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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9호 이슈] 장애인 방송접근, 규제일몰 적용은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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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9호 / 2009년 3월 17일

 

 

장애인 방송접근, 규제일몰 적용은 철회되어야 한다.



김철환(장애인정보문화누리 상임활동가)
 
출범 1년밖에 안된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대다수의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추진된 정책은 ‘고소영', ‘강부자'라는 유행어가 돌 정도로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지원하는 데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중된 정책만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모습은 방송통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방송을 통제하기 위하여 KBS사장을 바꾸고, YTN 등 방송사 사장을 낙하산으로 밀어 넣었다. 또한 정권에 쓴 소리를 하는 방송의 돈줄을 끊고, 해당 방송프로그램도 없애버렸다. 촛불이 번진 이후로는 온라인에 대한 통제에 골몰하고 있다. 그리고 ‘방통융합'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언론관계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무리한 법률개정 추진으로 지난 연말과 2월 국회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언론관계법을 밀어붙이는 이유로, 법률이 개정되면 ‘CSI'나 ‘로스트' 같이 거대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방송시장이 커진다 한다. 그리고 언론과 관련한 일자리가 2만개 이상 늘어나 젊은이들을 취업문이 넓어진다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 대하여 언론전문가들과 언론시민단체에서는 부풀려진 전망으로,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경쟁과 특정 재벌, 특정 언론의 방송진입으로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정권의 언론 통제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언론관계법은 장애인 등 방송소외계층에게도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 있다. 방송이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면, 특정 재벌이나 언론이 독과점을 한다면 방송소외계층이 방송에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적인 장치는 힘을 잃게 된다. 공영방송을 규제하기 위한 별도의 법률을 만든다 하더라도 공영방송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송소외계층의 권리 축소는 막을 수 없다.


이러한 우려는 언론관계법이 개정되지 않았는데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말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을 보장하도록 한 법률을 규제일몰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다. 장애인의 권리를 위하여 시행되는 규제가 수없이 많음에도 방송분야만을 구제일몰의 대상으로 포함시킨 것은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방송 산업의 활성화를 위하여 규제를 풀기 위한 조처와 무관하지 않다.


규제일몰로 분류된 법률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3항이다. 이 조항은 장애인의 방송 시청을 위하여 방송사업자가 자막, 수화, 화면해설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1).


규제일몰제라 함은 규제를 만들 때 존속기한을 설정하고, 설정된 기한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규제가 폐기되는 제도를 말한다. 규제의 존속기한은 규제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 안에서 설정하되, 원칙적으로 5년을 넘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규제의 존속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해당 규제의 존속기한이 끝나기 1년 전까지 규제의 신설, 강화의 절차에 따라 규제개혁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해야 한다. 규제의 신설, 강화와 존속기한을 연장할 때는 규제영향을 분석해 그 결과를 자체적으로 심사해야 하며,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할 때는 폐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2).


규제일몰로 분류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3항은 재검토 기한이 5년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조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향후 4년 안에 법률의 타당성을 입증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여야 한다. 만일 향후 4년 이후 심사과정에서 방송사업자가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하는 타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5년이 되는 시점부터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3항이 폐지된다. 그러면 장애인들이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방송사업자에게 자막과 수화통역, 화면해설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요구만이 아니라 현재 지상파방송사에서 안정적으로 시행중인 장애인의 방송시청 서비스마저 제공받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상파방송사의 자막방송은 안정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말부터 자막방송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2006년 50% 미만이었던 자막방송이 지난해 말에는 90%까지 늘어났다. 자막방송 실시 7년 동안 30%의 정도 늘어난 자막방송이 2년 사이에 40%나 확대되었으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막방송이 갑자기 늘어난 것을 결코 방송사의 자발적인 노력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방송사업자에게 자막 등을 제작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2007년부터 방송발전기금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자막방송이 늘어난 시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자막방송 제작 등 장애인의 방송접근 확대를 위하여 소요되는 경비를 방송사업자에게 지원하고 있는데, 지원되는 방송발전기금은 연 30억을 넘는다. 하지만 지상파방송의 자막방송은 안정기에 들어간 반면 방송발전기금을 지원받으면서도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이 방송시청이 가능하도록 제공되는 수화통역방송과 화면해설방송은 아래 <표>에서 보듯 평균 5% 미만이다.




그래도 지상파방송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의 경우는 몇 개의 공익채널과 보도채널을 제외하면 장애인이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이 거의 없다. 이는 지난 해 말 실시된 IPTV(인터넷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다. IPTV의 경우 재전송 프로그램이나 VOD 등 방송물 시청만이 아니라 데이터방송, 온라인 결제, 학습물 접근 등 부가서비스도 이용을 못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사의 자막방송을 제외하고는 장애인의 방송접근 지원이 미비함에도 이 문제가 규제일몰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그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방송사업자들의 불만이 커졌고, 방통융합의 추진에 있어 이러한 불만을 덮어두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규제일몰로 분류를 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해 왔던 장애인의 방송정책에 대한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정부의 장애인 방송정책의 문제점으로 첫째, 장기적인 관점의 장애인 방송 정책이 미흡했다. 수화통역방송은 1979년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에 처음으로 방영된 것을 시작으로 1990년 중반에 들어오면서 정책화되기 시작했다. 즉, 수화통역방송이 실시된 지는 30년, 통역방송으로 정착된 지도 15년이 넘는다. 자막방송은 1998년 12월 시험 방송을 하고, 다음해 2월 10일 MBC가 공식적인 송출을 했으니 올해로 실시 10년째다. 화면해설방송도 2000년 시험방송을 거쳐 2001년에 본격적으로 실시가 되었으니 올해로 8년째를 맞는다.


장애인의 방송접근 서비스가 이와 같이 오래 되었음에도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는 그동안 제대로 된 장애인 방송접근 정책을 수립한 적이 없다. 방송정책의 주무기관인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에서도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장애인의 방송접근 정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안에 대하여서도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방송접근 정책에 장애인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지난 2005년 이후 대규모의 집회가 계속 열렸다. 하지만 방송위원회는 장애인의 요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고 대신 방송발전기금의 투여라는 손쉬운 정책에만 손을 댔다.


둘째, 방송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하여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였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기 위하여 7여년이 넘게 투쟁을 벌여왔지만 방송위원회는 관심이 없었다. 장애인의 방송권 문제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는 방송위원회가 알아서 대처하겠거니 하고 방관했다. 하지만 방송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관심이 없었다. 지난 2005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되었을 때도 그랬고, 2006년 정부와 장애계가 머리를 맞대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치열한 논의를 벌일 때도 그랬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는 동안, 만들어지고 나서도 법률 제정이 방송정책에 미치는 영향이나 개발이 필요한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 하나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6개월이 지나 시행령 제정을 눈앞에 둔 2007년 연말에 와서야 방송사업자들이 반발한다며 방송위원회가 법률에 대하여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방송위원회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관심만 가졌다면 방송사업자의 반발도 최소화했을 것이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제일몰로 지정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민영방송사들에게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위한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할(규제와 인센티브 제공) 정책이 부족했다. 방송위원회가 방송발전기금을 지상파방송사를 우선하여 지원한 것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방송발전기금이 한정된 재원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KBS, MBC, EBS가 공영방송으로 분류된다)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설립된 민영방송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하지만 지상파 중심의 방송발전기금의 지원에 대하여 민영방송사들의 불만이 높았음에도 지원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었다*3).


방송위원회는 방송발전기금의 지원만이 아니라 민영방송에 대한 규제정책 마련에도 또한 소극적이었다. 민영방송사도 장애인의 접근지원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한 근거가 지난 2002년 방송법 개정으로 만들어졌음에도 그동안 방송위원회는 이를 실행할 정책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민영방송사들이 법률에 대하여 불만이 높아지자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업자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방송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모니터도 제대로 안하고 민영방송사에 대한 규제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은커녕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문제점만 부각시키려 했다.


장애인의 방송권을 규제일몰로 지정한 것에 대하여 장애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장애인단체에서도 보건복지가족부와 경쟁력강화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를 규탄하는 성명들을 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실천추진연대'를 중심으로 하여 장애인단체들이 공동으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이 문제에 대하여 장애계의 대응이 본격화됨으로써 규제일몰의 문제가 장애계 내부에서 어떤 방향으로 비화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을 규제일몰로 분류한 것은 정부의 무책임과 최근의 방송통신 정책이 만들어 놓은 합작품이다. 따라서 방송접근권이 규제일몰의 대상으로 분류된 이유가 정부의 잘못으로 인한 것임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3항을 규제일몰로 대상에서 삭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이 규제일몰로 분류된 배경에는 방송 산업의 육성에 있음을 바로보고, 현재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관계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야가 언론관계법을 100일 후에 처리하자고 합의한 내용을 관철시키려 하기보다는 법국민적 논의 기구를 구성하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의견을 모아가야 한다.□


* 주
1)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3항 : 「방송법」에 따라 방송물을 송출하는 방송사업자 등은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제작물 또는 서비스를 접근ㆍ이용할 수 있도록 자막, 수화, 점자 및 점자 변환, 보청기기, 큰 문자, 화면읽기ㆍ해설ㆍ확대프로그램,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 음성서비스, 전화 등 통신 중계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2) 네이버 백과사전( http://www.naver.com )
3) 지상파방송을 중심으로 한 방송발전기금의 지원방식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올해부터 민영방송에 대한 지원 폭을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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