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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4호 이슈] 허울뿐인 한국의 정보화, 공공의 목소리(Public Voice)를 들어라! -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대한 OECD 장관회의 참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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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허울뿐인 한국의 정보화, 공공의 목소리(Public Voice)를 들어라!
-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대한 OECD 장관회의 참가 보고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지난 6월 17~18일, 서울 COEX에서는 "인터넷 경제의 미래"라는 주제로 OECD 장관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지난 1998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장관회의가 개최된 이래 10년 만에 개최된 회의이다. 98년 회의 당시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초창기로, "국경 없는 세상-글로벌 전자상거래의 가능성 실현"라는 주제로 개최된 바 있다.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인터넷은 (최소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우리 사회 다방면에,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이 변화된 상황 속에서 인터넷 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광범한 트렌드와 정책을 분석하기 위해 장관급 회의를 개최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2006년 12월 OECD 각료 이사회에서 장관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OECD 장관회의에 앞서, 6월 16일에는 기업, 기술전문가, 시민사회-노동계 등 각각의 이해관계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각 이해관계자 그룹들은 사전 회의를 통해 관심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각 이해관계자 그룹에서 합의된 의견서를 장관회의에 전달하였다.


OECD가 선진국들의 포럼으로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기구라는 점 때문에, 진보넷은 이 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회의를 보이콧하고 외부에서 OECD 회의에 항의하는 행동을 조직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그러나 진보넷이 회원으로 속해있는 국제조직인 진보통신연합(APC)을 비롯하여 정보통신운동 관련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미 이 회의에 개입하기로 결정하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보넷은 이들과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OECD 장관회의의 결과


이번 OECD 장관회의의 슬로건은 "디지털 세상의 창조(Creativity), 신뢰(Confidence), 융합(Convergence)을 위한 정책 마련"이다. 그리고 미래 경제성과와 사회복지 향상, 융합의 혜택, 창의성 증진, 신뢰 구축, 글로벌 인터넷 경제 등 5개의 주제 하에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장관회의는 그 결과물로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관한 서울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OECD 장관회의의 결과물들은 각 국에 구속력 있는 '국제협정'은 아니며, 단지 가이드라인의 제시나 권고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1980년 발표된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Council Recommendation concerning Guidelines Governing the Protection of Privacy and Transborder Flows of Personal Data)'과 같이, 각 국의 관련 법제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채택된 '서울 선언문'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선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 프라이버시 보호, 소비자 보호, 표현의 자유 등 좋은 얘기는 다 포함하고 있지만, 이러한 가치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에 의해 작성되고 서명된 선언문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국가 검열이나 내용 필터링에 의한 표현의 자유 제한, 지나친 지적재산권 강화로 인한 정보 이용의 위축 등 선언문에 명시된 가치를 제한하고 있는 현행 국가 정책의 문제에 대한 반성적 사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OECD는 서울 선언문과 함께, '인터넷 경제의 미래를 위한 정책 형성(Shaping policies for the future of the Internet economy)' 보고서와 그 부록 문서를 발표했는데, 이는 검토해 볼만하다. 이 보고서는 2008년 3월 28일, 'OECD 정보,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정책 위원회(Committee for Information, Computer and Communications Policy)'의 승인을 받은 것인데, 특히 그 부록에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정책 가이드라인을 담고 있다. 이 중 RFID와 온라인 신원도용에 대한 정책 가이드라인,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및 모바일 거래에서의 소비자 권한 강화에 대한 정책 가이드라인 등은 시민사회-노동계가 자체 성명서를 통해 OECD 이사회가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참여


이번 OECD 회의에는, 프라이버시 운동의 대표적 단체인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EPIC)'의 대표 마크 로텐버그(Marc Rotenberg), 지적재산권/프라이버시 등 정보사회의 제반 정책과 관련해 선구적으로 활동해 온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그웬 힌츠(Gwen Hinze), 전 세계 정보통신단체들의 연합체인 진보통신연합(APC)의 사무국장인 안리에트(Anriette Esterhuysen), 지적재산권/의약품접근권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KEI의 제임스 러브(James Love) 등 해외에서 30여명의 시민사회단체, 학계, 노동계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참석하였다. (사실 진보넷 입장에서는 OECD 회의 자체에의 참여보다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전 세계 활동가들과의 교류를 강화하는 것에 더욱 큰 의미를 두었다.)


OECD 회의에의 시민사회 및 노동계 참여는 '공공의 목소리 연대(The Public Voice coalition, 이하 PV)'를 통해 이루어졌다. PV는 1998년 오타와에서 개최된 OECD 장관회의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 활동했던 단체들이 결성한 것으로, 이후 다양한 인터넷 정책과 관련하여 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에 개입해오고 있다. PV 홈페이지 및 메일링리스트 운영, 정기적인 온라인 회의 등 전반적인 코디네이션 역할을 EPIC에서 맡고 있다.




PV는 지난 2007년 중반부터 OECD 회의 참여를 준비해왔는데, 본격적인 논의는 올 초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메일링리스트와 위키를 통해 OECD 회의에 제출할 시민사회 입장과 6월 16일 개최된 시민사회-노동계 포럼인 '시민, 소비자, 노동자를 위한 인터넷 경제의 미래 만들기(Making the future of the Internet economy work for citizens, consumers and workers)' 기획을 논의해왔고, 지난 5월 '시민사회 입장문서(Civil Society Background Paper)'를 OECD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6월 16일 시민사회-노동계 포럼이 끝난 후, 시민사회-노동계의 입장을 압축한 '시민사회-노동계 서울 선언문'을 발표하였는데, 6월 23일 현재 81개 단체와 98명의 개인들이 서명하였으며, 올해 12월 10일까지 계속 연명을 받을 예정이다.


'시민사회-노동계 서울 선언문' 역시 선언문이라는 형식의 한계와 시민사회 내부의 다양한 입장 차이 등으로 인해 다소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시민사회의 입장문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논쟁이 되기도 했지만, '시민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시민사회는 '정부와 기업이 아닌 영역'으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규정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민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합의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가? 시민사회를 '정부와 기업이 아닌 영역'으로 규정한다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시민사회 영역에서 공통의 입장을 추출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만일 어떤 '시민사회의 가치'가 있다면, 그에 동의하지 않는, 그러나 정부와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주체들은 배제되는 것인가? 사실 '시민사회'라는 것은 어떠한 공통의 이해관계 혹은 입장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에 정부나 기업 외의 개인들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일지 모른다. 비록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인권과 공공성'을 옹호하는 학자 그룹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시민사회'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을 해왔지만, 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이번에 시민사회 입장문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자본의) 세계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다소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 문제는 단기간에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봉합된 바 있다.


'시민사회-노동계 서울 선언문'에서 OECD에 강하게 요구한 내용 중 하나는 OECD 내에 공식적으로 '시민사회 자문위원회'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미 노동조합자문위원회(the Trade Union Advisory Committee, TUAC)와 업계자문위원회(the Business Industry Advisory Committee, BIAC)는 설치되어 있다. 비록 이번 회의에서는 이 요구가 수용되지 못했지만, OECD 사무총장(the Secretary General)인 앙헬 구리에(Angel Gurria)의 폐막 연설에서 “인터넷 경제에 대한 OECD의 작업에 시민사회와 기술 공동체의 참여를 공식화할 작업을 시작할 것을 권고”한 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한편, 시민사회 활동가들 내에서는 이번 OECD 회의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위조품 방지 무역 협약(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 ACTA)"에 대한 문제제기의 필요성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ACTA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주로 선진국 정부 사이에서 은밀하게 논의되고 있는 국제협약인데(한국 정부도 ACTA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다시피 국가 간에 지적재산권 집행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OECD 회의가 열리기 몇 주 전에 제네바에서 ACTA 협의가 진행되었는데, 시민사회단체들은 ACTA 논의가 세계무역기구(WTO)나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등 기존에 지적재산권 문제를 다뤄왔던 국제기구에서 투명한 절차를 밟아 논의되지 않고 선진국 정부 간에 비밀리에 논의되고 있다는 점, ACTA가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실체적인 내용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강하게 비판할 필요성까지 제기되었지만, ACTA에 대해 별로 드러난 점이 없다는 점과 기자회견을 준비할 여력의 부족 등으로 '시민사회-노동계 서울 선언문'에 포함되는 수준에 그쳤다.


국내외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별도의 저녁 모임을 통해 서로 교류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애초에 별도의 시민사회 토론회나 해외 활동가 인터뷰 등을 기획해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의 정보통신 정책과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이번 OECD 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된 것은 한국의 발전된 정보통신 인프라와 기술을 자랑하고자 한 한국정부의 로비가 작용했을 터였다. 행사장 앞과 주변에는 와이브로(Wibro), IPTV, DMB 서비스 등을 소개하는 전시관이 자리 잡았고, OECD 회의에 대한 기사들도 해외 유명 CEO의 인터뷰나 IT 기술 교류의 성과 등으로 도배되었다. (이 회의는 주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으며, 주로 경제지나 정보통신 전문지 등을 통해서만 기사화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보통신 정책은 과연 '인터넷 강국'이라고 할 만큼 선진적인가? 진보넷은 6월 16일 이해관계자 포럼 진행 중에 행사장 로비에서 한국의 후진적인 정보통신 정책을 비판하는 기습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한편, OECD 회의가 개최된 때는 마침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었고,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컸던 시점이었다. 이에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공동으로 경찰 폭력의 실상을 폭로하는 사진전과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동시에 진행했다. OECD 회의 이전부터 해외 언론을 통해서, 혹은 PV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촛불시위와 경찰폭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기에, 많은 해외 활동가들이 우리의 기자회견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일부 해외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플래카드 뒤에 서서 우리의 기자회견을 엄호해주기도 했다.





지금 OECD 회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한국의 정보화는 여전히 그 내용보다 겉치레에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한국정부가 만든 OECD 장관 홈페이지에는 OECD 회의의 자료조차 제대로 올라와 있지 않다. '서울 선언문'과 라운드테이블 요약문, 연설문 등이 방송통신위원회 게시판에 올라와있기는 하지만, '인터넷 경제의 미래를 위한 정책 형성' 보고서나 이해관계자 그룹 문서 등 정책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OECD 회의에 투여되었을 그 많은 돈으로, 회의등록자에게 가방과 외장 메모리를 나눠줄 여유는 있어도, OECD 회의에 제출된 정책 보고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적극적으로 유통하려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인터넷의 밝은 미래가 과연 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
참고 웹사이트
- OECD 장관회의 사이트 : http://www.oecd.org/futureinternet
- OECD 장관회의 한국사이트 : http://www.oecdministerialseoul2008.org/kr/
- The Seoul Declaration for the Future of the Internet Economy :
http://www.oecd.org/dataoecd/49/28/40839436.pdf
- 서울선언문(국문) :
http://www.bcc.go.kr/secureDN.tdf?seq=80&idx=4&board_id=KCC_02_02
- Shaping policies for the future of the Internet economy :
http://www.oecd.org/dataoecd/1/29/40821707.pdf
- Shaping policies for the future of the Internet economy: Annexes
(including Recommendations and Guidances) :
http://www.oecd.org/dataoecd/1/28/40821729.pdf
- The Public Voice : http://thepublicvoice.org/
- Civil Society - Organized Labour Forum :
http://thepublicvoice.org/events/seoul08/
- The Civil Society & Organized Labor Seoul Declaration :
http://thepublicvoice.org/events/seoul08/seoul-declaration.pdf
- 시민사회-노동계 서울선언문(국문) :
http://thepublicvoice.org/events/seoul08/seoul-declaration-korean.pdf
- Civil Society Background paper :
http://thepublicvoice.org/events/seoul08/cs-paper.pdf
- OECD 장관회의를 맞아 한국의 정보통신 정책과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
http://act.jinbo.net/webbs/view.php?board=policy&id=1426&page=3
- 美비자면제프로그램, "민주정부라면 거부해야", EPIC 마크 로텐버그 인터뷰, 민중언론 참세상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8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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