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세계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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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춘기 ![]() ‘....김현식 씨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곡을 듣겠습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MBC FM에선 가수 권인하가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둔탁한 목소리를 전파를 통해 내보내고 있었다. 울고 또 울어 잠겨버린 그런 목소리 말이다. [잠시] 간경화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었지... 결국은....별로 좋아했던 가수도 아닌데. 어차피 갈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이 두 남자의 걸죽한 목소리가 나를 괴롭혔던 모양이다. 스팀도 들어오지 않을 늦가을의 추운 콘크리트 교실이 두려웠던 모양이다....아니 엄마에게 짜증 부렸던 아침의 현관이 날 죄책감으로 몰아넣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보단....] 앞좌석 등받이에 얼굴을 묻은 나를 싣고 버스는 종로를 지나 명륜동으로 달려갔다. - 이 진 경 作 '사춘기(四春期)' 中
우울한 기분으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워크맨으로 FM 라디오를 듣던 버스 안, 뿌연 창밖으로 지나치는 종로 그리고 명륜동, 아침 라디오 DJ의 우울한 목소리와 그보다 더 우울한 김현식의 노래, 엄마에게 짜증 부렸던 아침의 현관..... 이 모든 것은 차가운 1990년 11월 1일 아침 7시 10분경 버스를 타고서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학교에 가는 중 있었던 이야기. 이진경은 [사춘기]를 이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90년 11월을 지나고 있는 여자아이의 학교 가는 작은 시간에서 이 이야기의 프롤로그를 가만히 꺼내어 보는 것이다. 2. 만화의 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교차배합 ‘만화는 인쇄지면이라는 공간 속에 특유의 방식으로 이야기와 그림을 분절시키고 배열하면서 시공간의 연속체를 만들어낸다. 연속된 칸 그림으로 지면을 구성한 인쇄된 만화 형식이 우리를 사로잡은 힘은, 그것이 칸과 그림과 텍스트로 구성된 지면 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교묘한 교차배합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끌어들이는 특이한 힘을 떠나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지와 언어의 결합이라는 원천적 자력만으로도 만화는 가장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진 전달형식을 취한다. 이에 더하여 칸과 페이지, 그리고 그 경계 안팎으로 결합하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만화의 힘은 극대화된다. 이렇게 대중적인 형식과 대중을 자극하는 상상력을 갖춘 만화양식은 현대적 태생에서부터 대중적인 소비와 참여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만화는 상식의 바깥으로, 제도화한 상상력의 바깥으로 우리를 내던지는 위험한 그래피티(graffiti: 낙서)이자 파괴와 전복과 폭로의 예술이기도 하다. 만화의 풍자정신은 우리의 늑간살을 흔들어 하이에나처럼 비통하게 웃게 한다. 만화는 위험하고 지적인 유머와 종횡무진의 상상력으로 우리의 정신을 흔들고 상식의 허를 찌르며 문화의 상투성을 깨뜨린다. 이처럼 저자는 [세계만화]의 1부에서 영화와 TV에 이어 ‘제 9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만화에 대해 19세기에 만화가 현대적 예술로서 구성되는 과정과 함께 만화의 구체적인 특성을 개괄적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저자가 스스로 밝히듯이 [세계만화]의 중심부분은 세계만화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스물세 명의 만화가와 그들의 대표작을 소개한 3부이다. 여기에서는 초창기 신문만화부터 슈퍼영웅만화까지 만화가 대중문화산업으로 발전한 과정과, 탐정, 모험, 공상과학, 정치만화 등 다양한 장르로의 발전양상,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만화 이후 작가만화의 등장, 그래픽 노블에 이르기까지 세계문화사의 흐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그 중 여기에서 몇 작품을 소개한다.
- 브레테셰의 [욕구불만자들]
이를 두고 성완경은 ‘자신의 약점을 심각함으로 위장한 채 직장생활을 하는 동거녀에게 심리적 부담을 전가시키는 간교한 남성의 권위주의, 그 앞에서 쩔쩔매는 여성의 심리’를 표현했다고 해석한다. 이밖에도 미국만화 최고의 시적 향기라는 헤리만의 [크레이지 캣]이나 민중을 대변한 키노의 [마팔다], 무정부주의적 풍자와 유머를 그린 레제르의 [빨간 귀], 아우슈비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만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슈피겔만의 [쥐] 등, 소개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은 걸작들이 많지만 여기에서 더 이상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세계만화]의 4/5 이상이 이러한 작가-작품론을 소개하는데 할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조용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성완경의 [세계문화]를 읽어보길 권해 본다.
상상해본다. 마치기 전에 잠깐의 몽상으로 그냥, 상상해본다. 명륜동을 지나 종로를 들어서는 273번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며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기댄 나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손에 들린 만화책에는 나의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경의 일이라 적혀있었다. 궁금하지만 애써 펴보지 않는다. 상상 속의 나는 이미 이 모든 것이 상상임을 알고 있다. 나는 아직 펴보지 않은 그 만화책을 가만히 덮어두고 대신 희미한 창밖을 바라보기로 한다. 마침 누군가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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