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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4호 읽을거리] 미디어교육과 비판적 리터러시 -미디어 분석과 자아 표현, 기능 훈련의 사례 연구 (정현선,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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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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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4호 / 2007년 8월 10일

 

 

미디어교육과 비판적 리터러시

-미디어 분석과 자아 표현, 기능 훈련의 사례 연구

(정현선,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박혜미(미디액트 미디어교육실)
오히려 몇 년 전 미디어교육에 대한 연구 작업을 할 때보다, ‘교육현장’에서 ‘미디어교육’을 하게 된 최근 2, 3년 동안 미디어교육에 대한 책을 더 멀리 하게 된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거리와 게으름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교육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이 미디어교육 관련한 책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스펙터클하며,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건 달리 말하면, 미디어교육의 다양한 실천과 경험들, 그리고 생생한 현장의 고민과 과제들이 미디어교육 이론/학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상호작용하고 기운을 북돋워주기기보다는, 언제나 이론은 현실과 저만치 동떨어진 곳에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부쩍 미디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미디어 교수법, 미디어교육 현황에 대한 책들이 자주 출판되고 있지만, 펼쳐보면 몇 년전부터 시작된 제도화 논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어렵고 진부한 교육학 이론에 미디어를 끼워맞추거나, 영국, 독일 등 해외사례의 업그레이드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미디어교육 이론과 분석에 목말라하면서도, 오히려 미디어교육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시큰둥하고 심드렁해지는 이유.
얼마 전, 또 한 권의 미디어교육 연구서 <미디어교육과 비판적 리터러시-미디어 분석과 자아 표현, 기능훈련의 사례 연구>(정현선,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가 출판되었다.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의 미디어교육 현실에 시사점을 줄 수 있도록 수정을 거쳐 집필했다는 이 책은 ‘미디어 텍스트의 비판적 분석’, ‘미디어를 통한 청소년의 자아 표현’, ‘미디어 제작을 위한 기능 훈련’의 세 가지 접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비판적 분석 접근법’은 미디어를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발현되는 기제로 보고 그 의미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고, ‘청소년 문화 활동 중심의 접근법’은 미디어를 청소년의 자아 표현과 사회적 소통 참여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미디어 창작과 제작을 중시하는 접근, ‘기능 중심 접근법’은 미디어 창작과 제작에 필요한 제작 기술과 절차를 가르치는 접근이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법들이 영국 청소년 미디어교육의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사례 연구를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미디어교육의 참여자를 청소년에 국한해 서술하고 있는 점, (우리의 현실과 공통된 고민들이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사례만을 중심으로 사례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수업 사례를 통해서, 미디어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문제들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강점이자, 다른 미디어교육 이론서들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미디어 연구’ 과목에서의 여성 잡지 분석 수업과 갱스터 영화 예고편 만들기 수업, 청소년 방송국의 텔레비전 제작 교육과정의 입문 강좌를 통해 미디어교육 수업의 실제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또 그 안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대화, 인터뷰 등 세부적인 교수-학습 상황을 통해서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긴장, 주도적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의 충돌, 교사의 지식과 능력에 따른 수업의 차이, 학교 교육과 비형식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교육의 차이 등 다양한 지점들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상기하게 된 미디어교육의 고민들과 몇 가지 생각을 중심으로 <미디어교육과 비판적 리터러시>를 한번 정리해보자. 

비판적 미디어읽기와 참여적 제작의 통합적 접근
비판적 미디어읽기 수업이 뻔한 정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예측 가능한 결론을 내는 수업이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비판적 미디어읽기 수업이 가능할까? 비판적 미디어읽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전체 커리큘럼 안에서 이를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는 대부분의 미디어교육 교사와 기획자들의 어려움일 것이다. 특히 비판적 미디어읽기와 모니터링 중심의 미디어교육에서 제작과 표현을 강조하는 미디어교육으로 중심이 이동해가면서, ‘비판적 미디어읽기’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의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이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8차시에서 15차시에 이르는 수업 중 1, 2차시 정도로 비판적 미디어읽기가 구색 맞추듯 들어가 있거나, 의례적으로 관성적으로 ‘비판적 미디어읽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비판적 미디어읽기 수업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혹은 참여적 제작 수업과 비판적 미디어 읽기 수업이 통합적으로 균형있게 결합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간단한 커리큘럼 표에서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일 수도 있다.) 
여성잡지라는 미디어 텍스트 분석 수업을 참여관찰하면서 필자는 비판적 미디어읽기에서 공식적인 비판 담론이 개인적인 반응과 즐거움을 앗아가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특정한 종류의 비판적 담론이 공식화됨으로써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교육참여자들로 하여금 ‘정답’과 이미 결론이 난 논의를 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되는 이에 대한 결론 혹은 해법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교사와 학생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 제한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담론의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 담론의 의미를 재교섭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담론을 통해 비판적 담론의 의미를 재교섭하는 것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모습일지, 드라마에서 재현해내는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계속 재미있게 보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내야 하는지 여전히 막막하기는 하다. 아마도 이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 사례연구인 ‘읽기’와 ‘쓰기’의 통합문제를 통해서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비판적 미디어 분석과 제작의 경험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참여자들이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은 내용을 만들지를 결정하고, 이를 기술적,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과연 무엇인가

“주류 미디어에 의해 소외된 그들의 목소리를 미디어 생산을 통해 표현하도록 한다”는 미디어교육의 슬로건은 이제 익숙하다. “미디어교육을 왜 하세요?”라고 물으면, 습관처럼 너무나 쉽게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여러 가지 의미와 교육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아 표현을 위한 미디어 제작교육은 “미디어 표현 능력과 기회 제공을 통해 그들에게 사회적 힘을 부여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으로, 주류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의 문화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담론을 갖게 하는 것보다는 자아 표현의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 경우 그들의 다양한 경험이 모두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자로서의 특정한 경험이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86-87쪽)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 노인, 유아 등 다양한 사회계층, 소외계층을 위한 미디어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교사나 기획자가 기대하는 것으로 그들의 목소리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교육참여자의 경험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얼마나 개입해야 할까? 오히려 교육참여자의 경험을 소외시키는 방식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하고, 참여자의 목소리를 대신해 교사가 이야기해 버리고 마는 식으로 귀결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교육방법, 내용이 필요할까라는 성찰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교사와 참여자 사이의 지식/권력 관계에 대한 성찰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청소년 문화활동과 직업훈련의 연계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미디어교육과 직업훈련의 연계가 영국의 미디어교육 맥락에서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영국에서는 정부의 교육 정책 및 청소년 정책과 그 실행에 변화가 생기면서, 전통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교육’, ‘직업훈련’, ‘고용’의 분야가 상호 연관 속에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미디어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학교교육에 있어서는 이론 학습과 실제 제작 간의 관계에도 변화를 초래했고, 또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청소년 문화 활동과 직업 훈련이 융합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31쪽) 예를 들면 두 번째 사례 연구가 이루어지는 청소년 방송국의 경우, 텔레비전 제작 교육 프로그램이 5단계의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실제 미디어 업계에서 의뢰한 프로그램 주문제작에 참여하고,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미디어산업에 배치되어 인턴쉽을 하는 과정이 마지막 단계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영국 역시 “미디어교육에 있어서 특히 교육과 고용의 연계라는 쟁점은 미디어교육에 대한 교수 이론적 함의에 있어서는 기술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지 못한 채 정체되어”(35쪽) 있다고 평가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리의 경우, 미디어 고등학교나 전문 제작자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미디어교육’과 다른 별개의 기술교육으로 범주화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미디어교육의 영역에서는 미디어교육을 직업과 고용 기회의 창출로 연결하려는 시도나 실험들이 활발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미디어교육이 양적으로 확대되고, 청소년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구성원들로 교육의 참여자가 확장되면서 교육이 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미디어 활동, 직업, 전문적인 미디어 생산자를 양성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교육과 직업, 고용의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교사나 교육참여자, 교육기관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지역공동체와의 연계 및 상담, 직업 훈련 시스템, 프로그램을 통해 고용 기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정부의 재정 지원과 구체적 노력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아쉽게도 이 책의 사례 연구는 텔레비전 제작 교육과정의 입문 강좌만을 다루고 있고, 연구의 초점을 교수학습상황에 맞추고 있어 “미디어 산업의 교육 및 훈련과 고용의 연결고리 문제, 즉 교육과 훈련 그리고 고용을 연결하는 정책”, 그리고 지역 공동체와의 관계의 차원에서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소개되고, 사례가 연구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궁금증이 남는다.


비판적 읽기, 자기표현, 제작의 통합적 접근

책을 읽다 보면 수업에서의 교사와 학생들의 대화, 학생의 반응 및 작업 과정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인용하고 있어서 우리의 교육경험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수업 시간에 저런 방식으로 대화를 끌어가지는 않았을까? 은근히 나의 시각과 관점이 반영되도록 참여자들의 작업에 개입하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비판과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적 미디어교육의 실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고민들을 현장에서도 잃지 않는 것, 끊임없이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 중심축으로 잡고 있는 미디어교육에 대한 세 가지 접근법은 서로 다른 목표를 염두에 두고 발전해 온 사회문화적 배경과 이론적 토대를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이 세 가지 접근이 명확히 분리되어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도 여전한 현실이며, 그런 점에서 이러한 세 가지의 접근은 미디어교육의 특정한 측면을 구조화해서 잘 보여주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사례 연구의 대상이 된 수업들은 이 각각의 접근을 분류하고, 명확하게 차이를 드러내 보여주며, 한계와 비판, 그리고 반성의 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 가지 접근법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로 미디어교육의 현장을 일반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업의 제한된 부분만을 관찰,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6개월, 1년 과정 등 전체적인 과정과 맥락 속에서만 이 수업들의 교수-학습 상황을 평가하고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도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세 가지 접근이 단계별로, 각자 초점을 달리 하면서 발전해가는 형태가 아니라, 즉 뒤에 새로 오는 접근이 앞의 것을 대체하거나 폐기처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혹은 세 가지가 분리되고 분절적인 형태가 아니라 각각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미디어교육이 아닐까? 이러한 시각의 전환 속에서 사례들을 발굴하고, 평가를 내리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이러한 시도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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