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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3호 특집] 이제, 다음 슬로건을 던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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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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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3호 / 2008년 7월 30일

 

 

이제, 다음 슬로건을 던질 때이다. 





김완 /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ssamwan@jinbo.net

 
규정되어지지 않는 상황을 글로써 묘사하기란 참으로 남감한 일이다. 대개 그럴 경우 글의 모양새는 허무해지거나 혹은 믿거나 말거나가 된다. 2008년 여름의 광장을 말하는 일은 어떠할까? 참가 연인원만 해도 수백만에 이르는 70여일의 대장정은 수백만의 다른 그러나 모두 옳은 진실로 수놓아져있다. 규정할 수 없는 상황임은 물론이거니와 아직 진행 중이기까지 하다. 이 페이지에 그 대략적인 난감함만이라도 성기게 박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래된 새로움 혹은 낡은 낯섦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끌고 온 8할의 힘은 '집회'였다. 여의도(국회)와 청운동(청와대)은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에 아무런 기갈이 되어주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대단한 형식으로 언제나 위용을 잃지 않고 '군림'할 뿐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이건 민주화 정부 10년이건 집회는 계속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조계사의 수배자 천막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이 있고, 이주노동자 권리 합법화 천막이 있고, 시각 장애인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천막이 있다. 동시에 있지만 읽히지 않는다. 울리지 않을 뿐이다. 2008년 여름의 광장이, 그 촛불이 전혀 새로운 낯섦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2008년 여름의 촛불을 '오래된 새로운' 혹은 '낡은 낯섦'의 미지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촛불의 3칼라 : 교복, 군복, 아동복


우선 첫째로 그것은 촛불을 든 이들의 '때깔(color)'이었다. 이번 촛불을 새로운 낯섦으로 이끌었던 상징적인 3칼라가 있다. 교복, 군복, 아동복이다.


처음 연행자가 발생했던 집회 초기 5월 중순 어느 날, 종로 2가의 풍경은 사뭇 새로웠다.(고백하자면, 그날 처음으로 집회에 끝까지 있어 봤다.) 익숙한 얼굴들이 도로 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고 있었고,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친 아저씨, 알만한 브랜드의 
모자를 눌러쓴 그/녀들, 그리고 뱅스타일 헤어로 통일감을 준 아햏햏한 동생들이 전경과 마주하고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핵심은 아햏햏한 동생들이었다. 경찰의 침탈에 맞서는 전통적 구호는 8박자의 '폭력경찰 물러가라'인데, 이들의 구호는 주되게는 '비폭력'이었고, 자세히 들어다보면, '아저씨들 왜 이래요', '시민들이 보고 있어', '(개콘 버전으로)집에 갈라 카는데...'까지 중구난방이었다. 일사분란하게 후퇴하는 것을 모르는 그 아마추어리즘에 경찰도 당황했겠지만, 나름 집회의 '프로(!)'라고 생각했던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재밌었다. 신기하게도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고, 왠지 뭔가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집회 1라운드 2mb는 초중고와의 싸움에서 완패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중/고딩들의 일격에 2mb가 속수무책으로 넘어지면서 정국은 본격적인 난세로 접어들었다.


미래세대인 교복들의 대책 없는 용감함은 기성세대의 도덕적 투혼에 불을 댕겼다. 여기서 제일 타올랐던 이들이 예비역 형님들이다. 그들이 군복을 입고 등장한 것 자체로 집회의 긴장감은 수배가 됐다. 군 가산점제 이외의 문제에서는 집단행동을 삼가던 예비군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주의 가부장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일상적 극악함으로 인해 좌에게 배격당하고,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우에게서 존중받지 못했던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원래 아무도 예비군 그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들이 소고기를 후임들에게 먹일 수는 없다며, 예비군은 시민의 안전과 안녕을 지켜주는 것이라며 거리에 나왔다. 조중동의 경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들의 등장이 보호해주는 남성과 보호받는 여성의 사회적 재현이라는 비판은 정당하다. 실제로 그런 양상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양상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이지 촛불집회에 나온 예비군들에게 그 혐의를 모두 물을 수는 없다. 어찌되었건, 예비군마저 정부의 반대편에 서니 정부와 그 추종 세력들의 꼴이 참으로 사나와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회에 '배운 여자'들이 아동복을 배낭에 싸들고 나왔다. 수 십대의 유모차가 청와대를 향해 산보하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 실로 장관이었다. 경험적으로다가 볼 때,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언제나 무슨 수가 없었다.


촛불의 3크리에이터 : 아고라, 손 피켓, 1인 미디어


촛불의 3칼라가 스타일(style)의 문제라면, 컨텐츠(contents)에서는 아고라, 직접 만드는 손 피켓, 1인 미디어가 우리를 새로운 낯섦으로 안내했다.


다음의 아고라는 교과서의 죽은 문맥이던 '정보화 사회'의 규정을 일상의 문법으로 완전히 재구성한 창조적 파괴자가 됐다. 이 시간 사회를 운영하는 가장 강력하고 체제이자 일상적인 질서는 정보'화'이다. 정보‘화'는 조직‘화'보다 민주적이고 의식‘화'보다 상식적이고 위계‘화'보다는 평화적이란 점에서 아고라의 존폐 여부와는 별개로 독보적인 체제와 질서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만드는 손피켓 역시 별거 아닌 것 같은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투쟁과 상상력의 범위를 개인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집회 문화의 일대 혁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집회를 가늠하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들은 모두 그 손 피켓에서 나왔다. 언어를 민주화하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의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크리에이터는 이번 집회에서 지적 권위를 획득하고 존재감있는 사회적 형식이 된 '1인 미디어' 혹은 '스트리트 저널'의 등장이다. 
한겨레, 경향신문, mbc 등이 거리의 환호를 샀지만, 기본적으로 신문은 심각하게 정파 편향적이고, 방송은 너무 둔하다가 촛불 정국의 미디어관 이었다. 이 틈새를 1인 미디어가 잽싸게 파고든 장면은 아마도 미디어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장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대안 미디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1인 미디어' 역시 오래된 새로움일 뿐인데 하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너무 억울해할 것 없다. 이번 촛불 집회가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고 답을 던지고 있다.


2008년 여름의 촛불이 '오래된 새로움' 혹은 '낡은 낯섦'을 전혀 '새로운 낯섦'으로 만들어 버린 힘은 문법의 변환이었다. 문화의 민주화였다. 미디어의 민주화를 꿈꿨지만, 사회의 변환을 요구했지만 그 동안 우리는 '특정 문법'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날로 진화해가는 감수성들의 세세한 결들에 원초적 나이듦 만으로만 대응하며 우리만의 문화에만 젖어있었던 건 아닐까? 촛불은 운동의 실질적 민주화를 문화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기꺼이 주체가 될 것임을 표현했다. 대안 미디어 앞에는 두 개의 선택이 있다. '대안' 미디어이기에 소수와의 집중적인 소통을 하는 현재의 포지션을 계속 강고하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아니면 대안이되 다수와 집단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플래폼(platform)을 개설 할 것인가? 모든 시민은 기자가 됐고, 미디어로 행동하라는 충고는 훌륭히 이행되고 있다. 이제, 다음 슬로건을 던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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