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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2호 현장]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노동조합 창립 배경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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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2호 / 2008년 6월 19일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노동조합 창립 배경과 의미 



박병화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분회 분회장)
 
지난 5월 3일 오후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에서는 작은 노동조합의 출범식이 있었다.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지역 지부장, 민주노총부산본부, 시민사회활동가 등 40여명이 참석해 노동조합 초년병들의 출정을 축하해 주었다. 이름이 길어 축하 화환에 한 줄로 다 들어가지도 않는 이 노동조합은 조합원 12명의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분회'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는 2005년 11월 구 방송위원회가 방송발전기금을 조성해 건립한 미디어공공시설이다. 물론 방송위원회가 어느 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건립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 과정에 수많은 시민사회의 노력과 미디어활동가들의 피 튀는 게릴라 전투들이 있었음은 적어도 이 웹진 <ACT!>를 보고 계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3개 팀에 센터장과 운영요원을 포함 전체 21명의 구성원들이 미디어민주주의 실현과 시청자주권 확립이라는 건립이념을 현실에서 구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2006년 2월에 센터에 합류했고 어리버리 하다 보니 몇 개월이 날아가 버리는 등 휑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든 곳이 그렇겠지만 센터도 개관 초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방송위와의 갈등은 대표적인 것이었다. 2006년 초 방송위원회에서 예산이 풀리지 않아 센터의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준비도 다 해놓고 시민들과도 약속 해놨는데 방송위원회의 문제로 사업 진행을 못하니 여간 갑갑한 일이 아니었다. 머리 깎고 서울 올라가기도 뭣하고... 다행이 운영위원회와 센터 차원의 노력으로 몇 달 뒤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현장 속 가장 가까이에서 시민들과 부대끼며 사업을 준비해 오던 실무자들(팀원)은 누구보다 애가 탔으며 방송위원회에 하고픈 말이 많았을 것이다.


더 많은 고민들은 그 후부터 시작이었다. 사실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기 전에는 사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만 있었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내외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민사회 운동이 제도권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소란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심각한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인식의 차이는 외적으로는 방송위와 센터 또는 미디어운동권과 센터의 구도로 형성되기도 했고 내적으로는 센터장을 포함한 부서장들과 팀원들의 구도로 형성되기도 했다.


그럴 즈음 팀원들 내부에서 여러 의견들을 통합하고 공유할 소통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자기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의 현안과 업무에 대해 평소 공유하고 대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대두된 센터 내 음료 자판기의 필요성과 운영주체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직원모임의 결성은 탄력을 받았고 2007년 1월에 17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방송위원회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직원협의회(이하 직원협)를 설립하게 되었다.


직원협 활동은 센터 측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보장받았는데 2주에 한번 업무시간 내 전체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러운 의견이 오갔고 센터내의 공식회의에서는 꺼내기가 힘들었던 내부 문제부터 외부의 현안까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당장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하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생각 차이를 좁혀 나가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좋은 출발 뒤에는 초기 직원협 집행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올해 2월 정권이 바뀌었다. 우리 직원협도 초대 대표의 ‘마이 해뭇다 아이가?'란 완벽한 논리에 밀려 연임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2기 직원협 집행부를 꾸릴 수밖에 없었다. 산업과 효율, 경쟁을 중요시하는 현 정부의 설익은 정책들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미디어운동진영 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그나마 봄날은 갔다'란 분위기가 가득했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자체만으로 누가 뭐라 하는가? 다만 쏟아내는 정책들이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만드니 문제이지 않은가?


당장 센터에도 피곤의 바람이 솔솔 불어 닥쳤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통합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한동안 화학적 결합이니 뭐니 하며 자기네들끼리 싸운다고 이미 진행한 센터사업의 사업비가 집행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 방송위 측에서는 위원장 취임이 늦어져 본인들 보직도 못 받은 상황이라 현재 센터를 담당할 직원도 없고 방통위 관련 법령이 준비가 안 돼 예산을 집행할 근거도 없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센터는 방통위에 이렇다 할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고 운영위원회 또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그저 굴러가는 상황만 바라볼 뿐이었고 센터 위상변화에 대한 확인 안 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직원협 차원에서의 고민은 깊어갔다. 정치적 환경과 정책의 변화로 인해 건립이념의 훼손과 센터의 위상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 직원협 형태의 조직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변화에 능동적이지 않으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우리들만의 가치로 폄하될 것이고 그렇다고 행동으로 옮기자니 힘이 없었다. 여러 차례 회의를 했고 여러 의견들을 들었다.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공유는 물론이고 다들 대단한 전략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분석과 예상도 해가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사실 대안은 노동조합 밖에 없었다. 실제적인 힘을 갖는 것, 그러니까 법적지위와 법적권한을 갖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서류 던지는 건 일이 아니잖아. 그 후에 뭘 어떻게 할 건지가 관건이지.”
“공감대 형성이 부족합니다. 형식적 공감대 형성이 아니라 필요성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올 2월 노동조합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한 두 사람 외에는 노동조합의 경험이 전무한(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얻어 본 적이 없었기에) 상황이라 무엇부터 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민주노총부산본부와 언론노조의 도움을 받았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과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했다.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강사료를 짜내 3차례에 걸쳐 특강도 진행했다. 예전에는 누가 잡아갈까봐 이런 걸 몰래 했다고 한다. 꽃은 봄날에 피고 봄날은 앞서 고생한 분들에 의해 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립총회와 출범식을 하는 5월 3일은 다들 분주했다. 준비부족 등의 이유로 창립 일정을 2번이나 늦춘 후에야 최종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간소하게 하려했는데 여기저기 손님도 초청하고, 그래서 나름 절차도 갖추다 보니 제법 일거리가 많아졌다. 돼지머리 입 벌리는 데에만 세 사람이 달라붙어 10여분을 할애했다. 오후 3시쯤 우리끼리의 창립총회가 끝나고 이어서 출범식이 진행됐다. 커다란 공개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작으로 출범식은 시작되었고 별다른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았음에도 다들 즐거워하며 자리를 지켜주었다. 혹자는 진행 중 일어난 몇몇 자연스러운 퍼포먼스가 더욱 빛을 발했다고 한다. 무슨 소린지...


출범식은 성황리에 끝이 났고 돼지머리를 잘 어루만진 덕에 천만다행으로 적자도 면했다.






지난 5월 29일 ‘전국언론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 산별교섭단 워크숍'이 부산에서 있었다. 지역별 단위사업장 대각선 교섭 일정과 집중교섭 사업장 선정이 주요 안건이었다. 이날 워크숍에는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KBS지역총국, 지역MBC, 지역광역방송, 지역일간지 등 부울경 지역 20여개 지부 및 분회가 참여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전국 150여개 지부 및 분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19,000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대부분은 미디어운동권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주류언론이고 조합원은 주류언론 종사자들이다. 개혁적 미디어운동진영에서는 주류언론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들 틈에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와 센터 구성원들이 합류를 한 것이다.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분회가 아주 개혁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주류언론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상충은 언론노조 내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노조는 규모도 작고 이제 막 생겨나 언론노조 내부에서 는 입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언론노조는 거대 규모의 주류 언론노조에 의해 의제가 설정되고 투쟁방향이 결정되고 있다. 마산MBC의 <보물상자> 같은 참여프로그램의 축소개편 문제는 안건도 되지 못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디어민주주의와 시청자주권의 실현, 미디어공공성 확보와 같은 언론노조의 구호들이 실제 사업장 내부에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미디어센터 노조내부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부분 일 것이다. 언론노조 내부에서 참여적 미디어운동의 작은 바람이 불면 주류언론의 현장에서도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은 전국 최초의 미디어센터 노동조합이다. 이제 첫 걸음을 내걸었고 내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방통위와의 관계 
속에서 센터가 하지 못하는 역할도 해내야 하고 센터가 잘못 가고 있을 때 과감한 비판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직은 자체 동력도 빈약한 상태고 체계도 확립하지 못했다. 몇 년 후 노조 팔아먹었다는 소리가 안 나오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세상 보는 눈도 길러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창립 의미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공감대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시간은 좀 늦어지더라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청자미디어센터(부산) 노동조합 홈페이지 http://comcun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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