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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4호 이슈] 인터넷 규제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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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인터넷 규제의 허와 실



송 경 재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 skjsky@gmail.com)
 
인터넷은 과학기술, 군사, 자유문화의 산물이다.


정보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M. Castells)은 『인터넷 갤럭시』라는 저서에서 인터넷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표현은 인터넷이 가진 태생적인 특성과 개방적 아키텍처의 발전 과정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1969년 비록 군사적인 목적에서 인터넷의 모체인 아르파넷(ARPANET)이 탄생했지만, 운영은 자유주의 정신을 구현한 초기 인터넷 운영진들이 맡았다. 그 맥은 이후 정보 자유주의자들이 계승하고 오늘날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공간으로서 인터넷으로 진화한다.
정보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이념에 따라 국가와 시장의 통제 없는 인터넷을 만들려했다. 초기 인터넷은 자유와 분산, 공유가 존재하는 수평적인 공간이었고 내부의 자율적인 정화 역시 효과적으로 진행되었다. 나아가 정보의 신뢰와 인터넷에서의 새로운 운영 규범이 형성되고 초기 공동체를 운영하는 원리가 정립되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등장은 정보유통과 확산의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인터넷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인터넷 정보 네트워크의 유통과 흐름이 반드시 공공선(公共善)은 아니다. 정보가 자유롭게 생산되고 유통됨으로 인해 기존 오프라인의 사회질서 역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인터넷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가치간의 긴장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은 첫째, 표현의 자유와 내용규제, 둘째,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셋째, 프라이버시와 정보의 집중화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나타난 이 문제들은 중요한 민주주의 가치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쉬운 해결 방법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인해 오프라인의 전통적인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방식의 정보 소통구조가 등장한다는 것은 기존의 권력집단인 국가로서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따라서 국가는 인터넷에서의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이를 통제하고자 한다. 이에 각 국가에서는 인터넷을 일정한 범위에서 통제와 규제를 위한 기제를 만들고 있다. 인터넷 통제와 규제는 중국이나 이슬람권 등 권위주의 국가나 절대 왕정국가에서 발견된다.


한국에서의 인터넷 규제 논의


이런 현상은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발전해 다른 어느 국가보다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의 정치?사회현상이 발전한 국가이다. 영국의 ≪Independent≫지는 “인터넷의 미래를 알려면 한국을 보라”라는 보도에서 가상 친구인 사이버 버디(Cyberbuddy) 문화와 메신저, 무선 인터넷 등의 보급률을 지적하며 역동적인 인터넷사회 변화에 주목한 바 있다. 신문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문화와는 다른 형태의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한 새로운 집단행동이 나타나는데 주목한다.
무엇보다 2008년 5월부터 시작된 광우병 촛불집회는 한국에서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 다대다의 e-소통 커뮤니케이션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형성된 시민들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정보 네트워크가 기존 보수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붕괴시키고 여론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확인 되듯이, 인터넷 토론방과 뉴스의 사회?정치 영향력은 이미 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제설정의 축이 된 지 오래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인터넷에서 시작된 촛불집회에 놀라, 연이어 반대적인 인터넷 미디어와 토론방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정책을 입안 중에 있다. 물론 인터넷 공간이 청정구역(clean space)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제와 정화는 필요하다. 의미 없는 댓글이나 욕설, 그리고 감정의 배설구 등은 인터넷에서 해소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규제한다고 인터넷의 긍정적인 기능마저 제한하겠다는 정책이 등장하고 있어 보다 큰 가치로서의 표현의 자유훼손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사실 인터넷 규제 담론은 몇 년 전부터 가시화 되었다. 선거기간 동안에는 ‘공직선거법'으로, 그리고 일상적인 시기에는 ‘정보통신망법'으로 규제정책을 폈다. 그리고 올해 들어 그 강도는 행정 규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세청은 2008년 4월 말부터 주요 포털사이트의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독과점을 남용하고 자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에게 시정 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고 다른 대형 포털업체들이 공정위로부터 무더기로 약관 시정지시를 내렸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인터넷 규제의 시작인지는 밝혀지겠지만 조사 시점과 내용이 촛불집회 과정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의도가 의심스럽다.
현재 정부와 여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요 규제는 여당의원과 정부 차원에서 준비되고 있다. 첫째는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있고 두 번째는 행정부(특히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도하는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이 그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인터넷 규제와 관련된 법안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초점은 인터넷 토론방과 포털 사이트 뉴스서비스와 관련된 내용이다. 대부분 법안 내용은 ① 인터넷 실명제 강화, ② 포털 뉴스의 편집권 남용 금지, ③ 포털의 미디어 역할 제한, ④ 언론중재 범위의 확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신문이나 방송과 마찬가지로 ⑤ 포털의 미디어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주요 내용은 모두 규제일변도의 정책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김영선, 진성호 의원 등이고 그밖에 다른 의원들도 관련법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둘째, 지난 7월 22일 발표된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원 입법안 보다 상세하게 인터넷을 규제하려 하고 있다. 이 대책의 주요 골자를 보면 ① 포털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해당 게시 글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경우 즉각 임시 삭제를 하며 ② 하루 평균 방문자가 30만 명이상인 대형 인터넷 사이트에 적용되었던 인터넷 실명제(본인 확인제)를 10만 명이상으로 확대 적용하고 ③ 포털, P2P 사업자 등에게 모니터링 의무의 부과 등이다. 여기에 법무부 장관도 “사이버 모욕죄” 신설 논란 등 전 방위적인 인터넷 언론 특히 포털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 규제의 실효성 평가해야


이상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 및 포털 규제의 내용을 종합하면 첫째, 대부분 인터넷 규제의 핵심이 사실상 뉴스 및 토론방을 운영하고 있는 주요 포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포털의 미디어적인 역할에 대한 논의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촛불집회에서 확인된 포털 정보유통 능력, 즉 정보 네트워크의 강력함에 대한 반작용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포털의 정보유통 능력은 영향력이 과대평가 된 것은 사실이다. 법안과 대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일부 문제점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자유로운 참여적 인터넷 여론형성과정을 왜곡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나타난 몇몇 현상을 확대해석, 이를 규제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둘째, 한국에서의 인터넷 규제 논의가 사업자(중개자) 규제와 사용자 규제, 기술규제가 전 방위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이 발견된다. 인터넷 학자들은 이미 웹 2.0시대에 진입하면서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이미 많은 네티즌들은 자신의 실명으로 글을 쓰고 있고, 일부 차단되는 사이트도 우회해서 방문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지식은 가지고 있다. 인터넷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인 장치는 아예 중국과 같은 방화벽 “인터넷 만리장성”을 구축하거나, 정부가 정보를 검열하는 방식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통제방식은 정책집행이나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대안언론인 인터넷의 영향력을 하락시키기 위한 네티즌 재갈 물리기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요컨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와 규제 간의 긴장은 이미 오래된 갈등 구조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 1조의 우선성을 지적하지 않아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점차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그 적용범위는 인터넷도 포괄한다. 한국도 이미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의 참여 지향적 매체 특성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시대에 역행하는 규제일변도의 정책은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파상적인 권리의 제한을 강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규제를 위해서는 규제의 필요성과 함께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규제는 아직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많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EU차원에서도 규제 모델이 오랜 논의와 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이런 정황은 대통령이 이번 촛불집회에서 소통의 부재를 반성하고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스럽게도 한다.
인터넷 규제의 움직임을 목도하면서 필자는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초기 자유문화 정신의 훼손을 우려한다. 물론 지적한대로 인터넷이 하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국민의 중요한 민주주의 기본권과 웹 2.0의 정신인 참여와 개방, 공유의 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규제 논의에서 실제 이용자인 네티즌들의 의견은 묵살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일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주도되는 정책은 실효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터넷 규제논의는 사용자인 네티즌과 시민사회, 운영자, 정부 등이 합의할 수 있는 영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면, 행위자인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네티즌 간의 역량과 구조 등의 교집합 속에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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