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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0호 이슈] 오! 제주영상미디어센터여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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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0호 / 2008년 4월 17일

 

 

오! 제주영상미디어센터여 어디로 가는가! 


이영윤 (제주씨네아일랜드 사무차장)
 
기대 속에 개관한 제주영상미디어센터…하지만


2006년 7월 31일.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제주영상미디어센터가 개관했다.

제주영상미디어센터(이하 미디어센터)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으로는 최초로 선정된 지역미디어센터다. 문화관광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각 10억 원씩 지원한 미디어센터는 기존 '제주민속관광타운'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에 터전을 잡고 개관했다. 개관 당일. 축하와 환영 인파가 넘쳤지만 같이 자리했던 도내 영상단체 관계자들은 다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개관부터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다.


미디어센터가 제주도민들에게 진정한 공공적인 시설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탄탄한 운영 프로그램을 갖춰야 했다. 그렇기에 미디어센터는 개관 전부터 적극적으로 도내 민간 영상단체들과 손을 잡고 미디어센터 운영 및 발전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했던 시점이었다. 이 같은 중요성을 감안, 도내 민간 영상단체들은 미디어센터 설립 과정에서부터 민간 단체들이 미디어센터 운영을 함께 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없이 했다. 더구나 제주특별자치도가 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사)제주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원회)에 위탁을 준 상황이었기에 운영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영상위원회 운영만으로도 꽤나 많은 동력이 필요함은 지극히 상식적임에도 영상위원회가 미디어센터까지 도맡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도전이자,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개관 초기 제주영상위원회는 상식을 뛰어넘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미디어센터 운영 동력도 너끈히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도내 민간 영상단체들의 조언은 속된 표현으로 '씹혔다'. 영상위원회는 '무소의 뿔'처럼도 아닌 '무모한 뿔'처럼 출발하기 시작했다.
우려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도내 장애인 단체였다. 제주에서 장애인 인권영화제를 개최하는 '(사)한국 장애인 연맹 제주 DPI'는 미디어센터를 둘러본 결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했다. 아무리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했다고 하지만 장애인 접근권을 배려한 시설 구조는 전혀 안되어 있던 것이다.
미디어센터 사무실과 편집실, 강의장 등이 있는 2층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면 전혀 올라갈 수가 없다. 외부계단은 무척이나 계단도 많고 경사가 가파르다. 내부계단은 비장애인 1인이 오르기에도 부담스러운 꽈배기 모양이다. 현재 1층에 장애인들을 위한 촬영, 편집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비장애인이 활용하는 수준 보다는 한 단계 낙후돼 있다는 지적이다. 
예술극장 또한 개관 후 부랴부랴 보수를 해 현재 일부 10여개의 휠체어 석이 있긴 하지만 휠체어 석에 못 앉으면 무대 앞으로 가야 하는데, 이 또한 무대와 너무 가까워 보기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가운데 경사로는 급하다. 위치가 높은 뒤쪽 좌석은 경사로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이동과 관람이 사실상 쉽지 않은 구조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당초 미디어센터 개관을 반겼던 제주 DPI는 실상을 알고부터, 지난해까지 미디어센터에서 영화제를 치르는 계획을 포기했다.



미디어센터 예술극장 대관료도 치솟기 시작했다.
제주영상위원회가 2007년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미디어센터 운영예산으로 1억 밖에 지원 받지 못하다보니 영상위원회 운영위원들은 재정을 늘리기 위해 '대관료'를 인상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2006년 1일 대관료가 9만원 이었던 것이, 2007년 들어 22만5천원으로 올랐다. 여기에 영화를 상영하면 35mm 필름영사기 사용료, 조명비, 냉난방비 등을 포함한다. 1일 총 대관료는 50만원 내외가 돼버렸다.
대관료 인상 역시 도내 민간 영상단체들과 아무 협의 없이 결정된 사안이었다. 대관료 인상 후 도내 민간 영상단체들은 영상위원회 고창균 사무국장과 면담을 통해 "애초에 민간단체와 함께 논의하지 않았느냐"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영상위원회) 내부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제주도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민간단체와 공동 대응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할 미디어센터 운영 주체가 스스로 지자체 산하기관이라고 일컫는 것도 모자라 함께 '꿈'을 꾸려는 민간 영상단체들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의 비수를 날린 순간이었다. 고 국장은 민간단체들에게 대관료 절감의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미디어센터 시설 및 정비 규정을 살펴보면 '빚 좋은 개살구'임이 드러난다.
규정에 따르면 미디어센터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 주관하는 공연 및 문화예술행사에는 전액 감면을 해주고 있다. 반면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 협찬하는 비영리적 문화예술행사나 사단법인 문화예술단체의 비영리 문화예술행사는 자체 심사에 따라 50%이상 감면한다. 50% 이상 감면도 영리 행사나 자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어려워진다.
지역 민간단체들이 꾸준한 수익사업을 통해 단체 자생력을 키워야 하고 컨텐츠에 대한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향유하는 문화풍토를 마련하려 해도, 미디어센터의 '비영리'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대관료 감면이 어렵다는 얘기다. 감면 폭을 결정하는 기준도 불투명하다.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모든 문화예술행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우려가 높다.



이렇듯 여기저기서 불안한 행보를 보이던 미디어센터는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개관 당시 언론에 밝힌 "2008년부터 정상궤도로 올려놓겠다."라는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는 상식을 뛰어넘어 '과오'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 이르렀다.


'난타'로 '난타'당한 제주의 꿈


2008년 2월 5일, 제주특별자치도는 언론브리핑을 통해 "제주에서 난타가 상설 공연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언론 보도에 따르면 PMC프로덕션(대표 송승환)이 제주도에서 난타 상설공연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2월 중으로 실무협약을 마쳐 4월18일부터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추진했다는 것이다. 난타 공연은 월요일을 제외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열리고, 토요일에는 오후 4시·8시 두 차례, 일요일에는 오후 7시에 공연된다는 내용도 덧붙어졌다. 게다가 난타 공연은 제주미디어센터 예술전용극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알려왔다.


보도 직후 도내 민간 영상단체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아무 논의 없이 도내 민간단체들의 '뒤통수'를 친 어이없는 처사였다. 제주독립영화협회(공동대표 고혁진·오경헌)는 2월18일 성명서를 통해 난타 상설 공연 유치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도내 영상관련 민간단체(제주독립영화협회, (사)제주여민회, (사)제주씨네아일랜드, (사)한국장애인연맹 제주 DPI)가 모여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동 대응을 모색했다.
단체들은 제주특별자치도와 PMC프로덕션의 실무협약이 확정되기 하루 전인 3월5일 성명을 내고 "난타 상설 공연장 활용계약 전면 백지화와 난타 상설 공연을 승인한 제주영상위원회 이사 및 운영위원진의 전원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도 헛되이 무너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6일 PMC프로덕션과 난타 상설공연 협약을 체결했다.



자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난타공연은 올해부터 3년간 2011년까지 진행된다. 거의 매일 저녁시간대에 진행되는 난타 공연으로 사실상 제주도민, 제주도내 영화인, 민간단체 들은 사용 권리를 박탈당했다. 영상위원회는 계약서상에 '영상위원회가 난타 공연시간에 공연장을 사용할 경우 난타 공연팀은 극장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라는 단서 조항을 갖고 '영화 상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단서조항을 보면 '누구나 사용할 경우'가 아니라 '영상위원회가 사용할 경우'다. 결국 영상위원회 자체 판단에 따라 공연장 사용을 허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만약 도내 영상단체들이 1년 동안 비영리 원칙으로 저녁시간대에 영상물을 상영하겠다고 요청한다면 영상위원회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어떤 기준을 갖고 공연장 사용을 허락하겠다는 것인가. 본질을 본다면 미디어센터는 제주도민 누구나 차별 없이 사용할 권리가 있는 '공공적' 시설이다. 영상위원회가 말하는 단서조항은 본질을 흐린 '말장난'일 뿐이다. 또 영상위원회는 이렇게 주장한다. "예술극장이 고작 1년에 해봐야 영화가 상영되는 기간이 한 달도 안 된다. 난타 공연을 통해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기모순의 극치를 보여주는 꼴이다. 그들에게는 열정을 무기삼아 활동하는 전국 독립영화인, 시네마테크 활동가 등은 안 보이는 모양이다. 미디어센터 만큼의 재정, 인프라가 없이도 관객들에게 영화가 뿜어내는 희열감을 안겨주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는 영화인들은 무시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름 영화, 미디어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는 영상위원회에서 허접한 논리를 내세워 그들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처량하다 못해 참담해진다. 어떻게든 해석해보려 해도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부실하다.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면 할수록 그들의 행동에서는 '자본'의 냄새가 짙게 배어나온다. 영상위원회가 수익성을 바탕에 두고 '난타 공연 유치'를 추진하려 했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아 절망감이 깊어간다. 수준 높은 영화를 소개하거나 도민들이 손수 만든 영상물을 지속적으로 예술극장에서 상영하는 것과, 매회 관람객에게 4~5만원을 받고 난타를 3년 동안 공연하는 것. 영상위원회 입장이 아닌,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보면 수익성으로 보나 가치적인 측면에서 보나 과연 어느 편에 지지의 손을 들겠는가.



향후 대응방안


격하게 표현하자면 제주특별자치도와 영상위원회는 진정한 '영상의 섬'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꿈'을 산산이 짓밟았다. 우리가 꾸는 '꿈'을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았고 '꿈'을 이루는데 동반자가 될 것으로 여겼던 그들은, 알고 보니 '꿈'꾸는 것을 방해하는 '가까이 있던 이들' 밖에 되지 않았다. '꿈'을 향해 희망과 절망 사이를 부딪치며 전진하는 가운데 다행히 우리들의 '꿈'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아 반갑고 고맙다.
'난타 상설 공연' 실무협약이 있은 뒤 3월11일 전국 17개 단체, 94개 영상, 미디어단체가 모인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는 연대 지지 성명서를 발표해 도내 단체들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여기에 다양한 경로로 전국에서 단체, 개인들의 지지가 잇따르고 있다. 앞으로 각 단체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 전국적인 연대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것이다.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난타 공연 계약을 당장 취소하고, 다른 도내 전문 공연장에서 난타 공연을 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한 '(가칭)제주특별자치도 영상미디어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를 만들어 미디어센터 운영위원회를 따로 조직토록 하고, 공공적 기능을 조례상에 명문화하도록 요청할 방침이다.
만약 - 그럴 리 없을 것이라고 믿지만 - 4월18일 예정대로 '난타 공연'이 진행될 경우 단체 간 협의를 통해 공연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작업에 돌입할 것이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처사를 마냥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다.



'꿈'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미디어센터는 현 세대의 향유물이 아닌 세대를 이어 전해져야 할 유물이고, 무한하게 작동하는 '꿈의 공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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