯 그러한 활동이 어떤 모델로서 전개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온라인 멀티미디어 소통 구조의 등장에 따른 전체 미디어 콘텐츠 소통 구조의 변화에 적합한 전략이 무엇인지, 최근의 성과에 대한 평가와 현재 및 가까운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 검토가 정말 시급하다.
 
3, 힘겹지만, 미디어 전략과 정치적 기획을 통일시키기
 
여기서 언급하려는 것이, 이 소제목과 그리 걸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초점을 맞추어보려는 것은, 우리 운동이 그동안 쌓아놓고 쌓아온 해묵은 과제의 하나이기도 하고, 전세계의 운동이 맞닥뜨리고 있는 보편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표현하기도 쉽지 않고, 해결이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르는척만 해서는 여전히 모두를 힘들게 할 과제 말이다. 그리고, FTA는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아직도 이러네”라는 한숨과 “그래도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동시에 갖게하고 있다. 좋게 보자면, FTA는 정치적 허무주의를 어느 정도는 날려버리고 있고, 그동안 해온 운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가속하고 있다. 두가지로 나누어서 점검해보자.
우선 첫 번째는 미디어 활동가의 정치적 긴장, 기획의 문제이다. FTA국면이 되면서 생겨난 한가지 반가운 현상은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 실천에 대한 참여, 처음 제작에 입문한 사람들의 정치적 긴장 등이 큰 폭으로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한편, 그동안 이른바 일상적 시기의 운동들이 그런 긴장과 인식을 강화하는데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인식과 긴장을 일상적으로 가져가는 것, 쉽지는 않다. 게다가 이것은 연대의 확장, 전략 프레임의 혁신과 맞물리며 진행되어야 하는 주체의 재구성 과정에서 제대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집회 열심히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일상적인 시기와 지금과의 차이를 냉철하게 구별하고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구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준비가 지금부터라도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소통 및 교육의 체계를 정비하면서 이것을 현재의 활동 과정과 연결시키고 동시에 지속적인 구조로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은 특히 하반기 동안에 놓치기 쉬운 그러나 주목해야 할 과제이다.
두 번째는 현재 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두가지 문제다. 하나는 그것이 대의제라는 것이다. 대의제는 한편으로는 불가피하면서 그 내부에 그것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인식과 보완 장치가 없으면 억압기제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 현재, 주체의 직접행동과 자율적 판단을 억누르는 관료적 구조의 문제는 심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직접민주적 요소, 철학의 관철이 시급하다. 다른 하나는 독점과 고립의 문제다. 운동 내부에서도 대의제에 포괄된 주체만을 고려하는 기획을 진행하면서 그 내부의 책임있는 지도부분 내부로 모든 정보 및 정치적 판단이 집중되는 경향이다. 결과적으로, 정보는 독점되며, 소속되어있지 않은 주체는 계산 바깥에 존재하며 그럼으로써 그 경계의 안과 밖에 있는 주체들은 서로 고립된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 다시 말하면 급진적 변혁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계기에 관해서는, 필자의 짧은 소견과 이 좁은 지면으로는 제시할 엄두를 내기도 힘든 성질의 것이다. 한가지 단서만 언급해보겠다. 그것은 바로 수년전부터 제기되고는 있지만 아직 현실 운동의 주요한 국면마다 실종되어버리는 의제로써, 소통 전략, 문화 전략이 운동의 보편적 내용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공식적 운동 구조들은 미디어와 문화를 의미있는 영역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해당 부분운동의 주체에게 정당한(?) 대접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문제를 운동의 핵심 키워드로 사고하고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실종은 곧 민주주의와 교육의 전면적인 실종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경로는 다양하겠지만, 하나는 현재 수준의 공식적 의사 결정 구조에 미디어/문화 운동이 책임있는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문화 운동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든 말든 스스로를 전체운동의 대의를 실현하는 보편적 주체로서 사고하고 그에 기초한 입장을 제출하고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종합해보자. 미디어운동이 현재 포괄하는 각 주체들의 정치적 단련, 정치적 표현, 그리고 포괄해야 할 주체를 위한 시스템의 구축, 이러한 활동을 통한 전체 운동의 혁신이 곧 정치적 기획의 내용이며, 그 과정에서 미디어 전략과 정치적 기획은 통일되어야 한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전체운동의 정치적 기획을 형성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제이다.
 
4, 더 유연해지고 강력해지기 위한, 조직 재편의 예감, 예비
 
마지막 이야기, 이 모든 활동은 결국 조직의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조직의 문제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멤버쉽을 가진 조직을 얼마나 크고 멋지게 만들어내느냐의 얘기가 아니라, 조직/네트워크들의 변화, 조직/네트워크들의 관계 변화, 독립/공공/주류 영역의 관계 변화를 모두 포함하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우리 운동은 한편으로는 소수자의 운동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를 바꾸고자하는 운동으로서 다양성과 집중을 동시에 안고 가야 하는 운동이기에 ‘조직’의 문제는 한 단계 운동의 종합이면서 다음 단계 운동의 출발이다.
FTA국면은 이런 특수한 국면이 언제나 그랬듯이 이점에서 새로운 상황을 안겨주었다. FTA국면은 기존의 미디어 운동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판단 속에서 개별 조직의 역할과 네트워크 및 한시적 연대체계의 역할을 재구성하는 것, 다시 말하면 기존 운동의 관행과 공백에 대한 판단을 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돌파하는 새로운 운동의 실험을 위한 계기를 제공했다. 그 결과 미디어 운동의 영역에서 보자면, FTA 직전에 미디어문화행동이 결성되면서 FTA국면으로 이어졌고, 독립영화실천단이 결성되면서 독립/공공미디어운동의 실천 구심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고, 여기서는 현재의 연대 활동이 그전과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 주목하자. 한국의 미디어 운동에서 연대 활동의 경험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92년 대선 당시에 최정점에 이르렀던 독립영화의 연대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97년 총파업이후 02년 발전 노조에 이르까지의 과정은 주로 노동운동에 대한 일상적 결합을 자임한 조직들간의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지난 10여년의 경험은 영화운동 진영의 해체와 계급운동 결합 조직의 집중이라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던 반면, 이번 FTA의 경우는 영상운동을 중심으로 한 결집이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각 운동 영역이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운동이나 노동자영상패 등과 독립적 영상운동간의 긴밀한 결합이 없고 또한 지역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은 활성화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드러내지만, 독립/공공 영역의 다양한 영상제작 주체의 연계가 활성화되고, 비록 서로 다른 주체간의 여러 가지 긴장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상당한 공감 또한 무시할 수 없을만큼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의 분화와 어느 정도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공감이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과도기적인 것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및 소속 단체/개인,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노동자영상패, 미디어문화행동, 참세상 등 정보통신운동 관련 조직, (아직 형성 단계인) 미디어센터 네트워크 등 서로 위상과 역할이 다르면서도 현재 미디어 운동의 과제를 공유하는 조직체계 및 네트워크들은 각각 특수한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아직 그 조직적 형식들은 유효하지만, 새로운 분화 및 수렴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천단 및 각 조직의 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 및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고, 여기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자. 실천단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시스템은 한편으로는 당면한 실천을 위한 대응 조직으로서 계절적으로 혹은 예상치않게 필요하게 되는 집중적인 연대의 모델을 실험하며 합의하여 그 결과를 보다 정식화된 형태로 남기는 것으로서 기본적인 임무를 다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일상적인 활동의 성과와 한계가 어떻게 이런 비상한 국면에서 드러나는지를 각각의 조직/네트워크/영역에서 평가하도록 자극해야 하며 (일상활동의 성과 측정), 거꾸로 각각의 조직/네트워크/영역은 자신이 현재의 국면과 이 국면이후의 상황에서 어떻게 큰 틀의 조직적 재편이 필요한가(일상활동의 한계 고백)를 준비하고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중간 점검은 올 여름과 가을에 의식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프로그램의 하나이며,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주의해야 할 지점은, 현재 존재하는 각종 조직들의 상황에 대한 평가와 점검만이 전략 프레임을 해명하는 충분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중인 문성중 감독 연행에 대항 항의 투쟁의 과정은 소통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기본권 투쟁으로서의 연대를 확보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연대의 폭을 확장하며 기본권과 조직적 시스템의 관계를 성찰하는 계기이며, 거리의 투쟁과 법적 투쟁을 결합시키는 역량 확대의 매개이다. 개별 조직과 그 조직들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조직들 내외부에 있는 다양한 주체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대해 현실의 투쟁과 이슈를 매개로 주목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조직의 문제는 해명되지 않는다.
 
거품과 답답함을 모두 넘어서서
 
FTA국면은 이제 초기의 거품도 꺼지고, 중반부의 답답함도 넘어갔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이제 어느 정도는 안팎의 신화를 깨뜨린 셈인 시점에서, 남은 기간 동안의 실천을 위한 어설픈 제안 정도로 보면 되겠다. 잘 정리되기 힘든 이야기를 쓰다보니 어렵게 되어버려 안타까울 뿐인데 (정확하면 쉬워진다!), 악조건 속에서나마 현재의 운동을 낳게 했으며 다음을 예비할 수 있게 해준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며, 하반기의 새로운 운동을 모두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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