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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3호 특집] [미디어교육] 내일은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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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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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3호 / 2008년 7월 30일

 

 

[미디어교육] 

내일은 맑음


한경희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선생님, 군대 안가는 법 좀 알려주세요.”
“엉? ‘군대 안가는 법?' 그게 왜 필요한데?
“텔레비전에서 그러는데... 군대 가면 다 죽는데요. 난 죽기 싫어요.”
몇 해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군대내 안타까운 사망사건 보도가 이어지던 무렵, 미디어 교육을 나갔던 어느 학교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미디어를 통해 형상화된 초등학교 4학년 남자어린이의 머릿속 ‘군대'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단순한 존재였고, 딱히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즉답을 하기 어려운 미디어 강사의 입장에서는 짐짓 당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아울러 한마디 더, “그런데요 아빠가 부자면 군대 안간데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치...” 그해의 미디어 교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민우회가 펼쳐가고 있는 미디어교육은 미디어의 속성과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미디어의 메시지를 다각적이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시험과 평가로 마무리 되는 정규 수업과는 다르게 평상시 즐겨보던 텔레비전, 인터넷, 애니메이션, 책, 광고, 뉴스 등을 거리를 두고 함께 보면서 의견을 나누고 그 내용과 형식의 상관성을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 때로는 간단한 제작 수업을 통해 또 다른 공감, 자각, 분노를 경험해보기도 한다. 이런 모든 활동들은 숨겨져 있던 친구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힘 있게 이끌어내는 재미와 나눔의 시간이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도해온 지역아동센터 친구들과의 만남은 늘 아쉽다. 대부분 저소득 맞벌이 부부의 자녀거나 한부모, 혹은 조손가정의 자녀인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은 경제적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누군가의 돌봄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미디어 이용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규칙도 가지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노출된 경우가 많았다. 최소한의 거름망조차 없이 미디어를 접해오던 친구들은 강사가 열심히 떠들어대는 미디어의 이용과 해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철저히 무시하곤 했다. 말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친구, 다른 친구를 방해하거나 강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떠드는 친구, 일부러 반대되는 대답만 계속하는 친구 등 강사의 열정을 팍팍 꺾어 놓는 것이 무슨 기싸움이라도 되는 듯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친구들, 마치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미디어교육이 결코 허공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가슴 뿌듯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때론 제대로 된 뉴스를 전달하는 멋진 기자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지금도 등급 기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보라고 동생에게 시청지도를 했다는 친구, 게임시간을 조금씩 줄이며 스스로를 조절해 나가겠다고 약속하던 친구들의 약속이 눈에 선하다.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의사소통의 중심에 놓여 져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구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매개가 된다. 눈만 뜨면 손에 잡힐 듯 수많은 정보 속에 살아가는 지금, 미디어 없이 사회생활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이용과 해석의 ABC를 알려주는 단위는 거의 없다. 점점 더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디어를 보여 지는 그대로가 아닌 주체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교육의 필요성은 이제 더 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미디어교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밝고 당당한 웃음으로 교실 문을 나서는 저 아이들의 내일은 진정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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