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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6호 퍼블릭액세스] ‘닫힌채널을 열어라’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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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6호 / 2006년 11월 16일

 

 

‘닫힌채널을 열어라’ 제작기
 
막 심 ( 다큐영상집단 아메바, 닫힌채널 )


다큐멘터리 ‘닫힌채널을 열어라’
아메바 / 2006 / 27분 / DV / 컬러공영방송 지상파 유일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KBS 열린채널! 지난 3월, 다큐영상집단 아메바는 부푼 꿈을 안고 열린채널에 분신과 같은 작품을 접수하는데... 최종 선정되어 지난 5월 온전히 방영되기까지 KBS 지원팀에 의해 자체편집, 이중심의 등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당한 처사를 경험하게 된다. 불방영의 위기를 겪으며 KBS와 어렵게 싸워야했던 아메바는 분노하며 질문한다. ‘열린채널, 넌 뭐야?’ 열린채널에 참여했던 시민제작자들과 퍼블릭액세스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 열린채널 운영상의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KBS 열린채널 운영주체들에 의해 직접 해명을 듣고자 찾아나섰다.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닫힌’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열린채널’을 퍼블릭액세스권 쟁취라는 시각으로 확장하여 평가해본 시민제작자의 문제제기성 작품.
 
열린채널? 헉! 막심이 상처받다.
 
많은 시민제작자들에게 열린채널은 어찌보면 ‘꿈의 방송’이다. 공중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크게 노출시킬 수 있는 ‘열려있는’ 채널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지난 3월, 모 NGO와 7개월간의 지난한 제작과정을 거쳐 드디어 열린채널에 ‘우리안의 다문화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작품을 접수했다. 이 작품은 소외받고 있는 국제결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사회 안에 공존하는 건강한 다문화 가족이라는 시각에서 기획된 24분 분량의 제작물이었다. 그러나 KBS시청자소위원회의 작품 심사 후 12분물로 재편집하여 재심사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고, 아쉽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안의 다문화가족’이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작품은 재심사되어 결국 선정이 되었고 5월 방영을 앞두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보증보험에도 가입했다. KBS 미디어 권력 앞에서 순진한 양 마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5월 방영날짜 불과 5일 전, 친절하게 KBS 시청자서비스팀에 보증보험을 가입했다고 확인전화를 했더니 어처구니없게도 내 작품이 40초 오버되어 인터뷰 하나를 삭제했단다. 이런~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내 작품의 시간이 오버되어 편집이 불가피했더라도 어떻게 시민제작자에게 단한마디 상의 없이 그저 알아서 싹둑 편집을 해버린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전화를 해서야 비로소 통보하듯 얘기하다니... 드디어 나는 부당함에 민감한 막심이로 돌아와 분노하기 시작했다. 불방영이 될지라도 내 작품에 손을 대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고 나의 이런 완고함이 KBS 시청자서비스팀을 당황하게 만들었나 보다. 물론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내 작품과 같은 시간 방영되는 다른 시민제작자의 작품을 40초 삭제 편집하는 것으로 해결을 봤단다. KBS 시청자서비스팀의 행정 편의주의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단한마디 사과 없이 결국 다른 시민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좋게 해결을 봤다고 얘기하는 그 행태! 이미 열린채널에 대한 신뢰는 깨/졌/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KBS 자체심의 결과 내 작품의 자막에 문제가 있어 방영하기가 어려우니 수정을 하란다. 다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KBS 자체심의 결과서를 보내 달라 요구하고 확인한 즉, 내 작품 속에 명기된 “중국이주여성”을 “이주중국여성”으로, “필리핀이주여성”을 “이주필리핀여성”으로 표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이주여성과 필리핀이주여성이라는 표현은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관련 NGO들이 사용하는 관례적인 표현인데다, 더군다나 12분물로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필리핀이주여성이라는 표현은 아예 내 작품에서 삭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또 완강히 자막 수정을 거부했고 결국 미디액트의 도움을 받아 공식적으로 KBS에 이 이중심의 문제를 재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시민제작자 일개인의 이의 제기에서 단체가 개입되는 양상을 띄자 KBS의 태도가 바뀌었다. KBS로부터 자막수정 없이 그냥 송출하겠다는 답변을 최종 얻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다음날 ‘우리안의 다문화가족’은 온전히 방영되었다. 오~ 미디어 단체의 힘! 시민제작자들의 결집된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분노를 이고 시작한 ‘닫힌채널을 열어라’
 
결국 ‘우리안의 다문화가족’은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열린채널 공중파를 통해 온전히 방영되었다. 사실 이렇게 처음부터 진행되어야하는 부분을 지난한 과정의 싸움을 통해 간간히 감정싸움으로까지 키워지면서 너덜너덜 마음의 상처를 더한 채 방영을 관철시켰던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남는 이 찜찜함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어떤 문제보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했다. 사회적 약자 운운하며 소외된 계층의 현실을 얘기하기에 앞서 내가 현재 위치해 있는 퍼블릭액세스의 장을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는 절박함이 앞섰다. 이것은 시민제작자로서의 내 정체성과 직접 연관된 것이었으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이를 계기로 나는 열린채널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디액트를 통해 나처럼 이미 열린채널로 왕상처 받은 영혼들과 또 앞으로 열린채널에 참여할 시민제작자들, 또 퍼블릭액세스 전문가들을 다수 만나게 되었다. 상처에 대한 치유는 상처받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이를 공감하는 사람들의 연대로 가능한가 보다. 이미 미디액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열린채널 문제해결을 위한 모임이 있었고 이 곳에서 내 문제는 빙산의 일각임을 알았다. KBS자체 내 이중심의, KBS 시청자서비스팀의 행정편의주의적 집행, 제한된 편성시간, 제작자 보호장치 부재 등등 퍼블릭액세스의 몰이해에서 오는 열린채널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시민들에 의해 쟁취해낸 열린채널 5년의 역사. 딱 그 역사만큼 시민제작자들이 그동안 꾸준히 열린채널과 싸워왔다는 것도 알았다.
우선 열린채널에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제작자들의 자발적 조직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6월, 일명 꿈돌이(김이찬)를 대표로 열린채널 정상화를 위한 시민제작자 모임 ‘닫힌채널’을 결성했고 ‘닫힌채널, 다친채널’ 까페(http://cafe.naver.com/shutchannel.cafe)를 통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먼저 열린채널에 대한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나 막심이와 상미가 주축이 된 아메바팀이 이를 맡기로 하였다. 급한 대로 8월말 열린채널 접수를 목표로 7월 초부터 후다닥 시작한 게 바로 이번 작품 ‘닫힌채널을 열어라’다. 부당함에 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분노가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듯, ‘닫힌채널을 열어라’는 나의 작은 분노를 넘어 그동안 시민제작자들이 열린채널을 통해 겪어야했던 수많은 상처와 좌절, 분노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기대와 열린채널을 올곧이 시청자의 것으로 재사수해야 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된 그야말로 열린채널에 대한 문제제기성 작품이다.
 
작품 제작과정이 또 열린채널에 대한 투쟁의 기록
 
열린채널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각이 중요했다. 시작은 가슴에서 출발했지만 핵심을 바라보는 눈이 행여 그 분노에 의해 가려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열린채널에 대해 얘기해줄 운영주체들, 방송위원회, KBS 열린채널 시청자소위원회, KBS시청자위원회, KBS시청자서비스팀을 상대로 공문과 메일을 계속 발송하고 전화로 확인하며 인터뷰 섭외를 요청할 때마다 거절당하기를 여러 번. 운영주체들의 무성의한 인터뷰 거절에 또 다시 열린채널이 시민제작자들에겐 꽁꽁 닫힌채널임을 절감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NHK 라디오 방송은 취재에 응하면서 한국시민인 내 취재는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당하는 씁쓸한 경험도 했고, 16기 KBS시청자위원회의 우아한 해산식 뒤 켠에서 식사를 다 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모도 감수했다. 시청자위원회의 회의가 있을 때마다 KBS홀에서 우두커니 결과를 기다리다 소득 없이 돌아오기를 수차례 반복. 결국 방송위원회, KBS시청자위원회의 인터뷰를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그게 곧 실패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터뷰 요구를 통해 열린채널의 문제를 운영주체들이 알 수 있도록 홍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또한 열린채널이 문자 그대로 열려있지 않은 ‘닫힌채널’임을 한번 더 공식적으로 확인했으니 그게 또 성과라면 성과! 어쩌면 열린채널 운영주체들도 시청자를 대변하여 잠시 자리하고 있는 것일 뿐, 실제 열린채널을 얘기해줄 수 있는 대표들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닫힌채널을 열어라’에서 얘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시민제작자요, 현 열린채널 운영상의 문제를 비판하는 퍼블릭 액세스 활동가들일 수밖에 없었다.

닫힌채널! 우리 시민제작자가 연다.
 
오랫동안 열린채널 정상화를 고민해온 시민제작자들과 퍼블릭액세스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열린채널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크게 확대됐다. 열린채널은 시민의 미디어 액세스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지난 2000년 방송법에 의해 도입되어 2001년부터 5년째 공중파로 방영되고 있는 전국적인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으로서, 도입 초기부터 시민운동 진영의 힘으로 쟁취해낸 미디어운동의 성과였다. 우리는 열린채널이 KBS 공중파에 의해 방영되고 있다는 그 제한적이고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자칫 우리 시민들의 채널이 아니라, KBS에 의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라는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도 KBS시청자서비스팀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국한하여 비판하기 쉽다. 물론 열린채널 정상화는 열린채널을 바라보는 KBS의 나태한 태도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KBS가 시청자를 위한 공영방송임을 자랑할 때 항상 열린채널을 선두에 내세우면서도 실상 열린채널을 퍼블릭액세스의 일환으로 운영하기 보다는 자본의 구미에 맞는 첨병으로 길들이고 있는 그 운영실태! KBS가 시민들의 미디어운동으로 쟁취해낸 열린채널 도입의 성과를 날로 삼키고 있는 셈이다. 열린채널을 만들었을 때 모아졌던 퍼블릭액세스권에 대한 시민운동 진영의 공감대는 열린채널이 만들어지면서 어느새 희석되어 버렸고 동시에 열린채널 운영을 거대한 KBS 미디어 권력에 그대로 위탁, 이를 방치해놓고 말았다. 이는 짧은 역사에서 비롯된 ‘미디어 시민운동 세력화’ 수준의 결과였다.
열린채널 정상화는 열린채널이 처음 만들어졌던 그 초심과 상황을 다시 되새기는 데서 시작해야한다. KBS가 스스로 반성하며 열린채널을 정상화시키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열린채널의 운영권을 KBS로부터 시민들의 것으로 다시 가져와야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시민제작자들의 힘으로 열린채널을 정상화시켜보겠다는 목표로 ‘닫힌채널’이 떴다. 닫힌채널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시민제작자들은 ‘닫힌채널을 열어라’를 제작하는 동안에도 열린채널 게시판 릴레이 항의시위
와 열린채널을 바라보는 시민제작자들의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지금은 천영세 국회의원실을 중심으로 국감에 대응하고 또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독협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국 상영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열린채널이 시민제작자들의 힘으로 정상화될 때까지 ‘닫힌채널을 열어라’는 2탄, 3탄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며, 이번 첫 작품이 문제제기성 제작물로 만들어졌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2탄, 3탄은 점차 열린채널 대안에 초점을 맞춘 수준 높은 작품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도 닫힌채널 까페를 들락거리고 있다. 열린채널이라는 퍼블릭액세스의 장을 활짝 열어젖히는데 함께할 시민제작자 동지들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면서...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 시민제작자들이 닫힌채널을 통해 그 힘을 결집해나간다면 닫힌채널만 열겠는가. 그 이상으로 시민제작자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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