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43호 현장] 불타는 액션의 강길 따라 미친년들이 여행을 하네 - [여성주의 액션박람회] -

본문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3호 / 2007년 7월 6일

 

 

 
불타는 액션의 강길 따라 미친년들이 여행을 하네 

- [여성주의 액션박람회] -

수수(여성주의 액션박람회 기획단)
 
여성인명사전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남성지식인, 남성예술가들의 이름에 둘러싸여 사방이 막힌 듯 답답했던 그 때, 그녀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얼마나 간절했던가, 또 삶의 흔적들은 얼마나 나에게 힘이 되었던가. 역할모델이라는 설정이, 우상 숭배라고 비웃음을 산대도 어쩔 수가 없다. 지독한 고립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 사회의 떠돌이 이단자 ‘여성’인 나에겐 오아시스가 항상 절실하다. 타는 목마름으로 구걸하다시피 찾았던 단 한 명의 생존의 증거. 여성의 역사란 그래서 참 중요하다.

그녀들과 함께 했던 액션의 시간으로
역사적인 여성인물들을 발굴하는 것은 지금도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체 어떤, 여성인물들을 이 ‘위대한’ 행렬에 동참시킬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는 항상 남겨져 있다. 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도 울퉁불퉁 경계가 불분명하다보니, ‘여성의 역사’라는, 단일한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다만 이런 저런 여성 역사의 결을 들출 수 있을 뿐. 유명인인 여성의 명단을 정리해 보는 것도, 생물학적 여성들의 법적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운동의 과정을 되직하게 풀어서 맛봐도 좋다. 이 외에도 아직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 삶의 날실과 씨실이 엮어내는 어떤 페미니즘의 모습은 무수하게 존재할 터.
그렇다면 지금 ‘나’와 ‘그녀’들의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어떤 궤적을 그려온 것일까.
여성주의 액션박람회는 ‘여성’의 ‘역사’를 풀어내는 하나의 버전이다. 9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주의자로 살아왔던 그녀와 나의 여성주의 액션이 만났던 접점들이 무엇이었는지 되짚고 싶었다. 또 미래엔, 또 지금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어떤 액션들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할지 알고 싶었다. 이런 궁금증, 이런 고민들이 바로 여성주의 액션박람회를 기획한 이유다.

너나, 나나 ‘더러운’ 여성주의자로 이야기하기
그렇지만 여성주의 액션박람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언니네트워크의 ‘액션나우’팀이 2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지만, 예산 등 내외의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올해 구체적인 액션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과정이 이렇다 보니 액션박람회는 김치처럼 은근한 숙성기간을 가졌다. 해가 갈수록 구체화되고 꿈도 커져서 상당히 굵직한 내용들도 추가되었다. 여성주의 액션이 담긴 포스터 100장을 모아 전시한달지, 여성주의 액션의 증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달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2007년 2-3월에 공개 모집한 기획단들이 풍부하게 풀어낸 내용들도 포함되었다. ‘나의 페미니즘은 내가 표현해 보’는 ‘여성주의 공작새’ (스텐실, 피켓만들기 등)나, 작전명 쓰뤠기 액션(기획단을 포함하여 언니네 사이트에 자신이 기억하는 성폭력의 기억들을 공개적으로 모아, 소자보로 작성하여 게릴라 방식으로 도배하는 액션), 액션파티 등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액션과 행사들을 즉흥적으로 기획하기도, 실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액션박람회의 다양한 면모들은, 표현하는 양식이나 내용은 다른 듯 보여도, 단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우리 모두 더러운 위치성을 감추지 말자, 누구의 잣대로 선언하지 말자. 다만 너나 나나 ‘더러운’ 여성주의자로 이야기하자. 그렇다면 더욱 웃기고 재미있는 여성주의 액션의 역사가 불쑥 튀어나올지도 몰라.
쪽 마음들이 모여 만드는 여성주의 액션의 연대기
그래서 일단, 여성주의 액션박람회 기획단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액션의 역사를 까발려 보자고 했다. 우리는 순결하고 완전한 여성주의자의 표본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그럴 수도 없다.) 실수도 하고 우울의 나락으로 굴렀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여성주의자로서의 역사가 연대기에 고스란히 포함되었으면 했다. 여성주의 역사의 날 모습을 한 번 살펴보자 라는 이야기가 오갔지만, 다들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미친년대기’ 안에 전시되어 있는 기획단의 마이페미니즘과 더하기 ‘페미니즘 캠프’에서 수많은 그녀들이 토해낸 여성주의 역사는 그 어떤 여성인사들의 삶보다도 생동감이 넘쳤다. 매끄럽지 않고 단일하지 않은 결을 가진 그 자체의 모습,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상상했던 여성주의 액션의 연대기였다. 그리고 뒤죽박죽인 시간 속의 결점 투성이 쪽 마음들은 액션박람회의 여성주의 액션의 역사로 새겨졌다.
같이 만들어 보는, 역사
그렇지만 전시장 안에서만 연대기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최대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고, 자신의 여성주의자로서의 역사 안에 위치한 액션의 기억을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바로 ‘웹’이라는 공간을 통해 ‘여성주의 액션 연대기’를 시도했다. 시간적인 한계와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 액션 연대기’를 웹을 통해 구성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다. 기존의 논문이나 책에서 언급되었던 사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액션들을 새롭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여성주의 액션을 찾아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신나는 일은, 이 연대기가 계속 추가되고 수정된다는 사실이다. 여성주의 액션박람회란 행사는 끝났지만 연대기는 살아 있다. 유기체로 살아 날뛰는 미친 연대기가 생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먹이(예산-.-)를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또 ‘그녀들의 증언’은 9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여성주의 액션의 흐름을 체험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로, 여성주의 역사의 단면들을 다양한 증언을 통해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 또한 현재까지도 수정되고 있다. 아직도 추가되는, 여성주의 액션들과 증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도 일정 기간 이후엔, 수집하지 못한 채 화석처럼 굳어져야 하는 것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삶처럼, 액션도 계속되는 걸

지난 6월 25일 액션박람회가 끝났다.
서울 홍대 앞에 위치한 갤러리 헛은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갖가지 여성주의 액션의 증거들이 쌓여 있었고, 지랄발광하는 액션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곳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마음 때문에 우리들은 여전히 뜨겁다. 속초에서 왔다는 여성단체 간사의 ‘당연하지, 끝까지 함께 할 거야.’라는 말, ‘나를 기억하는 군요’라고 소심하게 쓴 방명록의 글들, ‘오줌이 발발 나오도록 감동적입니다’라고 쓴 여성주의자의 재치, ‘여성주의는 모르지만...’으로 시작하는 소박한 참여의 변들. 사실과 정보와 함께 묻어나오는 여성주의자들의 다양한 색깔, 감정과 느낌들이 여성주의 액션의 역사가 삶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게다. 그런 삶의 기억들이 역사라는 이름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여성주의 역사 발화에 많은 기회들이 생기길 바란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