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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4호 미디어꼼꼼보기]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 <상계동 올림픽>(1988)을 다시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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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 <상계동 올림픽>(1988)을 다시 보며



손 장 훈(ACT! 객원 편집위원)
 
굴에서 사는 사람들


무려 4만 년 전이다. 스페인의 한 동굴에서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언스가 벽화를 남긴 것이 말이다. 인간은 야생동물의 습격과 밤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그들의 최초 주거공간을 ‘동굴'로 정했다.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택도 없이 짧은 기간이지만 이후 4만년이라는 시간동안 인간은 자신들의 문명을 꽃피웠다.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지상으로, 건축술의 발달로 수백 미터 상공까지 그들의 주거공간을 넓혔다. 어두침침한 동굴에서 지상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하늘까지, 드라마틱한 변화다. 이제는 우주선을 띄워 지구 밖으로까지 나갈 태세다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무한정으로 넓어진 지금, 아직도 동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나 저개발 국가도 아닌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한국에서 말이다. 2006년 통계청이 발표한 《거주층 및 거처 종류에 따른 가구 현황》에 따르면 11만 명의 사람이 판잣집과 움막, 그리고 ‘동굴'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류가 동굴에서 살았다는 최초의 흔적은 단지 4만 년 전이 아니라 기원전 50만 년 전 베이징원인이 남긴 것이라고 한다. 놀란 사람들은 동굴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 2007년 부산일보가 50만년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발굴했다. 부산 중구 메리놀 병원 근처의 동굴에 사는 함임선 할머니 외 3가구가 바로 그들이었다.



20년 전의 한 다큐멘터리


기자들이 어렵게 찾아낸 그 현장을 20년 전의 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에서다. 재개발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상계동 철거민들은 경기도 부천 인근의 땅을 얻어 그곳에 정착을 하려 한다. 오랜 투쟁 끝에 보금자리를 얻은 그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을 짓는다. 문제는 고속도로였다. 그들이 집을 지으려는 장소 바로 옆 고속도로에서는 88올림픽 성화 봉송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주를 약속했던 부천시청은 직원과 용원 직원들을 동원해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집들을 철거한다.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는 그곳에서 상계동 철거민들은 땅을 파고, 땅굴 속에서 생활을 영위한다. 땅굴을 덮은 비닐을 젖히고 그들이 나오는 장면을 보았을 때, 동굴 속에서 이불과 담요로 연명하고 있다는 함임선 할머니가 떠올랐다. 2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아니 50만 년 전 인류보다 우리는 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가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벌어진 상계동 철거민들의 투쟁을 담은 [상계동 올림픽]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3년이라는 긴 촬영기간과는 달리 27분의 짧은 분량과 포커스도 맞지 않는 조악한 영상은 그들의 싸움을 생생하게 재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신문 귀퉁이의 짧은 기사로 밖에 실리지 않았던 상계동 철거민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가난은 잘 보이지 않는다. 88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서울의 수많은 판자촌과 달동네들이 뜯겨져 나가고, 사람들이 어딘가로 내몰렸음에 분명한데도 어떤 미디어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지 손님맞이를 위한 청소이며, 도시미관을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만 여겨졌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공간을 제외하면 미디어로 세상을 본다.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만이 나올 뿐이었기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비참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깔끔한 서울을 원했던 정부는 사람들을 시 외곽으로 내몰았고, 그것도 모자라 9분에 불과한 성화 봉송을 위해 그들을 땅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했기에 [상계동 올림픽]은 충격이었다. 실제로 이 다큐멘터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찾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다시 올림픽이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이 성대하게 개막했다. 중국 뿐 아니라 이전의 개최국들은 자국이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고,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도시미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88올림픽 상계동 철거민처럼, 베이징 근처에 살던 수많은 농민공들은 집을 빼앗기고 추방당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극적인 승부를 펼치며 우리를 흥분시켰던 경기장에는 쫓겨난 농민공들의 슬픔이 깔려 있다. 올림픽은 티베트 인권이나 촛불 집회와 같은 정치적인 이슈들은 무력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집어 삼킨다. 87년 항쟁의 열기를 잠재우고, [상계동 올림픽]을 낳았던 88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은 그렇게 닮아 있다. 올림픽은 올림픽이다.


2탄


처음부터 기획된 시리즈물이 아니라면 보통 ‘2탄'은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만들어진다. 김동원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끝나지 않는 전쟁]의 상영회에서 차기작은 [상계동 올림픽2]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느 영화와는 달리 [상계동 올림픽]은 1편이 성공했으면 다시 같은 이름으로는 나오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철거민들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도시 빈민들이 더 이상 ‘주거'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다면 2탄은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2년에는 유사 제목으로 [상암동 월드컵]이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임한 이후, ‘디자인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도시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을 디자인하기 위해 바뀌는 곳이 어디일까? 아마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남았던 판잣집, 쪽방촌 등이 그 대상일 것이다. ‘가난'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 도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시행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가 해왔돈 일은 보이지만 않게 할 뿐, ‘가난' 이라는 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곳에서마저 쫓겨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부산의 한 할머니나 상계동 철거민처럼 동굴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이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21세기에 ‘원시인'이 산다. 아니 원시인처럼 살게 된다. [상계동 올림픽]은 2탄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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