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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8호 읽을거리] 동네예술가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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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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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8호 / 2007년 12월 30일

 

 

동네예술가 지침서 


심현경(망원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참여작가)
 
2007년 7월 기획팀 <공화국리라>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왔다. 요는 이러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인데 주민들에게 배포할 아트 매뉴얼을 만들어달라는 것. “재밌겠군...”하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다. 골방에 혼자 틀어박혀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소위 미술 하는 진짜 작가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
작업은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도 없었고, 구성 방식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시간은 3개월! 분량은 되도록 많이! 주민들이 쉽게 보고 이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 작업 중 하나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이런 포괄적인 바운더리만 나에게 주어졌다. 한마디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어쩌다가 나에게 떨어진 셈이었다. 출판사에서 글을 받아 글에 맞게, 기획 의도에 맞게 맞춰주고 맞춰주는 작업과는 전혀 달랐다. 신이 났다. 하하하.
8월이 되자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동네 예술가 프로젝트 <예술로 일촌 맺기>, 지역은 서울시 마포구 성산1동과 망원1,2동, 서울시에서 주최, 서울시 공공미술 위원회, 도시갤러리 추진단이 주관, 마포구가 후원. 뭐 대략적인 설명은 이정도이다. 그런데 공공미술이 도대체 뭘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공공미술은 대규모 환경 미화 운동인가? 한판 놀아보자는 지역 축제인가? 아님 사회 봉사 활동인가? 개념을 잡는 것부터 어려웠다. 또 망원동과 성산동은 지극히 평범한 동네였다. 결핍된 무엇이 있지도 않고, 지역적 특수성도 별로 없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냥 동네. 그런 곳에서 그곳에 꼭 맞는 공공미술을 해보자는 기획팀의 설명은 사실 너무 어려웠다.
그동안 공공미술 작업은 작가들이 지역에 들어가 비쥬얼한 무엇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고 대중이 공익을 누린다는 도식으로 진행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어느 날 난데없이 나타난 조형물을 보고 ‘음, 뭐가 생겼군.’하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즉 공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미술적 시도. 이 정도의 설명으로 공공미술이 인식되어진 것 같다.
<예술로 일촌 맺기>는 이러한 대중을 배제한 공공미술에 문제제기를 한 실험적 프로젝트였다. 작가들이 동네 주민들과 의사소통하고, 주민들의 예술적 요구를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숨은 동네 예술가를 발굴하는 등 주민 밀착형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것이 초기 기획이었으니... 말은 참 그럴 듯 했다.
하지만 솔직히 기획팀에게 이런 설명을 들어도 이게 뭔 소린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말이 쉽지, 어떻게 주민들과 밀착해서 의사소통을 하라는 것인지? 방법을 작가들이 스스로 찾으라 하니 난감했다. 그렇지 않은가? 작가라는 인간은 혼자 노는 사람들이라 사회성 떨어지고, 수줍음 많고, 잔머리 안 돌아가고.. 뭐 그런 류의 사람들인데 쌩 판 모르는 동네 주민들의 예술적 요구를 알아내고 해결해 주라니... 하하하... 나는 아줌마들이 아직도 무섭다.
지금 생각하면 그럭저럭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그저 다행이다. 


무더운 여름 나는 동네를 열심히 염탐하고 다녔다. 딱히 방법이 없었다. 아트의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한번 생각해 보라. 아트 매뉴얼의 범위 또한 끝도 없다. 세 달 안에 나는 과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절망을 안고 나는 망원동을 돌아다녔다. 사람들 이야기도 엿듣고 스케치도 하고 독특한 분, 예쁜 집 사진도 찍으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신기한 것은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망원동에서 아름다운 것들과, 꽤나 웃긴 일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뭐든 관심을 가지면 소중해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일상 속에 생각지 못한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료를 모으는 동안 조금씩 매뉴얼의 윤곽이 잡혔다. 지역은 망원1,2동으로 집중되었고 그곳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매뉴얼의 내용은 망원동 주민들에게서 얻은 정보와 프로젝트 기간 동안 진행된 작업들을 다루기로 했다. 너무나 평범한 동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이 침투한다? 기획자들의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작업의 가닥을 잡는 동안 프로젝트의 다른 작가님들도 재밌는 작업들을 시작하였다. 특히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꾸려진 ‘떳다! 예술방!’작가 5명은 망원동 유슈지에 세워진 <예술가 센터>를 기점으로 협력 체제로 일을 진행하였다. 나도 떳다방 작가였으므로 인터넷이나 서적 등에서 쉽게 자료를 찾아 내용을 구성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배제하였다. 매일 망원동에 나가 작가들과 작업을 같이 하는 방식으로 초반 작업이 진행되었다.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발품을 팔았기 때문이다.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재밌는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하하. 언제나 꿈동산인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은 주민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주택의 벽화를 그리는 것도 주민들의 그림을 받아 설치하였고, 벽화도 함께 그렸다. 또 센터 앞 공간에 목공소를 차려 주민들이 와서 물건을 만들거나 고칠 수 있게 했다. 특히 동네 목공소에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장비가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상상 속의 작업들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동네에 살고 계신 진짜 목수 아저씨들이 감독도 해주시고... 윙윙거리는 전동 톱 소리에 주민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공공미술을 정확히 규정하기 힘든 것처럼 사람들도 그저 ‘좋은 일’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작업들이 주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먹고 사는 것에 온 관심이 집중되었던 그들에게 낭만을 느끼게 했다면, 그래서 무언가 하고 싶은 충돌을 느끼게 했다면 ‘동네 예술가를 발굴 하겠다’던 기획 의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듯 싶다.
내가 이렇게 프로젝트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와 망원동과 이 책이 너무나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초반 8, 9월 동안 나는 벽화, 그림 워크샵 등의 활동을 하며 자료를 모았다. 주민들과 직접적인 접촉면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일을 하다 보니 책 작업이 자꾸만 미뤄졌다. 책 보다는 벽화와 목공일이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9월 말 쯤이 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획팀에 아트 매뉴얼을 간단히 만들자고 은근히 종용해보기도 했으나 넘어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10월 초순 쯤 모은 자료를 들고 칩거 생활에 들어갔고 10월 31일에 끝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마구 작업을 시작했다.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작업 기간이 짧은 탓에 내용이 많이 엉성하다. 부끄럽지만...


책은 크게 <그리다>와 <만들다>로 구성되어있다. 수많은 아트의 범위를 대폭 축약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자신도 없었거니와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부분이 그리고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쉽고 재밌고 웃긴 아트 매뉴얼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용의 전문성보다는 2007년 8, 9월 망원동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매뉴얼 북 내용으로 녹여내고 싶었다. 뭐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는 것.
<그리다> 파트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그리는 행위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이었다. 그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재료를 장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표현일 뿐이다. 세상에 무엇이든 그리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직접 그려 보면 답은 쉽지 않은가? 어쩜 창작에 매뉴얼이란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생각으로 재료 설명과 그리기의 방법에 대한 내용을 구성하였다. 특히 공공미술의 단골 메뉴인 벽화에 대한 부분도 다루었다.
<만들기> 파트는 주로 동네 어린이들과 만든 만들기 작업과 동네 예술가 목공소에서 진행된 작업을 주로 다루었다. 목공 분야는 내게도 생소하여 더욱 매력적이었다. 나무의 종류와 무서운 장비들... 그리고 주민들의 가구 리폼, 작가들의 설치 작업으로 내용을 구성하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목공작업을 너무 쉽게 표현했다는 점. 사실 아주 중노동이라는 사실을 꼭 알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미 책은 나왔으니 어쩔 수 없지만...
책 설명은 여기까지...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망원동으로 놀러 올 것을 권하고 싶다. 6호선 망원역에서 9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망원 유수지인데, 이곳에 아직도 동네예술가 센터와 목공소가 남아있다. 후속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 운이 좋으면 참여 작가를 만날 수도 있을지도... 참고로 목공소는 겨울 가기 전에 철수할 지도 모르며, 책을 구하고 싶은 분은 기획팀 공화국리라에 문의 하면 됨 T.02) 6497 - 9736http://www.dongneartist.com/
이곳은 예술로 일촌 맺기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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