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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9호 현장] ‘우리동네 명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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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9호 / 2009년 3월 17일

 

 

‘우리동네 명랑극장'



최가영(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기획을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그러니까 한가로운 놀이터에 스크린이 세워지고 프로젝터로 영화를 상영하면 놀던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몰려드는 거야. 중간에 재미없으면 놀이터에서 다시 놀면 되잖아. 그리고 못 보거나, 다시 보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서 1주일에 한 번 작은 도서관에서 상영하는 거야. 상영회 두 달을 한꺼번에 프로그래밍 해서 홍보물 제작하고 작은 도서관에 비치해 놓는 거지. 다음 상영작 정보도 함께 알려주면서. 어때. 좋지? 이거 지원 사업에 선정 안 되도 다음에 써먹을 수 있겠다.'


이런 상상과 함께 시작하니, 현실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는 마음이 주저앉아버린다.
입술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비는 오는데 장비는 너무 무겁고 더구나 있는 장비 거의가 다 빌려온 건데, 조금이라도 비 안 맞게 하려고 뛰어다니지만, 어떻게 비를 몸으로 막을 수 있겠나. 상상의 나래에 비가 오는 상황은 없었다. 근데 현실에서는 비가 오더라. 더구나 ‘상영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외친 그 직후에. 이게 ‘우리 동네 명랑극장' 첫 상영이다.


아파트는 미지의 공간이다. 그 곳에 어떤 사람이 어떤 모양 어떤 형태로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사업이 가능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내 손에 쥐어진 건 장밋빛 환상을 품게 해준 성남문화재단 ‘풀장환상' 책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절망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 뿐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파트'였냐고 묻는다면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고 대답하겠다. 그렇다. 모든 게 환상에서 시작한 거다.




1. 놀이터 옆 상영장


환상 중에서 실현된 건 ‘놀이터' 옆에서 상영하는 것이었다. 상영 중에 아이들은 흥미가 떨어지면 옆 놀이터에서 놀았으며 영화가 재미있어지면 다시 모여들었다. 우리 동네 명랑극장은 다른 상영회와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된다. 가령, 상영장에서 돗자리 깔고 영화보는 아이에게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아빠가 퇴근하다가 들러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간다든지, 엄마 무릎 위에 앉은 아이가 영화 속 캐릭터에 무서워하면 엄마가 달래가며 영화를 함께 본다든가, 며칠 전에 이사 와서 친구가 없다는, 군인 아빠를 둔 형제도 없는 아이는 상영장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했다.
그렇지만 상영 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웠던 게 상영장을 정하는 것이었다. 아파트 내에 광장이 하나 있었지만 조형물과 정자, 나무가 빼곡하게 차 있어 상영을 하기에 적당치 않았다. 대안으로 제안 받은 것이 그 옆에 있는 배드민턴장이다. 넓고 평평하고 시야에 가리는 조형물도 없어서 상영장으로 마땅했다. 스크린의 위치 등 장비를 놓을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예산의 문제가 발생했다. 스크린을 받쳐주는 구조물을 세우자니 (일명 아시바) 전체 예산을 초과하고 기존의 장비 만을 활용하자니 상영장, 인원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을 듯 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다. 이런 경우에는 어떡해야 하나요. ‘그네에 매다세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하! 그러면 되겠구나! 배드민턴장의 주변에는 그러기 힘들어서 결국 가로등에 매달기로 했다. 가능한 큰 스크린을 준비해 가로등에 매달아 4개월의 야외상영을 진행했다.
확실히 다양성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본다는 것은 어렵다. 일단 ‘짧고'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며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다. 또한 야외상영이니 영화가 ‘정적'이라면 아이들은 놀이터로 뛰어간다. 그래서 최대한 어린이의 시각에서 흥미롭게 느껴질 만한 영화를 선정하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영회 내내 덜덜 떤다. 그렇게 4번의 상영회를 진행하며 내린 결론은 ‘아이와 어른의 뇌구조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것과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 두 가지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내놓은 것이 다양성 영화와 상업 영화를 교차로 상영하는 방법이다. 한 달에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였으면 다음 달은 상업 영화를 상영하는 식이었다. ‘우리동네 명랑극장'을 통해 다양성 영화에 대해 알게 되고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첫 상영회에서는 비가 내렸고, 두 번째 상영회에서는 ‘이웃집 토토로'로 최다관객이 관람하였으며 세 번째 상영회에서는 환경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며 퀴즈 이벤트를 시작하였다. 네 번째 상영회에서는 재즈 밴드 공연도 함께 보았다. 다섯 번째 상영회는 어른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였으며 여섯 번째 마지막 상영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주부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상영하며 ‘우리동네 명랑극장'을 마쳤다.




2. 입주자 대표회의와 부녀회장과의 떨리는 대면


상영회를 진행하며 처음 한 일은 아파트 물색이었다. 주변의 조언으로 - 사실 영시미 스탭이 사는 아파트 - 송천동 ‘뜨란채' 아파트를 소개받았다. 그 아파트 안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문화생활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파트 안에 이러한 공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파트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환상의 한 자락에서 ‘작은 도서관'을 떠올린 것이 상영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처음 부녀회장을 만나 ‘우리 동네 명랑극장' 사업에 대해 설명하니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돌아오는 ‘입주자 대표회의'에 참석해 사업에 대해 전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였고 결정 또한 그곳에서 내려질 거라 했다. 생각보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너무 쉽게 ‘우리 동네 명랑극장'에 대해 가결하였고 우리 동네 명랑극장은 기획한 사업 내용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사업은 상영회를 통해 주거 공간을 문화공동체로 만드는 사업이었는데 그런 만큼 아파트 주민과의 연대가 필요했다. 손쉽게 떠올린 곳이 ‘부녀회'였고 실제로도 부녀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영작 선정에서부터 평가, 이벤트 등 부녀회장과 상시적으로 소통하며 상영작과 상영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하였다. 또한 부녀회 측에서 관리소의 협조를 이끌어내 상영 장소의 가로등 문제나 전기, 상영회 홍보 등의 측면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영으로 인한 소음 문제나 기타 관리소로 가는 항의들도 아파트 내에서 처리하여 상영을 진행하며 방해 받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3. 주부와 함께하는 마이 북 : 아파트 ‘사람'과 만나기


상영회가 본의 아니게 가족의 행동 패턴- 어린이가 집 밖으로 나와야 어른들도 나오는- 과 연결되며 어린이를 위주로 한 상영회로 진행되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 연령대별 관심사를 영화 선정에 반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게 완전히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린이 외의 다른 대상을 만나고 싶었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주부'였고 주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이 북 만들기' 수업을 진행키로 결정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의 여성 10명이 모여 ‘마이 북'을 어떤 주제로 할 것인지 얘기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우울증'과 ‘권태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왔다. 그러나 정작 이 이야기가 마이 북 안에는 담기지 못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는 것, 가정의 화목함을 부각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마이 북 안에 담긴 이야기는 40대를 맞이하는 마음, 가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 중에 제일 고달픈 아침 30분이다.


이 세 작품은 12월 상영작으로 작은 도서관에서 상영되었다. 이 작품을 만든 수료자 3명이 비공개 상영을 요청해 주변 분들에게만 알렸다. 주로 상영회에 참석한 사람은 수료자의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 수료자의 친구들이 참석하였는데 신기한 건 수료자의 ‘남편'은 모두 집에 있었는데 아내가 만든 영상을 보러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수료자 중 한 분은 혼자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더욱 신기한 건 이분들은 자기 남편들이 이런 수업을 받기를 원했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해 했다는 거다.




4. 실패와 성공을 따지지도, 후회를 남겨두지도 않는다. ‘숙제'만 남을 뿐.


(아파트 단지 내 공동체 발굴, 구축 면에서 상영회는 어떤 역할, 과제
다양한 이벤트로 만족도 높이는 것 / 광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성공 / 그 이상의 것은 X)
첫 상영회에서 비가 내리고 애니메이션을 상영했을 때, 어린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실패'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영회가 끝난 이 시점에서 ‘실패'와 ‘성공'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상영회 이건 후회를 남겨두지 말아야 하며 다만 거기에서 ‘숙제'가 무엇인지, 그 ‘숙제'를 풀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았다.
아파트 내에서 ‘백일장' 이나 ‘노래자랑' 같은 행사를 자체적으로 매년 진행하고 있다. 주거지 내의 사람을 아파트 안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행사로 ‘우리 동네 명랑극장'을 통해 주민들이 광장으로 모이는 횟수가 늘어났다. 즉 조성되어 있는 광장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더하고 ‘영화'라는 친근한 매체 덕분에 평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광장으로 불러 모았으며 거기에 영화관과 다른 자유로운 상영회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선착순 이벤트, 퀴즈 이벤트, 재즈 트리오 공연 등의 부대행사를 통해 상영회 이후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했다. 이러한 부대행사를 통해 상영회의 만족도를 높이고 광장에서 다양한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아쉬움을 남긴 건,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명랑극장'의 만족도, 개선점 등을 관객에게 직접 평가한다든가 다음 상영작 선정에 참여하게 하는 등의 관객의 참여를 직접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상영회를 무사히 마치는 정도의 수준으로 그친 것은 아닌지 그 점이 무척 아쉽다. 아파트 주민이 직접 만들어가는 상영회가 되게끔 통로를 열어놓고 상영회의 많은 부분을 주민들의 손으로 진행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사업 목표에 더 부합된다. 관객과 교감하려는 시도와 상영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 많은 어린이와, 아줌마 아저씨들과 교감하고 싶다는 것이 바람이다.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고 영화에 대해서, 이러한 상영회에 대해서,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이것이 다음번에 풀어야 하는 숙제다.




5. 상영에서 관객이란


‘우리 동네 명랑극장'의 주 고객층인 어린이들은 프로젝터를 제일 신기해했다. 상영 중에 그 앞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이 많아 식은땀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강하게 제지하는 것은 사업의 성격과 맞지 않다고 여겨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정한 시점이 지나자 뒤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장난치는 어린이에게 알아서 주의를 주더라. 이런 자율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고 어느 순간 상영회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점차 돗자리 대신 아버지 낚시 의자를 가져와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한다. 상영회가 진행하는 내내 어린이들이 웃고 떠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기회가 많이 없을 테니 그냥 그러하게 둔다. 더구나 이곳은 울타리 안,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장소니까.
상영회에 있어서 좋은 영화도 중요하고 좋은 상영 환경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소소한 배려가 필요하다. 더구나 공동체에 접근하는 것이라면 그 공동체에게 많은 것을 넘겨주어야 한다. 크고 작은 결정사항들은 언제나 함께 논의되어야 하고 큰 목표 안에서 합의되고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우리 동네 명랑극장'을 진행하며 관리소와 부녀회장과 일상적으로 대화하고 논의하였지만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지울 수 없다.
전국영화상영자 컨퍼런스에서 해외 초청 세미나로 일본 ‘후카야 시네마'의 발제를 들을 수 있었다. 후카야 시네마 운영은 직원 외 자원봉사자와 아르바이트로 이뤄져 있다는데, 이 자원봉사자가 하는 일이 흥미롭다. 상영이 시작되기 전 관객을 안내하고 영화를 함께 보고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것이 자원봉사자의 하는 일이다. 후카야 시네마 안에는 슬리퍼, 담요 같은 것이 비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영화를 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관객에게 앙케이트를 받는데, 이것은 각 좌석마다 배치되어 있으며 평가와 다음에 보고 싶은 영화를 적게 되어 있다고 한다.
공동체 상영을 하며 간과하는 부분들에 대한 답이 여기 있지 않나 싶다. 관객이 편안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영화 상영자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지역에서는 상영 사업에서의 인력부족을 이야기한다. 그건 언제나 느끼고 공감한다. 상영작 선정하고 상영본 받고 상영회 홍보하고 상영회 당일에는 혼자 안내하고 앞에서 이야기하고 혼자 불 끄고 혼자 장비를 돌린다. 이렇게 혼자 하는 시스템에서 - 물론 상영회는 무사히 할 수 있다 - 부재한 것은 관객을 위한 배려이다. 이렇게 혼자 하는 시스템에서 하기 힘들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안내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상영회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솔직히 관객이 상영회에 오는 것은 순수하게 영화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영하는 영화 자체도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나쁜 영화든 좋은 영화든 함께 본다는 것,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상영회에 참석하는 것은 아닐까. 이 공간에 오면 사람들과 부대끼며 영화를 본다는 것, 이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사람들이 상영회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 명랑극장' 상영회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 이 깨달음을 적용해 보는 숙제가 남았다. 결국, 환상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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