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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9호 미디어인터내셔널] 퍼블릭 미디어의 미래 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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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9호 / 2009년 3월 17일



퍼블릭 미디어의 미래 FAQ



팻 아우프더하이드 및 제시카 클라크
김주영, 김지현 (ACT! 편집위원회) 옮김
 
[편집자의 주] 본 글은 The Center for Social Media에서 2008년 4월 발행한 "The Future of Public Media FAQ" 를 옮긴 것이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시대 공공 미디어의 모습과 개념, 바람직한 지원 정책 등에 대해 자주 물어보는 질문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ACT!에서는 진보적 미디어운동과 관련해 눈여겨볼만한 해외 연구 자료들을 앞으로도 계속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원문보기 http://www.centerforsocialmedia.org/publicmediaFAQ
 
‘퍼블릭 미디어의 미래' 프로젝트에 대해


포드 재단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은 ‘퍼블릭 미디어의 미래' 프로젝트는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미디어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 연구한다. 과거 이 영역은 권위 있는 언론이나 공영 방송, 그리고 퍼블릭액세스 케이블과 같은 공동체 미디어 등으로 한정되어 왔다. 소셜 네트워킹과 웹2.0 도구들, DIY(do-it-yourself) 미디어, 그리고 위키피디아와 같은 새로운 공유 플랫폼들은 미디어가 공공의 지식과 행동에 박차를 가하는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매스미디어라는 용어도 변화시키고 있다.
 
곧 다가올 미래에 퍼블릭 미디어는 어떤 모습일까? 매스 미디어 내의 퍼블릭 플랫폼들은 어떻게 적응해갈까? 새로운 참여적 플랫폼들은 민주적 공중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진화해 갈까? 이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자원과 정책들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들이 본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다.
 
본 FAQ는 민주 사회에서 사람들이 수행하는 역할로 ‘공중(公衆, public)'이라는 용어를 정의함으로써 본 연구와 토론의 토대를 세우고자 한다. 사람들은 미디어 프로젝트와 창구(outlet)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 도구와 솜씨들을 사용함으로써 앞에서 말한 역할을 해나간다. 이번 FAQ는 인터넷 시대의 문학 형식인 “Frequently Asked Questions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문서의 참여적 전통 속에서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발전되었다. 이는 또한 centerforsocialmedia.org/blogs 에서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 왜 특별한 용어인가? 대부분의 미디어가 공중의 소비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가?
퍼블릭 미디어(public media)란 어떤 미디어에서든지 공중에게 말을 걸고 결집시키는 프로젝트 및 행동들을 의미한다. 어떤 미디어들은 이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반면(저명한 신문이나 공영 방송 등), 어떤 미디어들은 가끔씩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상업 텔레비전 및 라디오, 블로그 등)
 
활발한 퍼블릭 미디어를 누릴 권리는 표현의 자유를 확장한 것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공중의 구성원들이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충분히 안 상태에서 어떻게 할지 대화할 수 있는 공간과 도구들을 포함한다.
 
퍼블릭 미디어를 공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공중이다.
 
▶ “공중”이라는 말은 그냥 집합으로서의 우리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의 공중은 우리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방법과 다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용어를 이처럼 쓰는 것은 그것이 민주적 삶을 위해 우리가 공유하는 미디어적 필요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공중”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인구학적 의미를 가리키거나 청중이라는 용어의 대리물이 아니다. 이 개념은 존 듀이(John Dewey)나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제임스 캐리(James Carey),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 닉 콜드리(Nick Couldry), 그리고 마이클 셔드슨(Michael Schudson)과 같은 이론가들의 작업에 의지하고 있다.
 
정부 혹은 기타 기관들을 향한 공통의 행동에 의해서만 얘기될 수 있는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공중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공적인 이슈들은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식별 가능한 행위자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공장이 공기를 오염시킨다면 이는 그 마을 모두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그와 연관된 권력의 구조를 이해하며 마을 사람들을 공중의 구성원으로 모아내야 한다. (다시 말해 피해를 입은 동시에 집단을 이루었을 때 그들이 갖게 되는 힘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민주 정부에게 그들의 필요에 응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고 공장에게 개선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규제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또한 공장의 생산품에 대해 보이콧을 조직할 수도 있고 이밖에도 함께 머리를 맞대거나 여러 기술과 관계망에 의지해 문제에 대응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중은 특정 종류의 문제들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어떤 개인적 행동이나 관료집단의 무책임함에 의해 종종 우연히 만들어지곤 한다. 그 문제들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데, 이 많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적 기업이나 정부 기관 외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공중(우리가 문제를 공유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를 찾아나갈 때의 우리 모두)은 건강한 사회에 필수적인 책임감(accountability)을 제공한다. 우리들 각자는 특정한 이슈나 위치 또는 공유된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러 공중의 한 구성원일 수 있다. 공중은 사람들이 가장 쉽고 비용이 덜 들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심지어 이것이 그들이 의식하거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방식을 포함하여 다른 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조차) 행동하려는 본연적 경향을 견제한다. 공중은 엄격한 구조가 아니다. 그들은 이슈나 문제, 그리고 개선 기회들에 따라 정기적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이 비공식성은 모든 조직들에서 발생하곤 하는 이기적 성향들을 피하게 만든다.
 
공중은 상시 기구들의 서비스를 받는다. 비록 그 기구들을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그와 같은 서비스들에 둔감해지기 쉽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정보를 산출하고 분석하기 위해 자연 과학 및 사회 과학 전문가들을 고용하는 비영리 단체,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적, 법적 서비스, 그리고 상업적, 비상업적 미디어들은 모두 공공의 삶을 가능하도록 만든다.
 
공중은 개방적이고 대의제적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와 같은 정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그와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공중은 사회에 권력을 재분배할 수 있는 사회적 행위자(agent)이기에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적이다.
 
▶ 그러니까 공익이나 여론에 대한 얘기인 건가?
공익(public interest)이나 여론(public opinion)이란 용어는 모두 불행히도 어떻게 공중이 형성되거나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때문에 그것들은 공중과 민주주의, 그리고 미디어가 맺는 매우 중요한 관계를 규명해내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기술적 용어인 ‘공익'이라는 말은 슬프게도 ‘누가 공중인가?'라는 문제를 불러일으키며 이에 따라 정쟁의 불씨가 되어 왔다. 보통 개개인의 투표 결과를 의미하는 ‘여론'이란 용어는 개개인들의 의견이 모여 있는 것을 나타내지만 공중이 어떻게 형성되고 양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회피한다. 이들보다는 공공의 삶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무언가로 묘사하는 용어들이 좀 더 도움이 된다.
 
가령 영국의 학자 닉 콜드리(Nick Couldry)는 “공공의 관심(public attention)”과 “공공의 연결(public connection)”이란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공공의 관심”이 특정한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공공의 연결”은 자신을 공중의 잠재적 일원으로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즉, 이슈들을 논의할 수 있고 또 논의해야만 하는 공유된 소통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시민을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유용한 용어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공영역(public sphere)”이다. 공공영역이란 사람들이 그들의 공공적 측면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해줄 정치적 메커니즘을 찾는 사회적 공간과 실천들을 말한다. 공공영역은 소통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관계들의 집합이다. 미디어 플랫폼들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공공영역은 아니다.
 
▶ 왜 미디어가 공중의 형성에 중요한가?
공중은 스스로 형성된다. 그리고 이는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한 공공 소통의 형식과 창구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로마 시대 포럼의 면대면 만남에서부터 18세기 런던 커피하우스와 프랑스 살롱들에서 당시 부상하던 중산계급 구성원들에게 팔리던 신문들, 그리고 20세기 미국의 TV방송을 지나 오늘날 세계적으로 접근 가능한 블로그 및 디지털 비디오 사이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각각 공통의 이슈를 중심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핵심적 장소이자 민주적 원칙의 구성과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공통의 문제(이는 도심 지역의 교통 문제일 수도 있고, 여성들의 저임금 문제, 군인들이 적절한 방탄복을 제공받지 못하는 문제, 공영 방송의 사업 모델에 대한 위협, 환경을 위협하는 법안 등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에 대해 소통하는 것은 그 집단에게 스스로를 공중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퍼블릭 미디어는 공공의 지식을 늘리고 수용자 집단을 응집, 조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를 말한다.
 
종합적이고 일관된 문화적 표현들인 미디어는 지난 몇 세기를 거치는 동안 공공 소통에 있어 중요한 매개자의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가상에서든 실제에서든) 만날 경우 그들은 전형적으로 그들이 미디어에서 얻은 경험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 퍼블릭 미디어란 PBS나 NPR과 같은 창구들을 의미하는 건가?
“공영 방송(public broadcasting)??이란 이름은 1967년 미 의회가 비상업 방송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 연방 기금을 마련하는 법안을 통과하면서 생겨났다. 법안을 요구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공의 생활을 촉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상상하며 강력한 시민적 함의를 담아 세심하게 용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법안 자체는 어떠한 세부적 사항들도 애써 회피하려 했다. 최종 결과는 의회가 애초 구상된 대다수의 서비스들에 기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항상 곤란을 겪어왔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공영 방송사들은 처음부터 늘 자금을 구걸하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공영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이들은 연방 정부 및 주 정부, 그리고 지역 기금 및 시청자 후원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때때로 공중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 프로그램과 시리즈들을 방영한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각 개인들의 요구를 공중으로서의 역할 외부에서 유용하게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래밍도 제공한다. 주택 개선 정보나 투자 조언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나, 경매에서 골동품을 팔고자 하는 잠재적 기업가,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보모, 그리고 기본 개념들을 익히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그런 예들이다. 그들은 또한 방송 역사학자 에릭 바누(Erik Barnouw)가 “안전하게 화려한”이라 부른 영역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 기분을 돋우는 오락을 제공한다. 공영방송사들이 퍼블릭 미디어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공중의 일원으로서 말을 걸 때이다.
공공 프로젝트를 위한 또 다른 미디어 보호구역인 퍼블릭 액세스 텔레비전도 퍼블릭 미디어 프로젝트와 행동들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은 지역 공무원들이 케이블 회사와의 독점권 계약 등에서 사업 허가 조건으로 이 서비스를 요구한 지역들에 공급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사람들을 사회에 참여시키는가의 여부는 정치적 지식(the political savvy)과 지역 액세스 담당자의 시각에 달려있다. 직접 위성방송 텔레비전은 비영리적 용도를 위해 일부 채널들을 마련해둘 의무가 있지만 그러한 채널들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의 부족으로 고통 받곤 했다.




어떤 프로그래머들은 이런 채널들을 기회로 공중을 사회에 참여시킨다. 공영 방송에서 <Now> 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이나 <This American Life> 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것과 같은 문화적 리포트들은 종종 시청자와 청취자를 공중의 일원으로 행동하도록 참여시킨다. 공영 라디오에 나온 스토리콥스(Storycorps)는 큰 이슈에 새로운 목소리와 관점을 가져올 뿐 아니라 공유된 공동체란 느낌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ITVS나 <P.O.V.> 와 같은 공영방송 프로젝트가 만든 웹 사이트와 아웃리치 프로그램들은 이슈를 중심으로 공중을 직접 참여시키기도 한다.
 
뉴스레터나 잡지,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과 같은 틈새 미디어 창구 역시 공중으로 조직될 수 있는 유연(類緣) 집단(affinity group)들에 호소하고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키워나간다. 예를 들어 소수인종 미디어 신디케이션 서비스인 New American Media는 그들만의 공중에 부응하는 동시에 좀 더 넓은 공중에 도달하기 위해 개별 틈새 창구들의 포용력을 확장시킨다. 독립 영화, 대안 신문, 잡지, 공동체 라디오, 그 외 다른 플랫폼들은 공중을 결집시켰던 사회변혁 운동들의 집결지이자 도구의 역할을 해왔다. 매스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은 퍼블릭 미디어로 활동하기 위해 자신의 매체적 구조와 싸워야만 했다. 그것의 일대다, 상명하달식 구조는 공공 생활을 활성화하는 쌍방향성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 방송사들은 비영리 및 공동체 집단에게 오랫동안 손을 내밀어왔다.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가 질문을 받고 신문들이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나 옴부즈맨 제도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 그렇다면 훌륭한 퍼블릭 미디어들은 쌍방향적인가?
 
그렇다. 여기서 쌍방향적이란 미디어가 공중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상호작용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미미 이토(Mimi Ito), 다나 보이드(danah boyd)와 같은 학자들은 문화 창조와 사회생활을 발생, 유지시키기 위해 미디어 제작 도구들을 사용하는 운동에 대해 말해왔다. 이 충동은 또한 필요가 발생할 경우 공중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
 
(도서 출판, 언론, 사적 내러티브, 영화 제작, 음악 녹음, 잡지 출판, 비디오 작업, 사진, 그 외 다른 것들 등) 많은 매스 미디어 형태들이 디지털화되면서 그들의 상호작용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웹은 새로운 다대다 미디어에 박차를 가했고, 위키나 비디오 블로그(Vlog)와 같은 웹 2.0 기술들은 쌍방향적 옵션들을 확장해왔다.
 
퍼블릭 미디어는 이 모든 형태에 존재하고 번창해왔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기술의 물결과 함께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가령 낙태와 9/11 음모론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위키피디아 페이지들은 온라인, 쌍방향적 퍼블릭 미디어의 좋은 예들이다. 그들은 모두가 그 중요성에 동의하는 무언가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종종 의견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의 집단에 대한 존재를 끊임없이 반영해나간다. Congresspedia나 Citizendium과 같은 프로젝트들은 위키피디아의 실험을 통해 발전된 행동 양식들을 공공연하게 공공적인 목적들을 위해 활용한다.
 
(페이스북이나 플릭커, 유튜브 등) 새롭게 등장하는 소셜 네트워크와 미디어 공유 사이트들 또한 미디어 분배 방정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이들은 콘텐츠를 원래 창구에서 떼어내고 이용자들의 관계를 전경에 배치한다. 그들은 단지 사람들이 연예인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을 공유하는 것 뿐 아니라, 지구 온난화에서 다르푸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그들 및 다른 이들의 미디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대 상업 사이트 외에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하는 퍼블릭 소셜 네트워크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결집할 수 있는 풍부한 미디어 플랫폼을 제공하는 oneclimate.net을 보면 OneWorld의 리포터 및 파트너들이 만든 보고서와 영상 클립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미디어를 중심으로 공중을 형성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온라인에서 미디어를 공유하고 평가하고 창조하는 것은 아날로그 형태의 미디어에 비해 훨씬 빠르고 쉽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는, 원래 공공의 목적을 위해 고안되지 않은 미디어도 운동이나 교육적 캠페인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이용자들은 가령 새로운 이야기를 하거나 이슈를 부각시키기 위해 주류미디어에서 나온 클립들을 리믹스(remix)하고 재맥락화한다. (보통 일대다 방송 시대에선 닫혀있던) DIY 미디어 또한 그러한 개방적 환경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 American Idol> 이 보여주는 것처럼 쌍방향성 하나만으로 퍼블릭 미디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도와 과정도 중요하다. 즉, 공중을 결집시키기 위해 활용된 쌍방향성이어야 하는 것이다.
 
▶ 모든 퍼블릭 미디어는 정치적인가?
공중은 그들이 마주치는 문제를 중심으로 결집하며 보통 변화를 유발하거나 부패한 관행들을 개혁해내며 새롭고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제도들을 통하거나 또는 그것들에 대항하며 정치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퍼블릭 미디어는 종종 교육이나 다큐멘터리, 또는 저널리즘적 접근법과 연관되어 왔다. 그러나 개인적 표현물과 오락물은 만약 그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정치 또는 사회적 이슈들을 인식하게 하거나 명확히 표현, 또는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둘 다 똑같이 퍼블릭 미디어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문화 작업들은 종종 시사 프로그램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해의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1990년대 이후, 사적 내러티브와 의견들은 공중을 모아내고 활성화하는 장소로서 점점 더 대중화되고 활성화되어 왔다. DailyKos와 Feministing과 같은 특정 블로그들이나 이스마엘 베아의 < 집으로 가는 길: 소년 병사의 기억 A Long Way Gone: Memoirs of a Boy Soldier >과 같은 회고록들은 그런 표현물들이 어떻게 사회적 또는 정치적 주제들의 핵심을 담아내고 또 고무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바이런 허트(Byron Hurt)의 개인적 에세이 영화 < 힙합: 비트와 라임을 넘어 Hip Hop: Beyond Beats and Rhymes >와 같은 작업들은 개인적 시각에서 시작하여 문화 생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검토한다.
 
예술은 종종 문화역사학자 제임스 캐리가 ??현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라 불렀던 것을 위한 공간의 역할을 한다. 이는 최근의 작품들에서 고문과 테러리즘에 집중했던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작품들이나, 희곡에서 출발해 매년 미국 전 대학에서 공동체 퍼포먼스로 반복되고 있는 <버자이너 모놀로그 The Vagina Monologues>의 경우들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상업적 오락물은 일반적으로 퍼블릭 미디어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중적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텔레비전 시트콤 < All in the Family >가 편협한 신앙에 대해 국가적 논의를 촉발시켰던 예처럼 말이다.)
 
HBO의 최근 시리즈 < The Wire >는 상업적으로 생산된 미디어 프로젝트가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촉매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섯 번의 시즌동안 그 프로그램은 지방 자치 정부와 경찰, 그리고 교육의 심도 깊은 역할들에 대해 미디어와 블로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의 스토리라인 중 특정 측면을 중심으로 공중들이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 “After Ellen”은 게이 배역들에 대한 묘사를 추적했고,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Sudhir Venkatesh)는 쇼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일련의 갱 멤버들과 함께 쇼를 관람하기도 했다. 마지막 시즌(이 쇼의 작가 데이비드 사이먼(David Simon)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도시 신문의 느린 붕괴에 집중하고 있다.)은 언론인들에 주목한다. Salon.com의 그룹 블로그들과 < The American Prospect >는 각 에피소드에 대한 여러 작가들의 반응을 추적한다.
 
▶ 퍼블릭 미디어가 될 수 없는 것도 있나?
어떤 종류의 미디어는 퍼블릭 미디어가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상업 광고와 정치적 캠페인, 그리고 판촉 또는 기금마련 자료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기업의 사업 수행과정에서 만들어진 출판물과 웹 사이트 등은 퍼블릭 미디어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그런 반응을 촉발할 수는 있다. 당신의 개인적인 일기와 홈무비들은 퍼블릭 미디어가 아니지만 퍼블릭 미디어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자폐아의 부모이거나 턱없이 낮은 지원을 받는 전쟁 군인의 딸, 또는 감금당했다가 가족에게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사적인 일들을 미디어로 표현해내고 당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그 문제에 공감하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퍼블릭 미디어를 만들 수도 있다.
 
전화, 이메일, 또는 우편물을 통한 개인적 소통은 그것이 어떤 내용을 다루든 간에 퍼블릭 미디어가 될 수 없다. 미디어란 우리의 이해를 매개하고 우리의 소통을 촉진시키는 일체의 표현물들이다.
 
▶ 내가 퍼블릭 미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퍼블릭 미디어의 창조자들을 위한 노조나 직업 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퍼블릭 미디어를 위한] 새로운 기회들은 항상 존재한다. 최근까지 우리의 퍼블릭 미디어는 항상 공중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 이들의 편집자와 제작자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무엇이 알 필요가 있고 어떻게 그것을 묘사할 지 결정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영화제작자들은 공공의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주디스 헬팬드와 댄 골드의 (지구 온난화에 관한) <Everything's Cool>과 로버트 그린월드의 (용역 군인에 관한) <Iraq for Sale>이 그런 예이다. 인권운동단체 위트니스(WITNESS)도 인권 운동을 지원하고 장려하기 위해 온라인과 극장, 소규모 상영회를 통해 비디오를 보여준다. 비영리 뉴스 플랫폼인 원월드닷넷(OneWorld.net)이나 국제적 메타블로그인 글로벌 보이스(Global Voices)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도 솟아나고 있다. 휴대폰, 아이팟, 그리고 기타 모바일 미디어 장치들도 퍼블릭 미디어 제작자들에게 소규모 공중들의 일상생활에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정보를 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기존의 매스 미디어 방식의 퍼블릭 미디어가 지니는 한계들이 더 이상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퍼블릭 미디어는 더 이상 다양한 미디어 지형 속의 고정된 공간들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디어 지형 속에서 뒤섞이고 있다. 우리는 이제 공중에 의한 그리고 공중을 위한 퍼블릭 미디어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매스미디어의 자원과 기술, 지식 기반을, 새로운 풀뿌리 미디어 제작자들의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에너지들과 결합하는 창조적인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 그래서 지금 이대로 모두 좋은 것인가?
아니다. 지금은 불안정하고 실험적인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퍼블릭 미디어에서의 실험들을 육성하는 공공 정책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들도 나타나고 있다. 당신은 온라인 정보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당신의 참여로 인해 당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하진 않을 것인가? 당신이 만들도록 도움을 준 사이트가 내일도 존재할까? 당신의 소프트웨어나 광대역 접속 방식이 없이도 잠재적 동반자와 동료들이 쉽게 정보를 찾고 교환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인프라는 공중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유대감을 지원해줄까?
 
 
▶ 훌륭한 퍼블릭 미디어란 어떤 점을 갖춰야 하는가?
수준 높은 퍼블릭 미디어는 사람들이 단지 정보의 소비자가 아니라 그들이 공중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역할을 인식하도록 만든다. 공중이란 사람들이 공중의 일원으로서 행동할 때 존재한다. 독자, 혹은 청취자, 시청자로서 주변 친구들에게 미디어를 추천하거나, 공무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이익집단을 만들고, 자신들이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청원 운동을 벌이거나, 또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자신의 습관을 바꾸고 그 변화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그런 예들이다.
 
최고의 퍼블릭 미디어는 단지 정보만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잡한 이슈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은 상호 존중하고 사회참여적인 대화의 모델을 제공한다. 퍼블릭 미디어 프로젝트는 특정 정당이나 이데올로기, 사회적 집단, 또는 미학적 스타일의 전당이 아니다. 그들은 (암묵적 혹은 명시적으로) 민주적 원칙들을 지지하고 그것에 따라 운영된다. 퍼블릭 미디어는 특정 정파(partisan) 또는 애드보커시(advocacy) 단체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공중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는 능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그 미디어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특정 정파 또는 애드보커시 단체의 미디어 이상으로 거듭날 수 있다.
 
퍼블릭 미디어의 좋은 예는 패권적이고 위계적이며 폐쇄적이고 특정 단체만을 지지하는 모습보다는 개방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투명하고 참여적인 형태를 말한다.
 
▶ 사람들은 퍼블릭 미디어를 만들고 소비하는 일에 과연 얼마나 흥미를 느끼는가?
오락과 레저 부문에 있어서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 로스트 >처럼) 전문적으로 제작된 상업 미디어를 선호한다. (유튜브에 올린 자기 아이의 첫걸음 영상처럼) 개인 미디어의 경우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중요성을 갖는다. 한편 퍼블릭 미디어는 이들과 다른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차이를 평가하고 해결하며, 봉쇄적이고 부당한 권력에 도전하는 소통의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여러분은 항상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미디어를 만들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필요로 할 때 이러한 미디어들이 있어주길 바랄 것이다. 또한 여러분의 삶의 질과 정치적 선택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나 과정에 대해 믿을 수 있는 정보원을 원할 것이다. 공공의 지식과 행동에 기여하는 미디어를 이용할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는 믿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도 필요하다. 즉, 여러분이 필요로 할 때 퍼블릭 미디어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원하는 것이다.
 
▶ 개방적 환경에서 퍼블릭 미디어는 어떤 행동과 기준들을 특징으로 할 것인가?
디지털 플랫폼에서 퍼블릭 미디어를 만들고 인식하는 기준들은 우리의 실천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그러한 미디어가 만들어지는 공적 공간에서 이 기준들을 명확히 밝히고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나 피터 쟈스지(Peter Jaszi)와 같은 학자들은 그러한 기준과 실천들이 공익을 위한 참여적 미디어의 공치(governance)에 있어 중요한 자원이라고 주장해왔다.
 
전통적으로 공적 역할을 해온 미디어 형식들을 중심으로 직업적 관행((community of practice)이나 전문주의가 발달해 왔다. 예를 들어, 저널리즘의 영역은 직업적 관행과 학문적 훈련을 통해 객관성을 판단하고 정보원을 조사, 보호하며, 중상비방을 제한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기준들을 발전시켜왔다. 포상제도, 전문학교, 회원 조직, 옴부즈맨, 노조는 모두 언론의 이런 기준들을 지탱하고 강화하면서 사회적으로 수용된 직업적 관행을 만들어냈다. PBS나 NPR과 같은 전통 깊은 퍼블릭 미디어 조직들은 공정하고 세련된 기사 제공을 통해 시청자들이 교양 있는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서 명성을 쌓고자 한다.
상명하달식 미디어 조직들은 감독하기 훨씬 용이한 기준들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으면서 아직 그 정확성이나 편향성, 악의에 대해 평가된 바 없는 플랫폼들은 진실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직업적 관행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은 것이다. 일부 경우에는 이러한 플랫폼의 이용자가 모니터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슬래시닷(Slashdot)'과 같은 사이트들은 순위를 매기고 편집하고 피드백 하는 도구를 통해 스스로 관리 감독한다. 정치적 블로거와 같은 다른 뉴미디어 제작자 커뮤니티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윤리적 가이드라인이나 나쁜 행위자들을 제재하기 위한 토론을 벌여나가며 기준을 설정하려는 노력에 착수했다.
이용자, 학계, 회원 조직, 미디어 모니터요원, 재단, 그리고 미디어 제작자들은 모두 디지털, 참여적 미디어 시대에 퍼블릭 미디어의 특징을 이루게 될 행동들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맡아야할 역할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제작자들이 보편적으로 성립된 기준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전국 조직을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훌륭한 공정 이용 실천 성명” (centerforsocialmedia.org/fairuse) 을 만들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이들은 새로운 창조자가 허가나 비용 지불 없이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들을 정리해놓았다. 이 성명은 산업적 관행을 바꿔놓았다. 이 사례는 설득력이 강했기 때문에 예술 교사, 미디어 리터러시 교사, 댄스 아키비스트, 영화학자 등도 그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성립된 공정 이용의 기준들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어떤 미디어든 퍼블릭 미디어가 될 수 있는 5가지 방법
1) 공중의 구성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스스로 미디어를 만들고 평가해나간다. (DIY 미디어, 블로그와 비디오 블로그, 공동체 미디어, 위키피디아 등)
 
2) 미디어 제작자들이 공중의 구성원들에게 그들과 함께 미디어를 만들도록 참여시킨다. (< Off the Bus >와 같은 프로와 아마추어 합동 미디어, < Talking Points Memo >의 탐사, < The War Tapes >와 같은 참여적 영화제작 등)
 
3) 애드보커시 단체나 활동가가 미디어 생산물을 만들거나 채택하여 그 이슈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교육하는 아웃리치 캠페인에 활용한다. (< A Lion in the House >, < Wal-Mart: The High Cost of Low Price > 등)
4) 미디어 제작자가 중요한 피드백과 토론 도구들을 포함시킴으로써 공중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다. (글로벌 보이스, 슬래시닷, 시/청취자 전화 프로그램 등)
5) 미디어 프로젝트가 특정 이슈의 상징이나 대중화되면서 틈새 및 주류 미디어영역에서 좀 더 폭넓은 논의를 촉발한다. (<The Wire>, <The Colbert Report>, <Sicko>, 크리스 락과 마가렛 조의 코미디물 등)
 
 
▶ 오늘날의 공영방송이 미래 퍼블릭 미디어의 기반인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비록 공영방송이 수십억 달러의 세금이 투여되고 수백만 미국인들이 신뢰하고 혜택을 얻는 중요한 공공 자원이기는 하지만, 미래의 퍼블릭 미디어를 위한 유일한 플랫폼은 아니다. 사실 공영 방송사들은 개방적 디지털 환경이 제공하는 기회들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영방송사들은 세금으로 운영되고 이용자들의 후원을 얻으며, 공중을 조직할 임무를 지닌 중요한 고품격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해낼 수 있다. (이 경우 많은 공영방송사들이 그들의 일상적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뉴욕타임스와 같은 오늘날 선도적인 언론 기관들도 그들이 얻는 대중적 신뢰와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퍼블릭 미디어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들도 그들의 핵심 임무를 위한 노력을 공중을 참여시키고 조직하는 데 맞춰야 할 것이다.
 
미래의 퍼블릭 미디어는 그러한 기반들 뿐 아니라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해 현존하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미디어 공간들로부터 성장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전문 또는 시민 저널리즘,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비영리 데이터베이스 및 도구, 웹사이트들이 포함된다. (미로(Miro)와 같은 오픈 비디오플랫폼이나 레딧(Reddit) 또는 디그(Digg)와 같은 추천 사이트들이 그 예들이다.)
 
▶ 퍼블릭 미디어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좋은 질문이다. 과거에 퍼블릭 미디어들은 세금과 인센티브 정책, 그리고 기부금 등에 의존해왔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와 같은 자발적 지식생산 프로젝트들도 서버에서 전기세, 컴퓨터, 이용자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실적인 비용이 존재한다. 그들은 또한 그러한 프로젝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들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들은 종종 숨겨지곤 하는데 인터넷 구축에 세금이 들어간 것도 그런 예이다!) 그러므로 퍼블릭 미디어 구축에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이다.
 
웹 2.0 소셜 네트워킹은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는 미디어 프로젝트들의 기회를 점차 확장시켜내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팁 항아리(tip jar)나 소액결제, 광고, 새로운 배급 형태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개방적이고 참여적이며 피어투피어(peer-to-peer) 환경을 위한 사업 모델은 모두 실험적이고 불안정하다. 상업 미디어를 포함해 어떤 사업 모델이 디지털 미디어를 위한 형태로 떠오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퍼블릭 미디어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위키피디아에서처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공유하는 DIY 미디어를 통해 공중이 스스로 형성되는 형태 말이다. 또 다른 이들은 직접적인 지원금이나 정책을 통한 공적 지원이 퍼블릭 미디어 실천의 안정적 기반 마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퍼블릭 미디어도 방송용 주파수 대역에 공영 방송을 위한 특별 영역을 설정해놓는 것처럼 특별 구역을 필요로 하는가?
분명 모든 상업 미디어는 파트너십이나 거대화를 통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이용자의 흥미를 이끌어내며 활동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이윤 창출을 위한 목적이든 시민 사회적 목적이든 (PBS나 NPR과 같은) 특정 구역(zone)과 “브랜드”는 사람들이 쉽게 찾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특정 구역과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공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미디어를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기여물도 업로드 할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오늘날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미디어는 공영방송과 같은 제한된 구역을 훨씬 뛰어넘어 생산되고 있다. 미래는 또한 우리의 미디어 실천에 시민 문화적 요소를 가미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탈중심화와 비매개성(disintermediation)은 디지털문화의 성장을 상징해왔다. 만약 디지털 문화의 성장과 함께 공중이 양성되기 위해서는, 공중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와 플랫폼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구역과 브랜드가 중요한 만큼 기준과 실천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러한 행동 가이드들은 사람들이 공중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알도록 도와줄 것이다.
 
▶ 퍼블릭 미디어의 성장을 위해 거대 상업 미디어들을 제한해야 하는가?
상업 미디어 기업들은 그들이 20년 전 규모이든 아니면 현재의 규모이든 그들의 의제에 대해 공중을 결집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Wire>의 예나 이와 비슷한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상업 미디어가 흥행과 올바름을 모두 갖추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상업 미디어 기업들은 그들 자신도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공중의 구성원들에게 유용한 예시와 도구, 모델, 공유된 문화적 맥락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미디어 집중(consolidation)은 어떤 상황 하에서는 적절한 이슈가 될 수 있다. 때문에 통제력(control) 은 지속적인 이슈가 아닐 수 없다.
 
통제력에 대한 어떤 정책들이 핵심적인지 판별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미디어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핵심적 사항들로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플랫폼과 제작물들에 대한 보편적 접근과, 말하고 만들고 공유할 자유 ,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및 문화적 습관에 관한지식 을 들 수 있다.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한 미디어의 이용자와 제작자들이 통제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들이 핵심적일까?
 
참여적 디지털 시대에 퍼블릭 미디어의 실천들은 여러 수준에서 지탱될 필요가 있다.
 
심층 인프라 의 수준에서 퍼블릭 미디어 제작자들은 광대역에 대한 공정하고 보편적인 접근을 필요로 할 것이다. 퍼블릭 미디어 프로젝트들은 또한 미디어 세상에서 1등 시민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작업들은 상업적 오락물과 똑같은 우선순위로 유무선 통신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 의 수준에서 퍼블릭 미디어 제작자들은 식별가능한 창구와 채널, “브랜드”가 필요하다.
 
제작 의 수준에서 퍼블릭 미디어 제작자들은 훌륭한 미디어를 만들기 위해 자원과 도구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최고의 실천 가이드라인, 즉, 디지털 시대 민주적 시민사회를 위한 미디어 윤리와 문화, 예절을 이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들은 또한 기술 훈련과 문화 교육, 즉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소통과 행동을 활성화하는 가상적 또는 면대면 공동체 센터도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프로젝트를 유지할 수 있는 자금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 어떤 구체적인 정책들이 퍼블릭 미디어를 육성하고 지원할 수 있을까?
퍼블릭 미디어는 기존에 존재하거나 새롭게 등장하는 플랫폼들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정부로부터의 보호와 지원을 필요로 한다. 지역, 주, 그리고 연방 정부는 예전부터 이러한 정책을 실시해왔다. 가령 1794년 연방 정부는 신문에 할인 우편 요금을 적용했으며 1967년에는 전국적인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퍼블릭 미디어 구축을 지원하는 정책적 기회들은 디지털 환경이 성장함에 따라 계속 등장할 것이다. 오늘날의 이슈들을 바탕으로 견본을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프라의 수준에서:
디지털 시대 “보편적 서비스”의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국적 광대역 정책이 필요하다.
 
“망중립성” - 인터넷서비스 제공자들이 이윤을 우선시하면서 퍼블릭 미디어를 2순위나 그 이하로 다루는 것을 막는 기준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와 신원 보호 - 공중의 구성원들이 서로 안전하게 소통하고, 정부의 감시나 기업의 정보 수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필요를 말한다.
 
플랫폼의 수준에서:
퍼블릭 미디어의 창구와 채널, 브랜드를 공적으로 지원한다.
 
공영방송이 참여적이고 쌍방향적인 디지털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의회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공적지원은 방송에 한정되어 있다.
 
공영방송 시스템 외부에서의 퍼블릭 미디어 실험들을 위한 공동체적 지원이 필요하다.
 
제작의 수준에서:
도서관이나 요양원과 같은 커뮤니티 센터 및 공교육에서 퍼블릭 미디어의 기술적 훈련과 문화 교육 실시를 지원한다.
 
전문적 또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결합된 퍼블릭 미디어 제작을 지원한다.
 
공공의 지식과 행동을 위해 고안된 미디어 도구나 정보은행을 만드는 비영리 단체들에게 세금 혜택이나 특권을 제공하는 공공 정책을 실시한다.
 
공정 이용처럼 저작권의 균형 있는 사용 범위를 확대하여 제작자들이 코멘트를 하거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상업문화로부터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도록 한다.
 
▶ 어떻게 하면 이들 중 하나라도 실현할 수 있을까?
납세자나 소비자로부터 돈을 모으는 기술적 메커니즘들은 충분히 존재한다. 내구성 전자제품에 세금을 물리거나 주파수 경매를 통한 기금 마련, 또는 지정 할당제 등 기금 마련을 위한 방법들은 다양하게 제안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어려운 부분은 미디어 환경의 구조를 만들고 재정을 지원하는 정책과 규제 전략, 강제 수단에 대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모으는 일이다. 공중은 그들이 선출한 공무원들과 규제 담당자, 통신 서비스 제공자 및 미디어 사업자들에게 공공의 지식과 활동을 위한 미디어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과 서비스, 기회를 요구하기 위해 결집해야 할 것이다.
 
▶ 퍼블릭 미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최저선은 어디일까?
우리는 정보 네트워크에 의해 전례 없이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가능성은 무한하다. 어떻게 그 가능성들이 실제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까? 상업 디지털 미디어의 성장은 퍼블릭 미디어의 기회와 실천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것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퍼블릭 미디어에 대한 인센티브와 실천들은 결국 민주 사회의 공중 보건에 대한 투자인 것이다. □
 
The Center for Social Media 는 패트리샤 아우프더하이드 교수가 이끌고 있으며, 사회적 정의와 시민사회, 민주주의를 위한 미디어와 이를 양성하는 공공적 환경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본 센터는 워싱턴 D.C에 소재한 아메리칸 대학 커뮤니케이션 스쿨(래리 커크만이 학장을 맡고 있다)의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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