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4호 / 2007년 8월 10일
살살페스티벌, 그리고 우정의 정치학에 관하여.
적린
이 글은 너무 일찍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페스티벌이 열리기까지는 아직 5일이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가 우리를 찾을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오든 우리는 이후에도 ‘우리’로 남을 것이다.
마을만들기 워크샵 첫 날
오늘은 해창갯벌에서 열릴 3박 4일간의 에코토피아 캠프를 위해 '마을만들기 워크샵'을 시작한 날이다. 살살페스티벌은 3일째인 8월 4일에 있을 예정이다. 우리는 오늘 하루 친구들을 맞기 위해 장승들과 컨테이너를 엮어 차광막을 쳤고 흙반죽과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었으며 약간은 어설픈 샤워장의 골조를 완성했다. 음식을 저장할 구덩이도 세 개 팠다. 지금 해창에서는 반쯤 완성된 화장실이 보름달의 빛을 받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계화도의 '갯벌배움터 그레' 한켠에는 낮 동안 부지런히 꿰맨 캐노피들이 곱게 포개어져 놓여 있다.
한 달 반가량을 열심히 준비해 온 후 부안으로 오기 직전 가벼운 불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단 하루를 보낸 지금 그 불안감은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당장의 작업을 계속하는 일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려진 자재를 구하기 위해 부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마을을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천을 듬뿍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고운 빛깔과 다채로운 질감의 천에 홀린 탓에, 술자리를 삼삼오오 빠져 나와 천을 고르며 미싱을 배우고 있다. 다음날 작업을 위한 토시를 만들기도 하고 주머니를 만들기도 하면서.
맨땅에 마을을 만들기 위해 어제 오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속속 계화도로 오고 있다. 지금 갯벌배움터 그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25명 정도. 해창장승벌에 도착했던 오늘 아침, 우리는 장마의 끝과 더불어 찾아온 무더위와 무성하게 자란 풀 탓에 조금 심란했다. 하지만 눈 깜빡할 새 지나간 하루 속에서도 굵직굵직한 일들을 ‘살살’ 해 낼 수 있었기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 속?흘러가는 이 밤을 유쾌하게 맞고 있다.
우리의 바램은 이번 페스티벌을 계기로 해창에서 좋은 인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갯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무수한 인연들이 맺어지기를 꿈꾼다.
새만금 악(惡)페스티벌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새만금 락 페스티벌로부터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새만금 방조제 33km. 그 방조제의 완공을 축하하는 것이 이 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의 개최 소식에 우리 모두는 경악했다. 8월 3일 오후 3시 33분, 3만3천명의 군중이 방조제 위를 걷는 동안 3만3천개의 풍선이 하늘을 장식하는 화려한 퍼포먼스. 기네스 기록 5개에 도전한다는 주최측의 기획은 세계 최대 규모 학살에 대한 뻔뻔한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해창산, 석불산을 비롯해 수많은 산을 깎아 갯벌을 메우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다는 언어도단 역시 우리를 아연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만금 락(樂)이 아닌, 새만금 악(惡) 페스티벌로 '그들'의 페스티벌을 부른다.
우리는 네트의 세계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편지를 쓰고 댓글을 달았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했다. "출연하지 말아 주세요." 평소에 애정을 갖고 있던 몇몇 가수들이 새만금 악 페스티벌 출연 예정 목록에 올라 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실망과 분노, 기대감 속에서 매일매일을 보냈다. 그런 마음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많아졌다. 결국 김창완씨를 시작으로 해서 주최측이 출연을 홍보했던 많은 가수들이 출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하나 둘 밝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만금 악 페스티벌의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전달하기 위해 페스티벌 서울 조직위원회 사무실을 찾기도 했다. 그 때 우리가 보았던 것은, '순수 청년 문화 행사'라는 그들의 주장과 대조를 이루며 벽에 붙어 있던 기사 스크랩과 자료들이었다. 새만금특별법의 국회 법사위 통과를 알리는 뉴스, 그리고 그에 찬성하는 국회의원과 반대하는 국회의원의 명단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순수 청년 문화'를 이야기하며 행사를 강행하고 있다.
후원 '예정'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던 새만금 락 페스티벌 현수막, 그리고 지하철과 텔레비전에서 흩뿌려지고 있던 광고들은 환상이 공고하게 물질화되고 있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우리 역시 우리의 활동을 나누기 위한 물리적 기반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대항페스티벌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캠프와 자전거행진에 대한 아이디어들도 쏟아져 나왔다. 상심한 마음과 생활고 탓에 몸과 마음이 울적한 어촌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는 것도 그런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그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던 것의 말문을 순식간에 틔웠으니, 새만금 악 페스티벌은 성공하는 만큼의 실패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갯벌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자, 살살페스티벌!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걱정했다. 끝물막이 공사 이후 1년여의 공백 기간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들'이 벌여 놓은 마당의 곁에서 그 공백을 마감하는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대법원 판결과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아무런 희망도 없는 듯 보이는 곳에서 도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부정'에 머물지 않기. 그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새만금 락 페스티벌 출연 예정진에게 출연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내용물을 담아 소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소포는 결국 우리가 페스티벌에서 만나고 싶던 가수들에게 보내 버렸다. 출연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담기에는 '너무 아까운' 소포였기 때문이다. 눈부신 사진들, 손으로 적은 시, 백합조개 뱃지, 초대장... 아이템 하나 하나에 사연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정을 넘어선다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을 하나쯤 갖고 있었다. 소포를 보낼 주소를 바꿈으로써 안티가 아닌 우리 삶의 생산으로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활동이 어떤 모습이길 원하는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지도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하나의 무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개의 무대,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곳. 노래와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이나 못 하는 사람이나 즐겁게 어울려 놀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새만금 악 페스티벌처럼 유명한 출연진은 없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도 기꺼이 함께 하고자 하는 출연진들, 곧 '우리'가 되기를 원했던 그들의 마음이 우리는 무척이나 반갑다.
폭력과 파괴의 이미지는 시시각각 변하면서도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갯벌에서 떼죽음한 조개들, 깎여 나가는 산들, 그리고 목숨을 잃는 주민들. 평화와 생성의 이미지를 그만큼 구체적인 것으로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운동에 합류해 온 우리들은 기쁨과 희망만큼이나 슬픔과 패배감을 여러 차례 경험해 왔다. 그 우리는 여전히 방조제가 허물어져 바닷물이 다시금 일렁이는 것을 꿈꾸며 싸움을 지속하기 위한 힘을 재충전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즐겁기'를 원한다. 계속하기 위해 매 번 새로 시작하자! 새로운 힘을 충전하자! 그것이 우리가 살살페스티벌을 여는 까닭이다.
약간의 의견차가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시설' 아닌 '맨땅'에서 '생존'하는 갯생명과 주민들의 대열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고, '맨땅에 헤딩'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갯벌이 완전히 진압된 곳이 아니라 힘들게나마 지속되어 가고 있는 곳과 함께 하기 위해서. 또, 새만금 악 페스티벌이 갯벌의 삶을 '추억'하는 동안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가 잊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것이 우리가 해창에서 살살페스티벌을 여는 까닭이다.
누군가가 새만금 락 페스티벌과 살살 페스티벌이 어떻게 다르냐고 여전히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새만금 사업 중단을 요구한다"고. 또한, 우리는 물길이 나야 사람 사는 길도 난다는 순진한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친구와 함께 다니는 곳이라면 길이 된다
'개털'인 우리들이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예산의 문제는 친구들의 응원으로 조금씩 해결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더위와 물부족, 모기떼가 우리가 이겨 내야 할 가장 큰 문제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있기 때문에 번갈아가며 물을 실어 나를 수도 있고 차양막을 설치할 수도 있으며 모기장을 꿰매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놀자는 재기발랄한 친구의 아이디어에 박장대소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 일 년 간 서로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수면위로 떠오른 열정을 통해 서로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특히 2007년 여름 현 시점에서 새만금의 정치란? 방조제를 점거하는 것인가? 시위를 조직하는 것인가? 적을 규정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정치란 '적과 동지를 가르는 기술'이라 말하고, 무력을 동원해 적을 진압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 한에서 우리는 여기서 마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새만금 악 페스티벌을 저지하기 위한 육탄전에 돌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정치를 만들어 나간다. 정치가 삶의 문제이고 살아가는 것이 정치인 한, 정치는 편가르기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립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대립을 하고 있을 때조차 그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게나마 '사고'를 한 번 더 친다. 훗날 되돌아볼 때 이 일주일의 시간이 우리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 새로 시작되는 뻘땅의 이야기로 남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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