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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4호 이슈] 함께 보고, 함께 듣기 -시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하여 (영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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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4호 / 2007년 8월 10일

 

 

함께 보고, 함께 듣기

-시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하여

(영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지민/ RTV [미디어로 여는 세상] 제작자
 
호기심
“정은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컵을 들고 물을 마신다. 한 모금을 채 마시기도 전에 정은은 울음을 터뜨린다.(....).”
-모 드라마 중에서

TV 드라마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휴학생 시절, 집에서 뒹굴거리며 낮에 해주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을 때였다. TV의 한 쪽 구석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방송 중’이라는 작은 자막이 떠 있었다. 
화면해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낯선 목소리는 계속되었고 나는 화면해설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선천적 질병인 게으름 때문에 그냥 멍하니 TV를 보는 것으로 호기심을 눌러놓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디다큐 페스티발 화면해설 제작에 참여하게 되고, 이를 통해 드디어 묵은 궁금증을 해소하게 됐다. (하지만 더 큰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에 미디어로 여는 세상에서 다룰 수밖에 없었다. 후후)

화면해설?
우선 화면해설이란 시각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각장애인들이 볼 수 없는 화면을 음성으로 해설해 주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주로 ‘지문’에 해당되는 내용이 음성으로 해설된다.
화면해설이 지상파 방송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 MBC 전원일기를 통해서이다. 화면해설은 이미 1999년부터 장애인 영화제에서 시작되었는데, 장애인 영화제 1회에서는 성우가 직접 해설을 하는 방식으로 화면해설을 하여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관객을 만났다. 2001년 이후 다른 방송사들에서도 화면해설이 시행되었고, 현재는 지상파 3사 방송의 뉴스와 드라마 대부분이 화면해설 되고 있다.

“화면해설은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 있습니다. 작가가 방송 테입을 미리 보고 대본을 작성하고 성우가 내레이션 녹음을 하고, 시각장애인 방송이라는 명목으로 비장애인들의 시청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폐쇄형식으로 별도 채널로 믹싱을 해서 송출해야 합니다. 이런 물리적인 시간 소모 때문에 지상파 방송에 사전 제작이 없는 상태에서 방송국은 방송 한 시간 전에 방송 하는 것도 있어서 뜻은 공감해도 본 방송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2002년에 상업적인 용도 때문에 금지되어 있던 지상파의 드라마 낮방송이 시작되었죠.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재방송에 화면해설 방송이 시작되었고 이후 드라마, 영화, 다큐를 혼합해서 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 접근센터 황덕경 팀장

화면해설의 경우 방송을 하기 전 사전 단계를 거치는 물리적인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본방송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낮 시간대 재방송으로만 방영되거나 인터넷 상에서 파일을 찾아 봐야 한다. 방송을 만들 때 화면해설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이 나간 이후 화면해설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새로 화면해설 대본을 쓰고, 또 그것을 성우가 읽고 다중채널로 녹음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면해설 방송을 제작하는 곳이 바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미디어 접근센터이다.
“화면해설 방송은 시각장애인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화면 해설이 아니라 화면 따라하기가 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옆에서 도와줄 수 있으면 스스로 취득 가능한 것이죠. 화면해설은 따라하기의 개념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이해가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 접근센터 황덕경 팀장

미디어접근센터의 황덕경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화면해설이 단순한 ‘화면 따라하기’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제대로 된 화면해설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화면을 그대로 쫓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에서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않을 것인지를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화면해설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현재 지상파 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화면해설 방송의 대부분을 제작하고 있는데, 최근 그 영역을 뉴스와 드라마에서 다큐, 예능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2006년부터는 EBS의 수능방송도 화면해설하여 제작하고 있는데, EBS의 경우 음성이 다중채널로 송출이 안 되기 때문에 제작 후 별도로 씨디나 파일로 배포하고 있다.

앞서 장애인 영화제에서 화면해설 상영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최근 들어 다른 영화제나 일반 영화관에서도 화면해설 상영이 늘어나고 있다. 
인권영화제, 장애인권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 등의 장애인 미디어 접근권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제들에서는 상영작 중 몇 편을 골라 화면해설 상영하고 있다. 영화관에서의 화면해설의 경우 작가가 대본을 작성하고 성우가 녹음을 해서 새롭게 믹싱하고, 그것을 수신기를 통해 시각장애인 관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난 4월에 개최되었던 제 5회 장애인권영화제에서는 개막작 ‘날 닮아 기분 좋은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처음으로 화면해설 상영을 시작하였다. 장애인권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장애문화공간의 최재호씨는 처음이어서인지 어려운 점이 더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이다 보니까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는데, 통역하는 거랑 같다고.... 수신기는 한국농아인협회 후원으로 받고, FM수신 받아서 화면해설이 되는 거라고 얘기하셔서 화면해설을 따로 녹음한 다음에 두 개의 데크를 동시에 시작했는데, 같은 회사의 제품이 아니라 그런지 약간씩 소리가 밀리더라고요. 홍보를 많이 못해서 많은 분들이 오시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점이고요. 경험 미숙이었던 같아요.”
- 장애인권영화제 최재호 집행위원장

여러 영화제들에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전 과정의 어려움으로 상영작 전편을 화면해설 하는 데에 무리가 있고, 수신기의 노후 등으로 시각장애인 관객들이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한다. 
영화관에서도 화면해설 상영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장애인과 관련이 있는 영화가 상영되거나 장애인의 날 등 특별한 날에 이벤트성으로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시각장애인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는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현재 시각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을 위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시청각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 보장을 위해 개정 발의 되었던 영화진흥법은 본 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 상태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도 원한다.
‘미디어로 여는 세상’에서 시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과 화면해설 방송에 대해 제작한다고 했을 때, 어떤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굳이 ‘보는’ 것 중심의 TV를 접근할 필요가 있느냐, 라디오 등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닌가하는 것. 그리고 실제 라디오를 많이 듣지 않느냐, 그것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미디어 접근권에 더 가깝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도 오갔다.
접근권이라는 말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나는 어디든 원하면 갈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물론 이 앞에 ‘돈이 있으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제한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것에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특권이라는 인식은 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방송을 만드는 과정에서 접근권이라는 것에 대해, 특히 미디어 접근권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언뜻 생각하시면 어차피 못 보는데 무슨 티비를 보나 이런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일단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 그대로 방송에 대한 권리죠.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에서 비장애인에게 철저하게 소외된다는 것. 쉽게 설명 드리면 시각장애인들이 티비 방송에서 가장 보고 싶어 하시는 장르가 뉴스예요. 이건 방송 관계자들도 고개를 갸웃하는 부분이에요. 뉴스가 별도로 무슨 화면해설이 필요하냐는 거죠? 이건 정안인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부분인데,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자막으로 제공됩니다. 정안인들은 별도의 궁금증 없이 정보를 취득하게 됩니다. 시각장애인 아닌 사람들에게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어서 제공되는 정보, 시각장애인들은 그걸 원합니다. 비장애인들과 같은 방송을 볼 때 괴리감 없이 같은 정보를 취득하기를.”
-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 접근센터 황덕경 팀장

시각장애인들이 뉴스를 보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정보는 ‘누가’ 말하고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무렇도 않게 자막으로 그 정보를 접했던 것이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온 권리임을 깨달았다. 뭔가 더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동등하게 미디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미디어 접근권이 가진 의미였다.
현재 시각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면해설이 주로 쓰인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소통의 의지 없이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한 보완이라는 측면, 그리고 현재로서 선택권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수신이 가능한 점자 단말기 등 화면해설과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다른 방식, 혹은 보조기기의 개발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방송이나 영화 제작자들이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 보장에 대해 이해하고 그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 참고자료 
미디어로 여는 세상 26회- 함께 듣다-시각장애인 미디어접근권에 대하여 / 소리없는 세계에서 미디어로 말하자 

VOD 다시보기(2007/05/07) (http://rtv.or.kr/CR08C/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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