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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7호 이슈] 사회권 규약(ICESCR) 보고서 -- 선언이 선언으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한 노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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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7호 / 2008년 12월 8일

 

 

사회권 규약(ICESCR) 보고서
-- 선언이 선언으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한 노력 - 




홍지(진보네트워크센터)
 


지난 11월 27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UN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 이후 사회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 이후 사회권규약)' 이행 상황 점검을 위한 사전실무분과(pre-sessional working group)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한국의 4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하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참석하여 한국의 사회권 현실에 대한 구두발언과 사회권 위원과의 미팅을 진행했다. 구두발언문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의 강화로 사회권의 급속한 후퇴가 예상된다.”라며 “정부보고서가 2001년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현재 한국의 사회권 현실을 정확히 담고 있지 못하다.”라고 강조했다.


인권조약과 이행감시기구


사회권규약을 비롯하여 국제인권법의 근간이 되는 주요인권조약들은 각각의 이행감시기구를 두고 조약에 가입한 국가(당사국)를 대상으로 5년마다 각 조약 규정에 따라 해당국가의 인권상황을 검토하고 그 개선을 위한 권고를 한다. 이러한 이행감시기구들은 각 조약에 가입한 당사국에 대해서만 이행의 의무나 정부보고의 의무를 부여한다.
사회권위원회의 심의는 각 당사국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상황을 규약에 비추어 점검하고 평가하는 기회이다. 내년 11월에 있을 제3차 사회권규약 본 심의를 앞두고 진행된 이번 사전실무분과 회의는 지난 2007년 7월 정부가 사회권위원회에 제출한 3차 보고서와 국가인권기구, NGO가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 정부에 대한 40여개의 ‘질의목록(List of Issues)'을 선정한다. 사회권위원회의 질의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는 내년 11월에 있을 본 심의 전까지 답변을 해야 한다.
정부의 답변이 제출되면 사회권위원회는 본 심의 때, NGO가 제출하는 ‘반박 보고서(Counter Report)'를 바탕으로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를 밝힌다. 최종견해는 당사국에서 문제가 되는 인권상황과 그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을 요약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사회권 보장 상황에 관한 국제사회의 우려인 동시에, 규약 가입국이 당연히 이행하여야 하는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이번 사전실무분과회의에서 사회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요청할 질의목록은 한국의 4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제출한 약식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2007년 12월부터 약 1년여 간 준비한 이 보고서는 지난 11월 1일 사회권위원회 사무국에 제출되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90년 4월 10일 사회권규약에 가입한 이후, 1994년 1월, 1999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사회권위원회에 사회권규약과 관련한 국내 인권상황과 정부의 노력에 대해 서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두 번째 보고서가 제출되었던 지난 2000년 8월, 한국의 16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한국 정부의 2차 보고서에 대한 약식보고서를 처음으로 사회권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후 2001년 4월 반박보고서가 제출되었고, 2001년 5월 11일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의 2차 보고서에 대해 13개 항의 권고를 포함해 총 45개 항으로 구성된 최종견해를 발표하였다.


사회권규약은 제2조부터 제15조에 걸쳐 노동권, 사회보장권, 식량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남녀평등, 아동 및 청소년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문화적․과학적 권리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사회권위원회는 1989년부터 ‘일반논평(General Comment)'을 통해 사회권규약의 이행을 위한 국가의 조치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HIV/AIDS 감염인의 권리, 이주민의 권리,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추가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4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각각의 권리를 주제로 팀을 꾸려 해당 권리에 대한 해석과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권위원회가 채택할 질의목록의 초안을 만들어서 약식보고서 형태로 제출하였다.


사회권규약 제15조 : 문화적․과학적 권리


이중 문화적․과학적 권리에 해당하는 사회권규약 제15조에 대한 보고서는 문화연대, 미디액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시민과학센터, 정보공유연대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총 7개 단체가 참여하여 작성했다.


사회권규약 제15조
1. 가입국은 누구에게나 다음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a) 문화적인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b) 과학의 진보와 그 응용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 
     (c) 자기가 창조한 과학적·문화적·예술적 작품에서 생기는 유형·무형의 이익을 보호받는 데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

2. 가입국이 이 문화적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이룩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 중에는, 과학과 문화의 
   보전·발전·보급에 필요한 조치가 포함된다.

3. 가입국은 과학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필수적인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4. 가입국은 과학과 문화적 영역에서 국제적 교류와 협력의 장려와 발전으로부터 얻어지는 이득을 
   인정한다.




사회권규약 제15조는 3개의 매우 상이한 쟁점을 다루고 있다. ‘누구나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과학적․문화적․예술적 작품에서 생기는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 ‘과학연구와 창조적 활동의 자유'는 상호 보완적인 권리이면서도, 충돌하기도 한다. 때문에 당사국 정부는 보고서에서 각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보통 몇 개의 법과 몇몇 국제 상호 협약들을 나열하는 것에만 그친다. 권리들 각각의 완전한 실현을 지속적으로 제약하는 요소들과 난점들을 지적하는 것에는 매우 소홀하다.


때문에, 문화적․과학적 권리에 대한 7개 단체의 보고서는 정부 보고서의 내용 상 오류 및 누락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비판의 구체적 기준은 UN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의 필립 앨스턴(Philip Alston) 교수가 작성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하의 보고 지침서(이하 지침서)'를 참고했다. 지침서는 각각의 권리 실현을 위해 국가가 채택한 입법 및 기타 조치들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권리 실현에 가해지는 어떠한 제약이나 한계들을 기술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사회권규약 제15조와 지침서에 따라 문화적․과학적 권리에 관한 질의목록은 8가지의 주제를 제시했다. 이 중 7개 단체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중점적으로 다룬 주제는 사회권규약 제15조 3항에 해당하는 ‘창조적 활동에 필수적인 자유'의 침해 상황이었다. 질의목록의 4가지 주제가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예술적․창조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한 의무적 등급분류체계 등 전형적인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표현 행위나 창조적 활동이 제한되거나 억압받는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사회권규약 제15조 3항을 보다 폭넓은 사례에 적용가능토록 적극적인 해석을 하였다.


2007년 10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집회시위 중 캠코더 촬영자 체포는 인권침해”라는 권고에도, 집회․시위 현장에서 캠코더로 촬영하는 시민들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반적으로 연행 또는 구금하는 일이 여전히 빈번함이 지적됐다. 또한, 시민들이 공공장소에서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표현물을 제작하기 위한 촬영이 정부에 사전신고 및 허가를 받거나 고액의 촬영대여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 시민들의 창조적 활동이 제한되는 사례들도 알렸다.
문화생활의 참여와 증진을 위한 대중 매체와 통신 매체에서 오히려 개인의 참여가 배제되는 실태도 다루었다. 정부보고서에서는 없는 내용으로, 인터넷에서의 표현이 제한되는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를 부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광고를 게재한 광고회사의 목록을 공개한 인터넷 이용자들과 그들의 게시물들에 대하여, 2008년 7월 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법하다며 삭제하였고 검찰은 인터넷 이용자들을 형사기소하고 해당 커뮤니티 운영자를 구속한 사건이 보고되었다. 또한, 공직선거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의무적 인터넷 실명제로 인해 한국에서는 ‘익명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표현 및 사상의 자유 침해 문제도 포함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전통적으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즉 자유권규약에서 다뤄왔던 사안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정부의 2차 보고서에 대한 NGO의 약식보고서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창작의 자유 침해를 새롭게 제기하여, 결국 2001년 5월 사회권위원회가 최종견해로 채택하게 되었다. 이번 약식보고서에서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간주되어 압수된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를 반환하라는 사회권위원회와 자유권위원회의 권고와 통보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여전히 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정부의 2차 보고서 심의 때 제출한 약식보고서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한국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한 분석도 이번에는 다루게 되었다.
첫 번째로 편향된 문화 발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문화 관련 예산은 2000년에 들어 처음으로 정부 예산의 1%를 넘어섰으나, 최근 복권기금의 축소와 불안전성으로 다시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문화 예산중에서도 장애인이나, 노인, 저소득층,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권위원회에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취약 계층들의 문화생활 향유권을 위해 쓰이는 예산은 더욱 미약한 수준임을 지적했다.
취약한 문화 예술인의 복지제도도 언급하였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실시한 <2006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예술 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이하인 예술인들의 비율이 55%이며 문화예술 활동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85%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무직 또는 일용직으로 분류되는 비정규직 예술가가 고용 형태의 전체 다수를 차지하고, 2004년 연극인의 4대 보험 가입실태를 보면 노동과 관련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가입률이 모두 1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사회권규약 제15조에서 천명한 권리의 이행 촉구를 넘어서, 제15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정부의 3차 보고서는 해당 기간 중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다루고 있지 않다. 황우석 교수의 체세포 핵이식 방식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정부의 막대한 연구비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과정에서 난자매매를 금지한 생명윤리법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져 인권의 향유에 반(反)하는 과학 및 기술 진보의 이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善)으로 전제하고, 이를 위해 자유로운 과학기술자를 상정하여 연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권 규약 제15조의 견해는 이처럼 최근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위험과 인권 침해에 비추어 보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권규약 제15조에서 유일하게 일반논평이 마련된 1항의 (c)호 규정, “자기가 창조한 과학적·문화적·예술적 작품에서 생기는 유형·무형의 이익을 보호받는 데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의 과도한 적용에 따른 기본권 침해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경미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법무법인들의 무차별적인 형사고소에 고등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작권 보유자의 권리만이 일방적으로 강화되어, 디지털 환경에서 공정이용이 적절하게 규정되지 않아, 비영리적 목적의 문화적 교류나 표현마저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즉, 제15조 1항의 (c)호와 (a)호가 법제도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확대되는 지적재산권이 사회권규약 내에서 어떻게 다른 기본권과 충돌되지 않게 할 것인지를 요구하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사회권의 후퇴


이번 보고서 작성 작업은 이명박 정부의 취임 이래 국내의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이는 최초의 국제연대활동이다. 또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던 5월부터 시작되어 무려 4달 동안 이어졌던 촛불집회에서 대두된 5대 의제(의료․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교육 개혁, 대운하 건설, 방송․통신 매체의 공공성)들은 바로 사회권규약의 핵심내용이다. 때문에 43개 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달라지고 있는 사회권의 후퇴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약식보고서의 내용을 채워나갔다. 보고서에 담긴 질의목록은 현재 한국의 사회권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이므로, 각각의 권리를 이행하기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즉 질의의 대상인 정부뿐만 아니라, 질의의 주체인 4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몫이기도 하다.


사회권위원회는 지난 11월 28일 한국정부에 대한 40여개 질의목록을 채택했다. 그리고 내년 11월의 본 심의 이전까지 정부에 성실한 답변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4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도 본 심의를 위해 정부보고서에 대한 반박보고서를 내년 초부터 공동으로 작성할 예정이다. 최종 채택된 질의목록은 2주 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2.ohchr.org/english/bodies/cescr/cescrwg4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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