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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2호 현장] 시청자가 [보물상자] 살리기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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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2호 / 2008년 6월 19일

 

 

시청자가 [보물상자] 살리기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김 은 철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 사무국장)
 
지난 5월23일 마산MBC는 ‘2008년 TV 봄개편 안내'를 통해 5월24일(토) 방영분을 끝으로 하여 시청자제작프로그램 [보물상자]를 기존 주1회 편성에서 월1회 편성으로 ‘축소편성'한다고 발표하였다. [보물상자]는 시청자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프로그램으로서 2005년5월1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153회에 걸쳐 540여 편의 작품이 방영됐다. 경남지역은 물론이고 가깝게는 부산울산, 멀게는 전국의 모든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가 [보물상자]의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보물상자]를 통해 시청자 스스로의 주장과 이야기를 직접 시청자에게 전달해 왔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어느 장애인운동가에게 ‘[보물상자]를 자주 보냐.'고 물어보니 ‘사실 TV 시청 시간 자체가 별로 없어 [보물상자]는 가끔 본다.'고 했다. 다시 ‘[보물상자]는 당신에게 어떠한 프로그램인가.'라고 물었다. '물론 언론에서도 장애인복지가 향상될 수 있도록 보도를 많이 해준 것은 사실인데 일반적인 보도에는 한계가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다니면서 이동권과 장애인활동보조권리를 주장하는데 보도에서는 이런 걸 계속 실어줄 수가 없다. [보물상자] 같은 경우는 우리가 어떻게 그 지역에 갔고 그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청자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가 있다. 우리 같은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아침부터 밤까지 따라다니면서 촬영하고 10분씩 시간할애를 해서 방송을 해주는 곳은 없다. [보물상자]야말로 우리들의 살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경남지역의 한 농민에게 [보물상자]를 자주 보냐고 물었다. ‘사실 그 동안 통 안 봤다'고 대답하며 ‘요즘에는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라고 덧붙였다. '[보물상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리 지역에 골프장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주민의 97%가 반대하는 사업이다. 우리 스스로 미디어교육을 받고 작품을 기획하고 촬영 편집까지 하여 우리가 왜 골프장건설을 반대하는지를 영상을 제작하여 [보물상자]에 방영할 수가 있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보물상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창원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토요일 아침에 [보물상자]를 보아 왔다. 내용이나 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역의 이야기와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이었고 작품을 보면서 이번에는 누가 나올까하는 기대감이 [보물상자]를 보게 하는 힘이었다.'고 했다.


풀빵장사를 하는 어느 40대중반 아저씨는 ‘동네 살아가는 얘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어느 날 [보물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축소편성 됐다니 아쉽다.'며 ‘시청자의 의견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보물상자] 폐지가 거론되는 것이 외부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10일에 있었던 이른 바 ‘방송사고'가 그 출발점이다.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과 경남농아인협회가 진행한 미디어교육 [수화! 캠코더와 헤딩하다]의 수료작품 중 농아인이 직접 제작한 [수화는 농아인의 언어다]가 보물상자 151회에 편성되었다. 

[수화는 농아인의 언어다]라는 제목에서 ‘언어'라는 것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용하는 언어권에 따라 문화가 형성되듯이 농아인들은 수화를 통해서 문화를 형성한다. 이 문화에서 오디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를 보든 전화를 받든 오디오가 없는 것이 농아인들의 일상적 삶이다. 
[수화는 농아인의 언어다]는 6분 42초 중 10여초를 제외하고는 오디오가 없이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여타의 방송채널을 통해서는 방영될 수가 없다. 농아인 들에게는 퍼블릭액세스프로그램 [보물상자]가 있었고, 자신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소통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오디오가 없어서 방송 송출과정에 송출기가 자동으로 사고라고 판단하여 다른 지역국으로 자동 전환되었다 다시 돌아오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종편을 담당하는 마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는 대부분 오디오가 없음을 확인하였으나 작품의 기획의도를 존중하여 오디오가 없는 상태로 그대로 방송한다는 결정을 하고 송출용 테이프를 제작하여 송출실로 전달했다. 마산MBC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송출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술적 시스템에서 이 테이프가 ‘무변조'라는 사실만 알았다면 ‘송출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어느 장애인단체의 한 실무자는 ‘이것은 방송사고가 아니다. 방송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꼭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 이번 사건이 방송사고로 규정될 수 있다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지난 반세기의 방송이, 모두 방송사고였을지 모른다. 
마산MBC는 5월10일에 방송이 나간 이후 5월23일 마산MBC 봄개편 발표가 있기까지 폐지에서 축소를 오가며 2주 만에 월1회 축소편성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보물상자]의 운영에 대하여


[보물상자]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현재 PD가 없이 시청자가 제작한 작품을 내용에 대한 가감 없이 그대로 마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종편을 담당하고 송출용 베타테이프까지 제작하여 송출실에 직접 넘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운영의 측면을 보면 마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는 조직구성표상에는 시청자제작프로그램운영위원회가 있으나 실제적으로 가동되지는 않았고 매주 방영분에 대한 편성은 경남미디어공동체 회의를 통해 이루어져왔다. 
경남미디어공동체는 마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 경남독립영화협회,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을 비롯한 7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마산MBC의 일방적인 [보물상자] 축소편성에 대응하여 [보물상자]를 살려내겠다고 구성된 <시청자제작프로그램 [보물상자] 정상화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에 참여한 단체를 보면 마산창원지역을 중심으로 한 단체만도 30여개나 된다. 단순한 숫자상의 문제가 아니라 경남미디어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운영에 있어 이 단체들을 포괄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 동안 시청자제작프로그램 [보물상자]는 운영에 있어서 지역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시청자가 주인이다


지난 6월4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미디어활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보물상자] 정상화와 시청자제작프로그램 독립성확보를 위한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첫 번째로,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로부터의 어떠한 여론수렴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보물상자]를 축소 편성한 마산MBC의 행위는 시청자의 주권을 무시하고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임을 확인하고, 둘째로 마산MBC에게 월1회 축소편성이라는 일방적 결정을 취소하고 주1회 편성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하며, 셋째로 시청자제작프로그램 [보물상자] 운영의 독립성 확보를 위하여 [보물상자]의 운영에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하여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단체와 미디어활동가들이 준비위원회의 자격으로 <시청자제작프로그램 [보물상자] 정상화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이하 대책위) 구성을 제안하기로 결정하였다. 대책위 구성 제안에 지역적으로는 40여개 단체가 동참하였으며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에 가입된 단체를 포함하여 100여개의 단체가 동참을 하였다. 6월11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회의실에서는 마산창원 및 인근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단체들이 모인 가운데 대책위가 발족되었으며, 민주노총경남본부, 마산YMCA, 김주열추모사업회,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경남시청자영상제작단으로 대표단을 구성하여 우선적으로 마산MBC측에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청자가 대책위의 주인이다


대책위에는 직접적으로 미디어활동을 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들만 들어와 있지 않고, 지역의 장애인단체, 사회운동단체, 주민자치단체, 농민단체, 환경단체, 노동조합 및 노동단체, 문화단체 및 문화인, 외국인노동자상담소, 청소년단체 등 [보물상자]를 살려야 한다는 뜻에 같이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이미 미디어운동에 들어와 있지만 '미디어운동', ‘퍼블릭엑세스' 같은 용어와 개념들에 대해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나 고민하는데 있어 차이를 가지고 있다. 
시청자로 불리는 이 단체들이 일방적인 [보물상자] 축소편성의 직접적 피해자이며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따라서 대책위의 실질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들은 대책위를 출범하는 과정에서 회의를 진행하는데 미디어활동의 경험을 가진 부분들과 융합의 문제에서 굉장한 고충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내하면서 [보물상자] 정상화에 절대적인 지지와 동참의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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