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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3호 이슈] [우리 신문사 사장님은 총장님] ‘열린채널’ 불선정에 부친 단상 - 초짜 제작자가 왕상처 영혼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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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3호 / 2007년 7월 6일

 

 

[우리 신문사 사장님은 총장님] ‘열린채널’ 불선정에 부친 단상

- 초짜 제작자가 왕상처 영혼이 되기까지

김아리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나는 상처받은 영혼이다. 라고 서두를 열고자 한다. 나는 공중파를 통해 내가 만든 작품이 세상에 나간다는 사실에 흥분했었고, ‘열린채널’의 ‘열린’ 취지를 굳게 믿었었다. 즉, 다시 말하자면 방영일이 언제가 되든 ‘열린채널’은 열려 있으니까 나의 작품은 당연히 방영될 것이라고 믿었다. 
‘대학 내 언론탄압’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의 직업은 대학생. 내가 대학생이기 때문에 같은 대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에 들어온 아이템이 ‘학보사’! 매주, 혹은 격주로 발간되는 학보에는 학내사안, 사회를 바라보는 대학생의 시선과 이야기가 실린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학보에는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학교 홍보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가득해졌다. 
처음 하는 영상작업이라 초반엔 많이 적극적이지도 못 하고 애매한 관찰자로 적응기간을 보냈다. 직관에 의존해서 촬영을 해 나가는 N과, 이성적 사고로 감성적인 부분까지 잡아내는 Y, 어쨌든 많은 경험으로 숙련된 그들과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고 작업은 즐거웠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처음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문제는 매우 심각했고 다양한 사례들이 속출했다. 기사검열과 편집권 간섭은 기본이고 기자의 학점 제한 학칙을 신설해 기자들을 해임하는 수법을 쓰거나, 하루아침에 언론사를 통폐합해버리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수법을 쓰는 등 그 방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학교 당국의 수법들은 결국 '학생'이라는 불완전하고 약한 신분을 약점 삼아 학생기자들이 제풀에 떨어져 나가게 하는 매우 교묘한 것들이다. 
그 와중에도 언론의 진실된 자세를 견지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혼자서 학보사를 지키며 사비를 털어서 호외를 제작하고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는 대구교대 학보사 편집장.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눈물이 났다. (난 훌륭한 사람의 얘기를 듣거나, 훌륭한 순간엔 눈물이 난다. ㅜㅜ) 무려 20명 가까이 되는 기자들이 유쾌하고 즐겁게 작업을 하는 서울여대 학보사 식구들, 처음 만났는데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동안 작업해 왔던 신문들을 불태우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던 한신대학교 영자신문사 기자들. 학생들이 운영하는 자치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예산지원의 문제를 들며 사실상의 폐간인 통합을 선고한 것이다. 이렇게 또 비판의 한 목소리가 사라져 갔고 그 날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


  거대하고 또 거대하다. 쉴 새 없이 신문을 찍어내던 인쇄소의 장관은 '말'과 '진실'이 가진 힘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진실'이 가는 길에는 일면 더 거대해 보이는 권력이 있다. 오로지 나쁜 말 듣기 싫어서, 자기 좋은 말만 남기려고 기득권을 휘두르는 이들. '비판 없이 발전 없다'라는 명제를 왜 모르는 걸까? 그럴수록 그들은 겉만 부풀려진, 한 순간에 깨져 버릴 수 있는 '공갈빵'이 될 뿐이다. 
막바지에 치달을수록 이런 문제의식이 정리되었는지 인터뷰가 익숙해졌다. 더 깊이 들어가고픈 아쉬움이 있었지만 취재원 보호라는 차원에서 사적인 욕심은 고이 접어야 했다. 이렇게 첫 번째 작업은 빡세게 진행되었고, 내 생활패턴을 바꿔야 했고, 개인적인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많으면 몇 만, 적게는 몇 천 명에 달하는 대학 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어야 하는 학보사가 학교 측에 의해서 소리소문 없이 탄압받는 현실을 담고 싶었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을 들고 KBS ‘열린채널’의 문을 두드렸다. 가까스로 마감에 맞추어 작품을 제출했고 결과를 기다렸다. 6월 11일 10시쯤 뒤늦게 눈비비고 일어나 '열린채널’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았다. <우리 학보사 사장님은 총장님>이란 제목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뭐가 문제가 됐길래?’ 라는 궁금증이 제일 컸다. 점심때쯤 걸려온 불선정 통보전화에서 납득할 만한 사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공개불가’라는 답변을 제일 먼저 들었다. 대신 구두로 요약해서 얘기해 줄 수는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매우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시청자소위원회는 21C 개성시대에 걸맞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았다. ‘몇 분 몇 초에서 어디까지 부분이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라는 정성스런 답변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듣고 싶었다. 불선정사유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담당 PD의 목소리로 모호하게 읊조려졌다. ‘학교 측과 시비소지가 있을 수 있다’, ‘내용이 산만하며 열린 채널의 취지와 맞지 않다’, ‘학보사의 최종권한은 주간교수에게 있으며 학보사 통폐합은 있을 수 있다’ 라는 이유였다. 울고 싶었다. 시청자위원회가 방송심의위원회 산하인가 싶었다. 이 무슨 기준 없는 내용검열이란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열린채널’의 취지는 시민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이다. 제약 많은 기성언론에서 접근하지 못했던 내용을 시민의 시선으로 담은 프로그램의 방영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시청자위원회가 말하는 ‘열린채널’의 취지는 도대체 무엇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정말 기가 막힌 건 세 번째 사유이다. 명백한 사견을 작품 선정의 자리에서 내세우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작품을 불선정하기 위한 이유로 공식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고, 학내 탄압받는 언론사의 이야기는 거짓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해 함께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열린채널’이라는 프로그램의 심각한 병폐를 목격했다. 지난 6월 21일에 열린 시청자위원회 전체회의 자리에 작품 불선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찾아갔다. 우리를 맞아준 것은 ‘열린’ 시청자위원들이 아닌 청원경찰들이었다. 참관요청을 했지만 시청자위원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회의록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니, 도대체 누가 ‘시청자위원회’인가 싶다. 시청자를 대표해서, 시청자를 기반으로 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이 시청자의 목소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무엇이든 무한경쟁체제로 돌입하고 있는 시대라고 한다. ‘열린채널’ 역시 한정된 시간과 늘어난 작품편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해야 한다고 한다. 모든 것이 흔들린다 할지라도 딱 하나의 중심 가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배운 상식이다. ‘열린채널’ 홈페이지에는 ‘시청자 스스로 만드는 방송 프로그램, 내용을 KBS를 비롯하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시청자 스스로가 만드는 방송 프로그램’ 이라는 글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치가 있다면 가치에 맞게 제한된 조건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열린채널’은 이런 정체성에 맞는 변화의 노력은커녕 주어진 조건 안에서 안주하려 하고 있다.
나는 이번 일로 무척이나 상처를 받았다. 그 무엇보다도 높은 ‘시청자위원회’를 맞닥뜨렸고 그 어느 곳보다도 굳게 닫힌 ‘열린채널’을 보았다. 작품을 만들면서 보았던 권력의 탄압이 현실로 튀어나와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주체가 ‘열린채널’이라는 것에 가슴 아프다. 하지만 상처받았다고 해서 감싸 쥐고 아파해서만은 안 된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혀야 한다.
얼마 전 대구교대 학보사가 그간의 노력으로 인해 학보를 다시 발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의 목소리 또한 ‘열린채널’을 통해 온전히 알려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열린채널’이 이제 그만 시청자들에게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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