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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7호 이슈]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취지를 망각한 방통위의 PP공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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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7호 / 2008년 12월 8일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취지를 망각한 방통위의 PP공모제




이주영(시민방송 RTV)
 
올 봄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면서 8개월간 기금이 나오지 않았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시청자권익증진과로 발령받으신 구정보통신부 공무원들께서 업무를 파악하기 전까지 기금 집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덕분에 RTV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 편성 의뢰를 한 시민제작자들과 정규프로그램 제작자들은 2008년 상반기 내내 제작비를 자체 조달해 가며 프로그램을 제작해 왔다.)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해 업무 파악을 끝내신 이 분들, 8월 달에 열린 위원회에서 오는 2009년부터 위성방송을 통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 지원금을 위성방송사업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한편 위성방송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채택 방식을 비공모제에서 공모제로 전면 전환하기로 했다고 보고한다.


물론 정책을 이렇게 바꾸면서 근거랍시고 내세운 것이 없지는 않다. 위원회 보고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지원 정책 변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밝혀 주신다. 그간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원금이 법적 의무편성자인 위성방송사업자 즉 스카이라이프에게 직접 지원되지 않고 위탁사업자로 지정된 특정PP(시민방송을 지칭하지요)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요, 그리하여 그 특정 PP와 타 PP들과의 형평성이 결여된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되시겠다. 도대체 무슨 업무를 어떻게 파악하신 건지 참 대책이 안 선다.


먼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지원금이 법적 의무편성자인 위성방송사업자 즉 스카이라이프에게 직접 지원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첫 번째 이유에 대해


현재 방송법상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하는 방송사업자가 한국방송공사(KBS),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위성방송사업자(스카이라이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편성 의무에 관한 내용일 뿐이다. 큰 틀에서 살펴보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의무편성자에게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현행방송법은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에 기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제38조(기금의용도)
①기금은 다음 각 호의 1의 사업에 사용된다.
4.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


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며, KBS나 SO, 스카이라이프 등 방송사업자에 대한 지원이 애초부터 아니다. 따라서 스카이라이프에게 지급되지 않고 시민방송에게 지급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방통위의 주장이야말로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실제로 방통위는 의무 편성자가 아닌 지상파TV에도 방송채택료를 지원하고 있다. 고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전문채널인 시민 방송을 통해 방영된 프로그램에게 방송채택료가 지급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PP(시민방송)와 타 PP들과의 형평성이 결여된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백번을 양보하여 지원정책 자체가 의무편성자인 KBS, SO, 스카이라이프로 한정된다고 인정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현행 방송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70조 (채널의 구성과 運用)
⑦종합유선방송사업자 및 위성방송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청자가 자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방송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지역채널 또는 공공채널을 통하여 放送하여야 한다.


현행 방송법 70조는 “위성방송사업자는 시청자가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의 방송을 요청하는 경우 공공채널을 통해 방송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공공채널은 국회방송, KTV, OUN 세 개뿐이며 위성방송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가 이들 채널에게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방송할 것을 강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스카이라이프는 2002년 개국 당시부터 이런 현실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공익적 성격의 '시민방송 RTV'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 방송을 위탁하기로 했으며, 이를 근거로 방통위와 스카이라이프는 올해까지 RTV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특정PP와 타 PP들과의 형평성 운운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시민 방송은 엄연히 법적 의무편성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의 공모 절차를 거쳐 선정된 시청자참여전문 편성채널이며 독립성과 시민사회 대표성을 인정받는 공익 법인이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원금이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전문 편성채널에게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두고 일반 상업 PP와의 형평성을 논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형평성은 아무 때나 지들 편하자고 갖다 붙이는 말이 아니다.


PP공모제라니... 어이가 없다.


한 번 더 양보해 시민방송이 공공 채널이 아니므로 지원할 수 없다는 방송위의 입장에 또 한 번 동의해보자. 그렇다면 현실에 맞지 않는 방송법 정비가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법 규정을 정비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시청자참여 전문 채널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2009년부터 PP공모제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는 법적 근거를 토대로 정책을 집행해야 할 방통위가 현실적 문제를 내세워 앞장서서 법을 어기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현행 방송법이 KBS에게 월 100분 이상,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게는 그 지역에 맞는 지역 채널에서 그리고 위성방송사업자는 공공채널에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방영하도록 한 취지는 방송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방송 접근권을 주자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폭넓은 방송 접근을 위해 각 플랫폼사업자의 특성에 맞춰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운용하라는 취지이기도 하다.


PP공모제란 현재 방통위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을 대상으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방송할 방송사를 모집하는 것처럼 위성방송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가 자신들의 위성에 런칭된 PP들을 대상으로 특정 시간대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방영할 채널을 모집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PP공모제를 도입한다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앞날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채널의 타겟 시청자층이 분명한 PP의 상업적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은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방송사의 기술적, 인적 지원이 축소됨에 따라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양은 물론 질도 현저하게 떨어질 것은 현재 SO를 대상으로 하는 방통위의 공모 사업 결과만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제작지원사업의 목적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활성화에 있다


방송 접근권이 제한되고 방송 참여의 기회가 적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등 방송 소외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해서는 시청자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 시설 지원 등은 물론이고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 등 다양한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청자참여 전문 채널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완성한 프로그램만을 기계적으로 수급하여 방송하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방송용 영상물을 제작할 기본적인 장비와 시설이 전무한데다 제작 능력도 갖추지 못한 시청자는 방송에 참여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까닭이다. 이는 다시 경제적으로 어렵고 기술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방송 접근권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다.




현재 스카이라이프는 시민방송 RTV라는 위탁사업자를 통해 한 해에 1천500여 편의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방송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미디어단체, 지역 등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시청자참여 전문 채널이 시청자의 방송 참여를 활성화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모처럼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고 활성화되고 있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PP공모제의 시행 등으로 위축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민주적 절차도 문제


방통위의 이번 결정은 그 내용도 그렇지만 과정에도 중대한 문제를 노출했다. 위성방송의 시청자제작프로그램 제작 지원 방식을 바꾸는 것과 PP공모제를 시행하는 것 등은 국민의 절대 다수인 시청자의 방송 참여와 관련된 중요한 정책 전환이다. 그런데도 지난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 시청자 참여 활성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시민 제작자들과 방송 전문가, 관련 학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정책을 밀어붙인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방통위는 이런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 자세를 버려야 한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자의 방송 접근권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는 관련 당사자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방통위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활성화할 의지가 있다면 방송법 70조를 개정해 위성방송사업자가 직접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거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지금까지처럼 시청자 참여 전문 채널에게 운영을 위탁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근거가 없는 PP공모제부터 철회하고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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