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7호 / 2008년 12월 8일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
사례1. 어느 날 블로거 A씨는 D 회사의 참치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크게 놀랐다. A씨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심정으로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였다. “참치에서 이물질이 나오다니!” 그런데 며칠 뒤, A씨의 글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D 회사가 명예훼손이라고 신고해서 임시조치한다”는 포털 측의 통보 메일을 뒤늦게 받아보았지만, 자신의 글 어디가 명예훼손이라는 건지 A씨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례2. 정치인 J씨의 발언을 비꼰 한 신문사 만평에 통쾌함을 느낀 포털 이용자 B씨는 그 그림을 ‘퍼와서' 한 게시판에 올렸다. 본문에 그림 외에 다른 내용은 넣지 않았고 제목에 ‘대구에서 드신 술이 아직 덜 깬 듯'이라는 제목을 달았을 뿐이다. B씨의 글도 며칠 뒤 삭제되었다. “J씨가 명예훼손이라고 신고해서 임시조치한다”는 통보 메일을 받았을 뿐이었다.
최근 실제 발생했던 두 사건이다. 오늘날 누리꾼들이 자주 처하는 상황이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니, 일반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딱 저만큼의 수준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고 말하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최근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어서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겠는가?
표현의 자유는 일찍이 인권 중의 인권으로 선언되었지만, 대형 언론과 출판 위주의 미디어 환경은 수직적이고 폐쇄적이었으며, 일반 시민이 이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의 경우 특히 서적, 음반, 방송, 영화 할 것 없이 군부독재정권의 각종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민주화 투쟁 이후 검열 제도가 잇따라 폐지되고 일반 시민의 미디어 참여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바야흐로 ‘미디어의 민주화' 시대가 열렸다. 공중파 TV에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생기고 케이블과 위성 방송에도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였다. 인권영화제처럼 다양한 비영리 영화제에서 문제작들이 공개적으로 상영되기도 하였다. 단연 독보적인 사건은 PC통신과 인터넷의 등장이었다. 이제 누구나 시시콜콜한 일상에서부터 정치 평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각을 지구촌 시민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일반 시민도 실질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미디어를 갖게 된 것이다. 미디어가 디지털로 융합되면서 플랫폼이 더욱 다양해졌고 그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계속 확산일로에 있다. 시민들이 만든 영상이 인터넷에서 상영되고, 그것을 또다시 휴대폰이나 TV로 만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네르바'라는 누리꾼은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겠다”며 절필을 선언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2008년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실상 국가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아니, 검열은 더욱 교묘하고 촘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심의는 올 7월과 9월까지도 헌법불합치와 위헌 결정을 받았으며, 비영리 영화제는 여전히 행정기관으로부터 심의나 추천을 받지 않으면 개최될 수 없다. 방송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은 방송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이중적으로 심의를 받는다. 가장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매체로 주목받아온 인터넷에서도 최근 게시물 삭제가 빈번하게 일고 있으며 인터넷 실명제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성 심의에 대하여 각각 위헌소송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을 관통하는 단연 핵심적인 문제는 심의기관에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헌법에서는 검열을 금지하고 있으며, 여기서 검열이란 행정기관이 국민의 표현물을 사전에 심사하여 그 발표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이다. 과거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공연윤리위원회,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여러 결정에 따라 변신을 거듭해 왔으며, 그 결과 오늘에 이르게 된 ‘영상물등급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심의기관은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외양을 띄고 있다. 문제는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일반 시민들이 제작하고 유통하는 표현물이 크게 늘었는데, 이 심의기구들은 일반 시민들의 콘텐츠를 전문적이고 영리적인 표현물과 아무런 차별 없이 심의하여 왔다는 것이다. 올 5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즐겨 쓰는 ‘2MB'라는 대통령의 별명에 대해서 ‘언어순화'하라는 시정요구를 내려 보내기도 하였다. ‘언어순화'라니,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나 내려 보낼 법한 시정요구가 아닌가.
시민이 비영리적 목적으로 생산하고 배포하는 콘텐츠는 전문 미디어 사업자에 의한 콘텐츠나 상업적인 콘텐츠와 구분하여 심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 시민의 비영리적인 미디어 참여는 전통적인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엄격히 보호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 영화,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발표되는 일반 시민의 비영리적인 표현물에 대해서는 그 표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심의 원칙이 별도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
행정기관은 자의적인 불법성 판단을 중단하라
우선, 행정기관의 자의적인 불법성 심사는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비영리 시민참여 콘텐츠의 경우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처럼 그 제작과 유통이 금지되는 불법적 표현에 대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일반 시민의 비영리적 참여 콘텐츠의 제작이나 인터넷 배포에 따른 법률적 책임은 표현물의 제작자나 배포자가 사후적으로 직접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필요가 있다. 행정기관에 의한 사전 심사는 검열이다. 사후 심의라 하더라도 법원이 아닌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법해석을 하거나 그 결과를 토대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불법이고 불법이 아닌지는 원칙적으로 법정에서 공정하게 가려져야 한다. 다만 인터넷처럼 빠른 속도로 파급되는 최근의 미디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법원 심사를 보완하기 위하여 다양한 핫라인이나 중재기구 등 제도 보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청소년의 접근으로부터 격리할 의무가 존재하는 유해적 표현물은 사회적으로 그 유통이 관리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비영리 시민참여 콘텐츠에 대하여서도 이른바 ‘빨간 동그라미'와 같은 등급을 부여할 필요가 있지만, 이는 그 표현물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시민 자신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영상물등급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관은 사후에 등급의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지만 이를 시민에게 강제하거나 사전에 등급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청소년보호법 또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청소년에게 시청·관람·이용토록 하여 벌칙이 적용되는 대상을 ‘영리의 목적'에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 장기적으로는 이들 행정기관이 완전 민간기구화하는 것이 위헌의 소지를 확실히 없애는 길일 것이다. 행정기관 심의에 대한 위헌 논란이 커지고 미디어 시장이 확대되면서 최근 방송사, 포털 등 사업자가 일반시민의 표현물을 심의하는 일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특히 방송사는 시민참여 콘텐츠를 사전에 심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원칙적으로 민간 자율 심의라 하더라도 그 불법성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공중파 방송처럼 특별히 사전 심의가 필요하다면 사업자 일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 위원회, 이용자 위원회 등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 구조 하에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민간 자율적인 사후 심의 역시 사업자 일방이 아니라 참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야 하며, 전편에 대한 심의가 아니라 신고나 불만요청제기에 따른 일부 심의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일반 시민의 표현물에는 표현의 자유를 우선 보장하라
올해는 세계인권선언이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도 크게 변화했지만, 일반 시민이 완전한 의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까지 여정은 녹녹치 않아 보인다. 그것은 여전한 국가 권력의 검열 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디어 산업이 여전히 자본 집약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터넷조차도 몇 개 포털 중심인데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국가가 통제하기에도 용이하게끔 작동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스스로 신념을 갖는 일일 것이다. 인터넷에 비판적 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엄포를 놓는 국가 권력의 엄포에 위축되지 않는 것. 국가 권력과 주류 미디어가 때마다 내보내는 ‘악플' 논란에 휘둘리지 않는 것. 일반 시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긍심을 우리 스스로 갖는 것.
* 더 자세한 내용은 곧 출간될 ≪미디어융합시대, 표현의 자유와 심의제도의 방향 : 비영리 시민참여 콘텐츠를 중심으로≫ 전체 자료집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표> 비영리 시민참여 콘텐츠의 일반 심의원칙
|
|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