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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4호 이슈] 방송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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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방송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1)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
 
[편집자주] 이 글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케이블방송 관련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 SO(System Operator) : 종합유선방송국(지역케이블TV방송국)
* MSO(Multiple System Operator) : 복수의 종합유선방송국을 소유한 사업자
  예) 씨앤앰커뮤니케이션, 큐릭스, CJ케이블넷, 티브로드 등
* PP(Program Provider) : 채널사용사업자, TV프로그램을 제작, 공급하는 사업자
  예) YTN, OCN, MNet, 바둑TV 등
* MPP(Multiple Program Provider) : 복수채널사용사업자, 복수의 채널을 소유하여 
     운영하는 사업자

  예) CJ미디어(TVN, 홈CGV, 올리브 등), 온미디어(OCN, 온스타일, 온게임넷, 투니버스 등) 등




방송법 시행령 입법 예고, 케이블 규제 완화가 핵심


IPTV 사업법 시행령을 제정하자마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방송통신위원들은 7월 9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 관련 간담회를 열었고, 지난 7월 23일 방송사업 소유가 제한되는 대기업 기준을 완화하고 케이블TV SO의 시장점유 제한 기준을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한 후, 7월 30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는 올 2월 구 방송위원회가 해체(2월28일)되기 직전인 2월19일 열렸던 전체회의에서 확정한 애초의 초안에서 케이블 SO에 대한 허가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만 빠져 있고 대부분 그대로의 내용이 입법예고 된 것이다.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케이블TV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이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지상파 방송과 보도 및 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소유가 금지되어 있는 대기업의 기준을 현행 자산규모 3조원(상호출자제한 기준)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했다. 둘째, SO 시장점유율 제한 기준을 매출액 33%에서 가입가구 수의 3분의 1로 변경하고, 규제 형평성을 위해 SO의 방송구역 수 소유제한을 5분의 1 이하에서 3분의 1 이하로 완화했다. 셋째, SO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현재 아날로그 방송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주파수 대역 일부(450-552MHz)를 디지털 방송에 사용할 수 있도록 SO가 운용해야 할 채널 하한선을 70개 이상에서 50개 이상으로 축소했다.


물론, 이 외에도 개정안에는 지상파DMB 운용채널 규정 변경(TV/라디오 채널 뿐 아니라 데이터 채널 반드시 포함), 위성DMB 채널 수 규제 완화, 위성방송의 직접 사용 채널 수 규제 합리화, 데이터 방송 광고규제 완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방통위가 내놓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케이블TV의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8월 14일, 입법 예고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대해 업계와 시민사회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대기업 방송진출 가시화, 공적 프로그램 및 저널리즘 악화 우려



먼저, 지상파방송,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상호출자제한제 기준 자산규모 3조원 미만 기업집단 소속에서 10조원 미만 소속으로 변경한 것은 결국 대기업의 방송진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방통위는 대기업의 진입규제 완화 이유를 ‘기업들의 투자 촉진과 방송 산업 경쟁력 제고'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방송에 진출한 대기업은 방송을 이윤동기에 따라 지배할 것이 분명하며, 이는 방송영역의 급격한 상업화와 공적 기능의 약화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이다. 또한 방송은 언어와 문화의 한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최근 저조해지기는 했지만, 몇 년간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맹위를 떨쳤던 ‘한류'를 떠 올릴 수 있다. 공영지상파 방송에서 주로 만들었던 나름대로 한국의 색깔이 있는 프로그램들이 세계시장에서 크게 어필했다는 점이다. 이후 기획사 등을 통하여 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부터 한류는 오히려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기업의 단기적, 즉각적 이윤 추구 논리 앞에서 문화적으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의 핵심은 내용의 다양성과 편성의 독립에 있다.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 등을 겸영할 경우, 방송 내용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기업관련 정보가 왜곡될 것이고, 기업이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권력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보도 기능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아무리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고 해도 인사나 편성에 있어서도 모기업의 간섭과 관여가 구조화될 것이다. ‘재벌-방송-권력'으로 이어지는 ‘삼각동맹' 역시 가능성이 큼으로써 언론으로서의 저널리즘 기능이 위축되고 국민의 알권리에 위협을 가할 것이다.(*주2)




부유 촌에만 집중되는 방송 서비스 유발


기존 방송법 시행령은 특정 SO(특수관계자 포함)가 전체 SO 매출액의 33%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특정 SO가 전체 방송구역(77개)의 5분의 1을 초과하는 구역에서 겸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매출액 규제를 삭제하고, 특정 SO(특수관계자 포함)의 겸영규제 범위를 방송구역의 5분의 1에서 총 케이블 가입자의 3분의 1 이하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매출액 규제를 삭제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전체 방송구역 5분의 1 이하에서 총 케이블 가입자의 3분의 1로 변경하는 데 있다.


전체 방송구역의 5분의 1로 SO의 겸영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사전규제이다. 전체 방송구역이 77개의 5분의 1 이하인 15개 이하의 방송구역에만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효과가 매우 명확한 셈이다. 반면, 총 케이블 가입자의 3분의 1 이하는 사후규제이다. 몇 개의 방송구역에 진출하든 상관없으며, 그 진출의 결과 총 케이블 가입자의 3분의 1을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3분의 1을 넘는다 해도 마땅히 제재할 수단이 없는 게 사후규제다.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변경하는 데 따른 가장 큰 문제점은 거대 MSO에 의한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림 스키밍은 이른바 돈 되는 알짜배기 방송구역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방송구역은 외면하는 것을 말한다. 케이블TV는 기본적으로 특정 지역의 독점사업자였다. 그리고 겸영은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크림 스키밍이 발생할 소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국의 SO가 몇몇 MSO로 통합되는 현실에서는 크림 스키밍이 크게 문제될 수 있다. 돈 안 되는 방송구역에서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형식적으로만 유지하고 소위 돈 되는 ‘부유한 동네'에서만 집중할 가능성이 농후하다.(*주3) 그렇게 해도 총 케이블 가입자의 3분의 1만 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돈 안 되는 방송구역에서 철수하진 않는다 해도, 돈 되는 방송구역보다 투자와 서비스 개선에 인색하게 굴 위험성이 상존한다. 이미 디지털 케이블로의 전환 과정에서 수도권과 광역시를 대상으로 한 크림 스키밍은 매우 심각하다. 이는 국민들에게 또 다른 소외와 정보격차, 다양한 방송 서비스를 누릴 권리를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방송권역을 형해화 시키고 디지털 케이블의 크림 스키밍을 악화시키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낳는 부작용의 또 하나는, 거대 MSO에 의한 인수/합병 과정에서 '머니 게임'을 부추길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으로 무장한 거대 MSO는 결국 중소규모의 SO를 인수하거나 합병함으로써 독점체제를 공고히 하려 할 것이고, 이로 인해 발생한 지출을 소비자에게서 보상받고자 할 것이다.




디지털 케이블로의 강제적 전환을 유도


SO가 운영해야 할 아날로그 채널의 하한선을 현행 70개에서 50개로 낮추는 내용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규제완화다. 이는 케이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디지털 채널을 늘리는 대신 아날로그 채널을 축소하는 것을 방통위가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에 해당한다.
시청자로서는, 지금까지는 아날로그 상품 가운데 가장 비싼 상품(월 8천원)에 가입하면 70개를 볼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50개밖에 못 본다는 것이다. SO의 영업행태를 예상해 보면, 아날로그 채널에서 인기 있는 채널들을 디지털로 옮길 수 있다. 인기 채널을 디지털 상품에 배치해 월 2만원 수준인 디지털 상품 가입자를 늘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청자가 좋아하던 채널이 아날로그 상품에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채널 하한선 축소가 낳을 채널 이동의 예
EX) 의무형상품(월 4000원)- 40개 채널(지상파+공익CH+OCN....)
    기본형상품(월 5000원)- 의무형+지상파 드라마 채널(50개)
    고급형상품(월 6000원)- 기본형+지상파 스포츠 채널(60)
    프리미엄상품(월 8000원)- 고급형+바둑, 골프, 디스커버리 등(70)
    디지털상품(월 2만원)- 프리미엄+HD+별도PP+VOD 등


이 과정에서 SO 디지털 케이블 가입을 늘리기 위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게 바로 영화채널 OCN과 같은 MPP의 인기 채널들, 드라마나 스포츠 등 지상파 계열 채널들일 수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53조 제2항 2호 마는 SO를 통해 송출되는 지상파 계열 PP의 수를 텔레비전채널 수의 100분의 20(재송신 채널은 제외)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채널 하한선이 70개에서 50개로 낮아지게 되면, 아날로그 채널에서 방송되는 지상파 계열 PP의 수는 최대 14개에서 10개로 줄어든다. KBS, MBC, SBS의 계열 PP가 14개가 넘는 상황에서, 적어도 4-5개 채널은 아날로그 상품에 배치될 수 없는 것이다. SO는 이들 지상파 계열 PP를 디지털 상품에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채널 하한선 축소는 입만 열면 콘텐츠 활성화를 강조해온 방통위의 정책 노선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군소 PP들의 경우 지금도 SO에 채널 공급을 하려고 뒷돈까지 줄 수밖에 없는 약자다. 이런 상황에서 송출 기회가 70개에서 50개로 줄어든다는 것은, 한층 더 주변으로 몰릴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미디어 규제완화,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방송 나아가 미디어의 공적 영역 보다는 철저히 자본과 사적 영역을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개정안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미디어 정책 기조가 ‘규제완화'라는 신화를 앞세워 시장주의에 근거하고 있어, 자본과 사적 영역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제기되고 있는 신문방송의 겸영 규제 완화나 공영방송의 민영화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방송의 공공성 보다는 산업적 진흥을 우선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완화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공익보다 시장이 우선되는 정책이 구현되면, 과연 수용자가 이익을 보는 지, 자본을 앞세운 미디어 사주가 이익을 보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주
1)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는 지난 2008년 8월 6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문제점 점검' 발제문은 필자 및 공공미디어연구소의 견해임으로 이를 재구성 및 보완하였음을 밝힌다.
2) 최영묵(2008), “방송법/시행령 개정과 미디어 균형발전”, <방송법 시행령, 무엇이 문제인가? 쟁점 대 토론회> 발제집, 한국언론학회
3) 최영묵(2008),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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